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할 수 있는 몰래 돕는 마왕토벌 2 - Novel Engine
츠키카게 지음, bob 그림, 정대식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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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토벌에 있어서 정석적인 전개는 용사가 시작의 마을에서 출발해 동료를 모으고 왕녀를 만나 사랑을 약속받고 여행의 종착역에서 마왕과 결전을 벌이는 것이잖아요. 보통 해피한 판타지라면 여기서 마왕을 토벌하고 인류에게 평화를 그리고 왕녀와 결혼하면서 아름답게 끝을 맺는 게 클리셰이자 이상석이라 하겠죠.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의 용사는 어떠할까, '토도 나오츠구'는 용사로 선택되어 이세계로 전이 당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창 날뛰고 있는 마왕을 쓰러트려 할 운명을 하사받게 되죠. 각종 가호하며 장비 그리고 하렘이 빠지면 섭하지 등 용사가 가져야 할 덕목(?)을 두루 가지고 출발을 합니다.

 

왕녀는 안 나오지만 나름 귀족가의 영애 둘을 동료로 받아들였고, 작중에는 안 나오지만 마왕을 쓰러트리면 왕녀에 준하는 여자와의 사랑도 약속되어 있었겠죠(1). 그렇게 핑크&장밋빛을 안고 떠난 여행길,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토도는 분명 용사로써 소환되었고 그에 준하는 가호 등 용사가 틀림이 없지만 우리가 아는 흔한 용사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용사는 맞는데 용사가 아닌? 뭔 말이냐면요. '허접' 토도를 표현하자면 이 단어 하나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이세계 전생물에서 주인공이 사기급 스킬을 받거나 각성해서 먼치킨이 되는 걸 흔히 보잖아요. 그거 다 거짓이라는 양 이 작품은 혼돈을 선사합니다.

 

남을 의심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으며,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무슨 일이 벌어질지 한 두수 앞을 내다보고 행동하는 것이 아닌 이게 옳은 일이니까 하는 것이다.라는 즉흥적인, 생각이라는 걸 포기하고 이게 맞다 싶으면 직진뿐인 행동력, 이걸 자신만의 정의라고 하는 걸까요? 동쪽의 나비 날갯짓이 궁극적으로 서쪽에서 태풍이 될 것이라는 걸 꿈에도 모르는 식으로 하는 행동, 순수하니까? 그나마 자신의 정의를 타인에게 요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참 다행이긴 한데 이게 또 아주 없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다 떠나서 지금 토도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적의 능력과 실력을 가늠하지 않고 돌격하기라는 것입니다.

 

초보가 대뜸 엔딩 보스에게 덤비는 짓은 누가 봐도 무모하잖아요. 시작의 마을을 나서자마자 마왕과 맞닥트리는 건 아니지만 토도는 그만큼 무모한 행동을 잘 합니다. 그렇담 지식이 없으면 배우면 되는 것이고 실력이 없으면 기르면 됩니다. 그걸 위해서 '아레스'라는 사실상 이 작품의 주인공을 붙여 두었는데 토도는 그가 남자라는 이유로 파티에서 방출, 그리고 그가 빠진 승려라는 자리를 메꾸기 위해 지금 언데드 총본산 대분묘라는 미궁이 근처에 있는 마을에 왔습니다. 그리고 도토는 대분묘 언저리에서 언데드가 내쏜 괴전파에 기절, 용사로 선택되고 그에 걸맞은 사명감을 가진 용사가 언데드에 기절하고 징그럽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사실 평화로운 일본에서 살다가 이세계로 전이되어 대뜸 싸우라고 하니 의지는 있어도 몸이 안 따라주는 건 어쩔 수 없겠죠. 뭣보다 용사는 시작의 마을에서 출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를 가르칠 아레스라는 승려를 붙여 주었건만, 애가 남자 공포증이 있다며 하루 만에 너 님 해고 이럽니다. 기가 찰 노릇이죠. 그렇다고 이세계나 마왕에 대해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막연히 마왕을 무찔러야 된다고 하니 여행을 하고 있는 것뿐, 그래서 그가 하는 행동은 소풍 성격의 그 이상으로 비춰지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고생은 아레스가 몽땅 뒤집어쓰고 있죠.

