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빌드 월드 1 - 하 - 무리무식무모, Novel Engine
나후세 지음, 긴 그림, 이승원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세계가 멸망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슬럼가 꼬맹이가 구시대 내비게이터를 만나 개천에서 용이 나듯 성공가도를 달리는 이야기다. 고도의 문명을 자랑하던 구시대는 어느 시점에서 멸망해버렸고, 잔존 인류는 구시대 문명의 산물들, 이젠 유물이 되어버린 그것들을 모아들여 다시 옛 영광을 되찾으려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도시를 방어하던 각종 병기들은 자신을 제어하던 주인들이 멸망으로 사라지자 도시로 접근하는 살아남은 인간들을 사냥하는 몬스터로 돌변하게 되고, 멸망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은 헌터(판타지로 치면 모험가)가 되어 살고자 목숨을 걸고 몬스터(병기, 이하 기계)들과 싸우며 구시대 문명의 유물을 찾으러 혈안이 되어 간다. 요컨대 먹고살려면 유물들을 주워와 도시를 통치하고 옛 문명을 재생하려는 기업에 팔아라 뭐 그런 이야기다.


주인공 '아키라'도 헌터 중 한 사람이다. 슬럼가에서 자라 거리의 쓰레기를 주워 먹는 세월을 거치고 성장한 그는 제대로 먹고살기 위해 유물을 주워와 팔려고 옛 도시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마치 고블린에 당하는 초보 모험가처럼 주인공도 도시 방어 기계에 들켜 죽을 위기에 빠지게 되고, 거기서 구시대 내비게이터 '알파'를 만난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인생의 전환점을 들라면 알파를 만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총 한 자루에 총알 몇 개로 시작한 튜토리얼은 주인공에게 죽을뻔했다는 각인을 심어주며 세상은 녹록지 않다는 교훈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그럴까 '알파'의 수상쩍은 의뢰를 덥석 물어서 그녀(알파는 여성형이다)가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게 되고, 그녀(알파)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으며, 그녀의 의중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게 이 작품의 포인트가 된다. 


주인공은 그녀의 안내 덕분에 옛 도시에서 원활하게 유물을 모으게 되어 뒷골목 귀퉁이가 그의 서식지였던 것에서 온수가 나오는 호텔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으니, 알파를 더더욱 믿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녀 덕분에 실력도 나름 키워가고 평생을 벌어도 못 벌 돈도 이제 거뜬하게 벌어들인다. 그럴수록 꼭두각시 인형처럼 알파의 의도대로 움직여가는 주인공이다. 의문은 조금식 품고 있지만 그럴 때마다 알파는 기가 막히게 캐치해서 얼버무리면서 주인공을 컨트롤해 가는 게 예사롭지 않다. 알파는 무엇을 시키려고 개천에서 노니는 송사리 같은 주인공을 용으로 만드는 수고를 들일까. 이게 이 작품의 핵심 같은데, 결국 뭐 구시대를 멸망으로 이끈 존재가 그녀(알파)고, 옛사람들에 의해 봉인되었는데 주인공 보고 해제 해달라 뭐 그런 시추에이션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리뷰가 뭐 이리 허술해 하겠는데, 사실 저런 건 아무래도 좋다. 필자가 바랐던 건 에이티식스(86)이라는 작품처럼 기계와의 전쟁에서 인류의 존망을 걸고 이게 절망이라는 장면들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이름이기도 한, 리빌드 월드를 사전적으로 풀이하면 재건하는 세상이다. 그러니까 기계와의 싸움이 주가 아닌 멸망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이 삶을 재건해간다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래서 옛 도시로 가서 유물을 주우며 기계들과 싸우는 장면은 서브적인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2권부터는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겠으나, 1권(상,하)에서 기계들과의 싸움보다 슬럼가에서 나름대로 질서와 법도가 있다는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이런 장면들에서 옛 시대보다는 못하나 이들 나름대로 고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작품 제목답게 재건에 힘쓰는 모습들을 보여준다는 거다.


그래서 이런 소재가 재미있나? 참으로 미묘할 수밖에 없다. 소재로서는 충분하나 작가가 그걸 살리지 못한다고 할까. 기계들과의 전투는 밋밋하기 짝이 없다. 에이티식스처럼 충격을 주는 소재를 가미했다면 어땠을까 싶은데, 가령 기계들의 몸체로 쓰인 소재가 무엇인지 말이다. 그런 건 없고 그냥 공장 양산품처럼 만들어져 습관적이고 기계답게 시키는 일만 하는 것처럼 인간들을 습격하는 일에만 치중할 뿐이다. 이런 멍청한 기계들을 상대로 인간들은 막 죽어 나간다. 그리고 이번에 어이없었던 건 주인공이 몬스터 기계 전차가 쏜 포탄을 발로 차올려 되돌려 주는 장면이다. 작가는 포탄의 속도와 그에 따른 질량은 알고 있나 모르겠다(필자도 잘 모르니 태클 걸지 말자). 아무리 알파의 서포트를 받았고, 강화복을 입어서 힘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지만 실소를 금할 길 없었다. 


