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그리고 좀비 - 제1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백상준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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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란 무엇일까요? 먼저 이러한 질문을 하나 던져보고 싶습니다.

썩고 문드러진 살, 붉게 충혈된 눈, 지독한 악취를 풍기며 싱싱한 인육을 먹기 위해 다가오는 돌연변이 괴물...이 정도로 정의될까요?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좀비 말고도 실은 수많은 요괴,괴물들이 있습니다. 드라큘라, 도깨비, 오우거(슈렉^^), 구미호, 유령, 우부메 등 나라별로 대표요괴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저는 좀비와 다른 요괴들과 좀 다른 점이 있음을 느낍니다. 바로 얼마전까지 맥주 한잔 나누던 친구나 아니면 달콤한 데이트를 즐기던 연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아주 가까운 이들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얼마전까지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죽이는데 따른 죄책감이 상당합니다. 하지만 일단 공적으로 몰리게 되면 대량 살육전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다른 요괴들보다 의외로 좀비는 만만합니다. 가슴에 못을 박아야 되는 것도 아니고 주술로 지옥의 문을 열어 멀리 보내버릴 필요도 없습니다. 정말 겁만 안 먹은다면 삽 한자루로도 머리를 날려버리면 되는 존재.  하긴 때거리로 몰려오니 좀 힘들긴 하지만 중무장만 하고 있다면 한 백마리 정도는 혼자서도 없앨 수 있을 정도입니다(하지만 영화를 보면 주인공만 그렇게 하고 나머지 조연들은 이상하게도 쉽게 죽어버리죠^^).

어찌되었건 좀비가 되는 순간 이들은 인간들의 공적이 됩니다. 마치 요즘 유행하는 왕따문화처럼 이유를 막론하고 이들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좀비가 된다는 공포감. 이 공포감이 인간들을 좀비보다 더 잔혹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 보면 좀비가 무서운 건지 좀비를 죽이는 사람이 무서운 건지 알수가 없게 되어 버립니다. 한쪽은 살기위해, 한쪽은 먹기위해 서로를 죽이는 것. 제가 보기엔 좀비라는 것은 남을 공격해서 나의 이득을 챙기려는 인간의 이기심이 빚어낸 마음의 요괴가 형상화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추한 것은 없애야 하고, 내가 살기위해 죽여야 합니다. 결국 이 싸움의 성패는 어느 쪽이 기득권을 쥐느냐에 따라 결론이 납니다. 결국 쪽수가 많은 쪽이 이기는 거죠. 결국 다수가 이기는 민주주의와도 연결되는 겁니다.

이상이 이 작품을 읽고 난 후 느낀 좀비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이제 작품으로 돌아가서 제 생각을 적자면 이 책에 수록된 5작품 모두 좀비에 대해 새로운 해석과 설정이 참 신선하게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1. 섬 - 우리는 지금도 이런 섬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에서의 섬은 좀비에 둘러싸인 아파트를 말합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엔 굳이 좀비가 아니더라도 이런 섬이 어디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섬이라는 제목은 현실을 반영하는 하나의 상징물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군요. 그만큼 이 작품은 좀비의 무서움보다는 좀비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촛점이 맞춰저 있습니다. 

결국 냉소적인 시선으로 변화된 좀비세상을 바라보는 주인공은 생존의 과정에서 좀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접하게 되고 심지어는 살인까지 저지르게 됩니다. 좀비세상에서 인간이 살기 위해 인간을 죽인다는 것, 왠지 씁쓸한 생각을 지우기가 힘이 들던 장면이었습니다. 결국 악전고투하던 주인공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최후를 맞습니다. 

최후의 순간, 허공에 몸이 던져진 주인공이 추락하며 했던 생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2. 어둠의 맛 - 인간세상에 대한 해학

이 작품은 여기 다섯 작품 중 가장 독특한 작품입니다. 여기서는 좀비가 절대 약자로 나옵니다. 그리고 인간과 불편한 공생을 하게 되고, 전염병 환자처럼 배척받고 무시받고 천대받게 됩니다. 

근데 좀비들은 억울합니다. 좀비가 되고 싶어도 된 것도 아닌데 자꾸 사회는 울타리밖으로 쫓아낼려고만 하니까 말이죠. 이런 부조리를 타파하려는 주인공! 그 결말은? 절로 쓴웃음 짖게 사는 사회현실이 잘 녹아있습니다.

3. 잿빛 도시를 걷다 - 바이오 해저드를 연상시키는 공포

우리가 기존에 많이 보아온 좀비물의 설정과 가장 닮아있다는 느낌입니다. 우리에게 보다 익숙한 좀비의 공포, 그것도 자신의 뇌리 속에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과 냄새를 맡고 찾아다닌다는 설정 등 섬뜻함이 강한 작품입니다. 전체적으로 비극이며, 설정자체도 이런 곳에는 일분도 있고 싶지 않다고 느낄 정도로 공포요소는 다섯 작품 중 가장 뛰어나다고 볼 수 있습니다.

4. 도도 사피엔스 - 모든 것이 허무하게 사라져가는 인간세상에 대한 리포트

질병으로 좀비가 되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국제사회에서의 고립, 다가오는 인류의 멸종 위기,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몸마저 희생하는 양심적인 의학자와 동료들. 

하지만 이 모든 노력들이 작가의 허무한 시선 속에 결국은 불가항력의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묻혀버리는 씁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좀비 바이러스는 인간을 벌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린 천벌일까요? 이러한 질문마저 허무한 메아리로 울리며 작품은 끝을 맺습니다.

5. 세상 끝 어느 고군분투의 기록 - 가장 무서운 것 그것은 '고독'

범죄자를 사회와 격리시키는 역할을 하는 교도소가 좀비세상으로부터 나를 안전하게 보호(또는 격리)해주는 장소가 된다면? 이러한 배경설정에서 출발하는 이 작품의 주제는 고독입니다.

원래 세상사람들과 엮이지 않고 싶어 자기만의 고립된 생활을 즐기던 주인공 유남은 좀비세상으로 변한 지금 교도소에 홀로 남아 이제 도리어 고독과 싸웁니다. 교도소 안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 할 수 있고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설정이 도리어 이러한 고독을 더욱 부추기는 역할을 합니다. 하루하루 좀비와 싸워야 하고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한다면 고독 대신 생존의 열망이 더 강하게 다가왔을 텐데...인간이란 존재는 어떤 상황에서도 힘들고 나약한 존재입니다.

결국 유남은 우연히 발견한 인간 갓난아이를 구하러 담을 넘습니다. 인류애나 정의감일 수도 있지만 결국 자신의 고독을 치유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생사를 넘나든 구출작전은 결국... 마지막 구출장면은 다섯 작품 중 가장 돋보이는 액션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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