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티처 13 - S Novel+
네코 코이치 지음, Nardack 그림, 천선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는 '가르침'이다. 제자들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타인을 돌보는 희생정신을 가르친다. 불의를 못 본 척하지 않고, 약한 자를 돕는다. 제자들이 언젠가 독립했을 때 어엿한 한 사람의 몫을 해내는 그날까지 주인공 '시리우스'의 가르침은 계속된다. 그런데 언젠가 독립할지도 모를 제자들을 부인으로 들이는 건 뭔가 아닌 거 같단 말이지. 현실 같으면 파렴치로 매도당할 일을 잘도 저질러 주신다. 그동안 일선만큼은 넘지 않고 보살펴 줬던 리스와 피아까지 부인으로 들이면서 명실상부 하렘이 완성되었다(4P도 거뜬하다). 에밀리아는 여행을 떠나기 전 어릴 때부터 주인공을 사모하고 있었고 일찌감치 수청을 들면서 제1부인이 되어 버렸지만. 사실 주인공이 고자인 것만큼 짜증 나는 것도 없지만, 이렇게 시원하게 진행 시키는 것도 어딘가 짜증을 불러온다. 


그리고 지금 또 한 명의 제자가 들어온다. '카렌(표지)'은 인간과 유익종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안 계신다. 선천적으로 기형인 날개 때문에 마을에선 따돌림당하며 늘 혼자였고, 엄마와 마을에서 근근이 생활하다 모험가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려가는 처지에 놓였었다. 세상 참 이보다 불행한 아이가 또 있을까 싶다. 엄마와는 생이별하고, 마물에 쫓기던 노예상에 의해 마물 먹이로 던져지고, 카렌의 나이는 6살쯤이라고 한다. 작가가 애를 얼마나 굴리려고 이럴까 싶을 정도로 애잔한 삶을 살아간다. 절체절명의 순간 지나가던 주인공 시리우스 패거리에 의해 구출된 후 엄마와 극적인 상봉을 이뤘긴 한데, 어차피 마을에 있어봐야 좋은 꼴 못 볼 테니 엄마는 딸을 시리우스에게 맡기기로 한다. 손버릇이 나쁜 주인공에게 맡겨도 되나 싶었지만 보다 넓은 곳에서 보다 많은 것을 배우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번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가 들어가 있다. 새로운 가족이 된 카렌의 귀여움과 리스의 언니와 아빠를 만나기 위해 생도르라는 나라로 향하는 것, 그리고 소동에 휘말려 고생하는 것이다. 카렌의 귀여움은 13권이나 진행이 되면서 무미건조해진 이야기에 단비 같은 효과를 부여한다. 매너리즘에 빠진 끝에 링거 꼽고 사경을 헤매던 예능 프로그램에 새로운 피를 수혈하면서 기사회생하는 그런 분위기를 선사한다. 벌꿀을 너무 좋아해서 식단 관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카렌의 먹성을 조절하느라 진땀을 뺀다. 걸핏하면 훔쳐먹기도 하고, 걸리면 귀여운 변명을 하는 게 여간 흐뭇한 게 아니다. 낯은 엄청 가리면서 벌꿀로 유혹하면 졸졸 따라가가도 하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벌꿀 있어? 하며 스스럼없이 말을 걸기도 한다. 집중력은 얼마나 좋은지 한번 뭔가에 빠지면 주변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마법 소질도 있어서 한번 본건 따라 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지만 이제 6살인 아이에겐 너무 위험하기도 해서 그걸 조절해줘야 하는 주인공 입장에서는 가르치는 보람이 있나 보다. 하지만 엄하게 가르치는 건 좋지만 이제 6살인 아이에게 스파르타식 교육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카렌은 은근히 시리우스를 멀리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아무튼 세상 풍파를 가르치겠다며 6살짜리에게 빨래를 시키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싶다. 아이를 다뤄본 적 없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가미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직 씹는 게 서투른 아이가 질긴 고기를 먹으며 딱딱하다고 하면 보통 다른 걸로 바꿔주지 않나. 그런데 난 괜찮은데? 라니 공감능력이라곤 찾을 수 없는, 조금은 비정한 모습도 보인다. 이건 뭐 작가의 문제겠지. 애를 다독이는 것보다 기 죽이는 게 종종 보여서 조금은 불편해지기도 한다.


아무튼 생도르에 도착해서 리스의 언니와 아빠를 만나려고 했는데 늘 그렇듯 소동이 일어난다. 생도르의 왕은 자리에 누워 오늘 내일 중이고, 두 명의 왕자와 한 명의 왕녀는 왕권을 놓고 대립 중이다. 겉으로는 분명 그렇게 보인다. 왕자와 왕녀는 당연히 실력 있는 사람 한 명이라도 수하에 두려는 움직임이 생기고 주인공 일행은 눈도장 찍히며 말려 들어가는 그런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실 자기들끼리 치고받든 말든 상관은 없는데 리스의 언니 리펠 왕녀가 휘말려 고초를 겪고 있어서 리스를 제2부인으로 두고 있는 주인공 입장에서는 모른 채 할 수도 없다. 벌써 시리우스 일행을 영입하기 위해 제1왕자가 움직이는 등 본격적으로 왕권을 둘러싼 소동에 휘말려 들어가는데, 일이 요상하게 흘러간다. 서로 죽이고 죽고 철천지 원수 같아야 할 왕자들과 왕녀는 사이가 좋아 보인다.


