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직전생 6 - 이세계에 갔으면 최선을 다한다, Premium Extreme Novel
리후진 나 마고노테 지음, 한신남 옮김, 시로타카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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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좀 심각한 스포일러가 들어가 있으니 싫으신 분은 빽 하시거나 페이지를 닫아 주세요.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6권입니다. 이번 6권은 루데우스와 에리스에게 있어서 터닝포인트이자 대규모 전이 사건의 종착점에 해당하는데요. 마대륙으로 날아갔던 루데우스와 에리스 거기서 만난 이들의 보호자였던 루이젤드는 2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겨우 중앙 대륙으로 돌아왔습니다. 중간에 아버지 파울로를 만나 어머니 제니스를 비롯해 리랴와 아이샤의 소재도 불명이라는 소식을 접했고, 아버지와의 성격적인 엇갈림으로 곤욕을 치르다 겨우 화해하는 등 루데우스는 전생의 나이를 합치면 40이 넘었다지만 12살(전이 직전에는 10살)의 몸으로 고생을 참 많이 하였죠. 든든한 보디가드 루이젤드가 같이 있었다곤 해도 에리스를 지켜가며 고생한 2년이라는 시간은 루데우스에게 어떤 성장을 가져다주었을까.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에리스의 마음엔 어떤 감정을 불러왔을까. 성장엔 아픔이 있기 마련이라는 듯, 이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모험은 지금부터라는 듯, 세상은 이들에게 가혹한 현실을 들이밀기 시작합니다.

 

인신(히토가미)에게서 리랴와 아이샤가 지금 있는 곳을 알게 된 루데우스는 아슬라 왕국으로 가는 걸 잠시 멈추고 이들 모녀를 구하기 위해 시론 왕국으로 향합니다. 중앙 대륙에 발을 들이고도 다시 4개월이라는 시간을 들여 찾아가요. 그리고 거기서 변태 왕자 둘을 만나 고초를 겪죠. 그 중심엔 록시가 있는데 이건 뭐 아무래도 좋고, 중요한 것은 이 부분을 읽으면서 변태 왕자들의 등장이 꼭 필요한 대목인가 곰곰이 생각해보게 한다는 겁니다. 루데우스는 무의식 공간인지 이공간인지에서 간간이 인신(히토가미)을 만나죠. 마대륙으로 전이되었을 때 루이젤드를 도와라라는 메시지를 받았고, 어떤 항구도시에서 마계 대제 키시리카를 만나게 했고, 이번엔 모녀가 거기에 있다는 전재를 깔며 루데우스가 시론 왕국으로 가도록 해서 왕자들을 만나게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모녀는 구출이 되었지만, 인신(히토가미)은 이번엔 왕자들과의 접점까지 만들게 했습니다.

 

이쯤 되면 아무리 돌머리라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게 마련이죠. 그래서 루데우스는 곰곰이 생각합니다. 인신(히토가미)에게 놀아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참 일찍도 깨닫는다 했습니다. 쌈에 고기 한 점을 넣고 나머진 매운 고추를 넣어 뱉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먹지도 못하게 하는 전술이라고 할까요. 인신은 루데우스에게 진짜 정보를 주면서 진실은 감춰버리는, 그걸 어렴풋이 알면서도 루데우스는 그(인신)의 말을 반발하면서 곧이곧대로 믿고 행동에 옮길 수밖에 없었죠. 이런 부분에서 인신(히토가미)은 루데우스를 장기짝으로 써서 무언가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불러왔는데요. 이 반증은 아슬라 왕국 진입 직전에 만난 '용신 올스테드'를 통해서 거의 확정적이 되어 버립니다. 처음엔 그냥 엇갈려 가려던 이 두 사람은 '인신'이라는 키워드가 발동되자 올스테드는 루데우스를 죽이려 들고 다시 인신과 만난 루데우스는 올스테드가 어떤 인물인지 듣게 되죠. 그리고 이 두 신(인신, 용신)은 반목한다는 것도...

