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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증명 ㅣ 증명 시리즈 3부작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오래전부터 미스테리를 단순히 장르소설이라고 쉽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추리 자체로도 물론 좋지만 요즘 작품들은 사실상 대부분이 장르소설 안에 여러가지 실험적인 시도는 물론 작가의 사상과 사회의 모습들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누가 죽였을까'나 '어떻게 죽였을까' 에서 '왜 이 사람은 이러한 범죄를 저질렀을까'로 시대가 변함에 따라 미스테리 소설의 트렌드도 이동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변모한 장르소설 중에서도 이 작품만큼 읽는 내내 나 자신과 내 주변, 가족 그리고 타인들과 공존해 살아가는 사회에 이르기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미스테리 소설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무슨 장르이든 작가가 목적을 가지고 혼신의 힘을 기울일 때 결국은 장르를 초월해 인간에게 어떤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걸작으로 탄생한다는 것을 새삼 배우게 되었습니다.
모리무라 세이치는 치열한 알리바이 싸움으로 독자에게 또 다른 재미를 선사했던 <고층의 사각지대>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작가라고만 알고 있었지 사실상 일본 미스테리계를 주름잡았던 대 작가라는 점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그의 작품 중 이 <인간의 증명>이 770만부가 팔린 그의 대표작이란 점은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을 알게 된 건 와이프와 꽤 재미있게 시청했던 염정아, 지성 주연의 드라마 <로얄패밀리>의 원작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도 드라마 내용과 상당히 비슷하겠거니 생각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조니 헤이워드 에피소드만 드라마에서 차용했을 뿐 드라와와 소설은 사실 아무 연관성도 없습니다.
이 작품은 드라마처럼 대기업 일가의 모순과 한 여인의 처절한 생존사를 그린 것이 아니라, 여러 인간군상들의 에피소드를 여기저기 삽입하여 '과연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해 냉철하게 고찰하는데 주안점이 맞춰저 있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고아출신의 형사, 자기자신을 위해 자식마저 포기하는 엄마, 부모를 인정하지 않지만 사실은 그 그늘 속에서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마마보이, 실종된 아내를 찾는 남편과 정부... 이러한 모습,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것들임을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작가 모리무라 세이치는 스토리를 전개하면서 본이니 던진 인간에 대한 질문에 답을 구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질문과 해답찾기는 또한 독자들의 몫이기도 합니다. 야스기 쿄코와 형사 무네스에의 마지막 대결은 작가가 찾는 인간의 증명에 대한 해답이었지만 책장을 덮은 나는 아직도 무엇으로 우리가 인간을 증명할 수 있는지 고민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참 오랜만에 마음 속부터 재미를 불러 일으킨 작품입니다. 이 정도의 작품이라면 이미 장르소설이니, 추리요소니 하는 생각은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인간에 대한 증명을 하고 싶어서 만든 소설이라니...작가의 강한 역량이 새삼 느껴지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