이렇듯 이 작품도 은근히 기믹을 설치해두고 있다. 문제가 되는 건 표면적인 등장인물들이 아닌 이들의 주변과 모습을 보이지 않은 흑막이라고 넌지시 언급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진짜 적은 누구냐를 놓고 조사를 진행하게 되고 그럴수록 수렁에 빠지는, 발을 빼려고 해도 뺄 수 없는 마치 의도에 휘말린 듯 이야기가 진행이 된다. 모처럼 작가가 힘을 좀 낸다고 할까. 뭐 사실 크게 놓고 보면 어디에나 있는 왕 좀 해보겠다는 설치는 귀족들이나 자기 입맛에 맞는 왕을 앉히려는 무리들의 좌중지란 같은 거긴 한데 작가는 여기에 한가지 더 뭔가를 가미해두고 있다. 뭐랄까 코난 같은 주인공이랄까. 가는 곳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진다. 여관에 들렸더니 여관 딸이 유괴된다든지, 주인공을 어디에 가둬두면 세상 평화로울 수 있지 않을까.


맺으며: 이번 리뷰는 컴퓨터가 말썽을 일으키고(고칠 수가 없어 언제 꺼질지 몰라 저장을 따로 해두느라 더 지친다), 잠도 쏟아지는 새벽에 쓰다 보니 최악이 아닐까 싶다. 거기에 이 작품은 리뷰 쓰기가 곤란할 정도로 복선도 별로 없고 딴 길로 안 새는 정도의 길을 가고 있는지라 복선을 풀어내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언급하고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가르침'을 아이덴티티로 삼고 있다 보니 주인공이 넘지 못할 적은 없고, 여행만 할 뿐인 그런 이야기다. 사실 제자들이 성장해서 세상 밖으로 나간다는 복선이라도 있었으면 가르침이라는 것이 조금 더 빛나 보였을 텐데 왜 하필 부인으로 다 들여버려서 미래를 고정시켜버리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호쿠토(개과 늑대)가 미래에 피아(엘프)와 어쩌면 둘이서 여행할지도 모른다는 조금은 아련하게 만드는 장면(라고 해봐야 두어줄 뿐이다)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할까.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작가가 주어진 환경을 잘 살리지 못하는 듯하다. 엘프 종족인 피아에게 있어서 주인공 시리우스는 말할 것도 없고 리스와 에밀리아등 주변과는 다른 시간을 살아가게 될 텐데 이거에 대한 아련함을 조금 더 부각 시켰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래서 빨리 아이를 낳고 싶다는 본심을 내비치기는 하는데 그렇게 크게 부각되진 않는다. 또는 히로인 세 명 중에 한 명과 맺어지고 두 명은 떠나보낸다는 이야기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면 가르침이라는 본질이 완성되었을 텐데 아쉽다고 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이 이끄는 이세계 여행 4 - L Novel
아즈미 케이 지음, 마츠모토 미츠아키 그림, 정금택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와 긴글 주의






이 작품은 참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태어날 때부터 사생결단을 하는 환경 속이었다면 사람을 죽이는데 주저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무법지대가 아닌 평화에 찌든 세상에서 자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람이다. 법률이 존재하고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받는 법치국가에서 나름대로 법을 지켜오며 살았고, 윤리를 통해 사람 목숨의 가치를 새겨들은 보통의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 윤리와 생명의 가치는 개나 줘버린 세상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가치관을 벗어나지 않으려 애썼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고자 했다. 그런 주인공을 비웃듯,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여야만 하는 때가 온다면 과연 주인공은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까. 3권에서는 이런 관점에서 참으로 리얼리티 한 장면들을 보여 주었다.


누나와 여동생을 대신해 이세계로 전이당한 주인공이다. 사실은 학교에서 궁도나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었던 주인공이다. 때론 이성으로부터 고백도 받고, 여느 작품들의 고자들처럼 고백을 거부하기도 하는 등, 그렇게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인생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세계에서 미친 여신 덕분에 인간과 대화 불가능, 못생김으로 아인급 차별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 그래도 입에 풀칠해보겠다고 상인으로서 길을 걷기 시작한다. 운이 좋아 토모에와 미오라는 마물을 종자로 손에 넣었고, 아공이라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기도 했다. 미친 여신에게 소환 당하고 버려지고 황야에 떨어져 삶이 막막하던 게 엊그제인데 지금은 얼추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아픈 경험을 통해 한층 더 성장을 이뤘고, 소중한 걸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알아간다. 


