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문기담 - 추리편 김내성 걸작 시리즈
김내성 지음 / 페이퍼하우스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김내성(1909~1957)이라는 작가를 모르고 살았다니 이 땅에서 나름 장르문학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제자신이 못내 부끄러워지네요. 

우연찮은 기회에 책을 구입하여 읽어보았는데 책 내용도 좋을 뿐더러 김내성이라는 일제강점기에 장르문학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선구자를 알 수 있었다는 의미까지 더해져 책을 읽는 내내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책 좀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일제강점기에 추리소설을 썼던 국내 작가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은 책 내용을 뛰어넘는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요? 제가 무식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죄송합니다만 실상은 그것보다도 순수문학 위주로 편성된 국어교육과정이 한 몫 단단히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동리, 박경리, 이효석, 심훈, 윤동주, 김유정, 황순원 등의 작품은 들어보고 읽어보고, 또 공부해 봤지만 대학 졸업까지 김내성이라는 이름 석자를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만남자체가 없으니 알턱이 없는 법이죠. 

이효석이 <메밀꽃 필 무렵>을 쓸때 김내성은 <타원형의 거울>을 썼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선구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왠지 조상을 찾은 후손의 마음마냥 기쁘기만 합니다. 앞으로도 김내성 선생의 더욱 많은 작품이 조명ㆍ복간 되기를 바라며 개인적으로도 단편집 <백사도>나 장편소설 <마인>을 꼭 한번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작품으로 돌아가 보자면 이 단편소설집 <연문기담>은 김내성 걸작시리즈 추리편으로 작가 본인이 묶은 것이 아니라 복간되면서 그의 작품 중 추리소설의 성격이 짙은 단편들을 모아놓은 것입니다. 

조금은 손을 댄 것 같기도 하지만 역시 아주 오래 전 시대에 써진 작품이니 만큼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어투나 단어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그것이 작품이 흥취를 더욱 고조시켜주기도 하고, 때로는 단어나 문장의 구사방식에서 다소 오버스럽기 까지해 웃음을 짓게 해주기도 합니다.

제일 첫번째 나오는 단편이자 책의 타이틀이기도 한 <연문기담>은 아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로맨틱 미스테리입니다. 추리소설가이자 로맨스 소설가이기도 한 작가의 독특한 매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냥 편안히 즐기면 될 듯.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단편인 <비밀의 문>역시 이러한 궤도의 맥락을 함께하는 단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역시 재미나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두번째 나오는 단편 <타원형의 거울>은 정말 추리소설로서 놀라운 작품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정도 수준의 단편은 일본 작가들의 명작과도 어깨를 나란히 견줄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도 현시대에 쓴 것이 아니라 30년대 우리나라 작가가 쓴 것이라니 더욱 놀랍습니다. 

미제의 사건으로 끝난 여배우 살인사건을 푸는 자에게 거금 삼백원의 거금을 준다는 추리잡지 <괴인>의 공모. 그리고 사건의 당사자이자 유력한 용의자였던 소설가 유시영은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수수께끼 풀이에 응모하는데...!  본격 추리소설의 장점을 두루 갖춘 이 작품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해 읽는 이로 하여금 더욱 깊은 몰입도를 선사합니다.

세번째 단편 <가상범인>에는 김내성이 창조한 우리나라 최초의 탐정 <유불란>이 등장합니다. 다소 실소를 금하게 하는 어이없는 일도 저지릅니다만 이 작품 역시 범죄의 수수께끼를 밝혀내기 위해 범죄를 무대로 올려 사건 당사자들에게 직접 연기하게 한다는 설정 자체는 무척이나 시대를 뛰어넘는 발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역시 계속해서 물고 물리는 강한 반전이 있습니다.

네번째 단편 <벌처기>는 이 책에서는 조금 쉬어가는 코너입니다. 그러나 아내를 죽이고자 하는 주인공의 치밀한 범죄준비 과정은 현 시대의 크라임 픽션을 엿볼 수 있게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꼭 자세히 읽어봐야 할 부분이 책 마지막에 있는 조성면 교수의 평론입니다. 한국의 장르문학의 선구자에 대한 재조명과 앞으로 장르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글 또한 상당한 명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끝으로 작가 김내성 선생이 <탐정소설의 본질적 요건>에서의 발언을 적고 마무리짓고자 합니다.

 - 탐정소설의 본질은 "엉?"하고 놀라는 마음이고 "헉!"하고 놀라는 마음이며, "으음!"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마음의 심리적 작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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