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난관 던전에서 10만 년 수행한 결과, 세계 최강 3 - ~최약 무능의 하극상~, S Novel+
리키스이 지음, 루나 리아 그림, 이서연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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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본격적인 왕위 쟁탈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서자인지 내놓은 자식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밖으로만 떠돌던 제1왕녀(3권이나 되었는데도 메인 히로인지는 애매함)도 왕의 부름을 받고 왕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주인공도요. 왕녀가 억지로 그를 로열 가드로 삼아 버렸거든요. 그녀에게 있어서 10만 년이나 던전에서 홀로 지내며 인간의 궤를 벗어나버린 주인공을 붙잡은 건 행운 그 자체였지만, 주인공은 심드렁. 10만 살하고 15살이나 먹었더니 주인공은 애늙은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당장 할 일 있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있으면 유쾌한 동료들(던전에서 주인공 부하가 된 악신들)이 무료한 주인공(위대한 분)을 달래준답시고 뭔 일을 저지를지 몰라서(세계 멸망급을 불러내기도 함) 열심히 헤엄치지 않으면 가라앉는 오리처럼 무슨 일이든 하긴 해야만 했죠. 그래서 유쾌한 동료들에게 적절한 일거리를 제공할 겸 왕녀의 왕위 계승권에 걸린 시련을 도와주려 하는데, 역시나 이런류의 이야기에서 페널티를 빼놓으면 섭섭하지라는 클리셰가 발동되어 실현 불가능한 밋션이 왕녀에게 내려집니다.

그렇담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왕도에 도착해 보니 왕녀의 오빠(남동생인가), 여동생은 적대적이고, 가신들은 주인공의 무능 기프트에 꽂혀 비아냥대고, 왕위를 이어 받으려면 영민 하나 없는 시골 깡촌을 키우라는데 제정신인지 묻고 싶을 정도인 상황. 사실 유쾌한 동료들을 이용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나라를 세울 정도로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긴 한데, 주인공은 밥을 떠먹여줄 생각이 애초에 없다는 것이고, 흥미로운 점으로 작가는 왕녀가 어떤 의욕을 가졌는지 언급을 안 한다는 것. 왕도로 향하다 길 중앙에 기억을 잃고 엎어져 자고 있던 마왕녀(魔王女, 표지)를 주워 메인으로 내세워 뭔가 하려나 했는데 그냥 가사도우미로 써먹네요. 아무튼 주인공 입장에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상황입니다. 물론 귀족들은 왕녀를 뭣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적대 중이니 도와줄리 없고, 그런 상황에서 결국 주인공이 나서서 사전 정지 작업(거슬리는 놈들 쓱싹)을 할 수밖에 없게 되죠. 마침 귀족들은 하나같이 인간 우월주의를 내세워 악당 짓을 해대는 중이라 주인공에겐 명분이 생겼고요. 길에서 주운 마왕녀와 일전에 노예로 팔려가던 수인 소녀를 이용해 뭔가를 하려 합니다.

사전 정지 작업이라고 해봐야, 그냥 마음에 안 드는 귀족들이나 인간들은 다 없애버리면 됩니다. 주인공을 깔보고 덤볐던 양아치들은 썰려 나가고, 왕녀를 적대했던 귀족들은 주제도 모르고 설쳤다가 비명횡사하는 건 약속된 길이죠. 다만 주인공이 나서면 재미가 없으니 그림자 무사를 내세워 대타를 뛰게 하는데 이거 뭔 의미가 있나 싶네요. 어차피 마무리는 주인공이 다 하는데. 그래서 작가는 단순히 권선징악적인 재미보다 여러 세력들을 투입해 설정의 질을 높이려 합니다. 신(神)의 세력인 악(惡)군과 천(天)군이 대립하고, 그 하부 조직들은 인간계에 영향을 끼치고 인간들을 조종하면서 분쟁을 가속화하죠. 신계에 속한 자들은 인간계에 현현하기 위해 인간과 마족들을 아무렇지 않게 제물로 삼고, 인간들은 수인족들을 탄압하여 멸종의 기로에 서게 합니다. 갈 곳을 잃어 여러 종족이 한데 모여 사는 도시를 위협하는 왕국과 제국의 귀족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이게도 악한 무리들을 까부셔야 될 용사 일행이 그 악의 편이라는 것. 선이어야될 인간이 악이 되고, 악이어야 할 악이 인간다운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약자에겐 지옥 같은 세계에서 작가는 어느새 주인공을 나서게 하는 것보다 약자들로 하여금 최대한 발버둥 치게 해서 스스로 자유를 쟁취하게 하는 모습들을 그립니다. 처음엔 왕녀가 받은 시련을 공평하게 하기 위해서 시작된 사전 정지 작업은 주인공에게 유도된 귀족들과 신계의 무언가들이 서로 맞붙어서 지옥도를 펼쳐지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주인공이 스스로 자유를 쟁취하게 하려 했던 약자들은 유쾌한 동료들에 의해 정신과 시간의 방에 끌려가 마치 흔직세의 최약 토끼족들처럼 그들도 주인공 광신도가 되어 가는 과정은 한마디로 소름 돋게 만듭니다. 그 결과 약자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게 되었죠. 덩달아 결과만 좋으면 OK라고 약자들이 주인공 광신도가 되면서 왕녀가 받은 시련도 덩달아 해결되는, 원래 이러려고 처음부터 주인공이 낚시질을 해왔긴 한데 과정이 좋은 의미로 너무 터무니가 없죠. 악군중 고위층 하나가 지상으로 현현해서 인간들을 몰살하려 했는데 하필 현현한 동네가 주인공이 있는 곳이었고(그렇게 유도되었지만), 세계가 멸망하는 악신도 주인공 앞에서는 그저 갓난애나 다름없게 되는 장면들이 재미있습니다.

