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책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12월
평점 :
일시품절


이 밤산책은 시공사에서 나온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만으로 7번째, 동서문화사에서 출간된 혼징살인사건(나비부인 살인사건 포함)까지 하면 어느 덧 내가 접한 요코미조 세이시의 아홉번째 작품이 된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이제 9번째가 되다보니 왠지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에 대해 많이 익숙해진 느낌이다. 작풍도 그러하고 사건의 전개와 인물들의 심리묘사나 사건의 배경 등이 여전히 충격적이고 대단하다고 느끼지만 <팔묘촌>이나 <옥문도>, <악마의 공놀이 노래>를 읽을 때만큼 새롭거나 하지는 않았다. 물론 다른 작품을 읽지 않고 이 책을 처음 접했다면 완전히 충격적이고 새롭게 느꼈을 것이라는데는 의문이 없다. 

역시 이 <밤산책> 역시 요코미조 세이시의 역작임에는 틀림이 없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소설이다. <팔묘촌>이나 <옥문도>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되지만 적어도 <이누가미 일족>보다는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다른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들과는 다소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적인 작품인 <애크로이드 살인사건>과 닮았다는 것이다. 내용이 같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분위기나 내용은 완전히 요코미조 세이시 작품의 전형인데 결말을 매듭짓는 방식이 그의 기존 작품과는 사뭇 다르다. 눈치빠른 미스테리 독자들은 무슨 말인지 바로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 만약 이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여기까지만 읽어 주시라. 이 작품은 충분히 읽은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

이른바 이 작품은 서술자의 트릭을 사용하고 있다. 서술자의 트릭이란 말 그대로 소설을 진행해나가는 화자가 알고보니 범인인 것을 말한다. 당연히 독자는 범인이 밝혀지는 소설의 말미에 가면 깜짝 놀랄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소설을 서술했던 사람이 알고보니 범인이기 때문이다. 

범인이 소설의 진행을 주관하다 보니 마지막까지 철저히 자신을 감추며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독자들은 아예 범인일 거라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고 허를 찔리고 만다. 듣기에는 굉장히 기발한 방식인 것 같지만 왠지 작가에게 철저히 농락당했다는 생각때문에 서운하고 때로는 열까지 받는 방식이기도 하다. 혹시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을 읽어보셨는지. 이 책을 보면 현대에 이 서술자 트릭이 어떻게 변형ㆍ발전되었는지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살육에 이르는 병> 역시 책장을 덮으며 씁쓸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이 기법은 아주 세련되게 쓰지 않으면 안된다.

이 <밤산책>의 서술자 트릭은 그렇게 세련되지는 못한 것 같다는게 내 생각이다. 범인을 만들기 위한 작위적인 면도 다소 엿보인다. 따라서 본격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는 결말부분에 가서는 다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소설이 형편없냐면 그것은 결코 아니다. 다른 소설을 뛰어넘는 점도 몇 가지 보인다. 본격의 거장인 요코미조 세이시의 명성에 걸맞게 곳곳에서 작가의 섬세한 트릭이 돋보이고 있는데 특히 첫번째 살인사건과 관련한 트릭들(알리바이, 살인도구를 감춘 금고트릭 등)은 거의 <옥문도> 수준이라고 할 정도로 뛰어나다.

그리고 작품 후반부에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하는 긴다이치 코스케의 모습도 지금까지 나온 어떤 작품보다도 멋있다. 너무 등장이 늦은 것을 의식했음인지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신속하고 명쾌하게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말 그대로 '이런 모습은 처음이야'이다.

※ 시공사의 요코미조 세이시 시리즈의 책 표지 일러스트는 갈수록 유려하고도 세련되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듯 하다. 모든 시공사 시리즈의 표지가 다 수준급이지만, 이 <밤산책>의 일러스트는 지금까지 나온 시리즈 중 넘버 1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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