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재원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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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종교와 믿음은 항상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대체 왜 믿는 거지?
저렇게까지 믿게 만드는 이유는 뭘까?

많은 생각을 지나온 지금은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믿음으로써 바꾸고 싶은 게, 바뀌었으면 하는 게 있었고, 그 마음이 간절할수록 더욱 깊게 빠져든다는 것.

"나랑 사이비 종교 시작해 보지 않을래?"

내가 무라타 사야카의『신앙』이라는 책을 기대하고 기다릴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첫 문장.
이 첫 문장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
『신앙』은 무라타 사야카의 SF 단편 소설집으로,
여섯 편의 소설과 두 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이야기를 그저 쭉 읽다 보면 어떤 작품이 소설이고 에세이인지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는데,
목차에(두 번째 사진) 동그라미 안에 적힌 작품은 소설, 네모에 적힌 작품은 에세이다 :)



📎
모든 작품이 강렬했지만 내가 생각에 가장 오래 잠겼던 부분은 두 번째 작품, '생존'의 첫 장이었다.

예상 '소득'에 따라 노년까지의 생존율을 미리 알려주는 시스템을 가진 사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65세까지 생존할 확률이 겨우 '15%'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이유가 '부모의 현재 소득으로는 엘리트 교육을 시킬 수 없고, 엘리트 교육을 받지 못하면 65세까지의 생존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생존율 15%, 다시 말하면 사망 확률 85%.

그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이 나 같았다. 나는 그보다 더 낮은 숫자를 들었으리라.
마음이 심연으로 떨어졌다.



🕯
SF, 디스토피아.
그 색이 다소 옅은 작품들도 있었지만 구석구석 숨은 설정들이 그 세계관을 보여준다.

클론, 우주인, 우주여행, 짐승이 된 인간.
초현실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매우 현실적이었다.

"내 소중한 환상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모조리 때려 부숴줘서 정말로 고마워. 앞으로 나는 마사지 숍에 가도, 네일을 받으러 가도, 호텔에서 식사를 해도 늘 네가 들이민 '현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생을 살게 될 거야. 그게 진짜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거라면 정말 고마워." _p.36 <신앙> 中

"별종이 되어선 안 된다. 나는 주변 아이들을 흉내 내서 최대한 평범한 아이가 되어 눈에 띄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학교는 무시무시한 장소였다. 별종은 즉시 발각되어 집단적으로 박해를 당하고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누구보다 평범한 지구인이 되고 싶었다." _p.102 <그들이 혹성에 돌아가는 일> 中



📐
삼각형이 마음속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린다.
삼각형이 지나간 자리에는 흔적이 남는다.
어쩌면 살이 찢어지고, 피가 흐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쿡쿡 찔린 곳은 언젠가 아물 것이고,
내성이 생겨 더 단단한 내가 될 것이다.

『신앙』은 그런 책이다.

옮긴이의 말을 옮긴다.
"이 작품집이, 모두에게 다양하고 가치 있는 질문으로 남길 바란다." _p.176 <옮긴이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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