사실 어느 세상이고 간에 약한 자들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힘의 논리에 따라 쓸려 나갈 뿐이라는 걸 역설합니다. 아무리 세력을 키우고 세계에 존재를 인정을 받아도, 악한 자들은 늘 괴롭히는 상대를 찾는 것처럼 약한 자들을 괴롭힐 구실을 찾아냅니다. 왕녀는 이런 약자들을 보호하려 왕이 되고자 하지만 작가가 별로 신경을 안 써주네요. 주인공은 약자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습니다. 스스로 무언갈하려는 자에게만 거들어줄 뿐이죠. 처음엔 왕녀가 받은 시련을 어떻게 해결할까에서 시작된 약자 구하기는 그들 스스로 쟁취하게 하는 흐름이 됩니다. 그런 약자들을 이용해 왕녀의 앞을 가로막거나 부조리한 것들을 쓸어 버리죠. 요컨대 손 안 대고 코 풀기를 합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유쾌한 동료들이 기합을 너무 들이는 바람에 약자들이 광신도로 변신한다는 것이고, 그럴수록 주인공의 가치는 알게 모르게 더욱 올라가서 무능이라고 깔봤던 귀족들이 자신들 스스로 주인공 역린을 건드린 것도 모른 채 스카우트하려 눈독을 들이는 모습들에서는 한편의 개그 같은 장면을 보는 듯했습니다. 비슷한 내용을 한 줄 더 쓴 이유는 그만큼 임팩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맺으며: 인간들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나를 참으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린 소녀들을 마물의 먹이로 던진다거나, 노예로 삼는다거나, 인간과 신(神) 우월주의 등. 물론 이런 장면들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선의의 법 집행에 대한 명분에 지나지 않지만, 이번 3권에서 흥미로운 건 주인공이 직접 처단하는 것보다 제3자를 이용해 그들 스스로 강해지게끔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려는 영웅을 탄생 시키려 하고, 정작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해야 할 용사 일행은 악의 편에 서서 인간들을 탄압하는 설정들은 꽤나 신선하게 다가오죠. 다만 신계까지 거론하며 악군과 천군과 그 산하 조직 등 등장인물들을 많아지다 보니 설정이 난잡해지는 단점도 있습니다. 이번 3권 기준으로 설정은 좋으나 그걸 다 소화 시킬 만큼 작가의 필력은 빈말로도 좋다 할 수 없었군요. 세세하게 표현하려다 보니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뒤로 밀리거나 언급조차 되지 않습니다. 가령 주인공이 왕도로 가다가 길에서 주운 마왕녀는 끝에 가서야 겨우 활약할 뿐이고, 왕녀의 시련 해결에 초석이 된 수인 소녀는 어느새 잊혀져버립니다. 왕녀의 시련이 중심이 되어야 할 내용이 초반에만 잠깐 나오고 이것도 어느새 잊히고 말죠. 아무튼 오타가 너무 심합니다. 번역 문제인지 문장 표현력이 두루뭉술해서 왕창 편집된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야기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가령 마왕녀가 납치되었을 때 범인들에 의해 뭔가 당한 거 같은데 그 부분이 싹둑 잘린 느낌이 들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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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빨로 연명합니다! 8 - S Novel+
FUNA 지음, 스키마 그림, 박춘상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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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팔려 갔던 고아들을 탈환 해오고, 범죄자들을 잡아다 넘기고, 영주와 안면을 트는 등 바쁜 나날을 보냅니다. 70여 년 전, 자신의 약점을 파고들어온 자객(누군지 까먹음)에 의해 죽을 위기에 빠졌던 여주는 아이템 박스로 피신해 간신히 살아남았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니 지인들은 수명이 다해 사망했거나 인생 막바지를 살아가는 자들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인생 참 덧없다는 건 이걸 두고 하는 말일까요. 다시 길을 떠나 당도한 어느 해변 마을에서 집을 구해 살려고 했더니, 느닷없이 고아 두 명이 찾아오고 그들과 부대끼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죠. 픽션의 이야기지만, 가끔은 생각해 봅니다. 지구에 알던 사람들을 놔두고 왔고, 이세계에서 알던 사람들은 이제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저 앞으로 나아가버린 상황에서 나라면, 외로움에 과연 미치지 않고 이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까. 하지만 본 작품은 어디까지나 개그물이니까요. 낙엽만 떨어져도 눈물짓게 만드는 감성이 충만한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 하물며 감정을 자극하는 이야기는 눈곱만큼도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인생 시즌 2로 접어들었습니다. 지구에서 단짝이었던 레이코, 쿄코와 무사히 합류했습니다. 이들도 여신으로부터 치트를 받았습니다. 받았지만 아직은 치트를 행사할 만큼 이렇다 할 사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여주가 구입한 집에서 머물며 장기적인 계획을 잡아가죠.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돈을 많이 벌어서 노후를 편하게 보내자는 것. 치트를 이용하면 금방 해결되지만, 이게 잘못되었다는 걸 여주 인생 시즌 1에서 배웠습니다. 좀 각색해서 언급해 보자면, 맹목적으로 여주를 모시는 사이비 종교가 탄생해서 대륙이 요동쳤었죠. 아무튼 여주가 구입한 집이 옛 고아원이었는데, 마침 고아원이 망하며 팔려 갔다가 되돌아온 고아 둘을 고용하고, 다른 곳에서 여주가 직접(아마도? 기억이 가물가물) 구출해온 3명을 더 고용해서 건어물과 기타 잡화를 만들어 영주라든지 상회에 납품하면서 돈과 명성을 쌓아 갑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런 생활과 애들을 돌볼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여주 3인방은 애들에게 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잡는 법을 알려주며 장래 독립 해서도 살아갈 수 있게끔 철저하게 주입식 교육을 해대죠.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건, 개그물을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아이들의 심리 묘사를 진지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악의적으로 팔려가 착취 당하고, 그중 둘은 탈출해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들이 자란 집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다시 버림받지 않으려 애쓸 수밖에 없고, 그런 장면은 여주 인생 시즌 1에서는 못 보던 애잔함이 묻어나죠. 물론 작가는 이것도 개그로 승화 시켜놓긴 했습니다만. 인생은 실전이고 한 번밖에 없습니다. 비록 피붙이는 아니지만, 자신이 거뒀고 책임을 지고 있으니 아이들의 미래를 보장해야 되는 건 어른(전생하며 15세 외모가 되었지만 3인방 평균 나이 90대)으로서 의무죠. 그리고 영세 업체로 위장하고 있으니 귀족이나 기득권들이 쳐들어와 M&A를 시도(이미 전례가 있음) 하면 속절없이 흡수될 수밖에 없는 이세계 위계질서 관계상 그걸 두고 볼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사실 대륙 자체를 지워 버릴 수 있는 쿄코의 전함(지금은 정지 위성 궤도 올려둠) 치트도 있고, 여주의 여신이 내리는 신벌도 있지만 그랬다간 여주 인생 시즌 1 반복인지라 이번엔 순한 맛으로 아이들의 뒷배를 만들기로 합니다.