 

작가가 이렇게 이야기 중간중간 포석을 깔아두는 솜씨가 좋습니다. 복선이라고도 하는데 문제는 이렇게 넓게 깔아두다 보니 나중이 되면 알아먹을까 하는 것이군요. 이건 뭐 차차 어떻게 되겠죠. 아무튼 이렇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여행은 끝을 고하게 됩니다. 드디어 아슬라 왕국에 진입하고 다시 몇 개월이 걸려서 루데우스의 고향 피트아령에 도착은 하였지만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건 새로운 여정이었으니...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던 루이젤드는 임무를 완수했다며 길을 떠납니다. 언제나 이별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죠.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습니다. 전이 사건으로 허허벌판이 되어 버린 피트아령은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에리스의 할아버지와 부모의 생사는 충격을 안겨주고 여기에 집안끼리의 사정과 정치적인 목적까지 겹쳐지니 과연 이 애들이 이걸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던지게 합니다. 에리스의 미래, 남존여비인 이세계에서 이제 그냥 여자애에 불과한 에리스의 처지는 말해 무얼 할까 싶은 일들이 벌어지죠.

 

그런 그녀의 어깨를 감싸줘야 될 루데우스는 뭐하고 있는 것일까. 작가는 주인공을 발암으로 키우고 있지는 않는데 여기서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히로인을 감싸주고 위로해주고 나서서 뭔가를 해줘야 되는 부분이 아닐까 했습니다. 3년여 동안 여행을 하며 루데우스의 등만 바라보고 쫓아왔던 그녀에게 지금 필요한 건 무얼까. 고향은 사라졌지, 어릴 적 존경의 대상이었던 할아버지는 전이 사건의 책임을 지라며 아들놈에게 처형 당했지, 친척 아저씨는 첩으로 들어오라고 하질 않나, 부모는 어딘지 모를 토지에서 객사했다는 소식은 이제 15살인 그녀가 짊어지기엔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죠. 그런 그녀를 방안에 혼자 놔두고 나와버리는 장면에서는 미래가 예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는 결단을 내립니다. 가족을 원한다고 그에게 속삭이는데...

 

이후 에리스의 내면을 비추는 장면이 구구절절하게 흐릅니다. 그와의 여행을 추억하며 언제나 짐 밖에 되지 않았다고 자조 섞인 말을 늘어 놓는 장면은 애절하게 만드는데요. 천둥벌거숭이처럼 10살 때 이미 온 동네 남자애들을 휘어잡으며 정상에 군림했던 그녀가 난생처음 자신의 발길질에도 나가떨어지지 않는 그에게 흥미를 보이기 시작하고, 전이 사건을 겪으며 마대륙에서 그 어린 나이에 각종 위험을 돌파하며 그는 많은 일들을 해주었습니다. 굶어죽지 않게 모험가가 되고, 의뢰를 받아 처리하면서 죽을 뻔도 하였고, 노예상인들에게 고초도 겪는 등, 항상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자신을 지켜준 건 누굴까. 그리고 올스테드와의 싸움은 결정적으로 그녀의 다짐에 불을 지펴 버리죠. 그래서 강해지자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는 갈망은 그녀를 하여금 어떤 결단을 내리게 하죠. 그리고 아침, 어제저녁에 있었던 일들을 상기하며 매우 들뜬 루데우스에게 벌을 내리는 것처럼 그의 방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맺으며, 인신이니 용신이니 다 떠나서 히로인이란 이런 것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아닐까 했습니다. 리랴의 맹목적인 루데우스 신앙을 딸 아이샤에게 주입하려는 모습에선 기겁을 했고, 그런 엄마에게 반발하여 6살에 사춘기를 겪는 모습을 보이는 아이샤의 귀여움은 차지하더라도 에리스의 각오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군요. 먼치킨 주인공이라도 틈은 있기 마련이고, 주인공이라도 한낱 인간에 불과하여 모든 걸 생각하고 대응하지 못한다는, 그래서 잃고 난 뒤에야 비로써 소중한 걸 알게 된다는 메시지.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 강해지려는 히로인은 언제나 눈부시죠. 그런데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섹슈얼리티는 여전히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아이샤의 옷을 갈아입히는 대목이라던지, 어릴 적 리랴를 덮치는 파울로를 굳이 재조명할 필요가 있었나 싶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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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티처 10 - S Novel+
네코 코이치 지음, Nardack 그림, 천선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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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에피소드는 엘프 '피아'편입니다. 그녀는 일정한 나이가 차면 세계를 10년간 여행을 해야 된다는 마을 관습에 따라나섰고,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마을로 돌아가던 중 일단의 무뢰배들에게 습격을 당했었죠. 절체절명의 순간 주인공 시리우스가 구해주게 되었고(이때 주인공 나이 6~10세쯤), 그녀는 10년 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마을로 돌아갔었습니다. 그리고 9년이 흐른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의사와는 반대되는 강요를 받아들이지 못해 마을을 뛰쳐뛰쳐나왔고 그길로 시리우스를 찾아오게 되었는데요. 9년 전 자신을 구해준 아직 꼬맹이었던 시리우스에게 그녀는 어떤 감정을 품고 있었을까. 사람의 마음은 미화되기 마련이라는데 그녀 또한 그러했을까. 2백 년을 살아온 그녀가 그동안 다른 남자를 만나지 못했을 리는 없을 텐데 유독 시리우스에게 감정이입하는 건 한눈에 반했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이세계의 남자들은 변변치 못했던 것일까.

