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붕대 스타킹 반올림 31
김하은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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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일어 난지 100일 하고 일주일 지나고 있다. 7월 24일 시청광장에서 진행된 100일 추모공연에 참석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인이 있었던 다이어리가 대형화면에 잡혔다. 어느 청소년의 꿈과 그 꿈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땀 흘렸던 그 흔적이 고스란히 적혀져있었다. 가수 김장훈과 하늘나라에 가있는 김보미양이 함께 부른 <거위의 꿈>은 시청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왜 하필 어린 청소년들이었을까? 아까운 어린 생명들이 희생돼야만 했을까? 학교라는 공간에서 공식적 일탈이 허락된 수학여행 도중 참변을 당했기에 더 안타깝다. 대한민국의 청소년으로 살아간다는 것, 행복할까? 표면적으로 봤을 때, 전 시대 어른들과 비교했을 때, 아쉬울 것 없는 경제적 뒷받침과 부모의 뜨거운 교육열로 인해 고품격 인재들이 양성되는 듯 꽤 괜찮아 보인다. 집에 오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학교 가까운 고시텔에서 숙식을 하기도 한다. 학원교육으로 인해 학교 내신 성적은 쑥쑥 올라가기도 한다. 영어 외에도 제 2외국어는 필수적으로 잘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방황과 일탈, 자살률은 높아지고만 있다. 영어 단어 시험을 잘못 보면 a4용지가 새까맣게 되는 깜지를 써내야한다. 성적스트레스 때문에 ADHD 약을 복용하기도 한다.

김하은의 <얼음붕대 스타킹>은 학교성적이 우상화 된 현 학교제도 속에서 상처 입은 한 청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 속에 핫이슈가 되는 사건은 선혜가 고시텔 빈 공터에서 당한 성추행이다. 다행히 추행으로 끝났지만, 그 사건 후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인해 선혜는 더운 여름에도 한기를 느끼고 두툼한 스타킹을 신고 다닌다. 선혜에게 더 큰 정신적 외상은 성추행 사건보다, 성추행 후 사후 처리과정에서 빚어진 가족과 친구들의 태도에 있다. 성적이 우상화된 학교현실 속에서 선혜가 겪은 성추행사건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슈퍼를 하면서 억척같이 공부시키는 엄마는 선혜가 느꼈을 정서적 충격과 공포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지금 뭐 합니까. 짐은 와 싸는 기라예? (...)집에 와 갑니까. 하루를 쉬면 그 하루만큼 뒤처지는 거 몰라 이럽니까. 야는 공부만 해야 하는 아이라예.(...)우째 들어간 학굔지 몰라서 이캅니까? 죽을 병에 걸린 것도 아니라꼬요.” p31

학교 친구들은 고시텔 옆 공터에서 겪었던 선혜의 그 끔찍한 사건을 가십거리처럼 떠들어대면서 진실과는 상관없이 부풀려 말한다. 성추행이 성폭력으로 바뀌어져있다.

(...)수겸은 일어과에서 인정한 소문전달자였다. “우리 학교 학생 중에 성폭행 당한애가 있대.” 씨씨크림 바르는 내 손이 멈칫했다. “정말 누구래” 누군지 모르겠는데 남자 둘한테 죽을 만큼 맞았다지 아마? 2학년 선배한테 들었어.(...)정선혜, 얼굴에 가면 쓴 거 같아, 완전 하애.“ p74-75

선혜는 자신의 아픔을 이해해 주고, 얼어붙은 마음의 스위치를 켜 줄 사람을 찾았다. 남자 선배 민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역시 가장 친한 지애와 사귀고 있었다. 또한 자신에 대한 소문의 진원지가 바로 절친이었던 지애였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된다. 문자를 주고받던 지훈의 스킨십은 선혜를 더 얼게 만들었다. 다행히 생각지 않게 선혜의 아픔을 공감해 주고, 위로해 준 건 초등학교부터 알고 지낸 창식이로부터였다. 그리고 선혜는 스스로 두려움을 극복해 나간다. 성폭행 소문의 진상을 대자보를 통해 밝히고, 해결해 나간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함께 할 수 없는 친구관계에 있다. 서로 학교성적과 공부, 이성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자신의 아픔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부재하는 게 현실이다. 비밀을 공유한 친구는 의도가 어찌됐든 오히려 풍문을 퍼뜨리는 자가 된다. 학교 안에서 선혜의 아픔을 터놓을 수 있는 신뢰할만한 사람이 없다. 담임선생님도 선혜가 말하지 않았다면, 소문의 주인공을 몰랐을 터이다. 사람의 아픔과 그 아픔에 스민 감정의 고통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학교 공부에 시달린 청소년들은 자극적인 풍문거리에만 집중할 뿐인 게 현실이다.

현 학교 교육을 통해 어떤 사람을 양성해 내고 있는지 질문하게 만든다.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에 발맞춰 진행된 철인교육은 머리가 우수한 이기적인 인재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아픔을 겪은 선혜를 품어주는 따뜻한 심장을 지닌 인재는 명문최강학교에 없었다. 오히려 일찌감치 자신의 비전을 요리에서 찾아 요리고등학교에 진학한 창식에서였다. 성폭력,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지 말아야 하지만, 일어났을 때,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학교서는 도통 가르쳐 주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몸담고 있는 교육현실이다.

세월호 청소년들의 희생이 안타까운 것은 청소년들이 자연을 통해 감성을 채우고, 학교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누리며 소중한 추억을 만들 시기에 그런 끔찍한 참사를 당했기에 더 마음이 더 아프다.

이 땅에서 청소년들이 성적에 눌리지 않고, 자신의 적성과 꿈을 위해 힘차게 날개짓 하는데 이 작품이 공헌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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