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줄다리기 -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
신지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p15
언어 표현들 사이의 줄다리기는 사실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며 벌이는 심각한 이념의 줄다리기다.

얼마 전 어떤 대학생이 한강 작가를 무려 '여류작가'라고 칭하며 앞날을 기대하겠다는 서평을 본 일이 있다.

앞날을 기대하겠다는 격려(?!)는 둘째 치고서라도 '여성'도 아니고 '여류'라니, 이 사람은 국어를 누구에게 배웠길래 아직도 '여류'라는 말을 쓰는 것은 셋째 치고서라도 일전에 '장애우'라는 단어가 순화된 표현인줄 알고 썼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장애우'라는 단어는 장애인 스스로를 칭할 수 없을 뿐더러 허용하지 않은 친구 관계를 단정짓는 폭력을 수반한다.]

나름 감수성 뿜뿜한다고 생각헀는데... 멀어도 너무 멀었더랬다.

저자 신지영 교수는 10가지 대립을 지목하며 단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언어와 단어가 바뀌는 것이 아닌 이데올로기 사이의 권력 대결을 주장한다.

무엇보다 성차별을 바탕으로 형성된 언어습관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슈가 가장 크게 와닿았는데, 어제 오늘 '논산 여교사'가 하루 종일 검색어 상위권에 있었다.

'청년'이란 단어를 다룬 부분에선 과거의 의미보다 슬퍼진 뉘앙스에 착잡한 심경을 숨길 수가 없었다. 서글프다.

p263
우리가 지향해야 할 어문 규정의 방향은 관이 정하고 민이 따르는 방식이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민이 정하고 관이 정리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자장과 짜장 사이에서 언중을 관의 규범으로 옭아매려던 과거 국어원의 태도에 일침을 가하는 부분은 언어에 대한 저자의 감수성과 주장을 넉넉히 지지하게 해준다.

일상의 단어와 소재가 등장하고 문장도 술술 매끈하게 들어온다. 종이 재질에 따른 무게에 살짝 걱정했는데 금새 읽었다.

p.s. 그나저나... 'X나게'를 쓰는 선배가 멋져 보여 의미도 모르고 집에서 처음 사용해 보셨다는 경험담을 읽으니 '니 꼴리는 대로'를 의미도 모르고 쎴던 지금은 사이비에 빠진 교회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p.s. 81쪽 7행 오타: '없는 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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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맨 모중석 스릴러 클럽 45
로버트 포비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p332
'살가죽이 벗겨졌어.' 그 목소리가 다정하게 속삭였다.

이 책은 범죄 포르노다.

쎄다.

음식이나 음식을 섭취하는 장면을 노골적으로 포착하는 것을 #푸드포르노 라고 부르듯이, 이 책은 범죄와 범죄가 벌어진 장면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일전에 #양들의침묵 이 그 특유의 난해함과 잔인성 때문에 영화화가 불가능하다는 평이 있었는데... 이 소설은 만들어질 수 있다 하더라도... 곤란하다.

작가의 폭거라고 할 정도로 끝까지 고압적인 잔인함과 절망이 이어지는데... 아아 피칠갑이란 말은 겸손할 지경이다. 피가 솟구친다. 혈관이 눈앞을  덮친다. 쏟아진 혈액이 응고 될 시간을 주지 않는다.

FBI의 특수수사관 제이크 콜은 세계적 화가인 아버지 제이콥의 자해 입원과 30여 년 전 잔인하게 살해된 어머니와 같은 방식의 재범이 일어나자 자의반 타의반 옛집으로 돌아온다.

피해자는 산 채로 살가죽이... 같이 있던 아들도 똑같이 잔인하게... 범인은 아이의 엄마가 보고 있는 상황에서 참변을 저지르고 이어 아이의 엄마도 살해한다.

제이크의 비범한 관찰력과 통찰력은 범죄 현장의 퍼즐을 꿰어 맞춰 세인의 인정을 받지만 이 미친 싸이코는 요란한 범죄에도 그 윤곽을 잘 드러내지 않아 그를 답답하게 하는데, 아버지는 자신의 문드러진 팔로 병실 벽에 피와 뼈로 그림을 그리고 아버지의 독점 중개인 핀치가 그의 심기를 건드린다. 

그리고 과거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이 모자에 이어 아버지의 담당 간호사까지 잔혹하게 살해하면서 제이크는 이 사건이 자신을 향한 것임을 깨닫는데... 이즈음 미친 아버지의 기행 뒤에 묘한 힌트가 등장한다.

그러나...
자신을 보기 위해 뉴욕에서 찾아온 젊은 아내 케이와 아들 제러미를 강력한 허리케인과 범인으로부터 피난시키기 위해 동작을 취하려는 찰나...

