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집
기시 유스케 지음 / 창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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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집>은 이미 국내에서도 영화화 되어 상당히 흥행까지해서 일반인들도 많이 알고 있는 작품입니다. 당시 영화배우 황정민씨가 열연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영화도 못보고 책도 이제야 읽은 저로서는 솔직히 큰 충격을 받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에야 창문으로 스며드는 석양을 보며 이제 막 악몽에서 깨어났구나라고 스스로 생각해 봅니다.

이 작품은 정말 대단한 작품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냥 단순히 무섭고 잔인하고 이런 것을 넘어서 사회 전반에 걸쳐 깊은 고뇌에 찬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문제작으로 인간의 진정한 악의 근원과 사회제도의 모순에 대한 고민이 작품 곳곳에 새겨져 있습니다.

<죽음의 악취로 충만한 검은 집이 우리 사회의 내일의 모습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어쩌면 진짜 악몽의 시작은 지금부터일지 모른다>

이 말이야말로 생명보험을 둘러싼 비인간적이고 잔혹한 살인극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가장 함축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싸이코 패스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일종의 사람들 속에서 생겨난 돌연변이나 괴물이라고 생각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원래 악한 사람은 없고 결국 사회가 그런 괴물을 창조해 낸다고 합니다.

성선설과 성악설, 범죄인류학과 범죄사회학...이 오랜 논쟁의 결말은 이제는 후자가 우세해 보이지만 솔직히 결론이 난 것은 아닙니다. 저는 감히 생각컨대 당연히 두 가지 유형이 혼재해 있겠지만 인간 본연의 그릇 속에 파괴의 본능이 감춰져 있고, 어떤 계기로 이것에 불이 붙으면 결국 끔찍한 범죄로 이어지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몇 십억 인구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만큼 그 많은 범죄를 어떻게 하나의 이론과 생각으로 설명이 가능하겠습니까만...

그러나 그 결론을 제쳐놓고 정작 살인마의 칼날이 내게 향했을 때 선택은 내가 죽느냐 아니면 내가 죽이느냐 두 가지 답안밖에 없습니다. 저는 작가의 설명도 없고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신지 주임이 마지막 살인마의 공격을 예감했을때 만큼은 왜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았을까하는 사실이 무척이나 흥미로웠습니다. 그의 생각 속에 있었던 것은 결국 살기위해 살인마를 내 손으로 죽여버리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자기자신을 지키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신의 손으로 근심의 근원을 없애버리는 것...이 것을 우리는 살인이라 부르고, 결국 신지 주임은 그렇게 마지막 살인자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다고 신지 주임을 나무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어느 누가 이런 상황속에서 그러지 않겠습니까. 인간의 생존본능의 끈은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질긴 것입니다.

이 <검은집>의 공포는 심령현상이나 원령, 좀비 이런것이 아니어서 특히 좋았습니다. 결국 사람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존재는 바로 사람이라는 원칙을 벗어나지 않고, 그 상황 속에서 최대의 공포를 끌어낸 이 작품이야말로 호러소설의 수작이 확실히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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