어린 엄마 밑에서 2명의 동생을 케어하면서 힘들게 살고 있는 지영이, 그리고 그런 지영이를 챙겨주는 소라, 소라의 삶도 편하진 않다.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정신병원 입원, 삼촌의 성폭행... 그리고 지영이 동생인 지훈이 한쪽 귀가 들리지 않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지훈이. 각자의 삶에서 아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보다 더 어렵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함께 밥 먹을 사람이 있고 대화할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다행이다라고 하면서 감사할 줄 아는 아이들이 이 책 속에 있었다. 그런 지영이 곁을 함께 해주는 아이가 소라다. 소라는 늘 밝게 지영이를 챙겨주던 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라는 가출을 선택했다. 오죽 힘이 들었으면 가출을 했을까?
그날 새벽, 춤을 추다, 시발 롤모델, 소라의 겨울, 지훈이의 캔버스, 정수야 정수야 6편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각기 다르다. 그러나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 있지만, 같은 시간대에 있는 연결된 아이들과 선생님의 이야기.
교사 생활을 하는 작가는 자신이 만난 수 많은 아이들 중 아이들의 이야기로 하나의 소설을 썼다. 아이들 하나하나 거미줄 처럼 아이들 힘으로 헤쳐 나오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버텨낸다.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지켜 보고 있는 나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 정말 다행인 것은 그 아이들의 삶은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힘내서 살고 있는 이야기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아직 삶을 살고 있기에.
그 속에서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선생님 이야기도 있다.
결국 교실에서 아이들의 만남은 사람대 사람으로 만나는 것이다.
참 다행이다. 부모가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못해도 이 사회에 선생님이 존재하고 그럼에도 선생님 조차 없을때도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보듬으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사람은 서로 기대 사는 사람인가 보다.
지금의 삶에 감사하게 만드는 책이다.
<책 속 밑줄>
p. 68. 엄마가 가끔 주는 생활비는 지영에게 생명줄이었다. 지영은 알고 있었다. 내가 너무 힘든 내색하면 엄마도 미안해 할 것이고, 동생들도 불편할 테니 내가 무너지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가끔 설움이 북받혀 혼자 숨죽여 울었지만 평소엔 그러고 싶어도 시간이 없었다. 무엇보다 지영에게는 특유의 낙관이 있었다. 그냥 '잘 될 거야'를 되뇌면 시간이 지나갔다. 지동이도 작년보다 올해 돌보기 쉬워졌고, 지훈이도 자기 혼자 즉석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반찬과 함께 먹을 줄 아니 그것도 고마웠다. 힘들었지만 살만했다. 더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p.183 예, 선생님. 당황하셨겠어요.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그 친구가 한쪽 귀를 못 듣잖아요? 그래서 수업에 적응을 잘 못하나 봐요. 낙서는 그 녀석의 유일한 취미인 것 같고요. 아마 그날의 소재가 .......... 같은데. 그게 꼭 선생님을 상상하면서 그리진 않았을 겁니다. 제가 불러서 국어 선생님에게 사과하라고 잘 타일러 볼께요.
p184. 선생님들 설명을 알아들을 수 없어 답답해?
그렇게 그림을 그릴땐 마음이 좀 편안하니?
p185. 국어 시간 이야기 들었다. 국어 쌤 화가 좀 나셨던데?
그래? 그 답답한 마음 알 것 같다. 그래도 국어 선생님에게 가서 죄송하다고 사과 말씀드리는 게 어떠니?
그래. 00선생님 자리는 저쪽이다.
국어 선생님이 네 사과를 받아들이셨나보다. 그럼 이제 집으로 가거라.
P194. 예, 제가 도화지를 주면서 그림을 그려 보라 한 것은 일단 맞지요. 근데 그 놈이 국어 시간에 도화지를 꺼내 놓고 그렸군요. 선생님께서 화를 내실 만도 합니다.
나는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다. 나 자신도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랬던 것이 아닌데, 그저 지훈이에게 학교가 너무 지루한 곳이 아니었으면 하고 하는 마음 뿐인데 000 선생님이 정색하고 나의 교육관까지 운운한 상황었다.
아이의 마음을 공감하고 그 행동에 대해 안내해 주는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은 선생님의 대사가 마음에 와 닿았다. 부드러운 듯 하지만 할말을 하는 선생님의 대사가 마음에 들어 옮겨 적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