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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븐 블랙 ㅣ 블랙 캣(Black Cat) 14
앤 클리브스 지음, 이주혜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섬이란 존재는 언제나 신비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언제든 가고 싶지만 선뜻 가긴 힘든 곳, 특히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왠지 모를 고립감 마저 드는 것이 바로 섬이 갖는 이미지입니다. 그래서 인지 섬은 오래전부터 호러나 미스테리의 단골 장소로 등장해 왔습니다. 바로 섬이 갖는 특유의 마력이 여러 작가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육지와 멀리 떨어진 고도의 경우에는 지형적인 고립감외에 또 다른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미스테리의 효과를 한층 높이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바로 그것은 섬에 사는 사람들간의 강한 유대감(때로는 너무 강해 숨막힐 정도입니다)과 외지에서 온 이들에 대한 거부감이 그것입니다.
평화로운 때는 이러한 문제들은 전혀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일단 사건이 터지고 나면 의외로 대도시에서보다 더욱 사건은 기괴해지고 미궁에 빠지고 맙니다. 특히 바로 어제까지 내 속까지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웃 중 한명이 살인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구성원간의 불신감은 더욱 커집니다. 사람이 1명 이상만 있어도 언제 어디서든 살인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천만이 넘는 대도시나 수백명이 사는 섬이나 피해갈 수 없는 인간세상의 법칙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에겐 매우 생소한 영국의 여류작가 앤 클리브스는 자신이 예전 페어섬에서 조류감시원으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영국의 최북단의 군도인 셰틀랜드 제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매우 흥미진진한 미스테리 소설을 창조해 냈습니다.
셰틀랜드 제도는 영국 북쪽의 오크니 제도에서도 80km가 떨어진 곳으로 불과 1469년까지는 노르웨이의 영토였던 곳입니다. 따라서 작품 내에서도 과거 바이킹의 의식을 따라하는 축제를 여는 등 역사의 이면에 숨어있는 배움을 새삼 느낄 수 있게 해주기도 합니다.
평화롭기만 하던 섬마을에 어느날 발생한 살인사건, 살인은 다른 곳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과거 발생한 여자아이의 실종사건과 맞물려 이기적인 민심은 한 노인을 범인으로 몰아갑니다. 여기에 섬 토박이지만 과거 스페인인 조상이 난파되어 정착해 어떻게 보면 이방인인 페레즈 형사는 사건 해결을 위해 몰두합니다.
이렇게 소설은 토박이와 이방인의 미묘한 갈등을 비롯해, 사춘기 청소년의 심리변화, 섬 사람들의 갈등관계, 그리고 과거에 일어난 실종사건의 진실 등을 조합해 느리면서도 빠르게 사건을 진행시켜 갑니다. 그래서 마치 지금도 심심찮게 나오는 서양의 스릴러 영화와 같이 진행되는데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고 나면 이 작품은 완벽한 본격 미스테리 였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최근 본격 미스테리는 일본의 신본격파와 같이 극단적인 본격추리의 경향도 있지만 대다수의 경우에는 이렇게 스릴러의 경향과 사회적인 고찰이 가미된 방향으로 발전해 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오로지 '누가 그것을 했지?'에서 벗어나 지형적인 특성과 사람들의 심리, 관계, 갈등 등을 복합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다양한 사고를 하게 해주는 상당히 수준높은 미스테리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책 읽는 중간중간에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하는 의문을 꾸준히 제시해 주기도 합니다. 결국 범인찾기 소설이지만 꼭 범인찾기에만 주안점을 두지 않는다는 게 이 소설의 장점이고 매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