여주 인생 시즌 1을 겪으면서 치트를 최대한 자중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용서 못 하는 게 있죠. 애들을 괴롭히는 자, 적대하는 자, 이익을 침해하는 자. 고아원 애들을 악의적으로 팔아넘긴 자와 구입해 착취한 자들은 물리적으로 소멸했습니다(약간 각색). 여주와 아이들만 있다며 얕보고 삥 뜯으러 온 자들은 여주에게 혼쭐이 났습니다. 그런 그녀의 별명은 '악마'. 속옷 한 장 남기지 않고 탈탈 털어 버리고, 사회적으로 매장 시켜 버리죠. 그 과정이 멘탈붕괴급이라 여주에게 당한 사람들은 재가동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술도 먹을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니 애들처럼 감정적으로 대갚음해 주는 건 그렇고 해서, 사회 인지도를 올려 스스로 뒷배가 되겠다며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는 등 나이 90대 되어서 그녀들은 드디어 어른이 되었죠. 하지만 작가는 이 과정도 역시나 개그로 풀어 놓습니다. 그리고 지금, 아이들이 만든 제품을 제값에 사주고 유통해 주던 상회에서 주인이 바뀌어 이쪽을 무시하고 자기들 이익대로 움직이려 하려는 자가 나타났습니다. 이에 여주의 한마디: '뭉개 버릴 거야'. 여주의 심기를 건드린 자는 물리적으로 소멸합니다.

