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는 누구? 귀족 탐정 피터 윔지 1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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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추리작가 도로시 L. 세이어즈는 옥스퍼드 대학을 나온 엘리트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 지적이고도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작풍은 그가 여성이라기 보다는 문학과 철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해박한 지식과 학문적 깊이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녀의 작품을 읽다보니 갑자기 S.S. 반 다인의 지적 추리소설들이 떠오르는 군요. 거의 인문 철학 서적에 버금가는 표현과 수사적인 기교가 넘쳐나는 작품입니다.

<시체는 누구?>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의 주 내용은 어느 날 팁스라는 사람의 욕조에서 발견된 신원불명의 시체 한 구에서 시작됩니다. 처음의 상황설정은 어째 깔끔하단 말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꽤나 엽기적인 장면으로 시작됩니다만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피비린내 나는 요즘 미스테리 소설하고는 확연히 다릅니다. 일종의 지적 추리게임이라고나 할까요? 하나의 사건을 두고 범인을 밝히기 위한 탐정게임이 주된 내용입니다.

같은 여류 작가라도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고어 적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람 죽어나가는 숫자도 꽤 많고 살인방법도 꽤나 엽기적인 것들도 많죠. 그런데 이 작품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크나큰 긴장감 없이 작품을 즐길 수가 있습니다.

주인공인 피터 윔지 경은 말 그대로 지금으로 하면 엄친남 정도 되는 사람이겠군요. 공작가의 둘째아들인 귀족에 학문과 철학을 탐구하며 뭐 하나 부러운 것 없이 사는 사람입니다만 굳이 애를 써가며 사건에 뛰어들기를 좋아하고 사립탐정 역할을 자청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는 두 명의 왓슨이 있는데 한 명은 경찰인 파커(꽤 뛰어나고 성실한 경찰이지만 주인공 피터보다는 2% 부족한 설정)이고, 또 한명은 하인인 번터(주인못지 않게 고귀한 귀족가의 하인임에 긍지를 느끼고 있고, 때로는 주인을 동생 정도 취급할 수도 있는 능력있는 하인) 입니다. 

둘 다 각기 자기 입장에서 제 역할을 훌륭히 해 내고 있습니다. 특히 하인인 번터는 작중에 감초같은 역할을 하여 주인과의 암묵적인 파워게임을 보여주는 등 여러면에서 은근히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추리요소나 긴장성은 다소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도리어 이러한 작품의 재미있는 점은 20세기 초기 영국사회의 유머와 생활상등을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서 흥미있게 엿보고 느껴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귀족과 평민, 학문과 경제, 그리고 초기 의술의 황당함 등 사건을 제외하고도 이 작품에선 볼거리가 많아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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