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방불명된 것은 나의 사고력

행방불명자 ㅣ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기희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9년 5월

처음에 대게 비호감이던 사람이 자꾸 만나고 알게 되면 무척 좋은 친구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오해했던 옛날이 미안해 더 좋아지기도 하는 그런 느낌. 이 책은 왠지 그런 친구를 만난 느낌이네요. 정말 '오해해서 미안해' 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을 지경입니다.

<오리하라 이치>는 서술 트릭의 대가라고 불립니다. 여기서 대가라는 말은 전문가 정도로 해석됩니다. 저야 그의 충격 데뷔작 <도착의 론도>만 읽은 상태로 전체적으로 이런 저런 작가라고 멋들어지게 해석하긴 어렵습니다만 <도착의 론도> 하나만 읽어봐도 상당히 보통 재간을 지난 작가가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른바 서술 트릭은 독자 사기치기 수법이라는 비난까지 받는 기법으로 잘 쓰면 약이 되지만 못쓰면 그야말로 엄청 욕먹는 트릭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잘 써도 작가가 작심하고 속이는데 안 속을 수 없는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다소 씁쓸한 느낌을 안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혀를 내두르며 '정말 장난아니네' 하고 생각할 수만 있어도 다행입니다.

오리하라 이치는 <도착의 론도>에서도 그야말로 3중 트릭으로 기막힌 서술 트릭을 구사하더니 이번 <행방불명자>에서는 매 챕터마다 화자를 바꿔가며 독자를 아리송한 궁지로 몰아넣습니다. 그야말로 글을 읽다보면 행방불명된 것이 다키자와가 식구들이 아니라 내 사고력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화자들, 그리고 툭툭 주어지는 단서들의 모자이크를 정말 유심히 맞추면 범인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을까 의문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작가가 좀 괘씸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중후반까지는 작품에 오해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뭐가 뭔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결말을 보고 싶다는 오기가 들긴 하지만 아무래도 비호감인 느낌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 다소 호전되는 것은 막판이 되어가면서 입니다. 아무래도 여기까지 힘겹게 읽었는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이었는지는 살펴봐야 직성이 풀리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점점 밝혀지는 비밀이 구미가 당기게 되고, 약간 깨는 결말을 보면서 '아 그래도 역시 나를 실망시키진 않는 군'하는 생각이 들며 '그래도 잘 만든 책이구나'하고 납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니 상당히 재밌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꽤 수작입니다. <도착의 론도>보다는 너무 정신없는 측면에서 다소 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서술트릭의 진수를 느끼기에는 결코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은 참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작품 속에 꼭 약간 사회부적응자인 것 같은 미스테리 소설가가 등장하고 이 사건을 소설로 집필하려 합니다. 그리고 사건이 종료된 후 책자로 나오는게 바로 이 소설이다라는 구조. 역시 작가의 일관성이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현실감이 좀 있는 것 같아 흥미를 느끼는 부분이었습니다.

오리하라 이치는 <도착 3부작>, 그리고 이 작품을 포함한 <~자(者)시리즈>로 유명합니다. 인제 2권...나머지는 다 언제 읽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