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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ㅣ 미스터리 박스 1
히라야마 유메아키 지음, 권일영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저에게는 다소 생소한 작가인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단편 모음집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은 2007년 <이 미스테리가 대단하다> 1위를 수상했던 작품입니다. 그만큼 독자들에게 인정을 받은 작품이라는 뜻인데요.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의외로 상당히 당혹스러움을 많이 느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단편 모음집은 추리라기 보다는 호러에 가깝습니다. 그것도 요네자와 호노부의 단편집인 <덧없는 양들의 축연>의 섬뜩한 공포와는 전혀 다른 미친 광기의 호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척이나 잔혹하고 전체적으로 미친 분위기가 존재하는 작품입니다(모든 단편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분명 그러합니다.)
특히 <끔찍한 열대>와 <괴물같은 얼굴을 한 여자와 녹은 시계같은 머리의 남자>의 잔혹함은 상상을 초월하는 듯 합니다. 고문을 하며 부러지는 뼈와 찢겨나가는 살들이 마치 귀에 들릴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은 그저 잔인하고 잔혹하기만 할 뿐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에그맨>과 <오퍼런트의 초상>은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그나마 약간의 미스테리 요소가 담겨져 있습니다. <오퍼런트의 초상>은 왠지 크리스찬 베일이 주연한 <이퀼리브리엄>이 생각나는 작품입니다. 인간의 감정을 통제해 질서를 유지하고 이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은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설정이 이제는 다소 식상해져 아쉬움이 남았지만 마지막 반전 코드는 그래도 전 작품 중에 가장 나았습니다. <에그맨>역시 튀는 작품은 아니지만 반전 코드는 아쉽지 않게 들어있어 좋았구요.
이 작품의 타이틀이기도 한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은 지도의 입장에서 연쇄 살인마를 바라보는 독백이라는 설정은 참 참신한 것 같긴 한데, 사건이나 살인마의 내면에 대한 설명이 없어 그저 독백으로 흘러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아니면 원래 딱히 하고 싶은 말은 없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니코틴과 소년, 거지와 노파>는 위선과 잔인함에 결국 동조해 가는 아이의 모습에서 인간의 본성이란 원래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표현하는 듯 합니다. <Ω의 만찬>은 좀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 같고...제가 소시적에 할머니가 떠 주신 소의 뇌를 좀 먹어봐서 아는데 아무리 소설이 허구라고는 하지만 뇌가 위 속으로 들어가면 결국 영양분은 다 흡수되고 나머지는 다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인지라 결코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소녀의 기도> 역시 전체적인 광기의 분위기에서 살인자를 통해 구원받은 참 문제많은 소녀의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딱히 공감가는 포인트는 없습니다.
이 작품의 평은 극과 극을 달린다고 합니다. 저 역시도 읽을 때는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었는데 막상 글을 쓰고 보니 딱히 좋은 말이 없는게 이상할 정도입니다. 바로 이게 이 단편 소설집의 장점이자 단점이 아닐까 싶네요.
의외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가슴에 남는 것은 없지만 잔혹과 광기의 매력에 빠져 읽는 순간에는 책장을 빨리 넘기게 되는 작품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