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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속말을 하는 곳
윤병무 지음, 이철형 그림 / 국수 / 2018년 11월
평점 :

눈속말을 아시나요??
책 표지 속, 눈내리는날 방문 앞처럼 '눈 속에서의 말"을 의미하는 걸까?
새로운 어휘에 '눈'이 저절로 커진다.
“눈으로 하는 말… 눈속말.
사람과는 눈빛으로 주고받는 말.
나무나 바위나 달에게는 건네기만 하는 말.
그럼에도 때때로 건네고 싶은 담백하거나 간절한 말”
‘눈속말’이라는 다소 생소하고 낯선 낱말이 있다.
누군가의 귀에 소곤대는 말이 귓속말이면,
자기 마음을 누군가와 눈으로 주고받는 말은 눈속말이란다.
눈속말은 눈으로 하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언어’가 아니므로,
상대의 눈빛과 표정만으로 마음을 읽어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일상생활 속에서 수 없이 만나는 공간을 배경으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장소>라는 단순한 관계에서 비롯해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통해 삶을 성찰해보는 방식을 택했다.
여기에서 관가하면 안 되는 포인트가 있다.
흔히, 그 어떤 공간이나 장소는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표면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이면에 숨겨진 작가의 의도를 품을 수 있는 열린 눈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들려준 TV 에피소드에 빗대어 해준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책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다소 진지하게 내려앉게 도와주기 충분하다.
더불어, 책 속 곳곳에는 내용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삽화가 에피소드마다 한 편씩 그려져 있다. 마치 원래 같이 있던 이야기의 연속처럼 그림이 이야기 같고 글이 그림 같다.
아마 같은 톤의 색감을 이용한 연필화라서 그럴까? 잔잔한 물결 같은 애수어린 삽화에 한 표 던지게 된다.
그래서 일까?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숨소리까지 고르게 해주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겉모습은 화려하지 않지만 온몸을 감싸는 패딩처럼 따스함이 고루고루 퍼져나가 세상을 보는 눈빛이 여유로움을 더하게 한다.
이 책은 작가가 지난해 봄부터 가을까지 인터넷 과학 매거진 <동아사이언스>에 연재되었던 산문을 고치고 다듬고 더해서 새로이 묶어 발간했단다.
서른 편의 주옥같은 에세이들이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
그 시간들과 그 공간들의 이야기에 마음을 보태어 엮고 보다듬었을 과정이 짐작되어 감사와 존경을 보내드리고 싶다.



시인인 작가가 주목한 ‘곳’들은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바빠서 눈여겨보지 못한 희로애락의 현장이다.
그곳은 절망과 희망이 함께 사는 점집이기도 하고,
두 운명의 향방이 갈리는 우편함이기도 하고,
얼룩말이 누워 불행을 경고하는 횡단보도이기도 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지만 꼭 필요한 집골목이기도 하고,
‘덤’이라는 마음의 저울이 있는 전통시장이기도 하고,
독립된 마음이 자라는 다락방이기도 하고,
단돈 몇 십 원으로 언어 예절을 배웠던 공중전화부스이기도 하고,
거울 속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는 산책공원이기도 하고,
웃는 법을 가르쳐 주는 옥상이기도 하다.
그 다양하지만 새로울 것 없이 항상 주변에 있는 서른 곳의 현지로
작가의 마음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독자들의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희미한 추억이 소환되어
자연스럽게 눈 속 깊은 곳에서부터 말을 걸어 올 것이다.
특히, 공감가고 눈이 많이 머물렀던 책속 ‘곳’을 소개해 본다.
같은 어머니의 배속에서 같은 시간에 태어난 쌍둥이의 사주는 같아도 쌍둥이 개인의 인생사는 다르게 전개됩니다. 이러한 지적에 혹자는, 사람은 살아가면서 사회적 관계맺음이 제각각이어서 다양한 관계와 영향을 주고받기에 쌍둥이이더라도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반박하겠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사주는 못 고쳐도 팔자는 고칠 수 있다”라는 옛말이 생겼을지 모르겠습니다. 최고의 사주팔자는 평범하고 무탈한 생활에 있지 않을까요? (절망과 희망이 사는 곳, 점집)

영화는 소설보다는 시에 가깝습니다. 영화는 줄거리를 보는 게 아니라 장면을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화관을 나와서도 여러 날 동안 머릿속에서 맴도는 감흥은 인상적인 장면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관람자가 미처 몰랐던 삶이 뒤편을 그 장면에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영화는 관람자가 다 살아볼 수 없는 다양한 인생의 스펙ㅌ럼을 보여줍니다. 그 재미에 우리는 영화를 보는 터입니다 (하고많은 인연이 두 시간마다 돌아가며 사는 곳, 영화관).