강한 충격이 지칠 줄도 모르는 책이지만 결말의 스파크도 괜찮고... 지칠 줄 모르고 육즙과 선어의 펄떡임과 과즙, 그리고 기름 웅덩이를 곁에 두고 즐기는 우리의 푸드 포르노적 욕망을 생각하면 이 이야기를 못 읽을 이유는 없겠지... 그러나 등급이 좀 필요할 정도다.

p.s. 28쪽 12행의 섹스를 의미하는 비속어는 다른 단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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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7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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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작가로서 보여주는 성실함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p222
"그럴까. 나는 움직일 거라 생각해. 녀석은 단순한 살인 사건 용의자가 아니야. 용의자인 동시에 탐정이지."

용의자가 된 주인공이 진실을 쫓는 오래된 시도와 개인 정보를 탐하는 권력집단의 이기심과 너무 적당히 포장해서 손끝만 대도 터질 것 같은 서술트릭 등...

추리 소설계의 거장이며 애거서 크리스티의 뒤를 잇는다고 생각될 정도의 다작 작가가 몰랐을리 없을 이 평범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썼으며 냈으며 자신의 작품 목록에 이 소설을 올렸다.

작가로서 계속 이야기하고 쓴다는 것의 과정. 이 책의 평범함과 일본색의 은은한데 띵뚱땡 맞은 감동이 오히려 세간의 평이 어쨌건 자기 길을 가는 소설가의 꾸준함을 떠올리게 해줬다.


어쨌든 작가의 성실함은
'아... 멍한 상태의 읽기를 습관처럼 저지르며 이런 개똥 같은 후기를 왜 쓰는지, 심지어 서평단으로 감사히 읽겠다는 인사를 저지르고는(?!) 감사는 커녕 난도질 하는 배덕의 핸드터칭을 하는 이 순간의 쪼그라든건 내 양심인가, 아니면 독자로서의 성실... 아니 자신감... 도 아니고 욕망인가???!!!'하는 고민을 견디게 하는 햇빛과 같은 (내맘대로) 깨달음을 전해준다.

아, 읽자 읽자 읽고... 미안해도 뱉어내고 들리지 않는 욕을 먹는 것 같은 기분을., ,  아, 성실함이란 이 신비란... 

p146
"프로파일링을 끝낸 모양입니다. 성별은 남성. 혈액형은 Rh플러스 AB형. 신장은 170센티미터 플러스마이너스 5센티미터......"

그리고 DNA 수사 시스템이 분석한 용의자가 딱 너무 나라서 괜히 찡(아니 왜? 나도 몰랴)했다.

p.s. 누가 자기 탄생화가 옥수수라고 해서 웃다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나는 가라구요, 가시. 옥수수는 먹기라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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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5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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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내 얘긴가
다들 너무하네 진짜...

하드 보일드는 창작물에서 흔히 사용되는 판타지가 오히려 희박하기에 그 얕은 숨에서 파르르 떨리는 진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뭐지... 나 변태 같어) 돼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사건 전면에 등장하는 정치적 야사를 다루는 다소 비약적인 그림자 권력과 결국 닫힌 채로 영원히 잠수하는 하나의 사건이 내게는 영 개운치가 않았다.

시리즈 작품이라 첫작품부터 읽었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뭔가 어긋난다. 오타(167-2, 345-말)와 어색한 문장(255-19, 363-11)도 신경 쓰이고.

물론 책 제목에서부터 찔려서 그런건 아니다.
아니다 정말 아니다
#나만사랑받기위해태어난사람

어쨌든 내가 살아 무엇하랴 벌써 화요일인데
아모르 파티
단결하라! 우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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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맨 앤드 블랙
다이앤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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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세기 말로 보이는 영국 교외 어딘가에서 염색 공장을 운영하는 벨맨 가족의 일원인 윌리엄 벨맨의 일대기다. 

문체나 미끄러지듯 이야기를 풀어내는 수완은 뛰어나는데... #찰스디킨스 의 #크리스마스캐롤 이나 영화 #조블랙의사랑 에서의 #안소니홉킨스 를 떠올리게 하는 다소 익숙하고 어디선가 분명 들어봤던 '주변을 한번 둘러보렴', '가족이 먼저', '자본주의의 탐욕을 경계해'...

아... 아아아... 

419쪽 소설이 396쪽까지 윌리엄의 맹목적인 일과 성공을 다뤘다면 이제 20쪽 분량에선 카타르시스를 팡! 터트리거나 허무라든지 아! 하는 오묘한 깨달음의 상쾌함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평평하다. 밋밋하다.

벨벳이나 극세사 담요의 질감 같은 작가의 단어와 문장과 매끄러운 번역조차도 이 이야기 자체의 무미無味를 견뎌내지 못한다.

아버지가 도망치고 어머니와 아내와 아이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자수성가하고 성공하고 염색업과 장례업에서 세상의 인정을 받는 한 사람의 일대기가 왜 떼까마귀와 접목되는지도 설득이 안된다.

끝이 이렇게 평평하면 다 잡아먹힌다. 

작가의 문장력, 섬세하게 묘사된 시대, 아름다운 표지와 한 가문의 역사와 허상과 같은 자본주의의 끝없는 추구도, 그리고 내 시간마저도 잡아먹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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