어쨌거나 이 작품도 어쩔 수 없는 히로인들의 난립을 막을 수 없나 보다. 옛 도시에서 구해준 여성 헌터 '사라'와 '엘레나', 돈 좀 만지고 있는 주인공을 습격하려던 조직의 '셰릴', 무기 상점의 주인 '시즈카'등 어째서 주인공이 되자마자 이렇게 히로인들이 들러붙는지 참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냥 관계도 아니고 속옷이라던지 신체 특정 부위라든지를 부각 시키고 셰릴의 경우 아예 모든 걸 다 줄게요라는 듯 드러눕는다. 주인공에게 무서울 정도로 집착하는 모습들이라던지, 특히 셰릴의 경우 주인공에 의해 조직의 우두머리들이 죽어버리자 조직을 이어받아 살아가기 위해 억척같은 모습은 짠하기 보다 귀기가 서린 무섭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인다. 몬스터 기계와의 전투나 알파의 주인공 컨트롤 보다 셰릴의 광기가 무척이나 인상 깊은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위의 이야기 연장선이긴 한데, 몬스터 기계와의 싸움보다는 인간관계에서 특이한 모습을 보이는 작품이다.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 되어 오로지 주인공의 눈치만 살피는 셰릴은 이 작품에서 단연 독보적이다. 주인공의 심기를 거스르는 거라면 자신의 조직원도 가차 없이 내쫓아버리는 등 주인공 비위를 맞추기 위해 처절한 모습을 보이는데, 사람이 이렇게 타락할 수 있구나를 느끼게 해주지만 한편으로는 여자의 몸으로 슬럼가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직을 이끌기 위해 주인공이라는 뒷배가 무엇보다 필요했던 그녀로서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해야 하는 처절함이 배어 있어서 나쁘게만은 평가하지 못하는 캐릭터다. 허풍은 있는 대로 치면서도 무서워 다리를 벌벌 떠는, 겉으로는 곧은 심지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연약함의 표본으로서 주인공에게 기대려 하지만 주인공은 그녀에게 관심이 없다.


그러니 더욱 악착같이 변해가고 한다고 했는데 돌아오는 건 없고 그래서 힘이 들어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마음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는 장면에서는 결국 그녀도 한 명의 인간이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한다. 주인공이 옛 도시에서 구해준 여성 헌터 '사라'와 '엘레나'와의 관계도 독특하지만 셰릴과의 관계는 보다 인간적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 마지못해 등을 토닥여주는 주인공의 상냥함에 기운을 차리고 한 단계 성장하는 모습은 여타 작품들의 히로인들보다 강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히로인들과의 만남 등에서 성적인 부분이라든지 아포칼립스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상황은 옥에 티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성(性)적인 부분은 필요도 없는데 부각 시켜서 분위기를 갉아먹게 하는 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히로인들의 집착성 행동도 그렇고 주인공 띄워주기가 매우 심한 편이랄까.


그래도 자기가 정한 테두리를 지키려는 주인공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인연을 맺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자는 그게 누가 되었든 처 부수려고 한다. 이런 주인공의 모습에서 한편으로는 학대받은 아이가 자기 자식을 끔찍이 보살피려는 모습과도 상통하기도 한다. 주인공에게 가족은 없다. 하지만 관심이 없는 사람은 철저히 외면한다. 셰릴이 이웃 적대 세력에게 위협을 당하는데도 귀찮아한다던지, 하지만 적극적으로 자신을 필요로 하는 그녀를 내치지 못하고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주인공의 상냥함 등. 세기말적인 분위기 보다 이런 인간관계가 독특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경우에 따라 주인공을 띄워주는 그런 경향도 있다. 가령 1회성 양아치를 등장시켜 주인공에게 희생 당하게 해서 주인공을 부각 시킨다던지.


맺으며: 쓸데없는 설명이 너무 많다. 마치 필자의 리뷰처럼 작가가 간추릴 능력이 없는지 하나의 소재를 놓고 다방면으로 설명을 하는데 학을 떼게 한다. 470여 페이지 중 이런 설명을 간추렸다면 300여 페이지로 끝낼 수 있었지 않나 싶다. 그리고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작가가 성(性)적인 이야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사라와 엘레나의 에피소드에선 매번 빠지지 않고 나온다. 무기점 시즈카의 가슴을 주인공 얼굴로 문대는 건 왜 하는지 모르겠고. 알파는 수시로 알몸이 되기도 하고, 적나라한 수영복을 입어 주인공 눈앞을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목욕신은 꼭 필요했나? 셰릴 하고는 아예 19금 만들 기세다. 가끔 보면 내용적으로 이렇게 성적인 이야기로 분량을 잡아먹는데, 능력이 안 되나? 게다가 사라와 엘레나가 자신들을 구해준 주인공에게 감사 인사한답시고 집착하는 부분은 다른 의미로 광기 그 자체다. 마치 주인공에게 대답을 듣지 못하면 인생 다 살은 것처럼 절망에 빠질 거야라는 분위기는 대체... 2권부터는 생각 좀 해보고 구입하던지 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이 이끄는 이세계 여행 11 - L Novel
아즈미 케이 지음, 마츠모토 미츠아키 그림, 김성래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주인공은 이세계에 왔을 때 분명 부모님의 발자취를 쫓는다고 했던 거 같다. 그래서 부모님의 출신지이자 마족 점령지인 켈류네온을 탈환했긴 한데 겸사 겸사였나, 이젠 부모님은 안중에도 없다. 참고로 주인공 부모님은 이세계에서 지구로 전이했다는 특이한 설정이다. 아무튼 뭘 찾아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먹고 살아야 해 시작한 장사는 용케도 순항 중이다. 사실 그 바탕엔 유능한 부하들이 있고, 그 부하들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부도나서 길바닥에 나앉았을 것이다. 근데 장사보다 말도 안 되는 마력으로 모험가를 해도 충분히 먹고 살 텐데 뭐 하러 머리 아프게 장사는 해가지고, 하려면 평범하게 하던가 나름대로 차별이랍시고 듣도 보도 못한 제품들을 쏟아내니 온 동네 소문이 다 퍼지게 되고 당연히 호구 잡으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은 늘어만 간다. 애(주인공)가 겉으로 보면 정말 멍청해 보이거든요. 사고관도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약간 꼰대 기질도 있어요. 상도덕을 지키지 않아 상업 길드에서 호되게 당하고, 이번에는 그리토니아 제국의 용사 '토모키'를 만나 윗사람에 대한 공경을 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가 꼰대 소리를 듣게 되죠.


