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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양들의 축연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들이 공포를 얘기할 때 무서운 것과 섬뜩한 것은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미친 개가 개거품을 물고 나를 쫓아온다면 매우 무섭겠죠, 하지만 인적이 드문 산길 가로등 밑에 왠 창백한 소녀가 하얀 옷을 입고 한손엔 인형을 한손엔 포크(왠 포크 ㅋ)를 들고 있다면 왠지 섬뜻할 것입니다.
섬뜻하다는 것은 예기치 못한 상황이 우리의 내부의식에 균열을 만들때 느껴지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른바 의외성을 동반하는 감정입니다. 평생을 친구로 알고 지내왔던 사람, 이슬만 먹고 살 것 같은 아가씨, 충실한 가정부 등 언제나 나를 지켜줄 것만 같았던 사람이 어느날 살인자라면? 이러한 사람들이 조용히 등 뒤로 다가와 나의 목덜미에 비수를 꽂는다면?
생각만 해도 섬뜩할 것입니다.
저는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유명작 <인사이트 밀>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작풍이나 내용전개에 대한 기법에 대해 전혀 무지한 상태에서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이러한 무지가 약이 된 듯한 느낌입니다. 추리를 기대했다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섬뜻한 공포와 조우하게 되었으니까요.
이 작품은 연작 단편집입니다. 서로가 전혀 별개의 작품 같으면서도 연결되어지는 묘한 고리로 엮여 있습니다. 그리고 주제는 일종의 공포, 의외성, 반전이라고 생각됩니다. 모든 작품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개는 상당히 뛰어나다는 생각입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스탠리 엘린의 단편집 <특별요리>가 생각났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저는 이 작품을 읽은 봐 있어서 이 책의 마지막 단편인 <덧 없는 양들의 축연>이 쉽게 이해될 수 있었습니다.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는 이 연작 단편집에서 고전 추리소설에 대한 일종의 경외감을 표현하고 수많은 모티브를 따와서 일본의 전통적인 인습과 문화에 덧칠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고전 추리에서는 미처 느낄 수 없었던 공포라는 새로운 관념이 묻어나왔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 읽어 볼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집안에 변고가 생겨서>와 <덧없는 양들의 축연>이 가장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작품들 역시 전체적으로 수준은 꽤 높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스탠리 엘린의 단편집 <특별요리>를 뛰어넘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어 보신 독자라면 <특별요리>를 꼭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아마도 새로운 기쁨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