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이든 발 12시 30분 동서 미스터리 북스 77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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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 찰스 스윈번은 살인범입니다. 그런 살인범한테 불쌍하다니 무슨 말이냐고 물으실 수 있지만 이 불쌍하다는 말은 이 소설이 도서 미스테리 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범인이 작품초기에 미리 공개되고 범죄실행 각오 -> 치밀한 준비 -> 실행 -> 안심 -> 수사의 시작 -> 발각 -> 재판 -> 종말의 전형적인 형식을 이루고 있는 이러한 도서 추리소설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불쌍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완전범죄를 이루어내고자 그야말로 죽을 힘을 다해 애를 써도 어차피 파국을 맞을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도 범죄자인 찰스 스윈번 보다 그의 완벽해 보이는 범죄사실을 하나 둘씩 부서가며 목을 죄어오는 프렌치 경감이 더 얄밉게 보이는 이상한 느낌도 듭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약자의 편을 들기 마련이라는데 사람을 죽인 찰스 스윈번이 한없는 약자처럼 느껴지는 것이 이 형태의 소설의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이 작품의 모태를 이루고 있는 도서추리소설은 그야말로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에 집중하던 종래의 추리소설에 대한 일종의 반항으로 생긴 새로운 형식의 미스테리 소설입니다.  즉 소설의 관점을 범인에서 범죄과정과 그 범죄가 탐정이나 형사들의 노력을 통해 파헤쳐지는 과정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필연적으로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수반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장점이라 함은 당시에는 무척이나 참신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영미 크라임 픽션 중 이러한 형식을 따라가고 있는 소설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류는 아닐지라도 여러 미스테리 소설에 흡수되어 하나의 형식으로 살아있는 것이죠.

단점은 역시 범인이나 범죄수법이 너무 공개되어 있는데다, 아무리 완벽한 범죄각본을 짜고 실행에 옮겨도 경찰이나 탐정이 다 깨어버리고 주인공은 교수대 행으로 갈 것이 확실하므로 긴장도가 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도 읽는 내내 찰스가 불쌍한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저렇게 애를 써도 너는 죽은 목숨이라는 걸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측은지심을 가질 수 밖에 없겠죠?

또 한가지 단점은 반복되면 지루하다는 것입니다. 작년에 플랜시스 아일즈의 <살의>를 읽었을 때는 이런 형식의 작품을 처음 읽어서 저 역시 다소 참신함을 느낀 바 있는데, 다른 작가의 작품인데도 형식이 똑같다 보니 이 소설과 <살의>가 정말 거의 대동소이한 스토리 흐름을 보이고 있어 상당히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 도서추리소설의 형태는 주류가 되지는 못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 하나만 놓고 보면 괜찮은 작품이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작가의 탁월한 필력으로(오래된 소설이라 다소 문어체적인 표현이 많습니다만) 전체적으로 지루하지 않고, 다소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편안한 기분으로 읽어내려갈 수 있습니다.

작가 <프리먼 윌스 크로포츠(1879~1957)>는 토목기사로 일하다 40세에 병을 얻어 미스테리 소설을 접한것을 계기로 50세에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로 접어든 특이한 경력의 작가입니다. 대표작인 <통>은 세계적인 걸작 미스테리로 잘 알려져 있고, 프렌츠 경감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도 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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