맺으며: 판타지의 어두운 면, 가령 고아들의 비참한 삶을 보여 주면서도 불쌍한 삶은 살아가지 않는다는 듯한 모습을 개그로 절묘하게 풀어놓는 작가의 재주가 좋습니다. 그리고 불쌍하다고 동정하지 말고, 그들에게 동정이라는 슬픔을 느끼게 하지 말라는 듯이. 그래서 작중 여주 3인방은 자신들이 맡은 고아 5명 말고도 여러 일을 하며 다른 고아들을 고용하고, 그들에게 밥을 무상으로 제공하기 보다 그들에게 일거리를 주어 스스로 일어서게끔 보살피는 장면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죠. 그러기 위해 권력자들을 포섭하고, 판로를 개척하고, 상회들과 유대를 쌓고, 그들에게 이익을 주어 뒷배로 삼아 가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눈뜨고 코 베인다는 현실 속담(?)을 현실미 있게 표현하려는지 이세계에는 애들을 속여먹는 사기꾼 천지고 그런 사기꾼에 속지 말자는 공익 캠페인 같은 것도 섞여 있는데, 이번 8권에서는 여주(레이코)가 말빨로 해결해버리는 게 재미있습니다. 아무튼 라이트 노벨이라는 특유의 개그와 나쁜 놈들은 혼내준다는 클리셰 범벅으로 되어 있지만, 그걸 작가 특유의 개그로 승화 시켜놓고 있어서 그리 지루하거나 저렴하다는 느낌을 들지 않게 하는 게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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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테가미 쿄코의 설계도 - 카니발 플러스
니시오 이신 지음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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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씨리즈 아홉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조금 서글픕니다. 책임이라는 무게를 다루고 있죠. 경쟁에서 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요. 뭐 질 수도 있고, 이길 때도 있으니 너무 염려치 말라고 다정한 말을 건네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그 책임을 지고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다면... 관급 공사에 입찰했다가 떨어진 샐러리맨이 있습니다. 회사는 그를 해고했죠. 그 샐러리맨은 다시 일어나는 것보다 술독에 빠져 지내는 걸 선택합니다. 아내와 이혼하고 어린 딸을 돌보고 있지만 술독에 빠져 사는 사람이 딸을 제대로 돌본다는 건... 그런 아빠를 어릴 적부터 봐온 딸은 커서 무엇이 되고 싶었던 걸까가 이번 에피소드의 핵심 내용입니다. 그리고 망각의 탐정 쿄코 씨는 8권에서 보디가드로 고용한 거한은 엊다 내다 버렸는지 혼자 쫄래쫄래 돌아다니다 불에 타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주차 빌딩이 폭발했습니다. 범인은 범행 성명을 영상으로 제작해 인터넷에 올리는 대담함을 보이죠. 그리고 다음 타깃은 미술관, 타임 리밋은 밤 8시. 범인은 '누구든 날 막아 줘'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깁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용의자로 붙잡힌 건 '야쿠스케'라 불리는 거한, 그는 망각 탐정 쿄코 씨를 불러 달라고 소리칩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누명 체질로 고생하는 야쿠스케의 시각으로 진행됩니다. 가는 곳마다 오해를 사서 누명 뒤집어쓰기를 밥 먹듯이 하는 그는 일찌감치 붙잡혀 주차 빌딩 폭파범으로 기정사실이 되어 가고 있었죠. 어찌어찌 쿄코 씨 덕분에 누명은 벗었지만 그 즉시 집으로 갔으면 좋았을 것을 쿄코 씨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다 같이 불에 타죽을 위기에 빠지면서 둘이 천생연분 기질을 보여준다는, 이번 에피소드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줍니다.

