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을 보면 소희는 늘 다른 사람 눈치부터 살피고 있는 스스로가 불쌍해 가슴이 쓰라렸다.
채경은 속을 뒤집어서 햇볕에 널어놓은 것처럼 감정을 감추거나 속이는 게 없었다.
달밭마을에서는 미르가 제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다 울음을 터뜨리던 모습을 보면서, 자기는 한 번도 그렇게 표출해 본적이 없음을 알게 된다. 이제는 우진과 채경이를 보면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자기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한 친구를 찾아내 어설프게나마 그 애를 흉내 내며 눅눅한 마음에 햇볕을 쬐고(76쪽) 있었음을...
그간 소희는 어른들이 어떤 아이를 좋아하는 지 알기에 스스로 그 틀에 맞추었고 칭찬받으며 살아왔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꽃'이었던 소희였지만 자기 감정을 들여다 보고 표현하는 데는 서툴렀던 거다. 동경이나 욕망 자체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무관심으로 자존심을 지켜왔던(121쪽)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결국 '나'는 흐려지고 병이 든다.
나는 결혼 후, 가부장제 문화가 깊게 베어있는 시댁에서 '며느라기'를 거치며 '나'라는 존재가 흐려지는게 괴로웠다. 그렇게 '자기 소멸의 벼랑 끝에서 SOS를 치다'가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님의 책을 만났다. 감정은 삶의 나침반이자 존재의 핵이라는걸 알게 되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댁에 대한 반감은 오히려 줄어들고 나의 마음도 전보다 훨씬 편안해 졌다. '내가 지금 이렇게 안 하면 어떻게 되지?' 하면서 그간 혼자 전전긍긍하며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소희는 리나가 아저씨와 나눈 대화를 엿듣게 되면서 감정을 말로 전하는 방법을 확실히 배우고 실천하게 된다. 집 안에 진짜 '소희의 방'이 생겼듯이 비로소 소희 안에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없이 자기만의 감정과 생각을 풀어놓는 영역이 확고해진 것이다. 더이상 피하거나 숨지 않는다.
사실 일찍 철이 들어 누구에게나 칭찬받고 야무진 소희였지만, 아이는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표출할 때에야 가장 아이답고 예쁘다. 시기, 질투, 욕심, 소리지름, 울음 등으로 표현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닌 순수한 본성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