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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이선희 옮김 / 예담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왕따....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80년대에는 이런 말 자체가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그 때도 불량서클에 가입했다든지 힘 자랑을 하며 동급생을 괴롭히던 녀석들과 당하는 애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누구 하나를 지목해서 철저히 따돌리며 괴롭히던 문화는 없었습니다.
왕따는 결국 명문대 입학이 곧 출세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사회에서 학창생활의 여유나 우정이 더 이상 발 붙이지 못하는 현재의 교육 풍토가 낳은 사생아라고 생각합니다. 한명을 괴롭히고 거기서 얻는 잔인한 쾌감으로 즐거워하는 문화가 현 시대에 존재한다는 점이 몸서리쳐질 정도로 싫습니다. 이것은 과연 아이들의 잘못일까요...아니면 사회의 잘못일까요?
우리 어른들 역시 마음 속으로는 우리나라 교육문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열심히 시키면 잘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애써 눈길을 돌려버리는 방관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게마츠 기요시의 작품 <십자가>를 통해 새삼 왕따문화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시선은 왕따 문화에 그 자체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다.
이 작품은 왕따로 인해 자살한 후지슌(슌스케)의 가족이 겪어야 하는 슬픔과 치유의 과정을 담담하고 애잔하게 기록하고 있고, 또한 유서에 절친과 짝사랑 대상으로 쓰여져 평생 친구의 죽음을 예수가 짊어진 십자가 처럼 안고 살아가는 사나다와 사유리의 해답찾기의 여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가해자가 아닌 방관자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슌스케의 가족들의 모습은 슬픔이라고 말하기에도 처절할 정도로 가슴이 아픕니다. 사랑했던 아들을 잃은 후 변해버린 삶. 아들의 왕따를 방관했던 학생들을 증오하지는 않지만 용서하지 않겠다는 그 사람, 아버지. 아들의 죽음이후 모든 것이 피폐해져버린 어머니 그리고 증오로 똘똘 뭉친 동생 겐스케.
여기에 처음에는 왜 자신이 자살한 친구의 절친으로 불려야 했는지 의문이었던 사나다 유와 슌스케의 죽음에 책임감을 느끼며 슌스케 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애를 썼던 사유리.
그리고 결국 아들을 낳고 30대가 된 사나다는 길고도 길었던 깨달음을 얻고, 슌스케 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소중한 계기를 만들어 냅니다.
이 작품의 제목인 십자가는 슌스케의 자살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짊어가는 마음을 상징하는 상징물이자 그 고뇌가 해소되게 되는 것을 암시하는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정작 내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가슴이 아팠고, 내 자신은 언제나 방관하는 자는 아니였는지 고민스러웠습니다.
이런 슬픔이 우리 사회에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