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
히샴 마타르 지음, 김병순 옮김 / 돌베개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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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퓰리처상 수상작. 2016년 뉴욕타임스 탑텐북스. 심지어 뉴욕타임스의 전설적 서평가 미치코 가쿠타니가 뽑은 그해 최고의 책. 수상 이력과 평가가 화려하다. 그래서 바로 구입. 와우, 근데 웬만한 스릴러 소설보다 더 긴장감 넘치게 진행된다. 다음 페이지, 내용이 궁금해지는 페이지 터너! 그것만이 아니다. 문득 책장을 넘기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건 비유가 아니다.)
오랫만에 문학적 감동과 지성적 산문정신을 겸비한 책을 읽었다. 아마 2018년 최고의 책 중 하나가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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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조건 - 근대 미학의 경계 근대 미학 3부작
오타베 다네히사 지음, 신나경 옮김 / 돌베개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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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술이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사람이나 그 영원한 가치에 매료되어 있는 사람, 혹은 반대로 예술에는 관심이 없으며, 미학 따위는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주기를 바란다."-오타베 다네히사

 

 

 

 

인간의 역사에서 예술에 대한 관심이 지금처럼 높았던 때가 있었을까요? '글'이 그렇듯이, 아마 예술의 향유도 특권층에 국한되어 있었을 겁니다. 지금과 같이 예술이 대중화되고 산업화되면서, 예술을 즐기는 사람이 생기고 현대인의 취미로까지 발전했겠지요. 대학의 '예술학부'라는 학제명조차도 더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예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개념은 무엇인가요? 예술은 기존의 관념과 인식을 깨는 것이어야 한다는 당위가 자연스럽게 생각나지 않을까요.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개념인 '창조',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는 '독창성', 이런 것들이 반영된 '예술작품', '예술가'라는 정체성, 그리고 작품의 내적 원리인 '형식'. 이상의 개념들은 지금은 너무나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워서 설명이 필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타베 다네히사에 의하면 이 개념들은 불과 200년 전에 형성된 것입니다.(<예술의 역설-근대 미학의 성립>에서 그 흥미진진한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예술'의 개념은 근대의 역사적 산물인 거죠. 그렇다면 그전에는 '예술'의 개념이 형성되지 않았거나 적어도 지금과는 달랐을 겁니다.

 <예술의 조건-근대 미학의 경계>는 근대 예술과 미학이 '예술'과는 상관이 없을 거 같은 개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참신하고도 통념을 깨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개념들은 '소유', '선입견', '국가', '방위', '역사'입니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도대체 이것들이 예술 또는 미학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미학이라는 형상이 만들어지는 데 이것들이 배경으로 작용하였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증명합니다.

 먼저, '소유'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요컨대 '독창성'의 개념은 정치철학자 로크의 사적 소유권 사상이 저작물이 저자에게 귀속된다는 지적 소유권의 근거가 되고 근대적 저작권으로 확립되면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술작품이 '내 것'이라는 의식이 형성되면서 '독창성'에 대한 자의식이 비로소 만들어졌다는 것이지요.

 '선입견'은 도대체 어떻게 작용했다는 겁니까. 저자는 미학이 보편적 감성에 대한 인식론이라는 통념을 깨고, 오히려 '취미의 선입견'이라는 외부의 요인이 이론적으로 정당화됨으로써 근대 미학이 성립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미학사에 대한 전복적 해석이지요. 칸트 같은 이는 보편적이고 선험적인 취미 판단이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만, 이는 굉장히 이상적인 이야기인 것이죠. 당시에 주로 예술을 향유한 귀족들과 하루하루 생계를 꾸려나가기에도 바쁜 서민들이 같은 취향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국가'라는 키워드를 가지고서는 근대의 국가론, 즉 정치학 담론이 미학을 파생시켰다고 주장합니다. '미적 가상의 자율'이라는 예술론과 '미적 가상의 국가'라는 국가론이 동일한 목적을 지향하는, 유비적 관계를 맺고 있는 기제라는 것이죠. 18세기 말의 철학자와 사상가들 사이에서 미학이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게 되는 것은, 정치적 관심에서 기인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방위'라는 키워드를 통해서는, 근대의 낭만주의 예술이 독일, 영국 등에서 형성되었음을 근거로 해서, '남쪽'과 '북쪽'이라는 방위의 표상이 고전 고대의 예술과 근대 예술의 대비를 표상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른 키워드도 재미있지만, 동서남북이라는 방위 개념이 표상작용을 통해 고전 예술과 대비되는 근대 예술의 개념을 만들었다는 설명도 흥미롭습니다.