누나와 여동생 대신 이세계로 온 것에 그는 원망하지 않는다. 원래 여신이 바랐던 것처럼 누나와 여동생이 이세계로 전이되었다면 주인공은 아마 자신은 죄책감에 폐인이 되어 버렸을 거라고. 이세계를 근 1년 가까이 경험한 주인공이 내린 결론이다. 이세계는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다. 외모지상주의만을 추구한 미친 여신은 이세계 인간들의 내면과 정서와 성격 따윈 안중에도 없다. 그러니 누나와 여동생이 주인공 대신 이세계에 소환되었다면 그녀들은 과연 삶을 제대로 살 수 있었을까. 또한 소환한 용사들이 제대로 된 인간일 리 없다는 복선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다. 이번 4권부터 세계관이 넓어진다. 상인으로서 상점을 열기 위해 학원도시로 향하던 주인공을 여신은 가타부타 없이 납치해버린다. 그리고 한창 인간과 마족들이 벌이는 전쟁터 한복판에 던져 버린다.


오로지 미형 인간만의 세상을 추구하는 미친 여신 덕분에 아인과 마족은 천대받고 있다. 그러니 이들이 들고일어나는 건 당연하다. 한때 인간들을 밀어붙이며 이길 거 같았던 전황은 용사들이 소환되고 여신이 다시 인간들에게만 축복을 내리면서 아인과 마족은 궁지에 몰려간다. 그리고 지금 이들은 다시 대규모 전쟁을 시작하려 한다.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 거린다고 했던가. 그동안 여신의 만행에 마족과 아인은 대항책을 마련했고 이번 전쟁에서 다시 인간들을 밀어붙이는데 성공한다. 이에 여신은 자신이 소환한 용사들이 죽는 걸 염려하여 주인공을 납치해 고기 방패로 던진 것이다. 주인공에겐 설명도 뭣도 없었다. 갑자기 전장에 던져져 커다란 칼을 휘두르는 여전사 앞에서 주인공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이보다 더 큰 부조리도, 불합리도 없을 것이다.


여느 먼치킨이라면 이 국면에서 각성한 힘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장면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주인공은 마력만 높을 뿐 실전 경험도 미천하고 스킬도 별다른 게 없다. 도망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고, 교섭을 하는, 이세계에 떨어진다고 다 먼치킨이 되는 건 아니라는 듯 참으로 리얼리티 한 장면들을 연출한다. 마력과 더불어 자랑이었던 방어력은 쓸모가 없다. 그야 상대는 이세계  중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드래곤슬레이어] '소피아'였으니까. 사실 소피아에 대해선 그동안 꾸준히 복선으로 나왔다.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이번 전쟁에서 마족편에 서서 자신이 쓰러트린 드래곤과 같이 출연한다. 생각해보면 소피아는 주인공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은 미친 여신이라면서도 어찌할 수 없어 수긍하며 살아가는 반면에 소피아는 미친 여신에 대항하며 살아고 있으니까. 그러니 그 소피아가 여신이 소환한 주인공을 좋게 볼 리가 없다. 사실 이렇게 끝까지 대척점으로 흘러가면 좋겠는데 설정을 찾아보니 꼭 그렇지마는 않은. 아무튼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인간계 최강인 소피아를 상대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주인공이 성장 가능성을 보인다는 거다. 필자가 이 작품을 좋게 보는 부분이 이것인데, 실전을 치르며 보완해야 될 점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알아가는, 즉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간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완벽하지 않다. 실패를 거울삼고, 두들겨 맞음으로써 아픔을 알아가고, 패배라는 경험이 뼈를 튼튼하게 만든다는 거다. 주인공은 본격적으로 여신의 간섭에 대해 대항책을 만들어 가게 된다. 다시 전장 한복판에 던져진다면 배겨날 수가 없다.


그리고 두 명의 용사들, 마족과의 전쟁에 맞서라고 여신이 소환했으니 당연히 이번 전쟁에 출전하게 된다. 미친 여신의 입맛대로 내면과 성격을 고려하지 않은 순수 외모만을 보고 소환된 용사들이다. 그러니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한쪽은 전형적인 살신성인 용사고, 한쪽은 자기중심적 용사다. 살신성인 용사는 병사들을 살리겠다고 적군을 향해 닥돌 하다가 되레 병사들의 발을 붙잡아서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기중심적 용사는 자기만 살자고 자신을 호위하는 병사들을 몰살 시켜간다. 사람 살리는 용사들에게 싸우라고 전장에 투입했더니 되레 아군이 죽는 희한한 일들이 벌어진다. 작가가 표현에 있어서 거침이 없다고 할까. 인간이 가진 내면을 이리도 훌륭하게 표현하는 이세계물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필자 주관적이지만 이 작품은 그중에서 수준급이다.


꼭 보면 이런 용사들은 죽지도 않고 목숨이 왜 이리 질긴지 모르겠다. 그나마 살신성인 용사는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참다운 기사의 기질을 보인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려다 보니 주변의 발을 붙잡게 된다. 나는 하려고 하는데 그러나 현실은 따라가지 못하는, 그러다 보니 뭔가를 잃게 되는 아픔을 얻게 되는 어쩌면 이 작품의 주인공이 되었을 용사가 아닌가 싶다. 반면에 자기중심적 용사는 그딴 거 없다. 세계는 나를 위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나는 살아야 된다는 이기주의로 똘똘 뭉쳐 있다. 온갖 버프는 다 받아서 기고만장하다가 찌질하게 져놓고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거 하며 이쯤 되면 작가의 필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물론 필자 주관적이다. 미친 여신에 이런 용사들이 어우러져 이번 4권은 읽는 재미가 쏠쏠하기 그지없다.