아무튼 마족에 의한 변이체 소동이 끝나고 초토화된 학원도시 롯츠갈드의 부흥에 힘쓰는 이때, 리미아 왕국의 용사 '히비키'가 찾아온다. 찾아와서 상업 길드에 쳐들어가 대뜸 우리나라(리미아 왕국) 부흥에 필요하니 돈 내놔라 하며 용사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리미아 왕국과 그리토니아 제국은 마족의 침공으로 도시가 많이 부서졌다. 특히 리미아 왕국 전역에서 '히비키'는 주인고이 아니었다면 목이 달아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피해가 심각한 상태였다(이때 히비키는 변장한 주인공을 못 알아보고 그냥 특촬 오타쿠 같은 놈이라고 여긴다)히비키는 주인공의 2년 선배다. 그녀는 여신에 의해 이세계로 소환되었다. 주인공은 지구에 있을 때부터 그녀를 향한 뭔가 아련한 마음을 품고 있었나 본데, 정작 그녀에게 있어서 주인공은 학생 A 그 이상은 아니다. 그녀는 상업 길드에서 뽕을 뽑고 나오다가 우연히 주인공과 마주친다. 자, 여기서부터 주인공의 미래가 정해지는 순간이다. 세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쿠즈노하 상점'의 대표가 주인공이라는 걸 알게 된 그녀는 여기서도 용사답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이번 이야기는 마족의 전면적인 침공에 의해 정체되었던 각 나라에 본격적으로 분점 만들기에 나서는 주인공 일행을 그리고 있다. 그냥 시작의 도시 츠이게나 학원도시 롯츠갈드의 한구석에서 내 입에 풀칠할 정도로만 만족하며 살아갈 것이지. 뭐 그랬다면 이야기가 성립 안 되겠지만, 주변에서 자신(주인공)의 가치를 얼마나 높게 보는지 주인공은 이해를 못하고 있다. 학원에서 맡은 학생들의 실력 향상이라는 업적, 변이체 소동에서 활약했던 엄청 강한 부하들을 보유하고 있고, 상점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제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내놓으니 돈과 권력이라면 환장하는 위정자들의 눈이 싯뻘개지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여기서 그 정점이 주인공의 2년 선배 히비키라 할 수 있다. 그녀가 주인공을 그저 학생 A로 보는 대목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자신의 목적(휴만 지키기)을 위해 주인공의 가치를 알자마자 그를 이용하기로 마음먹는 대목에서 주인공을 하나의 인격체나 동등한 위치, 동향 사람이 아닌 그저 이용 대상일 뿐이라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연민이나 미안함은 일절 없다.


특히 주인공이 마족과 싸우다 같이 죽어 줬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그녀는 주인공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다. 문제는 불쌍하게도 주인공은 이런 그녀의 본심을 알아채지 못하고 헤벌쭉해서는 자신에 대한 정보를 다 까발려버린다는 거다. 주인공은 힘만 추구해서 성장했을 뿐, 내적인 성장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의 모습을 보인다. 어떻게 보면 순수한? 하지만 현실을 보는 부하들이 그녀(히비키)를 견제하는데도 동향 사람이랍시고 그녀의 편에 서서 감싸는 모습은 나중에 등에 칼 맞았을 때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지 내심 궁금해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계속해서 주인공의 단점을 열거하자면, 히비키를 대하는 장면에서 드러나듯이 남을 잘 의심하지 않는다. 부조리를 당하는데도 대갚음해주지 않는다. 가령 변이체 소동에서 주인공이 활약하여 공을 쌓게 되는데 학원장이 숟가락 얹는 것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던지. 변이체 소동에서 마족이 자신을 이용했고, 도시를 부숴버려서 재건에 뭐 빠지게 되었는데도 탓하기 보다 마족의 나라에 분점 내기를 희망한다.


얼핏 보면 사람이 좋다고 할 수도 있다. 어쩌면 대갚음해주지 않는 모습에서 타인이 상처받는 걸 두려워 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성격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희한한 캐릭터랄까.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을 들라면 이런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웃는 얼굴로 부조리를 당해도 대응하지 않는다고 호구라며 얕잡아 보다가는 큰일 난다는걸, 주인공은 길드장 '루토'의 심부름으로 그리토니아 제국에 가게 된다. 그리토니아 제국에는 '토모키'라는(얘도 여신에 의해 이세계에 소환되었다), 지구에서 왕따 당한 경험에 입각하여 힘이 곧 진리라는 걸 깨달아버린, 토모에의 말을 빌리자면 힘에 취해 인생 막장의 길로 들어선 그런 느낌이란다. 자신 이외의 사람은 물건 취급이고 합리성을 따지면서 상대의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말로가 주인공의 부하인 '토모에'에 대한 집착이다. 그녀를 빼앗기 위해 매료 스킬 수련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이전에 토모에에게 매료 걸려다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두들겨 맞아 놓고 뜻을 굽히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이번에도 주인공에게 토모에 내놔라 했다가 그야말로 또다시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는다. 