 마지막으로 '역사'라는 키워드를 통해서는 미학에 '역사적 사고'가 개입되면서 근대 미학이 형성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미학이 감성에 대한 보편적 철학체계로 수립되었다는 신화를 해체하는 것입니다. 순수하게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체계를 통해서만 미학이 형성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술의 조건>이라는 깊이 있는 인문서의 내용을 요약하는 일은 사실 큰 의미가 없습니다. 오타베 다네히사라는 뛰어난 인문학자가 적확한 근거를 통해 과정을 하나하나 짚으며 설명해내는 특유의 방법론을 따라가보는 것이 더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자기 논지를 제기하기까지 어찌나 섬세하게 논증을 하는지, 제게 오타베 다네히사의 글쓰기는 일종의 인식론적 충격이었습니다. 그의 책을 통해 수준 높은 인문적 글쓰기를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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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조건 - 근대 미학의 경계 근대 미학 3부작
오타베 다네히사 지음, 신나경 옮김 / 돌베개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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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예술의 개념과 미학이 `예술`과는 관련이 없을 듯한 역사적 조건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저자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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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최필원 옮김 / 그책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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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추천사 때문에 이 책이 들어왔던 거 같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액스>를 차기작으로 점 찍어 놓았다고 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얼만큼

열광하든 상관없이, 그를 매혹시킨 스토리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른바 '주주자본주의'는 고용의 유연성을 당연시하는 사회를 만들어놓았다.

주주의 이익을 위해서, 자본의 무한증대를 위해서, 노동자가 '정리'될 수 있다는 현실.

그것을 자본주의의 횡포라고 비난하고들 있지만, 일상화된 폭력에서는 어쨌든

현실적인 문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겉으로 분노할 순 있어도, 힘 없는

개인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액스>의 주인공이 선택한 건, 고용 시장에서 자신의 잠재적 경쟁자가 될 인물들을

제거하는 방법, 살인이었다. 개인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생존을 도모할 수 있는 건

오직 자기 자신뿐이기에.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가 나를 해고하여 나의 목줄을 끊어 놓을 수 있듯이,

고용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경쟁자들의 목줄을 끊어 놓아야 한다는 게 주인공 데보레의

판단이다. 한 명씩 차례대로 그들을 처단하는 스토리가 냉정하고 그럴 듯한 주인공의 목소리로 전달된다.

 

범죄스릴러답게 범죄자의 말과 행동, 관점에 따라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의 서술에 수긍이 가는 구석이 있다면,

그건 우리도 그처럼 불안한 현실 속에서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또는 살아가야 한다는 걸 반영하는 게 아닐까.

그의 말을 아이러니로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이야기의 상상력에 공감한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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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희곡 전집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김규종 옮김 / 시공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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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7일 서강대 메리홀에서 체호프의 연극 <갈매기>를 보.

생각했던 것에 비해 원작에 충실하게 연출한 연극이었다.

 

 

체호프의 단편소설이 절제된 서술을 보여주는 데 비해, 연극은

장르의 특징 때문이랄까, 표현적이며 격정적이었다. 소설은 인물과 사건을 매개하는 서술자가 존재하지만, 연극은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를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연행장르이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아르까지나)와 아들(뜨레플레프)로 대변되는 세대간의 갈등은

제정러시아의 시대적 분위기를 감지하게 하면서, 예술 형식에 대한

인정 투쟁의 양상을 상기시킨다.

 

 

 

예술과 현실의 대립 구도에서 예술에 초월적 가치를 두는 세태를

"호숫가를 떠나지 못하는 갈매기"로 상징함으로써, 예술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제시한다. 뜨레플레프가 죽인 갈매기를 바라보며, 뜨리고린은 한 시골처녀를 파괴하는 소설 소재를 착안하는데, 이것은 뜨리고린을 사모하는 니나가 결국 뜨리고린에 의해 유린되고 버려지는 이야기 전개를 통해 실현된다. 죽은 갈매기는 니나였으며, 결국 니나에게 사랑을 다하지 못해 니나를 망쳤다고 자책하며 권총 자살을 하는 뜨레플레프였던 셈이다. 예술은 삶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새삼스러울 거 없는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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