맺으며: 드래곤 상위종 루토의 언급과 드래곤 슬레이어 소피아의 등장으로 복선 몇 개가 투하되고, 마족과 인간들의 전쟁으로 세계관이 제법 넓어지는 4권이다. 그동안 어딘가 동떨어진 세계를 걷고 있었던 주인공은 소피아와의 접촉으로 성장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고 할까. 여기에 살신성인 용사와 자기중심적 용사를 투입함으로써 긴장감과 몰입도는 한층 더 높아진다. 물론 이런 게 이세계물의 클리셰에 들어가겠지만 중요한 건 이걸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의 작가는 제법 괜찮게 풀어낸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필자 주관적이지만. 아무튼 성장형 주인공을 원한다면 이 작품도 나름 괜찮다. 실패와 좌절을 겪고 그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성장하려는 주인공은 흔치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파이 교실 1 - L Book
타케마치 지음, 토마리 그림, 송재희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대전에 있어서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정보'를 손에 쥐는 것이다. 


이 작품은 픽션이다. 어디까지나 픽션이다. 그래서 10대 여자애들을 스파이로 교육해 다른 나라에 잠입 시키는 것이 허용된다. 간혹 영화라든가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주는 스파이는 동경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죽어도 없는 사람 취급받거나 영웅으로 추앙받지도 못할뿐더러 사람들에게 기억되지도 못한다. 불가능한 미션을 부여받아 사지로 떠나고, 그렇게 해마다 죽는 요원이 현실에서도 생긴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런 스파이전을 다루고 있다. 비록 10대 여자애들을 동원해 서브컬처로서의 흥미 위주로 그려가고 있지만 목숨이 걸린 일이라는 것은 픽션이나 현실이나 똑같다는 설정이다.


근데 사실 이 작품은 스파이라는 첩보물이라기 보다 이능력 배틀에 더 가깝다고 해야겠다. 이세계 전생 치트와 무능력 치트를 결합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고 할까. 우선 이 작품의 히로인이자 주인공인 '릴리'는 스파이 양성 기관에서 낙오자다. 머리도 좋고 인물도 훤한데 어째서인지 실기에선 괴멸적인 평가를 얻어 아슬아슬하게 쫓겨나지 않을 정도로 숨이 붙어 있다. 그리고 그녀는 독 면역이라는 '특이 체질'이다. 아마 이것 덕분에 쫓겨나지 않은 듯한데, 요점은 이미 시작부터 그녀에겐 '어드벤티지'가 있었던 샘이다. 이렇게 이 작품은 요소요소에 기믹을 숨겨둔다. 등장인물들을 능력이 없는 것처럼 꾸며놓고 실상은 능력자라는 거다.


어느날 릴리는 어떤 임무를 부여받는다. 양성 기관에서 퇴출되다시피 임시 졸업이라는 딱지가 붙은 채 [등불]이라는 급조된 팀에 배속되는데, 이 팀은 불가능한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팀이다. 그녀가 이곳에 도착하니 '6명'​의 소녀가 이미 와 있다. 앞으로 릴리는 이 소녀들과 한 달 뒤 사망률 90%에 달하는 불가능 미션에 도전해야만 한다. 팀의 보스는 '클라우스', 클라우스의 지도를 받아 정예 스파이들도 이루지 못한 미션을 클리어해야 하는데 알고 봤더니 여기에 모인 릴리를 포함 '7명' ​모두가 낙오자들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그녀들은 버림말로서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그런 처지다.


이런 낙오자 애들을 한 달 만에 교육해 불가능 미션에 도전 하라니 미친 거냐고 소리 질러도 이상하지 않다. 더욱이 그녀들을 교육해야 될 클라우스에게 지도력은 없다. 여러분은 밥 먹기 위해 숟가락을 드는 행동을 말로 설명할 수 있나? 하는 질문을 던진다. 행동이 아니라 원리를 설명하라고 하면 과연 몇이나 답할 수 있을까. 클라우스는 원리를 설명하지 못한다. 고로 그에겐 스파이로서 이렇게 하면 된다는 행동은 가르쳐도 원리는 가르치지 못한다. 즉, 이 [등불]이라는 팀은 전부 낙오자만 모인 집단이다. 릴리는 이런 팀에서 도망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클라우스를 납치해서 팀을 해체하라며 협박하는 등 애가 정신 나간 모습을 보인다.


이런 점이 흥미요소다. 스파이로서 능력을 보이며 적을 농락하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게 아닌 현실적으로 불안해하는 인간 심리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릴리는 죽는 것보다 사는 쫓을 택한다. 능력을 펼치기도 전에 죽어버리면 뭔 소용이냐며 아득바득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도망갈 구멍은 없다. 클라우스를 협박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떻게든 실력을 키워 한 달 뒤 찾아오는 클리어 불가능 미션에 도전해 성공 시키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클라우스의 지도 방법을 바꿔 어떻게든 실력을 쌓아야만 한다. 그래서 클라우스는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정신으로 7명의 소녀들을 교육하기로 하는데.


