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아 만든 천국
심너울 지음 / 래빗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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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든 걸 갈아 넣은 당신들의 천국"

해리포터를 보았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법사를 꿈꿔보았을 것이다.
주문 한 번에 무엇이든 이뤄지는 마법의 힘.
'초능력을 딱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이라는 타이틀의 테스트는 지금도 인터넷에서 쉬이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갈아 만든 천국』 속 마법사들은 결코 천국에 살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 마법은 저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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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이 실존하는 21세기 한국을 배경으로 한
심너울 작가님의 신작, 『갈아 만든 천국』.

마법 능력은 뛰어나지만 돈이 없는 무현은 능력을 팔고, 자신을 믿지 않는 현채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능력과 배경을 다 가진 지현은 아버지의 그늘 아래 자신을 잃었으며, 혜정은 사회에서 아예 배척당할 수밖에 없는 위치로 태어났다.

이렇게 네 명의 메인 인물들로 진행되는 장편소설,
아니 어쩌면 연작소설에 가까운 이 작품은 그 무엇보다도 21세기 대한민국에 가까운 작품이다.
돈으로 무엇이든 사고 팔 수 있고, 빈익빈 부익부가 반복되는.

어쩌면 '공부', '성적', 혹은 'IQ'로 대비될지도 모르는
'마법 에너지, 역장'.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다는 대리시험.
권력이나 돈이 있는 자는 그걸로 사람을 사서 더 큰 권력을 탐하고, 배경이 안 좋지만 머리가 뛰어난 이들은 대리 시험을 봐주면서 살아남는다. 현대에 들어서는 대기업의 부속품으로 톱니바퀴 인생을 살아가겠지.

그렇게 영재들의 노동력으로 재벌들은 더욱 더 부를 공고히한다. 이 굴레는 끊으려고 해도 쉽사리 끊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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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지현이었다.
좋은 조건, 좋은 상황에 놓여있으나 아버지의 꼭두각시처럼 살아가고 있는 지현.
안타까운 마리오네트의 모습에 자신의 못다 한 꿈을 자식에게 강요하는 부모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몇 년 전 학원 강사로 일하는 분이 들려준,
검사 자녀, 의사 자녀들이 그에 맞는 학과를 가기 위해 3수, 5수를 해가며 대학에 가기 위해 삶을 갈아 넣는다는 이야기도.

"서지현에게 이상을 심어준 자가 그 이상을 배반했으니, 그녀는 무엇에 발 딛고 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서지현의 신념은 그녀 스스로 조각한 것이 아니었으며, 오롯이 한 사람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 _p.190

그렇게 이들을 갈아 넣은 이 천국은 누구를 위한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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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심너울 작가님의 작품, 『갈아 만든 천국』.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면서도 굉장히 현실적이고, 또한 그만큼 촘촘하고 섬세한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SF 소설을 굉장히 좋아하기에,
작품의 메시지에 씁쓸하면서도 심너울이라는 새로운 SF 작가를 알게 되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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