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도 - 괴기.번안편 김내성 걸작 시리즈
김내성 지음 / 페이퍼하우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김내성 선생의 추리 단편작 모음집이었던 <연문기담>을 읽었을 당시 제가 느꼈던 충격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우선 놀랐던 것은 일제 강점기 시대에 우리나라에도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문학을 개척했던 작가가 존재했다는 점이고, 그것보다 더 놀랐던 것은 그런 작가가 있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왔다는 점입니다.

 

참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은 지금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제가 역사나 문학에 관심이 있는 편인데도 지금까지 김내성이라는 작가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니...아마도 우리나라의 정규 교육과정을 성실히 수행한 일반인이라면 평생 김내성 선생을 모르고 살아가리라 생각합니다.

 

생각해보건대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장르문학이 꽃을 피우지 못한 것 같기도 합니다. 문학을 공부할 때 일제강점기의 문학이라하면 저항문학, 순문학 작가들에 대한 것일 뿐...장르문학은 각박하고 힘든시기에 뭐하는 거냐고 가치폄훼를 당했을 확률도 상당히 높지 않았을까 하는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봅니다.

 

<연문기담>에서도 가히 감탄지경이었지만 김내성 선생의 작품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놀랍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라는 말이 괜한 허명이 아닙니다.

 

김내성 공포,번안편인 <백사도>는 괴기단편소설 5개 작품 - 광상시인, 무마, 백사도, 악마파, 이단자의 사랑 - 과 번안소설(원작을 번역하여 우리나라 캐릭터와 현실에 맞게 재창조한 작품이라 생각하시면 될 듯...) 3개 작품 - 백발연맹, 히틀러의 비밀, 심야의 공포 - 그리고 김내성 선생이 당시 라디오 강연을 했던 <추리문학 소론>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괴기편은 정통 추리소설의 궤에서 벗어난 이른바 변격 추리소설(김내성 선생의 추리문학 소론에 의거한 분류대로 한다면 말입니다)에 해당하는 것으로 에도가와 란포 스타일의 음울한 분위기와 비정상적인 심리상태, 관능미를 포함한 작품들입니다. 광의의 추리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귀신이나 유령은 등장하지 않지만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편입니다.

 

<연문기담>에 수록된 작품들에 비해 조금은 아쉬운 점들도 있지만 그래도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일제강점기에 이런 작품들을 계속 발표했다는 작가의 노력에 경이를 표하고 싶습니다.

 

번안소설 3개는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 중 3개를 명탐정 백린과 조수 김준으로 바꾸어 조선을 배경으로 번안한 작품인데 이미 예전에 여러 루트를 통해 읽어본 작품이지만서도 상당히 색다르고 재미도 있습니다. 요즘 생각하면 이 번안소설이라는 것 자체가 상당히 재미있는 것이어서 마음 편하게 술술 읽었습니다.

 

끝으로 <추리문학소론>을 보면 김내성 선생이 얼마나 추리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고 애정을 가졌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서양과 일본에서 추리문학의 문단을 형성하며 활발히 창작활동이 전개되고 있는 반면 국내에는 문단조차 구성되지 못한 점에 대해 안타까워 하는 모습을 보면 해방 후 지금까지도 그다지 힘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국내 장르문학의 현실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김내성 선생은 1957년 4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합니다. 좀더 오래 사셨다면 국내 장르문학에 대한 뿌리를 견고히 내렸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도 장르문학을 열고자 노력했던 이가 있었다는 사실 하나로 만족하면서 오늘 글을 맺을까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