여기까지 오면 뭐 정말로 영화처럼 어떻게든 실력을 키워서 비장한 각오로 적지에 뛰어들어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반전을 이뤄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7명의 소녀들도 클라우스의 교육을 받으며 실력을 키워가긴 간다. 이렇게 이 작품은 사망률 90% 미션이라는 요소에 중점을 맞추며 진행이 된다. 하지만 초반에도 언급했듯이 이 작품엔 기믹이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있다. 사실 픽션이라고 해도 한 달 만에 낙오자들을 교육한다고 손오공이 초사이언 되듯 될 리는 없다. 손오공은 순간이동 하나 배우는데 1년이 걸렸다고 하더라. 그렇게 한 달간 교육 끝에 7명의 소녀와 클라우스는 적지에 잠입하게 된다.


스파이를 하려면 모두를 속여라라는 말이 있다. 영화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 영화에서 가족들을 속이기도 했잖은가. 이런 점이 기믹이라는 것이다. 실력이 되지 않으면 기교를 부릴 수밖에 없고 적이 이 기교에 속아주길 바랄 수밖에 없다. 이미 시작부터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기믹에 빠져들게끔 설정이 잡혀 있다. 클라우스와 7명의 소녀들은 기교를 부린다. 그녀들이 왜 불가능 미션에서 도망가지 않고 도전하게 되었는지 조금식 풀어간다. 졸지에 추리물이 되고 괜찮은 흐름을 보여주긴 한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작가는 독자들을 속이려 든다. 사망률 90%라는 요소를 넣어 적국은 상당히 강할 거라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그래서 그 사망률 90%라는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왜 이리 허망한지 필자 자신도 모르겠다. 반전이라면 반전이겠지. 적지에 도착한 클라우스와 7명의 소녀들을 맞이한 건 사망률 90%라는 진실이다. 사실 필자는 중반까진 제법 괜찮은 흐름이라고 봤다. 하지만 적지에 침투하고 사망률 90%라는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뭐 이딴 게 있나 싶었다.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언급은 힘들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임무가 힘들어서 사망률 90%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클라우스와 7명의 소녀들은 처음부터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라는 격언을 그대로 실천했다는 전형적인 능력자 클리셰를 보여준다. 결론은 연극이었고, 독자는 연극에 놀아난 꼴이다.


정말 한숨이 제대로 나왔다. 죽음을 각고하고 임무에 종사하는 엘리트 스파이들을 우롱하듯 자기중심적 성격을 보여주는 릴리부터 답이 없다. 쌀 배달하는 사람도, 택시 운전하는 사람도, 비행기 조종하는 사람도 다 목숨을 걸고 자신의 일에 매진한다. 하물며 스파이라는 위험천만한 일을 하면서 죽기 싫다는 어리광은 어떻게 받아줘야 할까. 포부라도 당차면 모르겠는데 그저 나라를 구하고 싶다는 두리뭉실한 이상을 보여줄 뿐이다. 자신이 개화하지 못한 건 양성 기관과 교관이 실력이 없다는 마인드. 여기에 쇄기로 능력이 없다면서 독 면역이라는 특이 체질과 독 만들기는 수준급에 엘리트 못지않은 움직임은 어떻게 봐줘야 할까. 이런 릴리가 낙오자라면 엘리트는 대체 어떤 능력을 보이는가.


필자는 위에서 이 작품은 이능력 배틀물이라고 언급했다.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이 무술을 하며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듯이 이 작품도 그에 못지않은, 대체 눈에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라는 건 대체 뭘까 싶다. 와이어 액션신은 이세계 전생물처럼 이능력이 없다면 표현 불가능한 영역 수준이다. 어떤 소녀는 [불행]이라는 체질로 주변의 불행을 끌어들이는 모습을 보이는데 우연이 아니라 미래 예측하듯 이능력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스파이물이 아니라 이능력 배틀에 가깝다. 낙오자라면서 능력은 있는, 이세계 전생에서 흔히 보는 무능력자가 치트를 써서 능력자가 되는 그런 요소가 잔뜩 있다. 요컨대 이 작품은 스파이를 가장한 이세계 먼치킨이다.