 

아레스는 이번에도 언데드를 무서워하는 토도를 위해 무던히도 애쓰면서 새로운 승려로 고아 '스피카'라는 12살 소녀를 붙여주게 되는데요. 여기서 중대한 분기점이 발생합니다. 용사를 키워서 마왕과의 싸움에 대비하는 아레스의 가르침은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는 것인데요. 그의 용사 교육 방식은 자신의 몸을 불 살라 안전하게 용사의 렙업을 도우는 가령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닌 고기를 잡아서 주는 게 아레스의 교육 방식'이라는 겁니다. 이건 전재가 잘못된 것이죠. 그래서 아레스의 동료인 실전파 '그레고리오'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돌발적으로 삐거덕 거리게 되고 급기야 스피카마저 아레스의 교육 방식은 잘 못 되었다고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문제는 이 작품에서 제대로 된 인간이 없다는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이어 갈려는지 알아채는 인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스피카도 뭐가 문제인지 알고서 하는 것이 아닌 그저 아레스는 상냥하기에 교육받기엔 부적합하다는 견론을 내려 버리죠. 스피카가 아레스의 도움을 받아 초반에 광렙을 이룬 것에서 그의 교육하에 있는다면 분명 멋지게 성장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뿐입니다. 고기를 아무리 잡아줘도 고기 잡는 법을 모른다면 언제까지고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걸 제일 처음 깨달은 게 스피카라는 아이러니, 고작 12살짜리 소녀가 아레스라는 운동장만 돌다가 드디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과정의 중심엔 아레스의 동료 그레고리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작가의 언급은 없었지만(후기에 있으려나) 실전파인 그는 이론으로 배우는 것보다 몸으로 때우며 배우는 게 성장하는데 적합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는데요. 아레스처럼 뒤에서 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단서를 주며 네가 알아서 해라. 성장하지 못한다는 너의 그릇은 거기까지라는 논리, 사실 이렇게 순화하며 썼지만 그레고리오는 자기중심적인 신앙에 몸을 두는 중증 골수 신도인데요. 신앙만 있다면 안 되는 것은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허접한 용사를 신앙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처단하려는 궁극적인 사이코입니다.

 

사이코지만 그레고리오의 '힘이 없는 정의는 무능이자 죄'다라는 논리는 마왕을 무찌르는데 있어서, 그리고 성장하기 위해 용사보다 더 큰 고뇌를 안아 버린 스피카에게 있어서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인 지 하는 길잡이가 되어 버립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는 부분이었군요. 고아로 성장해 얼굴이 반반하다는 이유로 선발되어 용사 파티에 집어 넣어진 스피카, 타의에 의해 성장하길 강요받으면서도 자기가 나아갈 길을 제시한 아레스에게서 길을 본 게 아니라 힘이 없는 정의는 무능이자 죄라고 하는 그레고리오의 말에 그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장면은 이 작품이 가진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줍니다.

 

요컨대 이런 거죠. 성장하기 위해선 몸으로 부딪혀 봐야 할 때도 있다는 것, 아레스의 용사 교육은 어딘가 어긋나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그건 그렇고 스피카의 성장을 보건대 얘도 예사롭지가 않군요. 엑스트라로 그칠 줄 알았는데, 아레스에게 경험치 쩔 받을 때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모습하며 어딘가 흐뭇하게 합니다. 초반엔 쭈뼛쭈뼛 거리던 애가 후반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본질을 다시 보게 하는, 그녀를 보며 성장이라는 것에서 본디 자신의 한계는 스스로 극복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맺으며, 사서 고생하는 아레스와 그걸 평가하며 옆에서 무뚝뚝하게 비아냥 거리는 아멜리아와의 찰떡궁합이 재미있습니다. 여기에 길치 동료가 늘어나면서 다음 권은 더욱 재미있어질 듯, 깊이 생각 안 하고 표면적으로만 움직이는 용사 토도에겐 여전히 발암물질이 떠다니고요. 그에 따른 에피소드 중 남자?! 여자? 뭐? 남자를 좋아해? 등 아레스에게 들통나지 않은 토도의 정체 때문에 일어나는 이야기는 배꼽을 빠지게 합니다. 스피카는 귀엽지만 야무진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무능을 대표하는 용사 곁에서 그녀는 자신이 나아갈 길을 보게 되죠. 무능을 인지 못하는 용사와, 무능을 뛰어넘기 위해 일어선 스피카

 

오직 신앙만이 장땡이라고 외치며 신앙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그레고리오 때문에 생기는 긴장감은 자칫 무미건조해질뻔한 이야기에 감초를 던집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방식은 과격해도 아레스의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메시지를 던지죠. 그래서 용사에게 최대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무능을 대표하는 용사에게 있어서 신앙의 힘이야말로 정의라고 외치는 그레고리오와의 만남은 지옥 편도 티켓이나 다름없게 되는 것이죠. 아레스는 그걸 알기에 그와 만나는 걸 회피하게 했으나 그걸 비웃는 용사에 의해 파토되어 가는 과정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아이덴티티가 아닐까 했습니다. 세상사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다는?

 

필자는 웬만하면 추천하지 않지만 이 작품은 추천합니다.


