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의 야회 미스터리 박스 3
가노 료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책을 다 읽은 이후 이렇게 많은 생각에 잠긴 적은 오랜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눈을 붙여 잠을 청했는데 꿈에서까지 나오더군요^ 여러모로 뇌리에 많은 영상이 박혔었나 봅니다.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작가인 <가노 료이치>가 무려 6년 동안 집필했다는 문제작 <제물의 야회>는 참으로 많은 논란의 소지가 있을 법한 작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단 종합적인 평가를 내리자면 제가 보기엔 '혼신의 역작이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 작품은 2006년 일본에서 발표되어 2007년 <이 미스테리가 대단하다>에서 7위라는...높다면 높고, 별로 안 높다면 안 높은 순위를 기록한 작품입니다(참고로 이 해 1위는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유니버셜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입니다).

우선 이 작품은 일본 미스테리로서는 보기 드물게 스케일이 상당히 큰 작품입니다. 제목과 책 표지만 인터넷으로 보고는 단순한 본격 미스테리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저로서는 상당히 크게 한방 먹은 대목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전체적으로는 미스테리 장르라고 분류되지만 책 내용을 더욱 자세히 살펴보면 그야말로 모든 장르가 혼합해서 들어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드보일드, 크라임 픽션, 경찰소설, 서스펜스, 스릴러, 호러, 추리, 사회파, 시대극 그리고 로맨스, 순수소설의 느낌까지 듭니다.

또한 이 작품은 호러가 가미된 한편의 액션영화를 방불케 합니다. 양들의 침묵+영웅본색+서양식 액션영화(주로 복수를 소재로 한)의 조합이라고나 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체적으로 상당히 재미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주인공격인 오코우치 형사나 킬러 메도리마 와타루의 시선과 행동,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회의 모습들과 그 균열된 틈을 뚫고 나오는 사회의 모순들에 대한 작가의 고민들 또한 상당히 뛰어납니다. 특히나 이 소설은 상당부분을 일본 경찰에 할해하고 있을 정도로 경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이 묻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캐리어와 논캐리어라는 일본경찰 특유의 관계는 이미 사사키 조의 <은폐수사>에서 익히 습득한 바 있어 더욱 흥미로웠고, 범인을 잡기 위해 정열을 다 바치는 형사들의 모습에서 살짝 감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상사 고바야시와 오코우치의 대립도 상당히 흥미가 있었구요. 왜 그러는지는 직장생활하시는 분은 다 아실 것 같네요^^

위와 같은 찬사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작품이 솔직히 100점이라고는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 읽은 분들도 작품에 대한 논란의 소지가 다소 있더군요.

제가 보기에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은 독자에게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영화같은 느낌, 쉴새없이 독자는 스크린의 자막을 쫓아가듯 책장을 넘겨야 합니다. 결국 나오는 범인 역시 작가가 쥐어주는 과자일 뿐, 내가 찾아서 먹는 느낌은 없습니다. 즉 여러장르가 혼합되는 가운데 가장 약한 것이 바로 추리입니다. 

사건의 발생과 범죄해결에 이르는 과정에 너무 많은 장면과 사건이 주어지다보니 정작 결론은 <양들의 침묵>같이 정리되는 것이 전 솔직히 불만이었습니다. 명석한 두뇌로 살인을 일삼는 사이코들의 논리는 이제 너무도 많이 봐서 질리기 시작한 지경이라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고, 작중에 나오는 투명한 친구의 존재가 왠지 궁금증을 갈수록 키워나가다 결국 이 사람이다라고 할 때 왜 그런지 그다지 충격은 없어 좀 서운했습니다.

특히나 처음에는 추리소설인 줄 알고 책을 접했으니... 이 소설은 결코 범인이 누구냐가 중요한 소설이 아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하지만 하드보일드나 미국식 크라임 픽션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작품이 제격일 것입니다. 일본 미스테리에 서양식을 접목한 것이 바로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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