천년의 세월동안 그 철제여래좌상 앞에서 간절한 마음을 꺼내놓은 중생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저절로, 난생처음 저는 불상을 향해 절을 했습니다.
얼핏 보기엔 거기가 거기 같아 보이는 고찰에 가서 찬찬히 둘러보면, 곳곳마다 다른 시대와 색다른 자연환경에서 이룬 역사 문화가 조금씩 다르기에 다양한 세부가 보입니다. 문틀마저 쇠못 하나 쓰지 않고 지은 전북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에 다흔 손길의 촉감은 누군가의 삐걱거리는 마음을 세워줍니다.
(신앙 없이도 눈속말을 하는 곳, 고찰)

넉넉지 않는 불고기는 자식들에게 양보하시고 정작 자신은 막소주 한잔을 입안에 털어 넣어시고는 양파나 당근에 젓가락을 가져가셨던 아버지께서도 작고하시고 당신의 부모묘소에 바로 아래에 묻히신 지 벌써 14년이 되었습니다....... 선친 묘소에 가면 보랏빛 제비꽃에 내려앉은 봄볕이, 그런 제 머리도 가만히 쓰다듬어줍니다. 훗날, 그곳은 제가 마지막으로 이사한 집이 될 것입니다. (누구나 마지막으로 이사한 곳. 묘소)
우리 집골목은 우리 가족에게는 그저 집 안팎으로 드나드는 고즈넉한 통행로였지만 어린 제게는 놀이기구 없는 놀이터였습니다. 훗날에는 선친께서 그곳에 팔각형 보도블록을 깔아 궂은 날에도 질척이지 않았지만, 이전에는 흙바닥이었기에 맨땅에서 하는 놀이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아서 제가 끼어 있는 한 우리 집골목은 동네 아이들의 아지트였습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지만 꼭 필요한 곳, 집골목)
고향보다 더 그리운 곳도 있을까요? 있다면 그곳은 ‘외가’가 아닐까요? 우리가 출생하기까지의 고향은 어머니의 배속이었고 갓난아이였을 땐 그 품속이었으니 우리의 첫 고향은 어머니일 것이고, 어머니의 고향은 ‘외가’이니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향의 뿌리인 ‘외가’는 그리움의 진원지일 텝니다. (고향보다 더 그리운 곳, 외가)

아마도 지금 40대 중후반 이상의 남성이라면 자신의 유년기에 이발소마다 벽면에 걸려있던 액자사진 풍경을 기억할 겁니다. 그 액자는 대개는 세 개쯤이었는데, 그중 하나는 간혹 시내버스 운전석 위에도 종종 걸려 있었습니다. 그것은 액자 속 사진 하단에 손 글씨로 “오늘도 무사히”하고 씌어 있던 레이놀즈의 그림 <어린 사무엘>이었습니다. 이발소에 걸려있던 또 다른 액자는 열 마리쯤 되는 새끼돼지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던 어미 가족 그림이었습니다. 그렇게 ‘평온’과 ‘풍요’를 소망하는 이미지는 그 때나 지금이나 소박한 서민가장들의 꿈입니다. (가장 편안한 15분이 있는 곳, 미용실과 이발소)
보편적으로 장모는 왜 사위일까요? 사위를 백년지객이라고 일컫는 이유를 먼저 살펴야 할 듯합니다. 사위는 왜 백년 동안이나 손님일까요? 전통사회에서는 딸은 혼인을 하면 출가외인이 되었기 때문이겠습니다. 내가 낳아 기른 사랑하는 딸이 어느 날 신부가 되어 출가해 남의 집사람이 되었으니 보고 싶어도 쉽게는 만날 수 없는 관계가 되었는데, 그 딸이 어느 날 사위와 함께 친정에 왔으니 얼마나 기쁘고 반가웠을까요? 그런 애틋한 딸과 동행한 사위는 또 얼마나 대견하고 예뻐 보였을까요? (백 년 동안 손님을 맞이해 주는 곳, 처가)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문화유산이라는 ‘책’은 인류의 지성과 감성을 진화시켜왔습니다. 그 주인공은 저술가와 독자이지만,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경구의 가교 역할은, 다시 말해서 ‘사람과 책’, ‘책과 사람’사이에는 출판사와 서점이 존재합니다.........
그나마 다행한 일은 일부 지역에서 ‘독립’ 서점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점+찻집’도 있고, 치맥을 패러디해 ‘책맥’하는 ‘서점+맥줏집’도 생겨나 ‘혼술집’에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수천년의 이야기의 모여 있는 곳, 서점)

