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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알 ㅣ 환상하는 여자들 1
테스 건티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3월
평점 :
"아이 엄마에게 현대 삶을 요약해 보라고 하면, 그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모두가 하지도 않은 일로 서로에게 벌을 주는 시대." _p.15
영어로 The Rabbit Hutch, '토끼장'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작품 『우주의 알』.
🐇 🐓
좁고 열악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아파트를 '토끼장'이라고 부른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닭장'이라고 표현하는 게 조금 더 와닿는다. 닭만 한 케이지에 닭을 넣어 기르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닭장.
(15년쯤 전에 양계장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 충격받아서 동물복지 달걀만 사먹는 1인)
『우주의 알』은 그 아파트에 사는, 혹은 연관된 수많은 인물의 삶을 매우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인간의 '삶'을 잘 담아낸 작품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인물들이 모여 이루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사회의 모습도. 개인적으로 살짝 『피프티 피플』이 생각나기도 했다. 물론 『우주의 알』이 500%쯤 더 매운, 마라 맛 사회를 그려내고 있었지만 .
🌪
블랜드 왓킨스가 육체에서 빠져나온다. 이제 겨우 18세, 죽음의 끝자락에서 시작된 유체 이탈로 영혼은 바카베일을 떠돈다.
죽음이 그 시작이어서 더 이렇게 느껴지는 걸까, 기묘함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현실과 환상이 교차한다.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을 정도로 몰입하다가도, 깊은 한숨과 함께 덮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수미상관(首尾相關).
결국 이야기는 블랏쳇이 자신의 몸을 빠져나온,
몸에서 빛이 나는 오십대 발광체 아저씨가 함께 있는 C4호로 돌아온다.
"사이렌 소리가 들렸어요. 발소리가 들렸어요. 노크. 목소리. 당신네들 목소리. 그러고는 모든 게 현실이 됐어요." _p.446
🗡
"난 승인의 형태로 가장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정말
지긋지긋해요." _p.385
『우주의 알』은 은행나무 출판사의 해외 '여성 문학' 시리즈이다. 열악한 토끼장 속, 그 속에서도 결국 누구보다 힘들게 살아가는 건 사회적 약자, 여성과 아이, 임산부와 부모, 무언가 책임져야 할 게 있고, 밟히는 게 있는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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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 도착한 편집자 여우님의 레터에 이런 글귀가 있다.
"사실 어느 쪽도 이 책에 적합한 설명은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은 이렇게 소개하고 싶어요.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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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친님이 이전 『우주의 알』 게시글에 '환장하는 여자들'이라고 보았다는 댓글을 달아주셨다. 그리고 책을 덮고는 생각했다. 어쩌면 '환장'이라는 말도 잘 어울렸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