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이야기
113P) 여행 동안 건물이나 지하철역 같은 공공장소 벽에 그려진 글자나 그림인 '그래피티'를 보는 진과 내 의견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진은 미관을 해치는 흉물스러운 글자와 그림은 물론, 남의 건물이나 공공장소에 함부로 낙서를 하는 행위 자체를 목청 높여 비판했다. 나는 그저 낙서가 아니라 젊은이들의 문화로 봐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 ...
그런데 카타니아행 기차를 탔을 때, 차창 가득한 그래피티로 밖이 하나도 안보여 절망한 작가님.
115P) 그동안 그래피티에 분노까지 했던 진은 자면서 갈 거라며 느긋한 표정이었지만, 창밖 풍경을 고대했던 나는 울화통이 치밀었다. ... '기차 몸통은 몰라도 창에까지 하는 건 민폐잖아'하며 투덜댔다. 그러면서도 나 자신의 얄팍함이 몹시 부끄러웠다. 나의 이해심과 아량은 내가 피해보지 않는 선에서였던 거다.
살면서 이런 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132P)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가지 않은 길'을 품은 채 살아간다. 기억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 길은 실패한 길이 아니다. 부서지고 무너진 채로도 무대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타오르미나 극장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연기에 재능을 보였다는 작가님. 중고등을 지나 주부 연극반까지, 그리고 이제는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계속 연기를 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아나운서의 꿈을 꿔온 나는 고등학교 때 여러번 무대 경험을 하며 무대 위에서의 희열을 맛보았다. 대학 교내 방송을 거쳐 현재 오디오클립까지. 언제나 마음속에 꿈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기억하기를 포기 하지 않는 한 실패가 아니라는 작가님의 말씀이 나를 가만 가만 토닥여 주는 듯 했다.
141P) 쉰이 넘어서도 나이 밝히는 걸 주저했던 적이 없다. 저절로 흐른 세월이 아니라 성실하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도달한 나이 아닌가. 그동안 살아낸 세월 덕분에 웬만한 방지턱은 여유롭게 넘을 수 있는 삶의 내공을 갖게 됐다.
아~ 멋지다. 내 삶에 성실하고 사랑해 주면서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
142P) 나이 드는 것에는 꽤나 호의적이면서 '늙음'에 대해선 아니었다.
... 늙음을 부정하고 혐오하면서 어떻게 앞으로 맞을 내 나이를, 나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했다.
라구사로 가는 버스에서 만난 할머니를 보며 그동안 자신이 만난 노인들을 떠올리는 작가님. 고루함과 완고함, 무례한 관심, 쓸데없는 노파심, 지겨운 잔소리 들이 노인의 표식 같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기 반성...
한 2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100살까지 살고 싶다고 당당히 말했었다. 그런데 요즘 부쩍 신체 곳곳의 '늙음'을 경험하고나니 나이듦이 슬퍼졌고, '적당히' 살다가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근데 과연 적당히란 몇 살일까? 70살? 80살? 그런 생각들 뒤로 우리 아빠가 벌써 일흔이 훌쩍 넘었는데 이건 너무 죄송한 생각이잖아ㅠ 라며 반성하기도...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다스리는게 무엇보다 중요함을 다시금 생각한다. 관절의 건강은 물론 부지런히 근육도 저축해 두기! 그리고 오래도록 계속해서 할 수 있는 나만의 일을 찾는 것도 잊지 말아야 겠다. 그렇게 나이에 갇히지 않는 당당함과 자유로움(194P)을 가지고 살아야지.
199P) 뭉뚱그려 기록될 역사의 행간에는 77억개의 삶이 있다. 그중 한 사람인 나는 오늘도 퇴고할 수 없기에 더없이 소중한 나만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누구나 그럴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일상을 글로 표현하며 타인의 감응을 일으키는 작가란 참 멋진 직업이다.
나의 일상과 나의 시간을 블로그에 기록하는 것을 놓치 말아야지.
나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일에 더 주저하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