사실 주인공의 성격은 멍청이가 아니라 주변과의 관계성이 무너지는 걸 두려워하는 느낌이 강하다. 어떻게 이런 성격이 되어 버렸는지, 아마 지구에서 있었던 어떤 사건으로 타인이 상처받는 걸 극도로 꺼리게 되지 않았나 싶다. 이런 모습에서 관계성이 무너질 바엔 저자세로 나가는 게 좋지 않나 하는 일본 특유의 국민성이 녹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필자가 계속 멍청이라고 언급은 했지만, 이번 11권에서는 나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보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참 피곤한 스타일이다. 이것도 일종의 소심함의 극치라서 호감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사람에게도 건드리지 말아야 될 영역은 있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이 영역은 가족이다. 가족은 현재의 부하들이다. 몇 권인지는 잊어버렸는데 아공에서 모험가에 의해 주민이 죽자 엄청나게 분노한 일이 있다. 그리토니아 제국의 용사 '토모키'는 흙 발로 이 영역을 침범하려 했다가 실컷 얻어맞게 된다. 즉, 주인공은 무감각한 인간 아닌, 기본적으로 타인의 상처엔 민감하지만 내 영역을 지킬 때는 꼬리를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며 오기만 해봐라 확 물어버릴 테다 하는 개와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주인공은 주변이 보내오는 편치 않은 감정을 먹으며 조금식이지만 내면 성장을 이뤄간다. 그 성장이 더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근데 사실 주인공이 성장 안 해도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 게 이 작품의 특징이다. 왜냐면, 이세계에서 주인공의 부하들 토모에, 미오, 시키, 이들을 당해낼 자가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총의 안전장치처럼 걸쇠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이세계는 이들에 의해 멸망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사실 부하들은 멍청하게 당하고만 있는 주인공을 곁에서 봐야 하니 이보다 짜증 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라도 정신 차리고 있자고 하는 부분은 코믹이 따로 없다. 그리고 이들 말고도 주인공 본거지인 아공에는 용사급에 버금가는 인력들이 바글바글 거린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주인공은 이용해 먹기 좋은 먹이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포인트는 주인공의 역린(가령 토모키처럼 토모에에 집착한다던지)을 건드리면 그 순간 멸망 당할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장면들에서 이 작품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이야기에서 서로가 주인공을 자기 진영에 끌어들이고 이용하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의 감정 포인트가 어디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흥미가 솟는다고 할까.


여담이지만, 주인공의 2년 선배 히비키는 휴만(지구로 치면 인간)을 지키기 위해 이용 가능한 건 뭐든지 이용하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리미아 왕국의 위정자들은 그녀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으니 직접 나서서 휴만을 지키기 위해 차곡차곡 준비해나가지만 녹록지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용사답게 오로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정의로운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주인공까지 무덤덤하게 이용하려 하고 마족과 싸우다 죽길 바라는 정신이 어딘가 망가진듯한 모습을 보여 차후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굉장히 기대된다고 할까. 주인공은 히비키를 동향 사람이자 연심을 품은 사람으로 대하면서 그녀를 감싸기만 하니, 나중에 적이 되어 만났을 때 볼만해지겠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성격상 적으로 만난다고 해도 주인공은 싸우지 못할 것이다. 그리토니아 제국의 '토모키'는 재활용되지 않는 불연성 쓰레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지구에서도 그랬고, 이세계에서도 믿을 놈 없어서 매료 스킬로 내 쪽 사람을 만들 정도로 사람을 믿지 못하는 습성을 보여줘서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한 인물이다. 이렇게 이야기는 흐르고 흘러 마왕을 만나는 등 이전에는 간간이 흘러나왔던 인물들이 11권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맺으며: 이전부터 느껴오는 거지만, 누구보다 힘(능력)은 있는데 정치적으로는 말 빨, 그러니까 상대와 대화가 성립 되지 않는 주인공이 참 답답한 흐름이다. 상대가 강하게 밀어붙이면 어어~ 하며 밀릴 뿐이다. 누군가가 부조리한 요구를 하는데도 되받아치지를 않는다. 경험 부족일 수는 있으나 초반이라면 이해가 가는데 벌써 11권째다. 사실 부하들이 주인공을 이용하려는 무리들을 견제해주며 저놈 나쁜 놈이라고, 주인공 알게 모르게 접근을 막아주고 있으니까 길바닥에 나앉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이 말은 이런 부하들 덕분에 주인공은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걸까 하는 측면도 있다. 거기에 걸어오는 싸움에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그냥 찍어 눌러 버릴 뿐이다. 그래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경험을 하지 않아서 상황 판단이나 시류를 읽지 못하는 게 아닐까도 싶다. 요컨대 작가가 주인공을 멍청이로 만들고 있다고 할까.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늘 비슷한 처지에 놓이니 이걸 어째야... 아무튼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인가를 액기스로 보여주는 11권이다. 특히 그리토니아 제국의 왕녀 '릴리'가 용사 토모키를 이용하여 뭔가를 저지르려는 광기는 굉장히 흥미로운 요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 14.5 - L Novel
와타리 와타루 지음, 퐁칸 ⑧ 그림, 김장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번 14.5권은 다른 .5권이 그렇듯 여러 특전 부록을 한 권으로 모아 놓은 것이다. 외전은 본편 이야기와 관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새로운 이야기와 감정등을 알 수 있기도 한 게 특징이다. 그래서 14.5권은 무슨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냐면, 하치만(주인공)의 여동생 '코마치'가 새언니(오빠 와이프)로 누가 되었으면 좋겠는가를 두고 오빠와 열띤 토론을 벌이는 이야기. '잇시키'가 여름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뮤직 페스티벌에 모두 함께 보러 가는 이야기. 그러다 신입들이 학교에 어떻게 적응할까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 그러면서 서로 망신 주고받는 살벌한 이야기. 코마치가 봉사부를 이어받아 부장으로 취임해서 봉사부를 이어가는 이야기. 그리고 하치만과 유키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다른 외전은 주로 사이드 스토리를 가미하는 것과 다르게 이번 이야기는 14권 이후를 보여준다. 하치만과 유키노, 유이는 3학년으로 진학한다. 공부는 하는데 입학이 가능할까 늘 관심사였던 코마치도 무난하게 입학에 성공해서 주인공 일행의 후배가 된다. 코마치는 누구와 다르게 워낙 사교성이 좋아 무난하게 적응 중인 거 같고, 이에 오빠는 안심이 된다. 그래서 하치만은 이제 과거와 현재보다 미래를 바라보게 된다. 1년 후면 학교를 떠나 대학에 진학을 해야 하고, 그러면 뿔뿔이 흩어져야 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봉사부에서 지냈던 일들을 추억할 수 있을까.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봉사부를 이어받은 코마치는 자신들의 전철을 밟아 상처를 입기도 하고, 실패도 하고, 그러다 봉합도 하는 청춘을 보내게 될까. 뭐 이런 이야기들이다.