미술관에 폭탄이 설치되었으니 찾아서 해체는 해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평행선 같은 시간이 흘러갑니다. 그래도 명탐정 아니랄까 봐 점차 범인에 대한 단서를 찾아가지만 이번엔 어찌 된 일인지 쿄코 씨는 헛다리를 짚어 가죠. 그러다 되레 누명까지 쓰게 되고, 갇혀서 죽을 위기에 빠지는 등 쿄코 씨 인생 최대 위기에 빠져 갑니다. 여기서 빛을 보는 게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누명 체질 야쿠스케의 활약으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아갑니다. 그 보답인지 남들에겐 보여주지 않는 그녀의 뱃살을 봤으니 지금 죽어도 여한은 없겠죠. 아, 오해할까 봐 언급하자면, 망각 탐정은 중요한 일은 팔이나 몸 어딘가에 메모해두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 이름도 잊어버리거든요. 그 메모가 결정적이 되어 범인이 특정됩니다.

샐러리맨의 딸은 아빠가 해온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엄마와는 다르게 몰락하여 알코올 중독자가 된 아빠를 버리지 않고 20년 넘게 책임져 왔을 정도로요. 그래서 딸은 마지막으로 비교해 보고 싶었습니다. 아빠가 설계한 주차 빌딩, 그리고 경쟁이라지만 낚아채간 상대방이 설계한 미술관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튼튼한가. 그리고 이 일에 하루 만에 사건을 해결한다는 강적 쿄코 씨를 누명 씌워가며 이용할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를 하죠. 하지만 쿄코 씨는 여기서 하나의 의문점이 생깁니다. 범인은 20여 년간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 와 이러는가. 아빠의 일을 빼앗아간 상대방에 대한 복수라면 언제든지 했어도 되었을 텐데 왜 지금일까(이 시점에서 범인 특정됨). '누구든 날 막아줘'의 의미는 사실 폭탄 테러를 막아 달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수록 더욱 서글픈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죠.

맺으며: 위에서 언급한 사연이 핵심 스포일러이자 범인의 행동의 이유라서 밝히지 못하는 게 안타깝군요. 범인도 샐러리맨의 딸이라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한 것도 사실 딸이 지금 어떤 생황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하면 도서 초반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지라... 이걸 피하다 보니 리뷰가 재미 없어졌군요. 아무튼 망각 탐정의 장점으로 범인에게 굴욕을 당해도 내일이면 잊어버린다는 것, 그런데 그 장점이 단점이 돼서 범인의 단서를 찾았지만 범인에 의해 강제로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홀랑 다 잊어버린다는 것. 그로 인해 오늘 하루 종일 뺑뺑이 쳤는데 눈앞의 탐정이 처음 뵙겠습니다 빔 공격을 해오니 거한 야쿠스케는 당황. 수전노로서 딱 사례비만큼만 일하려는 쿄코 씨와 그런 그녀를 붙잡기 위해 기꺼이 경찰 오토바이를 내놓는 형사 등 이전 에피소드에서는 거의 없었던 이런 소소한 재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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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이 어둠이 아늑했다 3 - L Books
호시자키 콘 지음, Nio 그림, 박춘상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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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시청률 1위 하면 받는 보상 소생의 보주로 소꿉친구 나나미(히로인1)를 살리려 했던 주인공은 리프레이야(히로인2)를 이용해 던전에 출몰한 마왕을 잡으러 갔었죠. 안 그래도 소꿉친구 살해범으로 낙인찍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듯 시청자들이 몰려 있는 상황에서 그녀를 만나고 그녀와의 알콩달콩한 사랑의 세레나데 덕분에 시청률은 고공 행진을 했습니다. 여기에 쐐기를 박기 위해 던전에 출몰한 마왕을 무찌르러 그녀와 결사행을 치렀으나 사랑에 눈이 먼 리프레이야가 폭주를 해버리고 자폭을 하는 바람에 주인공은 금지된 약물을 이용해 그녀를 살렸죠. 신(神)은 부정을 저지른 그들을 실격 처리했고, 소생의 보주는 하늘 저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런 상황을 만들어 놓고 리프레이야는 이제 성당 기사가 될 수 있는 스킬을 쓸 수 있게 되었다며 고향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약간 필자의 각색이 들어갔음). 이건 뭐 닭 쫓던 개도 아니고, 사실 리프레이야를 이용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죠. 이에 필자가 해줄 수 있는 말, 꼴좋다.