맺으며: 온통 기믹 밖에 없다. 릴리를 낙오자들만 모인 [등불]이라는 팀에 합류를 지시하는 시점부터 이미 기믹이 시작된다. 스파이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찾는다면 이 작품은 대성공이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라는 격언도 성공적이다. 적은 결국 속아 넘어갔으니까. 하지만 이능력을 넣기 시작하고 사망률 90%라는 진실이 드러나면서 분위기는 고꾸라진다. 이러려고 애들을 교육한 것인가. 이쯤 되면 왜 낙오자들로 이 미션에 도전하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결론은 엘리트들을 쓸 필요도 없었다. 엔딩을 접하면 작중에 언급되는 소녀들의 성장 '가능성'의 의미는 이걸 두고 하는 말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은 낙오자들의 갱생 프로그램이라랄까. 스파이로서 전통적인 첩보물을 바라고 이 작품을 찾는다면 분명 맞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배틀물로서 성장물로서 찾는다면 어느 정도 맞을 것이다. 현실을 대입하고 읽었던 필자는 괴리감에 몇 번이고 책을 덮었는지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스케이프 쉽 랜드 - Novel Engine
바바 오키나 지음, 키류 츠카사 그림, ruleeZ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미입니다만, 문제라도?"의 작가가 집필한 단편집입니다. '거미입니다만'이라는 작품이 국내에 13권까지 정발 되어 있고 애니화까지 되는 등 나름 잘 나가는 작가라서 이 작품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느낌에 덥석 구입은 했습니다만. 시놉시스도 유원지에 갇힌 사람들이 7일 동안 자신들을 노리는 늑대 탈을 쓴 살인자를 피해 살아남는 서바이벌 즉 데스 게임이라는 꽤나 흥미진진한 내용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불러왔었죠. 광기에 찬 표지도 그에 못지않은 시리어스를 보여주고 있고요. 그래서 흥미로웠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뭔가를 구입할 땐 정보를 제대로 알아보고 구입하자,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같은 작가가 집필했다고 꼭 흥미진진한 건 아니더라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고 할까요.


이 작품은 영화 배틀 로얄과 유사한 흐름을 보입니다. 일정한 숫자의 사람들을 잡아다 어느 한 구역에 집어넣고 살아남으라고 하죠. 여기엔 빚에 쪼들려 팔려온 사람, 자기 발로 들어온 사람도 있고(살아남으면 상금이 나옴), 게임 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아무 짓도 안 했는데 타의에 떠밀려 들어온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자기들을 노리는 늑대를 피해 7일간 살아 남아야만 합니다. 또한 팀을 나눠 살아남은 사람이 많은 쪽이 이기게 되는데, 이 말은 상대 팀을 줄일수록 우리 쪽이 유리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고로 서로 죽이는 것도 장려가 된다는 것이죠. 사회 부적응자들을 모아다 데스 게임에서 이런 설정을 들이밀 때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보일까.


거기에 둘을 한 조로해서 파트너가 죽으면 다른 파트너도 죽는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행동에 제약을 걸기도 합니다. 자신들을 노리는 늑대와 상대팀 피해 파트너를 지켜가며 7일간 생존해야 되는 서바이벌이라는 극한의 상황에 몰려 주인공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인데 엄청 기대 되잖아요? 주인공 '다이고'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폭력을 먹고 자랍니다. 엄마는 이 남자 저 남자 마구 만나면서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멋진 인생(반어법)을 살아가고 있었죠. 남자들 등을 치며 돈을 쪽쪽 빨아먹다가 아이(주인공)까지 팔아가며 남자들에게서 돈을 뜯어냅니다.


하지만 인생사 공수래라고 나이가 들어가고 아이까지 딸려 있으니 언제까지고 장밋빛 인생이 계속되지 않을 거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게 돼요. 주인공 다이고는 커갈수록 주변에 엄마의 폭력과 행위를 알리게 됩니다. 하지만 엄마의 거짓 연극에 속아 주변은 엄마를 두둔할 뿐이죠. 그래서 주인공은 인간 불신에 빠집니다. 이게 이 작품의 키워드인데 쩝... 아무튼 결국 엄마는 마지막 선까지 넘게 되고, 빚을 엄청 지게 된 엄마는 자식을 서바이벌 게임에 팔아버리는 짓까지 서슴지 않게 되죠. 주인공은 엄마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취업전선에 뛰어듭니다. 그렇게 4년이 지나 어쩐 일인지 저녁을 해주며 살갑게 대해주는 엄마에게 경계심을 누그러트린 게 화근이었다고 할까요.


엄마는 자식을 제대로 키울 마음이 없었죠. 그저 남자들에게 돈을 뜯어내기 위한 재료고, 주변에 한 부모로서 힘들게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선량한 사람으로 연기하기 위해 자식이 필요했을 뿐, 자식으로서의 정은 없었어요. 주인공은 자라면서 늘 엄마에게 맞는 게 일이었죠. 이유 없이 맞고, 일이 안 풀릴 때마다 맞고, 그런 나날을 견디며 마음을 닫아 버립니다. 그리고 지금, 주인공은 파트너 '유우(히로인)'와 함께 7일간 목숨을 건 서바이벌을 치러야 합니다. 이쯤 되면 엄마를 죽이고 나도 죽고하는 인생사 막장 테크를 탈 법도 한데 주인공은 그러지 못합니다. 결국은 폭력에 노출되었어도 자식은 용서한다는 클리셰 범주에 들어가기도 하죠.


그렇다면 주인공은 게임을 치르면서 인간 불신을 치료하고 닫힌 마음을 열어가는 걸까 하는 물음을 던지게 되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럴 경황도 없고, 그런 시간도 없어요. 사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없습니다. 주인공에 포커스를 맞추고 이야기를 풀어가기엔 지면이 너무나 부족하다고 할까요. 그래서 작가는 주인공은 이런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만 알릴뿐이죠. 게임에 참가한 여러 사람에게 장면들을 할애하며 그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이 데스 게임의 목적과 그 뒷배경 등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잔뜩 풀어놓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의 활약은 미약하고 결국 그도 한 사람의 참가자일 뿐이라고 역설하죠.