그래도 오빠의 걱정과 다르게 코마치는 매우 사교적인 데다 야무진 성격이어서 선배라고 주눅 들지 않고 놀리기도 하는 모습에서 봉사부를 완전히 물려받으면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 나오지 않을까도 싶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언급은 힘들지만 놀러 간 페스티벌에서 그 유키노에게 부끄러운 일을 아무렇지 않게 시키는 인물은 별로 없을 텐데 코마치가 해낸다(쏘아 올린 건 코마치, 받아서 유키노에게 넘긴 건 잇시키). 사람 부리는데 타고난, 카테고리는 다르지만 미우라와 쌍벽을 이루는 여왕 체질 '잇시키'에게도 뒤지지 않는 말발과 행동을 보여줘서 천하의 잇시키가 질려서 하치만에게 개념 없는 애(코마치)라고 하소연하게 만드는 인물이 코마치다. 이 정도면 오빠들이 졸업해도 봉사부를 잘 알아서 꾸려 가지 않을까 싶은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본편이 끝나면서 가장 궁금했던 게 하치만과 유키노의 뒷이야기다. 필자는 사실 완전히 완결되는 이야기로 하치만이 유키노 집안에 데릴사위로 들어가 사축이 되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렇진 않더라.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떴다. 만약 작가가 후일담을 또 쓴다면 분명 필자의 기대대로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키노는 14권까지 보여줬던 의존증은 많이 줄었다. 여전히 하치만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는 있지만. 몇 개월 앞으로 다가온 입시를 준비하면서 학원을 알아보러 다니게 되는데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게 되고(그게 못마땅한 잇시키), 거기서 유키노의 확고한 마음이 드러난다. 그런데 하치만 이 쉐키는 14권에서 유키노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면서도 그새 까먹었는지 어느 작품의 주인공처럼 난닷데?!를 시전한다. 언젠가 유키노 언니에게 칼 맞지 않을까.


맺으며: 사실 이번 14.5권은 잇시키를 기믹으로 해서(분량이 엄청 많다) 코마치의 이야기를 그려간다고 할 수 있다. 하치만과 유키노, 유이가 졸업하게 되면 혼자 남겨지게 될 코마치에게서 유키노를 엿보게 된다. 부원을 받지 않은 채, 홀로 그저 봉사부의 지금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려는 코마치의 마음을 하치만의 시각으로 잔잔하게 풀어낸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누구도 막을 수 없듯이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하치만의 일생에서 과거를 떠올리며 봉사부에 대한 추억을 언제까지고 간직할 수 있을까 하는 철학적인 물음도 있다. 아무튼 코마치가 생각하는 오빠의 평가라든가, 잇시키와 코마치의 입씨름 등 200여 페이지 밖에 되지 않은 짧은 분량에서 많은 볼거리를 보여준다. 그건 그렇고, 잇시키의 분량이 너무 많다. 좀 더 추억을 기리며 잔잔하게 끝낼 수 있었을 텐데, 텐션이 강해서 개밥에 도토리 들어간 기분이랄까. 물론 하치만 일행과 코마치(과거)를 이으는 선 같은 역할이라서 뺄 수 없는 노릇이었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세계 미궁의 최심부로 향하자 3 - S Novel
와리나이 타리사 지음, 박용국 옮김, 우카이 사키 그림 / ㈜소미미디어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하렘이라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방구석 폐인들이 현실에서 못다 이룬 꿈, 그들의 뇌내에 자리 잡고 있는, 이세계에 가면 나도 주인공이고 하렘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망상(필자가 한 말이 아님, 다른 사람이 한 말을 따라 하는 것뿐)을 그대로 표현한 게 이세계 하렘의 정석이라면 이 작품은 그 정석을 깨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이 작품도 주인공은 이세계로 전이되었고, 여자들이 무척이나 따라붙는다. 여느 이세계물이라면 이 작품 히로인들 또한 서로 힘을 합쳐 싸워 나가고, 유대를 쌓아 주인공과 러브러브 한 관계가 되는 흐림이 올바른 길이었을 것이다. 서로 알력과 다툼 보다는 적을 맞아 분연히 맞서 싸우고, 이해하며 힘을 실어주고 등을 떠밀어 주며 모두가 사이좋게 주인공과 맺어지는 그런 해피한 엔딩을 맞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이 작품은 고만고만한 작품으로 끝을 맞이하고, 라노벨 특성에 맞게 무난한 엔딩을 보여 주었을 것이다. 즉, 방구석 폐인들의 망상이 현실이 되고 그 망상은 승리를 거머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문제를 뒤로 미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if)을 가정해보자. 주인공이 이세계 전이되면서 미궁에 떨어지고 여자 모험가에게 연연하지 않았다면 '라스티아라'를 만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술집에서 알바를 하지 않았다면 '디아'를 만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오로지 살아서 미궁을 돌파하고 현실로 돌아가고파 모든 것을 이용하고 싶었던 주인공이 노예 경매에서 '마리아'를 구입하지 않았다면, 미궁 돌파에 목숨을 걸어 무리하게 시도하다가 10층, 20층 미궁 가디언(보스)을 만나지 않았다면?라는 가정을 두고, 그러면 주인공은 분명 적어도 히로인들에게 칼 맞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세상을, 모험을 동경하여 새장을 뛰쳐나온 히로인이 있다. 사랑을 알고 싶어 하는 몬스터(히로인)가 있다. 버림받고, 이용당하는 것에 신물이 나서 도망친 히로인이 있다. 자신을 구해주고 있을 곳을 마련해준 주인이 고마워 연심을 품는 노예 소녀가 있다. 