그런가하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반가운 지인을 빈소에서 우연히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 날은 마치 고인이 떠나며 두 사람의 친분을 다시 단단히 묶어 두기라도 한 듯이 마음이 더욱 살가워져 명함을 주고받거나 바뀐 전화번호를 저장하고는 밤늦도록 마주 앉아 빈 술잔을 채우며 상가가 잔칫집인양 이야기꽃을 피우게 됩니다.............그래서 흔히 경사에는 불참하더라도 애사는 꼭 챙겨야한다는 지당한 말이 있는 겁니다. 기쁜 일은 함께하는 이가 많지 않아도 그 자체로 기쁘지만, 슬픈 일은 위로하는 이가 많을수록 슬픔을 견뎌내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슬픔의 무게를 함께 들어주는 곳, 빈소)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침구에서 벗어나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그곳은 자녀가 잠들어 있는 옆방이기도 하겠고, 밤새 잘 주무셨는지 궁금한 부모님의 방이기도 하겠고, 아침 공기로 집 안 환기부터 하려고 다가선 창문이기도 하겠습니다만, 다수의 분들은 몸의 요구를 따라 곧장 화장실로 향하지 않을까요? 부족한 잠을 쫓으며 하루의 자세를 가다듬기 위해 찬물로 세면도 하고 용변도 해결하는 곳이 그곳일 테니까요.........이렇듯 누군가의 은밀한 게시판이 되기도 하고, 그 게시판은 인터넷 시대 이전부터 있어 온 ‘댓글’이 시작된 곳이기도 한 공중화장실은 어디든 밀폐된 채 이용자의 공덕행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소입니다. 화장실 안에 들어앉아 있으면 ‘혼자’만의 공간, 즉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오롯이 나 혼자 있는 유일한 곳,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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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인생의 여정 에서 다양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책을 쓰거나 책을 일이라고 한다.
이 말처럼 <눈속말을 하는 곳>은 이전 세대를 살아보지 못한 독자일지라도 쉽게 읽히고 자연스럽게 공감되는 글과 그림으로 인해 마치 그 인생을 살아본 것처럼 생각의 확장을 가져온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지극히 담백하게 쓰여진 ‘나레이션’ 같은 글체이다.
작가는 마치 독자를 앞에 두고 잔잔히 읽어가듯 이야기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는 마치,
세상만사가 복잡 미묘할 것 같지만
사실 살아본 일상은 모두에게 그렇듯 신기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물 흐르듯 평범한 일상이 제일 행복하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 일상에서 삶의 질을 확장하는 일은 이렇듯 좋은 책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특히, 하나의 에피소드가 마무리 될 때마다 ‘덧말’을 추가해서
작가의 개인적인, 소소하지만 진한 감동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았으며
그 에피소드 주제에 걸맞는 다양한 사실을 언급해주면서
자세한 의미도 풀이해주는 친절함을 쏟아놓았다.
개인적으로 제일 먼저 눈이 가고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나의 <눈속말을 하는 곳>은 어디일까??
예전 어릴 적 추억이 깃든 곳들....
매일매일 뛰고 달리느라 주변조차 제대로 둘러보지 못하고 오고가던 지하철역이기도 했고,
어느 때는 친구가 어느 때는 연인이 보낸 편지가 도착하는 작은 상자, 우편함 앞이 되기도 했고,
해질녘이 다 되어서야 돌아오는 가로등 환한 집골목 어귀이기도 했고,
기다리면 하염없고 배웅할 때는 바로바로 도착해버리는 엘리베이터 안이기도 했고,
어떨 때는 시원한 냉수가 어떨 때는 따뜻한 온수가 반가운 사워기 아래이기도 했고,
중년이 된 지금의 <눈속말을 하는 곳>은 어디일까?
많은 빨래를 탈탈 털어 널고는 뻘래 사이사이 보이는 푸른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베란다이기도 하고,
밀린 설거지하며 흥겨운 최신가요에 귀가 쏠리는 주방 개수대이기도 하고,
남편, 아이 모두 나간 뒤 홀로 커피내리며 ‘폼’잡고 앉아 여유부리는 식탁이기도 하고,
봄이면 씨앗뿌리고 여름이면 잡초 뽑고 가을이면 고구마캐는 재미가 있는 텃밭이기도 하고.....
이 책을 핑계 삼아
찾아보고 생각해보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이렇게 <눈속말을 하는 곳> 책 안에서는 여러 장소에서의 에피소드와 추억 그리고 이야기하는 무언가를 다시금 새롭게 생각하게 하는 소중한 책이다.
세상 곳곳, 눈속말을 꺼내는 작가의 낮은 목소리가 모여서 만들어진
제목은 낯설지만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동행하게 되는 소중한 경험을 주는 책.
일상생활에서 시간적, 공간적 소재를 찾아 쓴 이야기라서 부담 없이 더욱 정감가고
저절로 공감의 추억에 빠져들게 해서 미소를 불러오는 책.
양파의 껍질처럼 보면 볼수록 새로운 생각과 추억이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책,
그러기에 손길이 자꾸만 머무는 책이다

'출판사 국수'
세상에~~마무리까지 재치가 넘치는 책이다.
점 점 추워지는 날씨, 곁으로 성큼 다가선 겨울.
<눈속말을 하는 곳>을 펼쳐놓고
따뜻한 모과차 한잔과 함께 한다면
다가오는 추위도 향기로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