 

  1. 1, 왜 과거형이냐면 이야기가 진행 되면서 용사의 정체로인해 그럴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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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거라 용생, 어서 와라 인생 4 - L Novel
나가시마 히로아키 지음, 이치마루 키스케 그림, 정금택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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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4권은 흡혈귀 왕 지오르에게 붙잡혀간 학우 구출과, 흡혈귀 여왕 '드라미나'의 복수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퀘스트를 받아 변방 마을에 가보니 미리 와 있었던 학우 '파티마'가 흡혈귀 왕 '지오르'에게 붙잡혀 가버렸고 이에 주인공 드란은 탈환에 나서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지오르에게 멸망당한 나라의 여왕 '드라미나'를 만난 드란은 그녀의 올곧은 성품에 이끌려 그녀를 도와주게 되는데요. 사실 드란에게 있어서 상대가 아무리 강한들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그야 드란의 힘은 신급이니까요. 그래서 드란을 적으로 돌린다면 상대는 100% 인생 끝난다고 봐야 하죠.

 

뜬금이 없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드래곤 전생자의 이야기에 왜 흡혈귀가 나오냐고요. 아니 뭐, 판타지 세계에서 흡혈귀는 빠질 수 없는 이야기 중 하나이긴 한데 문제는 지금까지와의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에서 전혀 쓸데없는 주제라는 것입니다. 느닷없이 나타나서 대륙을 호령하는 흡혈귀입니다.라고 해봐야 뭐 어쩌라고요.라는 심정일뿐이었군요. 주인공의 전생에서 접점이 있었던 존재들이라면 일말의 수긍은 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의 독백에서 유추해보자면 있긴 있는 종족이었고 단지 그것뿐인, 세상 만물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는 존재였을 뿐 주인공 드란에게 있어서 흡혈귀는 눈여겨본 종족이 아닌 것입니다.

 

그야 아무리 난다 긴다 한들 주인공 드란에게 있어서 한낱 벌레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신룡(욜라 짱쎈 드래곤)일때는 말할 것도 없고 약화된 지금도 '흠'이라는 말버릇을 내뱉으며 내지르는 칼 몇 방에 그가 못 자르는 건 없어요. 그걸 이번에 또다시 보여줍니다. 당췌 뭐냐고요. 자신을 인간으로 환생 시킨 장본인을 찾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 복선만 투하 해놓고 4권에 들어서기까지 진실에는 요만큼도 다가가지 않고 있잖아요. 그렇기는커녕 가는 곳마다 마누라 만들기 삼매경이고 이거 드래곤 환생자가 아니라 무슨 삼천 궁녀 의자왕이 환생한 건가? 아주 쐐기를 박는 게 이번에 흡혈귀 여왕 '드라미나'와 학우 '레니아'까지 가세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이번 이야기는 히로인이라 쓰고 마누라 만들기 그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더불어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지 난감하기 그지없었군요. 정석적으로 위기에 빠진 여인을 구해주고 주인공의 상냥한 성격에 이끌려 히로인 대열에 합류하는, 나이는 생각도 안 하고(흡혈귀라 나이를 거의 먹지 않습니다.) 얼굴 빨개져서 주인공 가슴팍에 얼굴을 묻는 드라미나, 사실 나라가 멸망하고 백성이 도륙되고 복수를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닌 그녀가 느꼈을 외로움은 컸다 할 수 있겠죠. 거기에 나라와 백성을 지키지 못한 분노, 자신의 나약함, 원수에 대한 원망, 그런 것이 모여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는 드란의 상냥함...

 

그런데 세리나는 어디다 팔아먹은 것이냐고요. 이번 에피소드에서 일러스트 한 장에 몇 페이지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크리스는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고요. 레니아는 3권에서 잠깐 얼굴을 비춘 적이 있는, 학교에서 짱 4강 어쩌고였는데 자신도 드란과 마찬가지로 환생자라는 자각하에 싸돌아다니지만 그녀 역시 드라미나와 같은 길을 걷게 됩니다. 요컨대 주인공 드란의 히로인이라 쓰고 마누라 대열에 합류한다는 이야기죠. 드란은 분명 복상사로 죽을 운명인 게 틀림이 없습니다. 요기까지 오면 히로인만 11명이 되요. 개중엔 드란과 버금가는 히로인도 있고, 드란에게서 정기를 받아 강해진 히로인도 있고, 2세가 태어난다면 분명 마왕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작중에서도 그런 언급이 있어요. 세계 정복 말입니다. 마약에 취해 헤롱헤롱하며 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드란의 정기를 받아버린 세리나는 더 이상 남편 찾기를 포기하고 드란의 곁을 차지하며 보통의 라미아와는 차원이 다른 힘을 보여주고 있죠. 전생에서 용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복선이 나온 크리스라던지, 레니아까지 오면 주인공 드란급 고신룡이 재림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드라미나에 와서는 아예 드란의 피를 먹어 버렸으니 앞 날이 심히 걱정될 정도죠. 흡혈귀 여왕 드라미나와에서 2세가 태어난다면 이 또한 세계 멸망급이 아닐까 싶기도 하군요.