그녀들의 공통점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녀들은 갈 곳 없는 마음을 기댈 곳을 찾았고, 그 마음이 향한 곳이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이용 가능한 것은 어떤 것이든 이용하려는 주인공에게 이때의 그녀들은 좋은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옛날, 일도 안 하는 양아치를 먹여 살리느라 부인이 애를 들쳐 업고 노점을 했던 어느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부인이 안쓰러워 양아치를 죽이게 된다. 그러자 부인도 곧 뒤따라 가버린다. 부인이 양아치에게서 해방되어 잘 살줄 알았던 주인공은 부인의 행동을 이해 못하게 된다. 그때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그런다. 기댈 곳을 잃은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양아치라도 부인에겐 기댈 곳이었다. 이 작품에서 양아치는 주인공이다. 히로인들은 양아치에게 기대는 부인이다. 이 이야기의 본질은 양아치가 나쁘다, 부인의 행동이 이상하다가 아닌 세상 갈 곳 없는 마음이 모여 기댈 곳을 찾는다에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언젠가 파탄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양아치가 개과천선을 하여 부인과 같이 노점을 하며 살아가는 해피엔딩은 평행 세계엔 분명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속한 이쪽 세계에서는 파탄이 생기는 분기점이 있다. 해피엔딩으로 갈 것이냐, 파탄으로 갈 것이냐는 오롯이 주인공 손에 달렸다. 하지만 작가는 파탄으로 가고 싶어 한다. 작가의 손에서 창조되는 주인공은 작가의 의도에 따를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다크 판타지로 희망도 꿈도 뭣도 없다. 작가는 주인공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제 시키려 한다. 주인공은 누군가에 의해 정신을 지배받고 있지 않을까 하는 큰 복선을 투하 중이다. 그래서 '라스티아라'가 옛 시절 성인(위대한)을 재림 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몸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가 곧 있을 성탄제에서 '라스티아라'라는 존재는 말소되고 '성인 티아라'가 재림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를 구하는데 주저하게 된다. 이 주저는 해피엔딩이냐, 파탄이냐의 분기점에서 파탄으로 이어지게 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그 주저는 노예 소녀 '마리아'에게도 미친다. 자신을 구해주고, 보살펴 주고, 쫓아내지 않고, 겁탈하지 않는 주인공이 무엇보다 고마웠을 것이다. '마리아'의 비극은 타인이 하는 말에서 거짓과 참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연심을 품어가던 주인공이 어느 날부터 자신을 피하고, '라스티아라'에게 신경을 더 쓰고, 곁에 있고 싶은데 미궁엔 데려가지도 않고, 이러다 또 혼자 남겨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은 마리아의 마음을 갉아먹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마리아에게 있어서 최대의 불행은 10층 가디언(보스) '아르티'를 만났다는 것이다. '아르티'는 사랑을 갈망하고 있다. 1천 년 전 동료에게 연심을 품었다 배신 당한 듯한 그녀는 사랑에 집착한다. 결과 '마리아'가 품고 있는 연심하고 일맥상통(아르티는 마리아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본 듯) 하게 되고, 주인공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다며 집착한 끝에 자기와 비슷한 마리아에게 눈독 들이게 된다. 아르티의 만행은 주인공의 주저와 더불어 파탄을 완성해버리고 만다.


'라스티아라'는 '성인 티아라'를 위한 제물이자 그릇이다. '성인 티아라'가 재림하면 '라스티아라'의 본질은 사라진다. 짧은 만남에서 그녀의 순수한 감정을 엿봤던 주인공은 그녀를 구하고자 한다. '마리아'는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고 싶어 하고, 마음에 딴 데 가 있는 주인공이 못마땅하다. 이미 노예 시절부터 마음이 파탄이나 있던 마리아에게 있어서 안주할 땅이었던 주인공이 자신을 놔두고 '라스티아라'를 구하러 간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아르티'는 이제 집착성 사랑을 갈구하기에 이른다. 마리아와 아르티의 본질은 비슷하다. '일그러진 사랑', 그래서 아르티가 마리아를 부추기는 건 당연한 수순이 되고 따라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것도 당연하게 된다. 마리아는 자신만을 바라봐 주지 않는 주인공이 원망스럽다. 그래서 둘의 거처였던 저택에 불을 지르는, 이때까지 듣도 보도 못했던 광기에 찬 히로인이 탄생하게 된다. 스쿨데이즈에선 칼 맞고 끝나지만, 이 작품에서의 히로인은 주인공을 미라로 만들어서 보살피기로 한다.


불타는 저택을 배경으로 다시 만난 주인공과 마리아 그리고 아르티의 장면에서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분위기를 보여주게 된다. 마리아는 주인공을 미라로 만들어서라도 그를 곁에 두려 한다. 아르티는 그걸 부추기고 있다. 이것은 주인공의 주저와 우유부단함의 말로다. '마리아'라는 연심을 외면하고 뒤로 미룬 결과가 도래하게 된다. 처음 확고하게 '라스티아라'를 거부했다면? 20층 가디언(보스)를 물리친 주인공이 아르티도 토벌했다면? 마리아를 구입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건 합리성과 효율만을 따져 그녀들을 이용하려 했던 주인공의 업보다. 이런 부분에서 스쿨데이즈를 연상케 한다. 물론 ???라는 스킬 때문에 감정을 컨트롤 당한 일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면죄부는 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을 도구로 취급하려 했던 죄는 없어지는 것이 아닌지라 이 업보는 주인공이 고스란히 받아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파탄으로 흘러가고 주인공은 죗값을 톡톡히 치러야만 한다. 주인공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맺으며: 사실 주인공 일행은 누군가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는 결과를 보여주지만 필자는 3권을 끝으로 하차할 예정이고, 그거까지 언급하면 리뷰가 길어지기에 생략했다. 본 리뷰는 보이는 것만 언급한 것이다. 이면을 파고들면 뭐랄까 이야기가 굉장히 탄탄하고 호러스럽다. 


