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 과학수사와 법의학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이수광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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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누군가가 몰래 고해바치거나 징을 치거나 상소를 올리거나 해서 범인으로 의심되는 자가 잡혀옵니다. 포도대장이나 원님같은 수령들이 추상같은 소리로 고함을 지릅니다.

 "니 죄를 니가 알렸다" 

끌려온 사람은 한결같은 외칩니다. 

"나리! 소인은 억울하옵니다." 

그럼 바로 나오는 대사는 바로 이것! 

"허허, 저 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구나. 여봐라 이놈을 매우 쳐라"

여기까지가 우리가 숱하게 봐온 조선시대의 범죄조사입니다. 결국 용의자는 정말 죄를 졌는지 안 졌는지 솔직히 확인되지도 않은상태에서 매을 맞거나 주리를 틀린 뒤 만신창이가 되서 "나리, 소인 차라리 죽여주소서..."하고 자백을 한 건지 매에 맞아 견디지 못해 안한 것도 했다고 한 건지 모르는 상태에서 범인으로 확정되고 벌을 받죠. 아니면 매 맞다 죽습니다... 이건 정말 요즘 기준으로 생각해 본다면 말도 안되는 범죄심리방식입니다.

다 아시다시피 형법에는 무죄추정원칙이 있어서 명백한 증거로 유죄로 확정되기전 용의자는 일단 무죄, 즉 죄가 없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연 고문이나 조작된 증거는 증거능력으로 인정도 안되죠. 그래서 무엇보다도 과학수사가 중요시 되는 것입니다.  범인의 범죄행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조선시대에는 이런게 없으니 무조건 고문으로 자백을 시키는 일이 사실 비일비재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과거 조선시대의 이러한 비합리적인 범죄수사에도 과학적 검증절차가 있었을 알고 새삼 놀랐습니다. 이른바 <무원록>이란 것이 그것인데 사람이 죽거나 할 때 검안절차를 기록한 이 책은 일종의 법의학 서적으로 요즘 과학수사 지식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 수준이 매우 높습니다. 냄새와 시각에 의존하는 방법이 주가되기는 하지만,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기록해 놓은 자료이기 때문에 그나마 억울한 경우를 많이 구제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조선시대의 살인사건과 무원록에 입각하여 진범을 밝혀낸 경우를 비롯해, 조선시대의 신분제도에 따른 애환과 비극, 임꺽정과 같은 대도, 흉악한 사이비 종교로 인한 폐단 등 다양한 시각에서 조선시대의 범죄에 대해 접근해 봅니다. <무원록>이라는 뛰어난 법의학 서적이 있었음에도 수령의 실수로 잘못 조사된 사례에서부터 자신의 아들 혹은 공신이라 하여 명명백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처벌받지 않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어찌보면 범죄수사과정을 통해 조선시대의 사회까지도 엿보는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선시대의 과학수사를 소개하는 책이지만 이 책 도처에서도 고문의 흔적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조선 5백년 동안 무고하게 죽어간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요? 그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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