 

그녀는 도박에서 이겼습니다. 9년 전 강함과 상냥함을 겸비했던 그(시리우스)가 지금도 변함이 없을까 하는 두근거림(치곤 작중 표현이 밋밋하였던 거 같은데)을 안고 그를 찾았고 자신의 생각대로 변함이 없는 그에게 홀딱 빠져서는 얼마 못 가 동침이라는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는 고양이가 되어 버렸죠. 그리고 공공연하게 자식을 낳아 대대로 기르겠다는 포부를 밝힙니다. 찰나의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을 분침으로 비유하자면, 엘프는 느긋하게 굴러가는 시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엘프에게 있어서 인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죽어버리는 생물에 지나지 않아요. 그럼에도 그것을,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그녀에게서 "각오"가 느껴지는 대목이었군요. 이별을 슬퍼하기 보다 남겨진 가족의 뒷바라지하며 그것만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그녀에게 남다른 강한 기개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자, 레우스의 단짝을 찾아주고 다시 여행길에 오른 시리우스 일행은 피아의 마을 근처까지 왔습니다. 장인어른께 인사라도 드려야 되지 않을까 숲 근처에서 전전긍긍하는데 마침 니들 잘 왔다는 것처럼 마을에서 소란이 벌어지고 피아의 아버지가 절체절명에 빠지게 됩니다. 어째서 주인공이 가는 곳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제쳐두고, 얼마 전 싸우고 헤어졌다지만 그래도 자신을 낳아주신 아버지인데 모른 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상냥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피아는 마을로 직행하지만 거기서 그녀와 시리우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전례 없는(없지는 않지만) 강적들이었으니... 그동안 주인공이 먼치킨으로 무쌍을 찍어왔던 걸 비웃듯 상황은 피아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시리우스로 하여금 절망이란 이런 거라는 걸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사실 필자는 바랐습니다. 먼치킨 주인공이라도 팔을 뻗어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구하겠다는 신념이 무너졌을 때 주인공은 어떻게 될까. 이번 10권은 가수 이선희의 '그대 향기'라는 노래가 생각나는 에피소드이기도 한데요. 피아는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찾아왔고, 소원대로 그를 다시 만나 이제야 꿈이 시작되건만, 피지도 못하고 접어야 할 때. 피아가 9년이나 기다렸던 그리움...은 작가가 살리지도 못해서 필자는 닭 쫓던 개가 되어 버렸습니다. 내 여자에게 손댄 죄는 결코 작지가 않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양, 마력 해방이라는 중2병을 가미하며 날뛰기 시작하는데, 그럼 그렇지 이 작품이 원래 이런 분위기라는 걸 그동안 봐왔고 알고 있으면서 주인공과 작가에게 뭘 기대하였는지 씁쓸하게 입맛만 다시게 하였군요. 그런데 죽음을 맞이했던 피아는? 작중 분위기가 그렇게 놔두질 않는다고, 필자는 닭 쫓던 개가 되었다는 것에서 눈치를 채 주셨으면 합니다.