 

그러고 보면 주인공은 의자왕이 되어 세계 정복이 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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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사 치트가 너무 최강이라 이세계 녀석들이 전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만. 4 - J Novel Next
후지타카 츠요시 지음, 나루세 치사토 그림, 권미량 옮김 / 서울문화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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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작가는 언급이 없지만 이 작품은 그동안 나왔던 여타 이세계물의 주제를 전부 끼얹어 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표절 형식으로 끼얹어 놓은 건 아니고 작가 나름대로 어레인지를 잘 해놨는데요. 이 작품이 특이한 건 이세계엔 왜 주인공 혼자 혹은 많이 가도 클래스 하나 정도에 그치는 걸까를 떠나 아주 대놓고 대량으로 보내는 걸 들 수가 있습니다. 거기에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한 명 한 명이 여타 작품의 주인공급이죠. 여신에게 소환된 용사나 고양이 신에게서 힘을 받은 여고생등 그들의 인생사를 추적하면 또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을 만큼 비중이 상당하다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들의 이야기가 주인공 요기리에게로 모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요기리를 잡아먹지 못해 살기를 띄게 되고 요기리는 '죽어' 한마디를 하죠. 그러면 모든 게 끝이 나버립니다. 아무리 주인공급 등장인물이라도 요기리 앞에서는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게 되요. 사람은 착하게 살면 복받는다지만 작가는 그런 복은 필요 없다는 식으로 힘에 취한 인간이 어떻게 변하는지 적나라하게 표현해버리는데요. 사실 이런 면들은 여타 이세계물을 비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평범한 인간이 이세계로 넘어가 힘을 얻어 권선징악을 행한다. 정석적이지만 그렇지 못한 인간도 있다는 걸 이 작품은 보여주죠.

 

멀리 갈 필요 없이 우리나라만 해도 완장을 차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뉴스에서도 종종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 예로 아파트 입주자 대표가 관리 사무소장에게 갑질하던 장면은 유명하죠. 이 작품은 그런 인간들로 바글바글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리고 요기리를 종착점으로 했다가 죄다 영면에 들어가고요. 현실에서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그런가 주인공의 사기급 스킬(인지 뭔지 밝혀지지도 않았지만요.) 때문에 작품을 다 버려 놨다는 분들도 계시지만 필자의 경우 대리 만족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보통은 이런 중2병이 만연하는 작품을 이렇게 집중해서 읽지 않는데 말입니다.

 

각설하고 하나하나가 일당백 이상인 신들과 능력자들을 보고 있으면 원펀맨이나 영화 엑스맨을 떠오르게 합니다. 똑같진 않지만 그런 능력자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그런 상황에서 사기 속성 주인공은 사다리 끝까지 올라가 먼저 차지하고 있을 뿐 중간까지 기어 오른 능력자들도 많아요. 개중엔 세계 멸망급 신들도 있지만 결국 사다리 끝엔 요기리가 차지하고 있어서 기어오르지 못하고 떨어질 뿐이죠. 그래서 중2병 불쏘시개 같은 거라 여기는 분들도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강한 정도가 아니라 말 한마디에 세계의 운명이 좌우되니 사람이 고생도 해봐야 성장하는 것인데 이렇게 강하면 뭐 어쩌자는 걸까 싶기도 할 겁니다.

 

결국은 주인공의 정체는 모든 만물의 생과 사를 관장하는 신(神)이다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닐까 했습니다. 이런 복선은 간간이 나오고 있고,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이미 2권에서 현자 킬러 아오이가 복선을 투하해버렸기도 하고요. 가만 보면 일본 작가들은 신적인 존재에 무척 집착하는 거 같아요. 그 예시로 드래곤 볼이 있겠고, 몇몇 라노벨에서 그러한 경향을 보여주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자꾸 언급하게 되는데 이세계는 주인공을 신격으로 격상 시키거나 눈을 뜨게 하기 위한 공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갑니다.

 

어쨌건 이 작품은 주인공만 바라보지 말고 주변에서 알짱거리는 면면들과 그들의 사정을 눈여겨본다면 이 작품은 달리 보일 겁니다. 하나같이 자신만의 정의에 도취되어 갑질하고 까불다가 황천길 편도 승차권을 획득해 가는, 이것은 너나 우리 편 니편 내 편이라는 기준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힘에 취하면 얼마나 추악해지는지 잘 보여주죠. 그리고 그 말로는 하나같이 똑같습니다. 불만이 있다면 이것이군요. 좀 더 괴롭히고 보내 드려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번에 요기리는 괴롭히는 방법을 터득했으니 앞으로 볼만해지겠죠. 문제는 그렇게 해줄 반 친구들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지만요.