아무튼 히로인 '아르티와 마리아'가 보여주는 광기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하렘이라고 좋은 것은 아니라는 예를 이 작품이 여실히 보여준다. 사모하는 주인공을 불로 구워 미라로 만들어서 보살피겠다니 이게 제정신인가 싶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것밖에 모르는 불쌍한 히로인들이다. 할 수 있는 건 없고, 따라가고 싶어도 못할 때의 심정, 그저 옆에 있고 싶은데 바라봐 주지 않는 고통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나쁘게만은 평가할 수가 없다. 다만 진행이 너무 빨라서 독자들의 의식이 따라가주지 못한다는 문제점 있다. 3권까지 이어지면 얼추 제법 진도가 나가지 않았을까 싶지만 주인공이 이세계로 전이되고 고작 14일 밖에 지나지 않았다. 14일 만에 연심을 키우고 유대를 쌓기엔 좀 부족하지 않을까. 라스티아라는 같이 미궁을 답파하면서 어느 정도 동료로 의식을 했고, 그렇기에 희생되려는 그녀를 주인공이 구하려 한다는 명분은 있었다. 


하지만 마리아의 경우는 2권에서 첫 출연하여 주인공이 별다른 작업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되팔아 버리겠다는 말까지 했다. 미궁에 데려가 총알받이로 쓸려고 했다. 그런데도 알아서 호감도가 상승하고 급기야 광기에 접어들기까지. 고작 14일 만에 이렇게 사람이 변하나? 노예로서의 분간을 망각하고 주인에 대한 연심을 품어가는 행위는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해야겠다. 물론 개연성을 위해 아르티를 붙여주게 되는데, 아르티는 그녀대로 급발진을 해댄다. 2권 초반에서 만나 사랑을 알게 해달라며 의뢰를 해놓고는 이후 이렇다 할 접점을 만들지 않다가 3권에서 느닷없이 모든 흑막을 자처하는 행위는 작가가 이야기 분배에 있어서 실패했다고 봐야 할까. 아무튼 주인공이 보여줬던 주저와 우유부단함의 죗값으로 충만해야 될 하렘은 불살라지고,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어 끝 맛이 안 좋은 술처럼 최악을 향해 달려가게 된다. 사실 해피엔딩 보다 이렇게 개고생하게 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세계 미궁의 최심부로 향하자 2 - S Novel
와리나이 타리사 지음, 박용국 옮김, 우카이 사키 그림 / ㈜소미미디어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1권 리뷰에서 주인공을 소시오패스라 정의했는데 이번 2권에서는 많이 엷어진다. 아마도 작가가 흥미를 유도하기 위해 전략을 짠 듯 한데 이번 2권을 읽으면서 느꼈던 건 한번 노선을 정했으면 그대로 밀고 갈 것이지 왜 성격을 바꿔서 불쾌하게 만드는 것인가다.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이용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 이용하려 했던 주인공이 이번 2권에서는 타인을 구하기 위해 근본 없이 무작정 뛰어드는 모습을 자주 보이게 된다. 이것은 효율과 합리성을 따지는 주인공에게 있어서 이물질이나 다름없다. 물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는 게 인지상정인 건 맞다. 하지만 내 코가 석자고, 구해준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예측을 하지 않아 불필요한 요소들을 양산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욱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미궁에서 구해준 인물들이 차후 주인공과 인연을 맺을 거라는 복선을 투하한다는 것이고, 이런 흐름은 사실 주인공의 성격은 매우 이타적입니다. 하는 기믹과도 같아서 도서를 읽는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읽는 내내 이물질이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는 느낌이 장난 아니게 된다.


어쨌거나 주인공의 성격보다도 이 작품에서 매우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맹목적이 되어가는 히로인들을 들 수가 있다. 1권 히로인이었던 '디아'는 어릴 적 신체적 결함 때문에 집에서 버림받고, 교회에서 이용당하다 도망친 끝에 주인공을 만난다. 세상 믿을 놈 하나 없는 상황에서 밥을 주고, 손을 내밀어 주는 주인공이 매우 고마웠을 수는 있다. 하지만 도움을 받은 것과 목숨을 거는 것은 별개다. 미궁에서 몸을 던져가며 주인공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몬스터와 싸워 가는 모습은 광기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주인공이 미궁 클리어를 위해 자신을 이용하고 있다는 걸 알아도 그녀는 분명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다. 어릴 적 교회에서 그토록 이용당했으면서, 주인공에게 또다시 이용당하는 모순을 작가는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주인공이 '디아'의 헌신을 고마워하고 평등한 동료로서 대해준다면 문제없을 것이다. 그런데 20층 보스 몬스터와 전투에서 '디아'는 한쪽 팔을 잃고 만다. 이세계는 마법이 있지만 만능은 아니다. 없어진 팔이 뚝딱 생겨나진 않는다. '디아'는 당분간 리타이어 된다. 주인공은 '디아'의 헌신을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고 있다.


그다음 히로인은 '아르티'다. 10층 보스 몬스터로서 인간과 완전히 똑같은 외견과 감정과 언어를 가지고 있다. 간간이 여타 작품에서도 몬스터가 히로인이 되는 일은 많았으니 크게 놀라운 점은 아니다. 주인공이 20층 보스 몬스터와 일전을 벌일 때같이 등장해 방관자 모드였다가 이후 느닷없이 나타나 주인공에게 몬스터 주제에 '사랑'을 알고 싶다며 협조 해달라고 조르게 된다. 주인공으로서는 보스라는 강력한 몬스터의 폭주를 우려해 협조는 하나 경계를 늦추지 않는 점에서는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아르티'조차 왜 주인공 앞에 서서 미궁 몬스터를 쓰려 트려 가는 것인가 하는 의문점을 낳게 한다. 주인공이 그녀의 허점을 노려 일부러 위기에 빠지게 되는데 '아르티'는 몸을 날려 주인공을 구해준다. 이쯤 오면 주인공의 정체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점이 생기기 시작한다. 전생에 여자를 후리고 다녔던 기둥서방이었거나, 세계를 구한 영웅이었거나, 아주 잘 생긴 미남이었거나, 1천 년이나 살아온 '아르티'는 주인공과 면식이 있다는 복선이 투하되는데 자세한 건 모르겠다. 이후 아르티는 '사랑'에 집착해 주인공의 주변을 어지럽히면서 골칫덩어리로 다가온다.


