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
김준녕 지음 / 고블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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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두근거렸다. 0번 버스를 탄 것은 온전한 내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내 과거의 선택들이 만든 또 다른 선택이었을까." _p.124

고블 출판사에서 출간한 김준녕 작가님의『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장편'으로 대상을 받은 작가님이 쓴 '단편' 소설집으로, 10편의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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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에 보면 '블랙코미디'와 '사회풍자'라는 키워드가 눈에 띈다. SF 소설들은 대체로 사회 풍자적 키워드를 가지고 있지만,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만큼 생활 밀착형 SF는 본 적이 없다.

내가 그동안 읽었던 SF들은 어떤 '가치'의 상실을 풍자하는 경우가 많았다. 연대, 감정, 예술, 환경 같은 잃어서는 안될 걸 잃은 세계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는 블랙코미디 그 자체다. 그는 #부동산 , #보험 , #유전 , #빚 , #국가 같은 것을 풍자한다.

태양이 폭발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부동산 걱정을 하며 무(無)에 투자할 수는 없을까 고민하는 주인공, 신적인 존재를 만났음에도 보험 규정 걱정에 보상을 잘 받을 궁리만 하는 주인공, 빚의 대물림으로 평생 국가에 부역해야 하는 주인공까지.

"미래를 끌어다가 현재를 사는 그런 어이없는 형태였다. 핍은 관심을 끄기로 했다. 투자에 있어서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믿어야 했다. 출처가 불분명한 사탕발림은 낚싯바늘에 꿰인 미끼와 같았다. 함부로 물어서는 안 됐다. 누구도 대신 투자해 주지 않았다."_p.65

이렇게나 현실적인 SF를 본 적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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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작 중 [빛보다 빠른 빛] 이야기만 자세히 덧붙여본다.

"오늘날 산 사람은 죽은 이의 빚을 지고 산다.
빚은 사람이 죽어도 소멸하지 않았다."_p.142

— "가족 보조금, 건강검진 등에 돈이 쓰이고요. 태어나서는 또 어떻습니까? 교육부터 의료 보험 등등 선생님이 성인이 되어 일을 하시기 전까지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그게 전부 그냥 나오는 돈이겠습니까? 전부 빛이에요, 빚. 누군가는 갚아야 할 돈입니다."

— "제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습니까? 그렇게 해달라고 했습니까?" (...)

— "그럼 저희가 태어나라고 했습니까? 그렇게 자랄 때는 아무 말도 안 하다가 지금 와서 갚지 않겠다니 무슨 심보입니까?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아요?" _p.147

빚을 갚지 못하면 죽을 수도 없는 사회. 안드로이드가, 정신체가 되어서라도 끊임없이 노동해야 한다. 자살시도라도 하면 그 구조비와 소생비 조차 빚이 된다.

마땅히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는 고액 체납자에 대한 풍자 같기도, 국민을 '노동자'로만 여기는 국가에 대한 풍자 같기도 하다.

그 이중적인 해석에 더 인상적인 작품이다.
작가님이 어떤 방향을 의도하고 쓰셨을지에 대한 호기심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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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둥둥 떠 있는, 환상적인 SF에 너무 익숙해졌다면. 현실을 대놓고 쿡쿡 찌르는 세심한 SF가 보고 싶다면 망설임 없이 추천할 수 있는 책,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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