주인공 시점에서는 지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직 모르는 상태입니다. 지구인들이 보내는 메시지를 받을 수는 있지만 이세계에 도착하고 살인자라는 매도의 말을 들은 주인공은 마음을 닫아버리고 메시지를 들여다보는 걸 극도로 꺼리고 있죠. 그래서 소꿉친구를 죽인 진범이 잡혔으니 편히 살라는 여동생을 비롯해 전 세계인들이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도 안 보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시종일관 답답한 진행이죠. 아직도 지구인들은 자신을 살인범으로 매도하고, 억울함을 풀길이 없다며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한 행동을 해댑니다. 거기에 소꿉친구도 살리지 못했으니 주인공이 좀만 더 섬세했다면 아마 자/살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우중충하게 지냅니다. 여친(리프레이아)도 떠나 버렸고, 던전에도 못 들어가고, 그런 자신을 보며 낄낄 웃을 지구인들을 생각하니. 주인공은 남의 시선을 억수로 신경 쓰는 타입으로 사실 지구에서 뭔 소리를 한들 이세계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것도 아닌데, 읽는 내내 답답함이 엄청 몰려옵니다.

그런 주인공에게 자/살을 권장하듯 신(神)은 지구에 있는 지인과 영상 통화할 수 있는 찬스를 부여합니다. 자, 이 통화에서 소꿉친구를 죽인 진범이 잡혔고, 다들 응원하고 있으니 열심히 살라는, 구원받는 장면이 연출될까? 그럴 리 없잖아요. 연결된 사람은 다름 아닌 "엄마", 엄마는 세계 일주 여행 중이었고, 아빠는 카지노에서 여자 끼고 노름 중. 엄마의 말이 압권입니다. 딸(주인공 여동생)이 사준 스포츠카로 해 질 녘 해변을 달리는 건 정말 근사하더라, 너(주인공)가 이세계로 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내 딸이 걸렸다면 생각만으로 소름이지 뭐니. 신(神)은 주인공에게 자/살 마렵지 않냐?라고 속삭입니다. 아들이 살인자로 누명 썼고, 이세계로 가서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데 니가 가서 정말 다행이라는 둥, 아빠는 여자 끼고 노름 중인 상황. 그리고 주인공이 가장 알고 싶었던, 울부짖으며 진범이 체포되었는지 알려 달라는 말은 개무시, 그런 쓰레기 집안을 욕할 사이도 없이 통화 시간 종료는 점점 다가오는데....

15살(아니 17살인가)에 맛보는 인생의 쓴맛은 눈물 맛이더라. 눈물을 반찬으로 해서 밥을 처먹던 주인공 앞에 웬 여자가 찾아옵니다. 리프레이아에 이어 지금부터 주인공에게 있어서 인생의 전환점을 제시해 줄 잔느(히로인3)의 등장은 상황을 극적으로 이끌어 가죠. 그녀는 시청률 레이스에서 1위를 해서 보상으로 받은 "소생의 보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만 있으면 소꿉친구(히로인1)를 되살릴 수가 있죠. 그러나 값으로는 따질 수 없는 물건이고, 그녀가 순순히 내놓을 리도 없습니다. 잔느는 주인공을 죽이러 왔거든요. 그리고 주인공을 만나기 전, 주인공의 여동생에게서 메시지를 받은 상태입니다. 잔느는 주인공에게 시련(사람의 됨됨이?)을 내립니다. 자, 주인공은 잔느에게서 소생의 보주를 받아 소꿉친구를 살릴 수 있을까. 신(神)은 이세계 전이 제2진을 준비합니다. 한 달도 되지 않아 1천 명 중 300명이 사망한 시점에서 다시 300명을 뽑아 이세계로 보내려 하죠. 그런데 제2진에 꿈에도 그리던 사람과 절대 들어가선 안 될 인물도 선정됩니다.

리뷰를 어떻게 써야 되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작중 어느 걸 인용하든 본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스포일러 덩어리로 되어 있디보니 글을 신중하게 써야만 했군요. 이걸 조리 있게 분류하면 글이 길어질 거 같고, 안 쓰자니 뜬금없는 리뷰가 될 거 같고. 그래도 써보자면, 잔느를 만난 주인공은 다시 일어선다는 것입니다. 리프레이야가 겁먹은 아이를 달래듯 포용적인 엄마 같았다면, 잔느는 안개 낀 길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길라잡이를 해주는 아빠 같다는 느낌입니다. 잘못을 저질러도 꾸짖기 보다 다정하게 무엇이 잘못된 일인지 알려주어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해주죠. 잔느는 주인공과 싸워본 후 그가 사람을 죽여본 일이 없다는 걸 간파합니다.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받아주는 그녀의 품에 기대어 어린애처럼 우는 주인공은, 평범한 인간이 이세계에 간다고 해서 무조건 먼치킨을 찍는 건 아니라는 현실적인 모습이 아닐까 했습니다. 자, 지구는 지구, 이세계는 이세계를 명확하게 갈라준 잔느와 동거에 들어가는데...