 

이제 와 본론으로 들어가서, 요기리 일행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현자 시온을 만났지만 그녀라고 딱히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요기리도 알고 있는 정보 그 이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시온, 밀리초 단위로 렙업을 해가며 현자 중에 최강(아마도)이라 일컬어졌던 시온은 그를 만나 콧대가 부서진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만끽하게 됩니다. 요기리가 이세계로 오게 된 원흉, 반 친구들이야 죽든 말든 상관은 없지만 왠지 열받네요. 하지만 어릴 적 아사카에게서 제대로 교육받은 그는 문명인입니다. 상대는 그렇게 생각 안 하고 어떻게 하면 그를 죽일 수 있을까 연구를 거듭했지만 이젠 소용없군요.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솟아날 구멍을 찾는다더니 기어이 그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았지만 현자 시온은 막차 타고 떠나 버렸습니다. 이제 뭔 소용이랴, 이걸 거면 뭐 하러 페이지를 낭비하나 싶을 정도로 요기리를 죽이기 위해 온갖 연구를 다하더니, 하지만 끈질긴 바퀴벌레 한 마리가 살아남았고, 그녀의 의지는 핸섬 남 바퀴벌레(요기리 반 친구)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군요. 그리고 남은 반 친구들은 현자 시온의 명령에 따라 배틀로얄 속편을 찍었지만 핵폭탄 앞에 장사 있으랴는 듯 모든 게 평정되어 버렸습니다. 작가는 꿈과 희망과 젖과 꿀이 흐르는 기회의 이세계 같은 건 개나 줘버렸습니다.

 

허망하다는 건 이런 거죠. 전부 힘에 취해 오만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처럼 개중엔 개념인도 있어 보였고, 처절한 삶을 뛰어넘어 이제야 좀 잘 되나 했는데 이 역시 너도 똑같아라며 다들 버스에 태워 보내 버립니다. 거기에 작가는 멸망하는 도시에 전직 히로인을 대려다 놓고도 잊어 버려요. 아니 요기리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히로인중 하나였는데 까먹다니? 하기사 '로리 드래곤'도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 버렸는데 짝퉁 히로인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요. 사실 중요한 복선이었는데, 주인공에게 있어서 소중한 건 오직 토모치카 한 사람, 어릴 적 자신을 돌봐줬던 아사카의 그림자를 봤는지 이젠 집착으로 그녀를 보살펴 주는 것에서 뭔가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맺으며, 작가는 언급이 없지만 이로써 1부 완결입니다.(작품 자체가 끝났다는 게 아님다.) 원래의 세계와 이어지는 혹은 만들어진 이세계라는 복선을 무진장 떨궈놓고 이렇게 마무리해버리네요. 여튼 요즘 나오는 작품 중에 중2병이 아닌 작품이 있을까마는 이 작품도 그 의미적으로 굉장합니다. 온갖 설정하며 인종하며, 하지만 싼 티 나는 느낌은 없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갑질하는 인간들 나가 죽는 맛이 있다고 할까요. 참고로 여기서 갑질은 그런 경우도 있지만 힘에 취해 오만방자해진 무리와 개인을 말합니다. 등장인물 90% 이상이 여기에 해당 되요. 이게 뭐가 재미있나 싶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정의에 빠져서 남의 말을 안 듣는 인간들은 혼 좀 나 봐야죠. 문제는 해당자들은 그걸 느낄 사이도 없다는 것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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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사 치트가 너무 최강이라 이세계 녀석들이 전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만. 3 - J Novel Next
후지타카 츠요시 지음, 나루세 치사토 그림, 권미량 옮김 / 서울문화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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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작품의 아이덴티티는 무엇이란 말인가요. 야채를 넣고 해물을 넣고 볶아서 고추기름과 육수로 국물을 내고 면을 뽑아 짬뽕을 만드는 정석적인 요리가 아닌 눈에 띄는 모든 것을 집어넣은 잡탕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 세계는 하나의 우주가 유리구슬이고 이 유리구슬은 창조주가 옆구리에 끼는 자루에 들어간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예전에 이런 주제로 한 영화가 있었는데 제목이 생각 안 나는군요. 갑자기 왜 범 우주적이 되었냐면 별별 게 다 나오기 때문입니다. 현자, 현자 후보생, 검성, 여신에 소환된 용사, 환생한 용사(이건 가물가물하네), 마신이 있고, 다른 우주에서 침략해 오는 세력이 있습니다. 로봇도 나오고 유령도 나오고... 드래곤도 있고...

