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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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를 돌아보는 여정,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를 읽고


때때로 우리는 이 지구에서 사는 데 결코 적응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들이고,

삶이란 끝없이 진행되는,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실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259pg)


​ 제발트의 소설은 아주 쉽사리 잘 읽히는 편은 아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가듯, 다양한 이야기들이 곁다리처럼 얽히고 얽혀, 커다란 서사를 이루어낸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내용을 담았을까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배경지식이 가득한데, 그걸 또 난잡하게 적어놓았다기보다는 섬세하게 적어놓았다고 표현하고 싶다.


 1992년 8월, 소설의 화자는 고대 왕국이 있던 영국의 동남부지방을 여행하고, 그 과정에서 이미 발생했거나 장차 도래할 대재앙의 증인들을 만난다. 제국주의가 남겨놓은 유대인, 노예화된 민족, 문명의 흐름에서 벗어난 아웃사이더, 파괴된 숲, 몰락한 도시.... 왠지 모를 공허함에 떠난 여행에서 화자는 생과 사, 종교, 전쟁과 희생까지... 다양한 영역으로 생각을 확장시키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인류가 파괴한 폐허부터 인간이 저지른 과오까지 돌아보는 여정은 조금 외롭고, 쓸쓸하고, 묵직하다. 읽다보면 나의 기분도 자연히 내려앉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책장을 넘기며 계속 생각했다. 바람직한 삶이란 무엇인지.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렇기에, 이 화자와 함께 떠나는 소설 속 여정은 마치 내 삶의 여정같기도 했다.


 이것은 분명 소설이고, 에세이나 여행기가 아니기에 어디까지나 허구적인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중간중간 나타나는 그림들, 섬세한 묘사, 역사적 사실들은 마치 이게 진실이라고 내게 말하는 듯하다. 읽고 나서도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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