맺으며: 소꿉친구가 죽어서 화가 나는 것보다, 그 죄를 뒤집어썼다는 것에서 억울하다고만 하니까 여간 피곤하고 불편한 게 아닙니다. 시청자들이 자신을 보고 비웃고 있을 거라는 자격지심은 시종일관 우중충하게 만듭니다. 2권에서도 리프레이아의 폭주를 막지 않아 소생의 보주를 획득할 기회를 스스로 차버릴 때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는데, 3권에 들어서서도 여전히 누명 써서 억울하다고만 하니 고구마 100개는 먹은 듯 답답하기만 합니다. 누명을 썼으니 억울할 만도 하겠죠. 근데 이세계는 지구와 물리적으로 단절되어 있는데 지구인들이 뭐라 하든 뭔 상관? 그보다 메시지 창만 열어 봤다면 욕설 메시지는 초반뿐이고 진범이 잡혔으니 걱정 말라는 응원 메시지가 잔뜩 있는데도 결국 주인공은 쭈구리 인생을 자처하고 스스로 겁쟁이로 전락해서 메시지 창을 안 보는 발암 그 자체가 되어 버리죠. 사실 뭐 반대로 말하면 평범한 사람이 누명을 썼을 때 보여주는 심리 상태를 현실미 있게 표현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건 그렇고, 인간 불신을 참 적나라하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위 리뷰에도 언급했지만 주인공의 쓰레기 부모는 혀를 내두르게 하죠. 소꿉친구의 부모도 자녀를 자신의 소유로만 생각한 나머지 자녀의 의견을 무시한 행동으로 인해 자녀로부터 경멸을 받는 부분이라든지, 그래서 어린이 시각으로 어른들의 세계를 보며 그런 세계에서 어린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은유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어른들의 세계를 벗어나 우리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려는 주인공 쌍둥이 여동생들의 필사적인 몸부림 등은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옵니다(필자가 최고로 치는 부분). 다만 그 몸부림이 너무 어른스러워서 현실미를 떨어트린다는 것이지만요. 쌍둥이 동생들이 가진 지식을 탐내 기업들이나 미국 대통령도 고개 숙이게 만드는 어린 애라니 이건 너무 나간 거 아닌가 싶더라고요(주인공 성격과 더불어 이 작품에서 현실미를 떨어트려 불편하게 만드는 부분). 아무튼 소꿉친구의 부활과 제2진 전이자들에 대해선 4권 리뷰에서 언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도서 뒷편 시놉시스에 나와 있지만, 리뷰를 이렇게 써놨는데 굳이 여기서 밝힐 필요는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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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옥의 장미 공주 1 - Shift Novel
키리사키 스즈메 지음, cinkai 그림, 김보미 옮김 / YNK MEDIA(만화)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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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40대 아저씨, 블랙 기업에 취직했다가 과로사 했습니다. 신(神)이 나타나 이세계에 어떤 왕비가 임신 중인데 뱃속에 있는 아이가 곧 죽을지도 모르니 그 아이로 환생하겠냐고 헙니다. 마법 재능을 부여하고, 후에 "필요에 따라" 가호도 주겠다고 합니다. 신(神)은 이세게에서 사신과 대적 중인데, 같이 싸울 용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생각합니다. 왕비의 아이라면 속된 말로 금수저는 확정이고, 사신과 싸우면 명예를 얻을 것이고, 왕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부와 권력을 손에 넣을 것이니, 이세계에서 눈부신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흙수저 40대 아저씨는 생각했습니다. 에어리어 88의 주인공 '카자마 신'이 이렇게 계약서 사인했다가 용병으로 끌려갔었죠. 주인공은 주변에 큰 나라들의 틈바구니에 끼인 작은 나라의 "왕녀"로 환생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바랐던 금수저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죠. 불길함의 상징이라고 여겨지는 은발 은안으로 태어난 주인공은 엄마와 왕궁에서 쫓겨나 변방에서 숨어지내고 있었습니다.

본 작품은 복수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쫓겨나고, 엄마와 단둘이 어렵게 살아가던 주인공이 마침 10살이 되던 해, 쿠데타로 집권한 왕제(왕의 동생, 주인공에겐 숙부)에 의해 본보기로 처형 당합니다. 뭐 여기까지 보면 으레 있는 정치적 희생양에 지나지 않지만 주인공에게 있어서 문제는 처형 당하기까지의 과정이죠.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의 피를 이었다는 이유로 싸잡혀 죽는 것도 억울한데, 그저 고문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한 달가량 모진 고문을 당했고, 고문을 이기지 못한 엄마는 망가졌죠. 사형에 처해지는 날, 단두대로 향하는 길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돌을 던집니다. 매도를 퍼부어 댑니다. 쿠데타에 성공한 왕제가 정치적 상황과 입지를 다지려면 그저 본보기가 필요했고, 한마디로 주인공과 엄마는 구실 좋은 희생양이었죠. 단두대에서 이슬로 사라지던 그때 주인공은 그제야 자신이 전생했다는 걸 기억해 냅니다. 그런 그의 눈앞에 사신이 나타나죠.