사실 필자가 최악이라고 혹평을 해도 다른 분들의 입장에서는 좋게 보는 경우가 있어서 근래에 들어와 말 조심하게 되는데요. 이 작품은 솔직히 근본이 없습니다. 가정폭력으로 삶이 망가지다시피한 주인공이 데스 게임에 참가하여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역경을 그리는 걸까 했지만 그런 건 거의 없어요. 몸부림치는 건 그의 파트너 '유우'일 뿐이죠. 그런데 유우와의 만남도 인위적이고, 주인공을 보자마자 한눈에 반했다며 얀데레로 돌변해서 나대는 꼴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이쪽이 더 흥미진진할 지경입니다. 많은 등장인물들을 투입해서 저마다 사연을 풀어 놓다 보니 이야기는 중구난방식이 되어 가죠.


결과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걸까 하는 질문 아닌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맺으며: 정말 돈도 아깝고, 시간도 아깝고. 이야기는 지리멸렬하고, 하나를 놓고 설명을 2~3페이지식 하는 읽는 사람 지키게 만드는 진행 방식하며, 데스 게임 서바이벌을 모토로 했으면 비중을 높이던가 참가자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왜 풀어 놓는지 의미를 모르겠더군요. 이것도 의미 있는 풀이라면 이해를 하겠는데.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역설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나 본데 단권으로 끝나는 작품에서 지면을 그렇게 할애해도 되나 싶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주인공의 비중은 묻혀버리게 되죠. 유우의 얀데레끼도 뜬금없이 다가오게 되고요. 데스 게임에서 사람 죽어 나가는 것도 숫자로 짤막하게 만 끝내버리는 등, 결국 근본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엄마에 대한 복수라도 시원하게 하던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코하마 역 SF - S Novel+
이스카리 유바 지음, 타나카 타츠유키 그림, 손종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12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법 심한 스포일러 주의







자, 풍족하진 않지만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세계가 있다. 폭력은 금지되어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다. 노력에 따라 장소만 잘 찾아내면 부를 쌓을 수도 있다(먼저 발견한 사람이 임자다). 이런 모든 삶을 정부가 보장해서 빼앗고 빼앗기는 살벌한 세상은 인정되지 않는 평화 그 자체다. 하지만 누구나 다 혜택을 보는 건 아니고 살아가려면 소정의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사람은 6살이 넘어가면 정부에 돈을 지불해서 살아갈 권리를 획득해야만 한다. 지불하지 않을 경우 추방된다. 폭력은 이유고하를 막론하고 추방된다. 기물을 파손해도 추방된다. 사람의 몸에 칩(스이카)이 심어져 통제되는 사회다. 얼핏 사회주의 국가 같은 세상이라 할 수 있다.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은 끔찍한 곳일 것이다. 에덴의 동산에서 뱀은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 그래도 사람들은 여기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왜냐면, 전쟁으로 세상이 멸망했으니까. 


이 작품은 AI에게 자기 결정권을 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겨울 전쟁(아마도 3차 대전)이 한창 치열하게 전개 중이던 시절, 일본은 전략 병기로서 고도의 인공지능을 개발한다. 하지만 적국의 공격으로 서버를 분산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 전국에 거미줄처럼 퍼져있는 JR 철도역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통합지성체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는 서버(역)가 철도를 따라 전국에 퍼져 있어서 과반수 이상이 파괴되지 않는 이상 기능을 상실하지 않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한가지 실수를 저지른다. 통합지성체에 제어장치를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날로 격해지는 전쟁으로 인해 역의 파괴가 늘어났고, 이에 인간의 수리로는 복구되지 못한다는 결정을 내린 통합 지성체는 한가지 대안을 내놓는다. "내가 알아서 수리할게" 역은 자가증식을 시작한다.


통합지성체의 결정에 따라 그 첫 번째로 자가 수리에 들어간 역이 요코하마 역이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요코하마 역은 파손된 부분만 복구하는 게 아닌 개축을 맘대로 하더니, 끝끝내 세포가 분열하듯 증식을 시작해 전쟁이 끝나고도 증식은 멈추지 않게 된다. 일본 혼슈(후쿠오카, 혼슈, 시코쿠, 훗카이도중 제일 큰 섬) 지방 대부분을 침식, 일본 정부는 대응하다 와해, 살아남은 인간은 훗카이도와 후쿠오카에서 방어전을 치르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에 대항하는 인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기계가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것과는 반대로 요코하마 역은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것이 초반에 언급한 풍족하진 않지만 살아갈 수 있고 폭력이 금지된 세상이다. 역 내부는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으로 개축되었고, 삶에 필요한 물자도 역이 인간의 옛 지식을 빨아들여 복제를 통해 생산 중이다.