 

이젠 아무래도 좋은 이세계라는 존재 자체를 먹어치우는 천반 킬러도 나오는군요. 이 천반킬러라는 존재가 대체 이 작품에서 무엇으로 작용하는지조차 불명으로 그것은 소리 소문 없이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지적 호기심은 때론 생명을 담보로 요구한다는 듯 괜히 호기심으로 까불다가 요기리에 의해 소거, 옛날에 지구는 둥굴다라는 정설이 굳어지기 전에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잖아요. 여담으로 이거 요즘도 믿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아니 글쎄 이세계가 그렇다고 하네요. 세계의 끝은 바다가 흘러내리는 폭포라고요. 이젠 뭔 말하는지 필자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온갖 설정이 난무해요.

 

왜 그럴까. 당연하겠죠. 생각만으로 상대를 죽이는 즉사 치트를 가진 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가 뭐가 재미있겠어요. 자중은 한다지만 상대가 조금만 악의를 가지고 있어도 요기리가 '죽어'라고 욾조리기만 해도 상대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되어 버리는걸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설정이 대단히 난해 합니다. 판타지를 기본으로 깔고 가지만 SF와 심령, 닌자, 악의 정부 기관, 뭔지 모를 종교단체, 이번엔 하늘나라의 그것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게 이렇게 온갖 설정이 난무하고 난해해도 독해력을 크게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군요. 가끔 누구의 대사인지 좀 헷갈리고 출연자가 많다 보니 누가 지껄이는지 모른다는 게 흠이지만요.

 

좌우지간 요기리와 토모치카는 드디어 왕도에 도착을 했습니다. 오다가 파리(찬반 킬러)가 달라붙었지만 털어내기도  하고 조금의 소란을 거친 끝에 반 아이들과도 헤우를 가지는데요. 둘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걸 우선시하다 보니 복수극은 펼치지 않는군요. 일단은 자신들을 소환한 현자 시온을 만나야 하기에 시온이 내린 시련인지 과제인지를 클리어하기 위해 왕도 지하에 묻혀있는 마신 공략전에 반 아이들과 나섭니다. 이 부분은 딱히 이렇다 할 이야기는 없어요. 지하 7층에 묻힌 마신을 찾아 한 층식 공략에 나서는데 그래도 아이들은 썩어도 준치인지 나름 꾸역꾸역 공략을 잘 해나가는군요. 요기리가 나서면 순식간에 클리어지만 일단은 허접 코스프레중

 

드래곤 아야카의 역습, 1권 리뷰에서 이세계는 주인공을 위해 만들어진 세계일지도?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2권에서도 이와 비슷한 복선이 있었는데 이번 3권에서는 아예 대놓고 이런 복선을 투하하는데요. '아야카' 얘가 누구냐면 현자 시온에 의해 이세계로 소환된 인물 중 하나로 요기리와 토모치카와 더불어 무능력으로 진단받고 버려진 서브 히로인이었습니다. 왜 과거형이나면, 무능력도 억울해 죽겠는데 드래곤을 유인하는 미끼가 되어 버스에 남겨졌다가 드래곤에게 배빵 맞고 배에 큰 구멍이 나버렸죠. 당연히 즉사, 요기리는 그 죽음을 애도하며 의자에 앉혀 놨었는데 이번에 갑자기 각성해서는 인조인간이라고 하네요.

 

안 그래도 꼬일 대로 꼬여가는 설정에서 또다시 이상한 설정을 넣어 버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건 그녀가 내뱉은 '연구소'. 이 연구소가 어린 요기리가 갇혀 있었던 그 연구소인지는 모릅니다. 연구소에 의해 새로운 인류라는 거창한 프로젝트 일환으로 만들어졌다는 그녀, 그런데 머나먼 타지에서 드래곤에게 배빵 맞고 사망, 그녀의 인생도 참 기구합니다. 여튼 1권 리뷰에서 언급했던 이세계는 주인공을 위해 만들어졌고, 각각의 설정을 가진 아이들(용사 포함)은 주인공이 가진 힘을 시험하기 위해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것, 어쩌면 이렇게 믿도록 유도 당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야카도 그중 하나?

 

여튼 배빵으로 망가진 몸을 수복하고자 마침 요기리가 쓰러트린 드래곤을 흡수하시는데, 그렇게 진격의 아야카가 되어 날 버리고 가시는 님으은 십 리도 못 가서~ 그로테스크, 공포와 호러라는 장르가 추가되었습니다. 요기리가 행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나비 날갯짓이 되어 이세계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하는 레포트 작성 조별 과제라도 내려졌는지 그가 끼치는 영향은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아니 이전부터 그래 왔지만요. 드래곤의 사망으로 비호를 받고 있던 마을 간 전쟁 발발의 기운이 샘솟고 거길 찾아갔던 아야카는 천지신명 드래곤... 그러고 보니 던전 밥이라는 작품에도 보면 이런 일이 있었죠.

