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청소년기에는 영화하면 미국과 홍콩, 게임과 만화하면 일본이 대세였습니다. 한마디로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것이라고 하면 그저 유치하고 재미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체감상 실제로도 그랬구요. 마음 속으로는 우리 것을 못 즐기는 게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람의 본능이라는게 오감이 만족스러운 것에 자연히 끌리는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아무래도 우리 것보다는 재미있는 것을 찾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문화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를 석권할 정도로 일취월장했습니다. 솔직히 일본이나 중국,홍콩 영화...이제 누가 얼마나 보는지 의문일정도로 몰락했고, 그나마 미국 액션대작이나 근근히 보지 이제 한국영화는 대세가 되었고, 게임도 마찬가지로 국산 온라인 게임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근데 아직도 우리가 뒤지는 분야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그것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분야인 장르소설이더군요. 특히 장르소설의 천국인 일본의 작품들을 보면 그 치밀함과 재미에 항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만큼 대우받으니 또 그만큼 역량있는 작가들이 나오는 것이고 더욱 더 발전하는 선 순환구조가 확립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이번에 읽은 <한국 추릴러 단편선 3>이 역설적으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총 10명의 역량있는 국내 신인작가분들의 역작이 소개된 이번 단편선은 어쩌면 수년이나 수십년 후 일본을 압도할 국내 장르소설의 시작일 수 있기에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작품마다 다소 무게감이 다르고, 편차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로 전에 읽은 에도가와 수상작가들의 단편집 중 하나인 <백색의 수수께끼>와 비교하면 솔직히 부족함이 느껴지는 부분도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단편집에 수록된 작가들의 필력에서 어떤 가능성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소재도 무척이나 참신합니다. 일본이나 서구의 미스테리는 우리 민족의 것이 아니기에 솔직히 읽다보면 정서적인 충돌이 있는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 단편선은 마치 우리 형이나 동생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처럼 공감대가 많이 가서 더욱 좋은 느낌입니다. 또한 고구려에서부터 지극히 현실적인 세계 더 나아가 SF적인 세계관까지 다양한 시대배경 속에서 다양한 장르적 접근을 하는 모습들이 굉장히 흥미있고 볼거리도 풍부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전반에 걸친 사회문제에 대한 지나친 거론 등은 자칫 미스테리 소설이 갖는 본연의 재미를 헤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다소 아쉽긴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본격 미스테리물을 좋아하는 관계로 <한이>님의 <화성 성역 살인사건>과 <송시우>님의 <좋은 친구> 그리고 <정명섭>님의 <혈의 살인>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물론 다른 작가님들 작품들 모두 좋았습니다. 국내 미스테리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보여준 내일을 향한 하나의 이정표라 생각하며 앞으로도 더욱 역량넘치는 작품들을 선보여주실 것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