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계단>으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거머쥐고 일본은 물론 국내에까지 큰 인기를 끌었던 다카노 가즈아키의 두번째 장편! 에도가와 란포상 심사위원이었던 오사카 고가 <13계단>을 두고 근 10년 동안 수상작 중에 가장 출중한 작품이라고 인정했던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그레이브 디거>는 진정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이 참으로 뛰어나다는 점은 우선 숨쉴틈 없는 추격전의 생생한 영상구현을 들 수 있습니다. 마치 영화나 일드를 보는 것 같은 도주 과정, 그리고 영화적 기법처럼 중간 중간 수사과정을 삽입해 독자는 점점 작가의 의도대로 진실에 접근해 갑니다. 해설을 읽어보니 이해가 되더군요. 그는 영화계에서 오랜 동안 일을 한 경험을 소설에까지 과감하게 접목시킨 것입니다. 시체의 도난 사건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엽기적인 살인사건 그리고 주인공인 악당 야가미는 정체불명의 적들에게 영문도 모른채 쫓기게 됩니다. 작품의 초입부에는 대체 왜 이 사람들이 죽는지 야가미를 쫓는 사람들의 정체는 무엇인지 무척이나 혼란스럽습니다. 그저 도망가는 야가미가 답답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점점 진실에 접근해가며 독자들은 자연스레 모든 이유를 알게되고 이윽고 야가미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존재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결말. 딱 한마디만 해주고 싶더군요. "야가미 도시히코! 수고했어!!" 마치 내가 그를 유일하게 이해해 주던 노형사 후루데라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내용자체는 되돌아 보면 실은 복잡한 것은 아닙니다만 사건의 실체를 감추고 있다가 나중에 정말 말되게 풀어놓은 <다카노 가즈아키>의 능력은 정말 타고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작품은 결론부분에서 상당한 충격을 받는 <13계단>보다는 다소 정형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역시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사건의 미스테리감을 더욱 깊어지게 하기 위한 작가의 설정자체도 상당히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골수이식이라는 소재를 중세시대 마녀사냥과 이를 복수하기 위해 생겨난 <그레이브 디거>라는 존재를 끌어들인 것도 작품의 몰입도를 높여주는 데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역시 단점이자면 이런 류의 소설에 독자의 추리가 개입될 여지가 사실 없다는 것이 있겠지만 너무나 빨리 한장 한장이 넘어가 버려 별로 불만을 느낄만한 여지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밖에도 이 작품은 일본 사형제도에 대해 담담한 논평같이 그려놓았던 비평에서 한 발자욱 더 나아가 일본사회의 모순과 부조리, 비리 등에 대해 작가의 다소 과격해 보일 정도의 비난과 분노가 가득합니다. 아마도 다카노 가즈아키란 작가는 글쓰는 능력도 비범하지만 사회의 부조리에도 상당한 관심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어떤 말을 붙이더라도 하나의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 작품 역시 <13계단> 못지 않게 참 재미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