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각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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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내내 생각났습니다. 어찌보면 일본판의 재해석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싶은 느낌도 많이 받았습니다. 물론 사건의 전개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는 무척다릅니다.

아마도 비슷한 배경 속에서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가 자신만의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나갔다는 표현이 맞을 듯 싶습니다. 닮았지만 닮지 않은 것이 바로 이 작품만의 매력입니다.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는 왠만한 추리소설 마니아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작가로 이제는 신본격의 거장 중의 한 사람입니다. 이른바 <관 시리즈>하면 바로 그를 떠 올릴 만큼 추리소설 본연의 재미를 탐구하는 작가입니다.

이 작품을 접하기 전에 먼저 <키리고에 저택의 살인사건>으로 작가의 작품을 접한 바 있는데 이른바 눈에 의한 <클로즈드 서클 테마>를 차용하고, 편승살인이라는 독특한 트릭까지 선보여 읽는 내내 눈과 머리가 즐거웠었던 기억이 납니다.

<십각관의 살인사건>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처녀작입니다. 즉 그의 첫 작품이란 것입니다. 가장 먼저 놀랄 수 밖에 없는 것은 이렇게 뛰어난 데뷔작을 써낸 그의 역량입니다. 어릴 때 부터 미스테리에 푹 빠져 본인 스스로도 대학 시절에 미스테리 동호회에 다닐 정도로 미스테리 매니아였던 그가 얼마나 혼신의 정열로 이 작품을 썼는지 작품 곳곳에서 그 흔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가 앞으로 어떤 추리 소설을 써 내려갈지에 대한 일종의 선언문같은 작품입니다. 작품 첫 머리에 그는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인 엘러리의 말을 빌어 이른바 일본 미스테리를 주릅잡던 사회파 추리소설에 통렬한 비난을 가합니다. 한마디로 이제 사회적 문제점을 들춰내고 범죄자의 심리를 파헤치는 그런 소설이 아니라 기본으로 돌아가 탐정과 범죄자가 있고, 트릭으로 승부하는 추리소설을 쓰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엿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엘러리(앨러리 퀸), 르루(가스통 루르), 카(딕슨 카), 아가사(아가사 크리스티), 반(S.S.반 다인) 등 과거 명탐정을 등장시켜 트릭을 해결하는 추리소설 본연의 목적에 충실했던 당대의 대가들의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닌 작가의 의도적인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이름 중에서도 마지막 문제를 해결하는 인물인 시마다가 <점성술 살인사건>으로 유명한 작가 시마다 소지에서 따온 것이고, 나카무리 세이시가 본격 추리소설의 거장 요꼬미조 세이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본격 추리소설의 서평에서 내용은 언제나 얘기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아는 순간 책을 읽는 이유가 없어지는 셈이니까요. 뛰어난 트릭, 개연성있는 사건 전개, 그리고 마지막 범인이 밝혀질 때의 아찔함 등, 이 작품은 모든 뛰어난 요소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이 부분은 모든 일본의 신 본격 미스테리 소설들이 갖고 있는 필연적인 문제입니다만) 너무 완벽한 작품을 만들려다보니 도리어 결과에 맞춰 원인을 만들려는 약간 작위적인 설정들이 눈에 띈다는 것입니다.

사실 트릭과 추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추리소설은 미스테리 소설 중에서도 창작이 가장 어려운 범주에 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독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범인을 감추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본격 추리소설이야 말로 작가에게 있어서는 정말 피를 말리는 장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론적으로 단점만 찾을려고 노력한다면 한 두군데 정도는 이게 말이 되나 싶은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매우 훌륭한 작품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다가 이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이고 이후 나오는 여러 작품들이 현재 신 본격 추리소설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다고 평가할 때 이 작품의 의미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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