 

이젠 요기리와 토모치카의 원래 세계도 지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의심병이 도지기 시작하는데요. 외전에서도 기어이 이쪽 세계도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설정이 투하되어 버립니다. 현실 또한 이세계와 마찬가지로 한 개의 구슬 속의 우주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면 요기리는 아마테라스일까? 2권에서 현자 킬러 아오이는 자신의 능력으로 그(요기리)의 정체를 일부 보았기도 하죠.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지고의 존재가 아닐까 하는, 그렇다면 요기리가 지킨다고 선언한 이후 차츰 집착으로 변해가는 토모치카는 그에게 있어서 이브가 되는 것일까요.

 

사실 주인공의 즉사 치트 하나만 놓고 본다면 이것보다 망작인 경우도 없죠. 하지만 필자는 저마다 개성 있는 주변 인물들의 비중있는 출연으로 가령 '하나카와 다이몬'의 돼지 오타쿠 같은 면모나 없던 힘을 얻어 거기에 취해 오만방자해진 반 아이들, 이번 진격의 아야카등의 이야기들은 주인공의 사기급 능력을 희석 시켜주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거기에 장르가 무엇인지 헷갈리는 온갖 설정하며, 분명 판타지인데 이솝우화 같기도 하고 때론 무서운 동화 같기도 한,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케 한다고 할까요. 이게 이 작품의 재미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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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 슬레이어 6 - L Books
카규 쿠모 지음, 칸나츠키 노보루 그림, 박경용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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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 슬레이어가 지금의 파티를 꾸린지도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군요. 그리고 누나가 고블린에게 유린되고 죽은 지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고요.(아니 11년인가 헷갈리네) 문득 그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옛 집터를 찾았습니다. 이젠 여기에 집이 있었다는 흔적만이 남아있는 곳, 그날 그 일을 평생의 트라우마로 삼아 오직 고블린만을 죽이기 위해 분연히 일어난 남자는 세월의 흐름 앞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이젠 알고 있다. 누나가 없다는 현실을, 언제까지고 누나의 그늘에서만 있을 순 없겠지. 하지만 남자는 누나를 쉽게 떠나보내지 못한다. 그것만이 삶의 원동력이니까. 그것만이 내가 사는 의미이니까...

 

봄이 찾아오면서 새로운 모험가들이 등록하는 계절이 왔습니다. 이야기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고블린 슬레이어를 업신 여기는 신입들이 종종 보이는 시기, 늘 그랬듯 고블린을 얕잡아본 신입들이 썰려나가는 계절이 봄이기도 합니다. 그런 시기에 찾아온 만남, 10년 전 고블린 슬레이어가 겪었던 불행, 누나를 고블린에게 잃은 신입이 그를 찾아옵니다. 소년을 바라보는 고블린 슬레이어는 그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흔한 일이다. 남자들은 먹이로, 여자들은 끌려가 몹쓸 짓을 당한 끝에 고문당하고 죽고 먹히고 운 좋으면 산 채로 구해지지만 결코 좋은 일은 아닌, 그런 일을 겪었기에 고블린 슬레이어는 그 신입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그의 기행이라 쓰고 토벌 퀘스트를 파괴하는 행위를 눈 감아 줬으리라. 발암이 있다면 여기가 배양소지 어디겠는가 하는 일들을 벌이면서 왜 신입들이 고블린에게 썰려 나가는지 소년은 몸소 보여주게 됩니다. 고블린을 얕잡아본 순간 기다리고 있는 건 머리가 두 쪽이 되는 현실이라는 걸 소년은 겨우 깨닫지만 버스는 이미 떠난 뒤입니다. 신입 소년, 빨간 머리 소년은 그렇게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고블린 슬레이어를 업신여기고 여신관을 파티 뒤에서 벌벌 떨며 주문이나 외는 찌질이라고 했을 때부터 이놈은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라고 여겼건만, 고블린 슬레이어는 그를 어엿한 모험가로 만들기로 합니다.

 

여신관에게도 이 1년은 의미가 큽니다. 그녀 역시 고블린을 얕잡아보는 신입 파티에 낑겨 토벌 퀘스트에 나섰다가 눈앞에서 남자는 먹이로, 여 마법사는 독칼에, 여 무투사는 능욕 코스 타는 걸 보아야만 했죠. 자신도 곧 그렇게 될 운명, 하지만 착한 아이가 위험에 처했을 땐 백마 탄 왕자님이 구해주는 건 상식이잖아요? 백마는 없지만 희멀건 사람이 구해주긴 했죠. 그게 바로 고블린 슬레이어라는 운명적인 만남, 하지만 그건 그거 이건 이거라는 듯 패닉에 빠져 실례까지 한 그녀를 다독여주기는커녕 종 부리듯 부려먹는 고블린 슬레이어에게 건배. 그날부터 어딘가 위태로운 고블린 슬레이어를 보살펴 준다는 명목으로 같이하게 된 여신관

 

