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텐더니스 ㅣ 밀리언셀러 클럽 85
로버트 코마이어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텐더니스(tenderness). 왠지 굳이 영한사전을 들춰보지 않더라도 그 어감만으로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단어이다. 어릴 적 엄마의 품 속, 연애시절 아내가 넘기던 고운 머릿결과 은은한 샴푸 냄새, 아이의 볼에 살짝 입술을 갖다 대었을 때의 순수함과 함께 전해지는 그 감촉들. 부드러움은 모든 아름다움과 사랑의 산물이자 우리 인간이 느끼는 감정 중 가장 순수한 영역에 속해있는 좋은 감정이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나를 가장 끌리게 한 것 역시 텐더니스라는 제목이었다.
이 소설은 결코 사이코 패스와 범죄를 주제로(중점적으로) 다루는 소설이 아니다. 그리고 미국 크라임 픽션이 그러듯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잔인하게 파헤치지도 않는다. 이 텐더니스에서 작가의 관점은(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사회가 아니라 인간에 있다. 살인마 에릭과 가출소녀 로리는 모순된 사회가 만들어낸 어긋난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보다는 그들이 갈망하고 집착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더 커 보인다.
에릭의 부드러움에 대한 갈망은 절대악이다. 그러나 그의 동기 자체는 악하지 않다. 이 세상 모두가 부드러움을 추구한다. 하지만 에릭을 지배하는 것은 극한의 이기주의이다. 나 자신의 부드러움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바로 살인이다. 이 과정 속에서 그에게는 어떠한 죄책감도 없고, 생명에 대한 존중도 없다. 부드러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그의 순수한 동기는 타인에 대한 아무런 감정도 없는 절대악이 되어버린 것이다.
로리라는 캐릭터는 에릭보다 더욱 흥미를 끄는 존재이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집착은 일종의 강박증이다. 일단 집착하게 되면 해소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소녀. 그녀 역시 일반인이 느끼는 도덕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전혀 양심의 가책이나 자책하지 않는 그녀. 순진무구하다 못해 세상의 정상적인 상식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로리이다.
에릭이나 로리나 모두 자기자신의 행동만을 모두 옳은 것이라고 믿고 행동하는 이 시대의 괴물(프록터 경위에 따르면)일지도 모른다.
이런 두 사람의 만남은 절벽위에 걸린 외줄을 타듯 위태롭지만 이상한 균형을 이루게 된다. 갈망과 집착의 만남은 두 사람 모두에게 낮설지만 신선한 경험이었으리라. 하지만 외줄타기는 결국 위험한 것이다. 모든 갈등이 해결되는 듯 한 순간...이 순수한(?) 감정을 갖고 있는 두 사람에게는 어처구니 없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프록터 경위는 비정상적인 것을 제거하고자 하는 우리들을 대변하는 듯 하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행위를 옳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에릭과 로리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어쩌면 우리 모든 인류의 감정 속에는 에릭과 로리와 프록터 경위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부드러움에 대한 갈망과 집착, 그리고 일탈에 대한 무자비한 징벌은 우리 삶과 인류의 역사에 항상 존재해 왔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