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의 방 이금이 청소년문학
이금이 지음 / 밤티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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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밭마을을 떠나 작은 집으로 가게 된 소희의 뒷이야기가 궁금했더랬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살면서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소희.

사려깊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소희.

막연히 그녀가 계속 그렇게 단단한 마음을 지닌채 자라서 작가가 되었을 것 같단 행복한 상상을 했었다. 그 이야기가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소희의 방>은

작은 집에 얹혀 살며 고생하던 소희가 엄마와 다시 만나 새로운 가족과 함께 살게 되면서, 그간 미처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자기 안의 본성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소희는 좌절하고 아파하고 울고 상처 받는다. 그리고 성장한다.

그리고 나도 깨달았다.

아! 우리의 인생이 그렇지.

언제나 즐거운 일만 있을 수 없고 또 불행한 일만 지속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고통의 한가운데서 진짜 '나'의 모습을 알아차리고 더욱 성장하곤 한다. 이것이 삶의 아이러니.


소희의 성장 1

​우진을 보면 소희는 늘 다른 사람 눈치부터 살피고 있는 스스로가 불쌍해 가슴이 쓰라렸다.

채경은 속을 뒤집어서 햇볕에 널어놓은 것처럼 감정을 감추거나 속이는 게 없었다.

달밭마을에서는 미르가 제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다 울음을 터뜨리던 모습을 보면서, 자기는 한 번도 그렇게 표출해 본적이 없음을 알게 된다. 이제는 우진과 채경이를 보면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자기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한 친구를 찾아내 어설프게나마 그 애를 흉내 내며 눅눅한 마음에 햇볕을 쬐고(76쪽) 있었음을...

그간 소희는 어른들이 어떤 아이를 좋아하는 지 알기에 스스로 그 틀에 맞추었고 칭찬받으며 살아왔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꽃'이었던 소희였지만 자기 감정을 들여다 보고 표현하는 데는 서툴렀던 거다. 동경이나 욕망 자체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무관심으로 자존심을 지켜왔던(121쪽)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결국 '나'는 흐려지고 병이 든다.

나는 결혼 후, 가부장제 문화가 깊게 베어있는 시댁에서 '며느라기'를 거치며 '나'라는 존재가 흐려지는게 괴로웠다. 그렇게 '자기 소멸의 벼랑 끝에서 SOS를 치다'가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님의 책을 만났다. 감정은 삶의 나침반이자 존재의 핵이라는걸 알게 되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댁에 대한 반감은 오히려 줄어들고 나의 마음도 전보다 훨씬 편안해 졌다. '내가 지금 이렇게 안 하면 어떻게 되지?' 하면서 그간 혼자 전전긍긍하며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소희는 리나가 아저씨와 나눈 대화를 엿듣게 되면서 감정을 말로 전하는 방법을 확실히 배우고 실천하게 된다. 집 안에 진짜 '소희의 방'이 생겼듯이 비로소 소희 안에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없이 자기만의 감정과 생각을 풀어놓는 영역이 확고해진 것이다. 더이상 피하거나 숨지 않는다.

사실 일찍 철이 들어 누구에게나 칭찬받고 야무진 소희였지만, 아이는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표출할 때에야 가장 아이답고 예쁘다. 시기, 질투, 욕심, 소리지름, 울음 등으로 표현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닌 순수한 본성이니까.


소희의 성장 2

소희는 자신이 그간 보아온 여자들의 삶은 대부분 일과 가사와 육아 사이에서 동동거리는 삶이었던 것에 반해, 엄마는 가사도우미에게 집안일을 맡기고 학부모 모임이나 부부 동반 모임에 참석, 골프연습이나 쇼핑, 외모를 가꾸는 일에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덕분에 엄마는 마흔 살에도 30대 초반 같은 얼굴과 군살 없는 몸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런 삶을 위해 아빠의 폭력을 감수하고 있는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에게는 완벽할 정도로 좋았던 할머니가 엄마에게는 자식을 갈라놓은 시어머니였던 것처럼, 불쌍한 아이로 만들어 늘 짜증 나게 하던 고모가 마음의 응어리를 시원하게 풀어준 것처럼, 왕싸가지 재서가 속 깊은 디졸브였던 것처럼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면이 공존했다. (252쪽)

디졸브가 엄마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자 소희는 엄마들이 진짜 바라는 건 자식의 행복이라며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충고한다. 원래도 속이 깊은 소희인데 사람을 보다 폭넓게 볼 줄 아는 더욱더 마음이 큰 사람이 될 것 같다.


소희의 성장 3

산다는 일의 진정한 의미는 여름날의 무성함과 찬란함이 아니라 겨울날의 초라함과 힘겨움에 담겨 있는 건지도 모른다.

달밭마을의 느티나무처럼 밧줄에 가지를 의지한 채 눈바람을 맞는 일이, 그것을 견디는 일이 인생일 것이다. 내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에도 삶은 그럴 테지. 그걸 알기에 나는 앞으로 이 일기장에 담기는 행복하고 즐거운 일은 물론 힘들고 괴롭고 아픈 일까지도 모두 다 사랑할 것이다. 그럴 것이다.

- 307쪽

소희는 '어떤 일이든 아주 좋기만 한 것도, 나쁘기만 한 것도 없다'는 할머니의 말을 늘 기억했다. 또 어린 나이에 이미 삶의 희노애락을 충분히 경험하며, 나는 마흔이 되어서야 깨닫게 된 삶의 기본값이 '고통'이라는 것도 깨우친 것 같다.

삶이 꼭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다 보면 괴로운 순간이 왔을 때 이겨내는 일은 훨씬 더 힘이 든다. 하지만 인생은 늘 굴곡이 있다는 것, 비바람과 햇볕은 반드시 공존해야 된다는 것을 알면 삶을 받아 들이는 일은 더 편안해 진다.

그리고 중요한 건, '마음이 건강해야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올바른 판단을 하고 당당하게 표현하거나 행동할 수 있'(302쪽)다.

괴롭고 아픈 일까지도 모두다 사랑할 것이라는 소희의 말에 아이를 둔 엄마로서 정말 안심이 되었다.


소설의 마지막에 소희가 진실을 털어놓았을 때 채경이의 말이 인상 깊었다. 채경이는 참 마음이 건강하고 자존감이 높은 아이다.

"대박! 너 정말 전생에 유관순이나 잔 다르크였던 거 아냐? 어떻게 너희 엄마는 재혼을 하셔도 그런 부자랑 하냐?"

그러게 ㅋㅋㅋ 완전 무한 끄덕임!

나조차도 책을 읽는 내내 소희가 살게된 마당 있는 이층집과 부자아빠가 얼마나 부러웠던지...

소희가 더이상 자신의 욕망을 감추지 않고 자기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길, 힘껏 응원한다.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료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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