그리고 1년 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 걸까 하는 고뇌에 뒤덮여 있습니다. 승급의 날, 백자에서 흑요로 올라서고 다시 철 등급으로 올라서기 위해 승급 심사를 받았지만 보기 좋게 미역국을 드신 여신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하는 두 번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대로 가면 남편감이 될지도 모를 고블린 슬레이어랑 둘이서 다닐 때가 좋았는데 어느덧 정신 차리고 보니 엘프녀, 드워프, 리자드맨이 끼어들어 파티는 북적이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죄다 은 등급, 모험가가 되고 1년이 지났다곤 해도 아직 신입티를 벗어나지 못한 여신관에게 있어서 은 등급이란 하늘에 계신 그 무엇과도 같은 존재였죠.

 

그러다 보니 그녀는 늘 지켜지는 존재고, 활약은 좀 하지만 그녀가 나서서 뭔가를 할 처지가 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맨날 만나는 건 고블린이지만 어찌 된 게 죄다 용급에 버금가는 고블린일지니 이게 어찌 된 일이오? 파티 잘 만나 아수라장을 헤쳐 나오며 실력은 쌓았지만 정작 너 님 파티에서 한 게 뭔데? 이러니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뒤늦게 그녀에게 있어서 초보로써의 성장을 기대하며 네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저 위 빨간 머리를 부하로 거느리고 다른 신입을 모아 나도 할 땐 하는 여자랍니다.라는 듯 그녀의 눈물 어린 성장기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그렇습니다. 바퀴벌레 한 마리는 손으로 때려잡으며 별거 아니지만 그게 떼로 나오면 어떨까요. 아무리 건장한 남자라도 펄쩍 뛰며 난리 날 걸요? 그게 이 작품에서는 바퀴벌레라는 이름의 고블린인 것입니다. 겨우 한 마리 때려잡고 이따위 잡으며 슬레이어라는 호칭이 부끄럽지도 않느냐? 하는 게 신입들의 마음, 그런 마음을 품고 소굴에 들어갔다가 살아서 나온 녀석은 없습니다. 그러니 고블린의 위험성은 알려지지 않은 것, 그렇기에 접수원 누님은 그 누구보다 고블린 슬레이어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죠. 초보 킬러인 고블린을 잡아주고 떠나간 신입들이 살아서 돌아오게 하는 친절에 또다시 고마움을...

 

다시 여신관으로 넘어가서, 1년 전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고블린 슬레이어가 아니었으면 지금은 살아 있지 않거나 공허하게 고블린을 생산하는 주머니가 되어있었을 운명, 동료들이 죽어간 트라우마, 언제까지고 벗어나지 못하는 그것,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여신관은 10년 전 고블린 슬레이어가 그랬던 것처럼 현재에 머물기보다 앞으로 나아가길 선택합니다. 사자가 토끼를 잡을 때 온 힘을 다하는 것처럼 토끼 잡는데 온 힘을 다하며 쩔쩔맨다는 조소를 들어도 강하니까 살아남는다가 아닌 살아남아서 강하다는 걸 보여주며 1년 전에 멈춘 그녀의 시계는 다시 흐르기 시작합니다.

 

빨간 머리 소년이 등장하면서 인연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역설하는 게 아닐까 했습니다. 고블린 슬레이어에게 있어서 소년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죠. 여신관에게 있어서 소년은 1년 전 신입 파티에서 동료였던 여마법사가 그의 누나라는 걸 직감했고요. 독칼에 맞아 어찌할 사이도 없이 죽어버린 여마법사,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기 보다 고작 고블린에게 죽었다며 놀림당한다는 억울함에 이곳까지 온 소년, 차마 누나의 최후가 어땠는지 전하지 못하는 여신관, 대신에 그녀는 소년에게 누나의 소원을 우회적으로 전합니다. 드래곤 슬레이어가 꿈이었다고, 이루지 못할 꿈이라도 가치는 있는 것이라고, 소년은 그녀의 말에 무엇을 느꼈을까...

 

맺으며, 뭔가 시적인 부분이 많이 들어가 있어요. 고블린이라는 최약체를 쓰러트리며 분위기 잡는 건 뭔가 아닌 거같아 좀처럼 감정이입은 못 했는데 고블린이라는 주제를 뺀 모험이라는 부분을 부각해서 읽다 보면 참으로 멋진 이야기가 아닐까 했습니다. 하나둘 동료를 만나고 모험을 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추억을 되새기는, 분명 나쁜 추억도 있지만 좋은 추억도 있다는 것처럼, 싸움으로 다져진 우정은 어느새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줍니다.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고 돌아올 곳을 지킨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희망이 불행과 죽음의 그림자에 꺾이지 않고 자신들의 발로 앞으로 나아가는 걸 지켜보는 것... 그것은 분명 멋진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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