 

전생에서 에이전트로 일하며 각종 궂은일을 도맡아 하다가 객사한 후 이세계로 넘어온 시리우스, 그에겐 그를 가르친 스승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현세에 있을 때 어느 날 그를 놔두고 홀연히 모습을 감췄던 스승,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요리는 궤멸적이고 가사는 빵점인 스승을 대신해 어릴 때부터 모든 걸 해왔던 주인공은 걱정이 아닐 수 없었죠. 그런 스승은 어디 가면 만날 수 있을까. 스승은 이세계에서 나무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이게 최대 스포일러이긴 한데 맥락 없이 이렇게 써놓으면 어떤 스포일러인지 모를 테니 그냥 써봅니다. 그리고 피아가 10년을 못 채우고 마을을 뛰쳐뛰쳐나오게 만들고 그녀(피아)를 죽기 직전까지 만든 원흉이 스승으로 밝혀지는데... 스승을 통해 시리우스가 어떻게 이세계로 오게 되었는지 경천동지(까지는 아니지만) 할 비밀까지 드러나며 모두를 놀라게 합니다.

 

맺으며, 이번 10권은 피아의 어정쩡한 관계였던 마을과 가정사를 정리하고, 시리우스는 피아의 아버지를 만나 히로인들의 포지션을 조금 더 명확하게 해주는 에피소드라 할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 안 하고 쓸려니 자꾸 두리뭉실해지는군요. 아무튼 전생에서 가족이라는 유대를 경험하지 못했던 주인공으로 하여금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알려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할까요. 여자를 하나도 아니고 여럿을 책임져야 되는 상황, 가족이 늘어나면 감당해야 될 무게, 부모에게서 가족을 꾸려가는 노하우를 전수받지 못한 걸 스승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며 히로인들과 더욱 유대를 돈독히 하려는 뭐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했습니다. 그나저나 역자 분이 바뀌면서 작중 분위기가 상당히 부드럽게 변했습니다. 무엇보다 오타와 문맥 파괴가 없어지면서 읽는데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게 뭣보다 좋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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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의 노기사 2 - J Novel Next
시엔 Bis 지음, 사사이 잇코 그림, 이신 옮김 / 서울문화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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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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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드 로엔', 나이 58세, 중세 시대를 표방하는 이 작품에서 58세란 적잖은 나이인 것만은 틀림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쉬는 것보다 모든 걸 내려놓고 죽을 자리를 찾아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기사로써 소임을 다하고자 청춘을 받쳐 모셔왔던 테루시아 가(家)를 떠나 유유자적 여행을 하던 중 그의 성품과 검 실력에 매료되어 어느새 동료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그와 함께하게 되었죠. 못된 영주를 혼내주고, 사람들을 도와주며 여행하길 어언 1년여, 그런 그에게 당도한 슬픈 소식, 젊었을 적엔 사모하였기에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고, 늙어서는 그녀의 안전을 위해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전해진 그녀의 부고는 그의 마음에 어떤 파장을 불러왔을까. 하지만 그녀의 아들이 장성하여 한 나라의 왕으로 추대되는 것을 지켜본 그에겐 미련은 없어 보였습니다.

 

젊은 여기사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발드에게 또 어떤 여행길로 인도할까. 발드는 고든과 줄챠가와 여행을 하던 중 어느 숲속에서 마비가 되어 움직이지 못하던 여기사 구해주게 됩니다. 모시는 왕녀에게 자신의 강함을 선물하고 싶었던 그녀는 무리하면서까지 머나먼 변방으로 여행길에 올랐고 동행하던 다른 기사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려던 차에 어떻게 기지를 발휘하여 위기는 모면하였으나, 이렇게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버렸군요. 여차여차 그녀를 들어 옮기는 발드와 그의 일행들, 깨어난 그녀는 이들에게 마수를 잡고 싶으니 도와 달라고 합니다. 내년 경무회(무술 대회 같은 거)에 나가려면 실적이 필요하고 마수를 쓰러트리면 인정받는다는 그녀의 말에 남존여비인 이 시대에 그녀의 말과 행동은 괴짜로 비칠 수밖에 없었어요.