'아르티'와 미궁 모험 중에 위기에 빠진 '프랑류르'라는 히로인을 구해주게 된다. 그녀는 4차원적으로 정신 나간 포지션인데 한번 도움받았다고 주인공을 아주 남편으로 대하는 모습에서 작가는 여자에 대해 뭔가 환상을 품고 있나 하는 느낌을 받게 한다. 아닌 게 아니라 '프랑류르' 포함 그녀의 파티 중 3명이 여성이다. 아주 그냥 주인공 주변에 여자들이 우굴우굴 거린다. 좀 알아보니 1회성 만남도 아닌 듯하다. 그녀의 파티원 여성하고도 미래에 어떤 만남이 있는 듯하고. 예사롭지 않은 등장인물 하며 건성으로 읽으면 자그마한 복선을 놓치기 십상이라서 어떤 면으로 독자들의 정신을 갉아먹는 작품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다음 히로인으로 이세계물에서 빠질 수 없는 노예 소녀다. 이름은 '마리아'인데 주인공이 미궁 협력자를 구하기 위해 노예 경매장에서 구입하게 된다. 이 쉐키 돈으로 사람을 사는 것에 거부감이 전혀 없다. 그래서 그런가 여난(女亂)이 시작된다. 고분고분할 줄 알았던 '마리아'의 거침없는 언변은 주인공 치부를 적나라하게 까발려 버린다. 약자를 도와주는 것으로 성취감과 만족감을 얻는 변태 취급을 당하니 이보다 고소한 경우는 없을 것이다.


이제 문제의 히로인 '라스티아라'다. 1권에서 죽을뻔한 주인공을 구해주게 되면서 안면을 트게 되는데, 그녀는 주인공처럼 타인의 능력(스테이터스)을 알아볼 수가 있다. 그래서 주인공이 이세계 전생자라는걸 간파하게 되고 이후 자신의 인생에 '전환점'을 불어 넣어줄 사람으로 주인공을 택한다. 여기엔 배려와 허락은 필요치 않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주인공을 꽁꽁 묶어 차가운 바닥에 방치해서 만 하루 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한 일도 있다. 그러니 거절하는 주인공을 언변으로 찍어 눌러서 찍소리 못하게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기 보다 자신의 감정을 우선시함으로써 타인이 겪는 불합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야 할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해야 할지.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그녀의 모습에서 만약 수명이 오늘 하루뿐이라면 그 하루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그녀는 모험가를 동경하여 주인공과 함께 미궁에 들어가 모험을 하고 싶어 한다. 현재 주인공과 접점에 매우 큰 히로인이라 할 수 있으며, 미래 진히로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복선을 매우 많이 뿌리고 다니는 중이다. 


이렇게 여러 개성이 매우 강한 여러 히로인들을 만나게 되면서 주인공의 소시오패스적인 성격은 많이 희석되고 약자(여성)는 도와줘야 된다는 이타적인 성격으로 바뀌어 가게 된다. 물론 약점을 잡혀서 히로인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점도 있긴 한데, 라스티아라의 말처럼 이런 건 말주변으로 얼마든지 타파 가능하다는 점에서 주인공의 이타적인 성격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점들이 상당히 불쾌하다는 것이다요약해서 표현하자면, 주인공은 못된 놈이지만 사실은 매우 착한 놈이에요랑 같은 거니까 독자들을 기만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주인공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캐릭터가 '마리아'다. 주인공의 행동은 약자를 도와주고 안심감과 만족감을 느끼는 주인공의 내면을 정확히 보고 있다. 아무튼 주인공의 주변의 히로인들은 정상인이 하나도 없다. 모두가 주인공을 위해 뭔가를 하려 하고 몸을 던져서 주인공을 지키려 하는 맹목적인 광기를 보여준다. 주인공의 본질을 보고 있는 '마리아'는 한층 더 집착에 가까운 광기를 보여주게 되는데, 등장하는 히로인들마다 왜 이러는지 작가는 시원하게 밝히지를 않아 더욱 불쾌하게 한다.


맺으며: '라스티아라' 그녀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분위기가 어째 파국으로 치닫는 느낌을 준다. 이전부터 주인공은 이세계에 여러 번 온 게 아닐까 하는 복선이 투하되고 있고, 일부 히로인에게서 주인공을 이전부터 알고 있는 듯한 복선 또한 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설정에서 매우 치밀한 작품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매우 언짢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사람을 철저히 이용하든지, 용사처럼 약자를 구하고 보호하던지, 이거 했다가 저거 했다가 감정 기복이 왔다 갔다 하는 주인공도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고, 타인의 감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나대는 몇몇 히로인들도 상당히 불편하다. 뭐 사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이라 할 수 있다. 조신하고 헌신적인 히로인 보다 자기 할 말 다하고, 인생을 즐기기 위해, 뭔가를 찾기 위해 주인공을 이용하고 그런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돼서 얀데레가 되어가는 히로인들은 여느 작품에서는 쉽게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문제아 히로인들이 다 모였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에겐 여난이 따로 없고. 아무튼 필자와 맞지 않아 하차하려 했는데 어느새 3권을 구입해둬서 3권을 마저 읽고 하차하든지 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