어쩌면 전쟁으로 피폐해진 대지에서 이보다 축복받은 땅은 없을 것이다. 증식하면서 공포영화처럼 인간을 깔아뭉갠다든지, 흡수한다던지 그런 건 없다. 사람들은 그렇게 200년을 살아오게 된다. 하지만 통제받는 세상이 좋을 리 없다. 사소한 폭력이라도 일으키면 죽음뿐인 장소로 추방되는 가혹한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역내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6살이 되기 전에 스이카 인증을 심지 않으면 알짤없이 역 밖으로 추방된다. 바닷가 같은 공간이 있는 곳이라면 모를까 아무것도 없는, 심지어 역 대합실 만한 공간에 버려지기 일쑤라 추방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사람은 어쨌거나 자유를 갈망한다.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라도 통제된 사회 보다 먹고살기 힘들어도 자유를 원한다. 그래서 역내에서는 저마다 세력이 존재하며 역에 충성하는 사람과 역을 파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공존하게 된다.


주인공 '히로토'는 바닷가 99계단 아래에서 살아간다. 그에겐 스이카라는 인증이 없다. 그래서 역내로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도 역 밖으로 배출되는 쓰레기를 뒤져 살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 밖으로 추방된 사람들 상당수가 이렇게 살아간다. 하지만 적응을 못해 죽는 사람이 더 많다. 히로토의 부모는 몇 세대 전 추방된 '아이들'이다. 이 작품은 잔혹한 동화를 그리고 있다. 역내에서는 6살이 넘기 전에 스이카 인증을 몸에 심지 않으면 추방된다. 여기엔 돈이 들어간다. 역 안이라고 모든 사람이 잘 살지 못한다. 가난한 부모를 둔 아이는 반드시 발각되고, 역 순찰기구에게 아이를 빼앗긴다. 그렇게 빼앗긴 아이는 바닷가로 추방되면 살아가는데 일말의 희망은 있다. 하지만 산간부 아무것도 없는 곳에 추방되면 며칠 못 간다. 요코하마 역은 사람을 역의 일부로만 치부하고 판단한다. 6살이 넘으면 이물질로 판단한다. 스이카 인증은 역의 일부라는 증표다.


이 작품은 세 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세상에서 그나마 먹고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다행이 아닐까?라는 것과 자유 없이 그저 던져지는 먹이만 받아먹고 살아간다면 돼지와 뭐가 다른가다. 히로토에게 어느 날 어떤 단체에 속한 사람이 찾아온다. 역내를 해방하고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단체의 그 사람은 히로토에게 한가지 부탁을 한다. 역에게 쫓기고 있는 단체의 리더를 찾아내 도와달라는, 히로토는 5일간 쓸 수 있는 역내 여행권을 얻어 그 리더라는 사람을 찾아간다. 그리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훗카이도에서 파견된 공작원을 만나면서 요코하마 역이 가진 본질을 알아가게 된다. 요코하마 역의 증식을 멈추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역할을 맡게 되면서 5일간의 여정을 그리게 된다. 참고로 마지막 세 번째 메시지는 진 엔딩과 연결되어 있어서 언급은 힘들다.


통제가 무너지면 사람들은 어떤 짓을 저지르는지 보여준다. 역 밖의 사람들은 살아가는데 필사적이다. 약탈이 횡행하고 사람들이 막 죽어 나간다. 아이라니 하게도 증식하는 역에 의해서가 아닌 인간들끼리 남은 물자를 빼앗기 위해 서로 죽이고 죽고 하는 것이다. 역의 증식으로 농사지을 땅은 거의 없다. 농사짓는 방법도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된 듯하다. 그러해서 안전한 역내라면 살아가는데 불편해도 위험하지는 않다. 그래서 요코하마 역이 악이면서도 악으로 비치지 않는다. 하지만 밖은 역이 증식할수록 그나마 남아 있던 땅이 침식되어 스이카 인증이 없는 사람들은 몰리고 몰려 바다에 빠져 죽을 판이다. 그래서 훗카이도와 후쿠오카는 역의 침식을 막기 위해 필사적이다. 시코쿠는 무정부 상태가 되어 버려서 아비규환이다. 인간의 적은 인간이라는 메시지를 참으로 적나라하게 던진다고 할까.(써 놓고 보니 시사하는 메시지가 네 개네)


맺으며: 단권이다. 한꺼번에 많은 이야기를 넣는 바람에 독해력을 상당히 요구한다. 전문적인 용어도 많이 나오고. 한 3권까지 늘려서 집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히로토의 결사적인 여행이라던지 어느 병사와 인조인간의 만남 같은 현실적이면서도 직설적인 이야기 등 상당히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아무튼 이 작품은 자유 없이 풍족하게 살 것이냐, 살기 위해 필사적인 자유를 원하느냐를 다루고 있다. 그 외에 설정으로 요코하마 역내를 표현한 SF적인 요소는 나름대로 큰 점수를 줄만 하다. 다만 등장인물들의 활약은 그렇게 많지 않은, 이 일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하는 설명이 주가 되고 인연은 크게 다루지 않는다. 여느 라노벨처럼 히로인이 나와 주인공과 연을 만들어가고 영웅이 되어 가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소년이 어쩌다 여행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본질에 도착하는 그런 이야기다. 주인공이라고 힘이 있는 게 아니고 지혜롭다고도 할 수 없다. 그저 맡은 바 임무를 다할 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