그리고 사신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때가 되면 가호를 내려준다는 신(神)은 가호는커녕 주인공의 마법 재능을 회수하고 그를 외면해버렸다는 것을요. 이세계는 신(神)과 사신이 대립하고, 인간과 마족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신(神)은 마족과 싸울 사람이 필요했지만, 이미 그 마족은 이미 인간들에게 밀려 쭈구리가된지 오래고, 여차할 때 용사로 쓸 스페어로 준비된 주인공은 쓸모 없어졌습니다. 신(神)에게 버림받고, 숙부(왕제)에게 죽임을 당하고, 모진 고문을 당하고, 그런 자신을 역겹다고 한 사람들이 미워지는 건 당연한 것이죠. 그래서 주인공은 사신의 달콤한 말에 기댑니다. 주인공은 최강의 언데드로 태어나죠. 여기까지 읽고 두근거림이 멈추질 않았군요. 근래에 복수물 다운 복수물이 없었던 상황에서 마치 가뭄에 단비 내리듯 이렇게 개연성이 풍부한 복수물의 등장은 흥분을 감추려야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듯, 주인공은 자신을 비웃었던 사람들을 몰살하기 시작하죠.

근데 작가님, 왜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는 건가요? 아니 멋대로 기대한 필자도 잘못이긴 한데, 날뛰다가 왕국 소속 최강 기사 '로렌스'를 뛰어넘지 못해 힘을 키우려 후퇴한 것은 파워 인플레를 지양하려는 의도가 보였긴 한데 말입니다. 근데 80년대 감성의 거대 범죄 조직을 넣고, 주인공으로 하여금 그 범죄 조직으로부터 귀족 영애를 호위하는 것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이유가 대체 뭔가요. 범죄 조직이 왕제와 연루되어 있고, 그 수장을 없애 영혼을 획득하려는 건 좋다 이겁니다. 근데 영애와 소꿉놀이 같은 장면은 복수와 뭔 상관이 있나요. 그리고 복수는 아무것도 낳지 않는다 같은 고리타분한 전개는 또 뭔가요. 복수자(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하기 보다 원론적으로 그렇게 살면 후회한다느니 행복햐져야지 같은 발암 전개는 뭔가요. 아, 이 세상은 아직 살만하고, 나쁜 사람만 있지 않다는 그런 의미인가요? 주인공은 복수귀지만 아직 인간일 때의 온전한 마음이 남아 있어서 갈등하고, 언젠가 행복을 찾는다 그런 이야기?

맺으며: 무려 450페이지입니다. 그중에 복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대략 300페이지는 되어 보입니다. 필자가 제일 싫어하는 게 하나의 단어를 놓고 해설을 하는 것인데, 무슨 주석을 다는 것처럼 단어/상황에 대한 설명을 심하게는 몇 페이지식 해대서 질려벼렸습니다(중후반부터는 좀 나아짐). 주인공의 복수심은 초반에만 집중되고 뒤로는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구색 맞추기로 들어가 있고, 범죄 조직이 무슨 특수부대 뺨치듯 활약합니다. 일본 작가들 신(神)과 관련된 이야기와 범죄조직 빼면 이야기가 성립 안 되나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복수는 아무것도 낳지 않는다식 신파극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귀족 영애 호위하며 범죄 조직 수장 찾을 때는 그 수장 찾을 의지도 없어 보였군요. 강해져서 왕궁 기사 '로렌스(쓸데없이 일러스트는 고퀄)'를 뛰어넘어야죠? 그거에 대한 방책이나 힘을 키우는 장면은 아예 없는데요? 복수할 마음은 있나? 그냥 범죄 조직 조무래기만 잡아대는데 시간 다 잡아먹고,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수장 찾아가는 장면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대체 장르가 뭔가요? 주인공이 왕녀로 환생한 이유는 그저 어른으로서의 경험과 침착함을 주기 위함만이었나요? 외에 환생한 이유는? 정말 이렇게 질문만 해대게 하는 작품은 필자 인생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출판사에 질문, 맞춤법 잡는 건 프로그램 자동으로 하셨나요. 뜻이 바뀌는 단어가 몇 개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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