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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 다시, ‘저녁 없는 삶’에 대한 문제 제기
김영선 지음 / 한빛비즈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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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적인 멋 부림보다 내 몸에 익은 자연스러움이 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저 그런 류의 자기 계발 책일 거라 멋대로 판단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아니었다. (역시 제목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나 보다.) 이 책은 저자가 약 2년간 매일같이 쓴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일.상.' 속에서 건져낸 '나'다움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져 있었다. 도전을 싫어하고 낯선 곳을 꺼려하며 모험을 즐기지 않는 저자가, 그럼에도 내키는 대로 살아가며 느낀 행복한 에피소드들이 이 안에 있었던 것이다.
2016년에 직장인 1,69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평소 야근' 비율은 81.2%, 야근 시간은 하루 평균3.7시간, 야근빈도는 주당 평균 3.6회였다. 한 달 평균 53시간이나 된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1년여간 외주업체 방송작가로 일한 경험이 있다. 10시 출근, 6시 퇴근에 최저임금인 80만원을 받기로 계약서에 사인했다. 그때는 누구나 그렇게 사는 줄 알았고 누구나 그렇게 배우는 줄 알았다.
하지만 10시 출근, 6시 퇴근이 지켜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회의가 있는 날은 더 그랬다. 오후에 잡았던 회의는 무작정 연기되었다. 메인작가 누나들은 밤에 글이 잘 써진다며 저녁 9시에나 출근을 했다. 밥을 안 먹고 왔다며 밥을 시키고 소화 시켜야한다고 커피를 마신 뒤, 회의를 시작하면 밤 11시였다. 그렇게 회의를 2~3시간 가량 하고 나면 하루가 넘어갔다.
새벽 1~2시에 회의를 마치면 나는 추운 겨울 눈바람을 뚫고 여의도에서 장승배기 집까지 1시간 20분을 걸어왔다. 고작 80만원 받으면서 택시를 타기엔 부모님께 너무 염치가 없었고 집에 들어가지 않고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자는 건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추위를 뚫고 걸어 집에 도착하면 3~4시경이었다. 10시 출근에 맞추어 일어나야 했으므로 나는 꽁꽁 언 몸이 대충 녹았을 대 쯤에는 얼른 이불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10시가 되기 전에 사무실에 출근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명절 연휴 기간에도 차레를 지낸 뒤 불려나와 3일 내내 녹화본을 돌려보며 대사를 따야했고, 12월 31일 밤 12시에 시작하는 12만원짜리 박진영 콘서트는 밤 11시에 회의 탓에 보러가지 못하게 되어 여자친구에게 차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팀 촬영 마감때문에 2박 3일 밤을 꼴딱 새고 겨우 집에 들어갔더니 3시간 뒤 나오라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나가기도 했다.
29살의 열혈청춘이었지만 피로해 죽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 더욱이 그게 당연하다는 모두의 인식이 나를 숨막히게 했다. 자신들이 회의시간보다 늦게 온 것에 대한 미안함은 1도 표현하지 않고 막내는 다 그런거다라는 말로 나를 짓눌렀다. 야근을 하지 않으면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치부하고 무시했으며 가르쳐주지 않았다. 안 그래도 좁은 업계라 소문이 엉망이면 더 나아가지 못할 것 같아 그런 부조리가 있어도 참아야했다. 고작 80만원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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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것들은 글러 먹었단 말이야! 근성이라곤 없지! 이정도도 못 버티는 놈은 어디 가서 뭘 하든 사람 구실 못 해! 평생 실패만 하다 패배자로 인생 종치겠지! 너 같은 놈이 다음 직장을 그리 쉽게 찾을 것 같아? 적응이나 할 것 같아? -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중
준비하던 프로그램의 종영과 함께 첫 직장을 나온 뒤, 일본에서 생활하다가 한국으로 넘어와 2번째 직장에 들어갔다. 9시 출근, 6시 퇴근에, 이전보다 몇 배나 많은 월급이 적힌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하지만 9시 출근, 6시라는 퇴근 시간은 허울 뿐이었다.
제일 상사인 본부장은 8시에 와서 하루 업무를 준비했다. 당연히 막내인 나는 그보다 일찍 나와 있어야했다. 집에 가면 마누라에게 잔소리 들어 가기 싫다던 팀장 탓에 모니터 앞에 멍하니 앉아 그가 퇴근하길 기다린 적도 허다했다. 그렇지 않으면 같이 술을 마시러 나가 새벽 2~3시까지 그의 비위를 맞춰주어야만 했다. 그래도 출근은 7시 반까지였다. 물론 계약서에는 여전히 출근 시간이 9시로 명시되어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2~3년이 지나자 예전보다 덜 눈치를 보고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짬이 되었다. 하지만 마침 SNS가 활발해지는 시기였다. 이제는 융통성을 발휘해 출근은 좀 일찍해도, 퇴근은 정시에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람(?)을 느낄 즈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단체 카톡방을 통해 팀장에세 업무지시가 내려왔다. '김대리, 내일까지 OO 좀 해서 책상 위에 올려놔줘.' 이게 무슨 개같은 경우란 말인가. 눈 마주치고 인사까지 다하고 나온 걸 뻔히 알고서는 퇴근 후에 SNS로 업무지시라니. 그것도 당장 다음 날까지 제출하라니.
결국 집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밤새 일을 해서 가져갔다. 하지만 더 분통 터지는 건 당장 필요한 서류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일찍 퇴근하는 내가 얄미워, 팀장이 심술을 부린 것이었다.
그 후에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나는 그렇게 3번째 회사를 찾아나섰다.
다행히 3번째 회사는 2번째 회사와 같은 조건에 계약 사항을 지키고 있었다. 그 와중 지난 달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었다. 나는 인사 관련 일도 맡고 있었기에 이 조항에 대해 관심을 기울 일 수 밖에 없었다. 직원들 업무 시간 관리를 해야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제도를 크게 벗어나는 사항이 우리 회사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책은 과도한 업무로 인해 좌로사 하거나 자살을 택하는 수 많은 김사원, 김대리, 김과장, 김차장, 김부장을 위한 책이다.
사회적 제도의 변모 뿐만 아니라 앞선 이들의 생각도 바껴야 함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들어 제시한다. 예시 중에는 게임회사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었는데 이 부분들은 내가 작가 생활을 할 때 겪었던 일들과 다소 오버랩되어 분통이 터졌다. 특히 단순 소모품으로 생각하며 교체 가능한 인력으로 여겨 하찮게 여긴다는 부분들에서는 적잖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팽배한 근면주의, 열악해지는 임금구조, 시늉만 하는 규제, 경쟁을 부추기는 성과 장치 등을 열거 하며 이런 것들이 변모하지 않는 이상 여전히 우리 노동자들은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다 죽게 될 것 이라고 하였다. 여전히 많은 부분이 개선되어야 하지만 얼마만큼 바뀔지 알 수 없어 사실 책을 읽으며 답답함이 더 일었던 것도 사실이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문제들을 눈으로 직접확인한 후 오는 한 숨같은 거라고 할까.
갈 길이 멀다, 참으로. 그럼에도 모르고 가는 것보다 알고 대처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하기에 우리나라에 사는 모든 근로자들이 한번쯤은 읽어보았으면 했다. 좋은 공부가 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