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신 본격추리의 길을 연 아야츠지 유키토는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함께 수십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본격추리의 길을 꿋꿋이 이어오고 있는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오직 추리소설의 맛은 범인이 교묘히 꾸며놓은 트릭을 명탐정이 논리적으로 깨부수고, 범인을 찾아내는데 있다는 그의 믿음은 온통 사회파 추리소설이 판을 치던 당시 일본 추리소설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이후 신본격이라고 하는 하나의 새로운 장르를 형성하게 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아야츠지 유키토나 아리스가와 아리스 등 신본격을 주창했던 작가들도 이젠 상당한 노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이 신본격을 주창했던 것은 벌써 수십년 전...그 동안 추리소설은 눈부시게 진화하여 솔직히 현재는 사회파니 본격파니 논쟁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장르파괴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추리소설은 그 자체로 좋다'는 이들의 순수한 믿음은 오늘날에도 일본 미스테리가 여전히 살아숨쉬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수차관의 살인>은 <관>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이름을 알린 <관>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인 <십각관의 살인>이 반향을 불러일으키자 작가는 이 작품을 상당히 의욕적으로 집필한 듯 합니다. <수차관의 살인>이야말로 어찌보면 본격추리에 대한 작가의 평소 지론을 그대로 반영한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적이 드문 곳에 세워진 저택, 기이한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일본 곳곳에 건축한 저택 중의 하나로 커다란 수차 세개가 쉴새 없이 돌아가는 정사각형 형태의 건물... 이곳에 거주하는 이들은 하얀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주인, 성에 갇혀버린 미소녀, 음침한 집사와 가정부 그리고 제각각 다른 생각을 하며 찾아온 손님들과 관 시리즈마다 찾아다니며 사건을 해결하는 명탐정(?) 시마다(이 이름을 어디서 가져온지 다들 아시겠죠? 바로 점성술 살인사건의 작가이자 신본격의 길을 열었던 시마다 소지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렇듯 마치 연극과 같이 설정된 비현실적이고 외부와는 철저히 차단된 무대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바로 본격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후 전개역시 아주 극단적으로 본격 추리소설의 틀을 따라가고 한치의 틀림도 없이 범인의 트릭깨기와 범인찾기가 이어집니다.

 

이 작품의 재미는 여기에서 둘로 나뉘게 됩니다.

 

하나는 "재미있다" 이고, 다른 하나는 "식상하다" 입니다. 좋은 점은 본격 추리에 대한 추억도 되새기면서 편안히 작가가 마련한 연극 무대를 감상하며 나름대로 추리도 해보는 등 간만에 제가 좋아하는 본격 추리를 마음껏 즐기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냥 좋을 수 밖에는 없는게 이 소설에 차용된 추리요소들이 요새는 하나의 바이블 처럼 추리소설을 좀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일반화 되어 버린 것들이라는 점입니다. 작품이 발표될 당시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버려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인데 이 작품이 88년에 나온 작품이기 때문에 비난 받을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십각관의 살인>이 <관>시리즈의 문을 열었다면, <수차관의 살인>은 이후 완성도 높은 <관>시리즈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이후 <관>시리즈는 <미로관의 살인(88년)> <인형관의 살인(89년)> <시계관의 살인(91년)-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 <흑묘관의 살인(92년)> <암흑관의 살인(04년)> <기면관의 살인(12년)>으로 이어집니다(혹자는 9개 시리즈라는데 <깜짝관(06년)> 같은 것은 청소년 용으로 출간된 것임. <월관(05년)>이라고 만화책으로 나온 것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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