 

유유자적 여행을 하고 싶었건만 가는 곳마다 어찌 된 일인지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습니다. 여기사를 구해줬더니 이번엔 그녀를 노리는 일단의 기사들과 마주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야만 했고, 그녀를 알면 알수록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빠져 가요. 이것도 인연인가 싶어 발드와 그의 일행은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 그녀의 나라를 향해 여행길에 오릅니다. 이 작품은 이런 느낌이 강해요. 길을 가다 인연이 닿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사정에 얽혀 사건으로 이어지고 발드와 그의 일행은 해결을 해가죠. 그 과정에서 나쁜 놈들을 응징하고 백성들을 구해주며 명성을 쌓아가요. 그리고 하나의 인연이 끝나면 또 여행길에 오르고 다시 새로운 인연과 만납니다. 이 과정에서 소란스럽지 않게 자극적이지 않게 정통 판타지를 지향하며 파스텔 분위기를 자아 가는 게 이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먹방,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먹방이 되겠습니다. 누구는 딱딱한 빵에 말라비틀어진 육포를 씹고 포도주로 입가심을 하는 반면에 발드는 들판에서 강에서 식자재를 구하는 솜씨가 대단히 좋습니다. 미지의 음식을 두고 두려움을 느끼기보다 이것은 무슨 맛일까 하는 두근거림을 앞세워 한 입 베어 물고 천상의 맛을 표현하죠. 세상사 근심을 다 털어내는 맛, 늘그막 그에게 남은 건 음식 밖에 없다는 것마냥 이야기의 반은 음식으로 소화합니다. 보통 먹방은 처음은 신선해도 비슷한 레퍼토리가 이어지면 지루하기 마련이나 이 작품의 작가는 지루함과는 거리가 멀어요. 매번 새로운 식자재가 나오고, 맛을 표현하는 부분에서는 상상력을 자극하죠. 현실에서는 구할 수 없는 공상의 식자재라서 더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튼 여기사를 맞아들여 그녀에게 검을 가르치기 위해 한 곳에서 머무는 발드와 그의 일행, 여기서는 상당히 서정적인 장면들이 흐릅니다. 남자들 3명.. 아니 이후 발드가 양자로 맞아들이는 '커즈'까지 4명이 있는 곳에서 여자 하나라는 분위기가 어색해질 만도 하겠건만, 같이 수련을 하고, 같이 폭포에서 알몸으로 허물없이 수영을 하고, 먹을 것을 구해와 요리를 하고, 다 같이 모여 숟가락을 담그는 캠핑 같은 분위기, 며칠이라는 시간은 분명 짧다고 할 수 있으나 지금의 상황은 추억이 될만한 것들이었기에 이후 그 장소에서의 추억을 곱씹는 듯한 여기사의 얼굴은 아련함을 넘어 먹먹하게만 하였군요. 귀족으로써, 기사로써 본분을 위해, 그리고 모시는 왕녀에게 강함을 선물하기 위해 19살이라는 나이에 머나먼 길을 떠나야만 했던 그녀에게 그 장소는 모든 걸 내던지고 모두와 마음 놓고 지낼 수 있었던 장소, 나도 분명 거기에 있었다는 단 하나의 추억... 

 

여기사의 여행은 아직 계속됩니다.

 

맺으며, 위의 리뷰는 3부의 이야기고, 4부의 이야기도 있지만 어려움에 처한 아인(수인)과 동료 고든을 도와준다는 이야기인데 일부로 리뷰에선 뺐습니다. 사실 3부보다 4부가 더 흥미진진합니다만. 아무튼 여느 열혈 라노벨과는 다르게 무리난제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권선징악형에 가깝긴 한데 나이 든 영감에게 뛰라고 하는 건 가혹하다는 걸 아는지 작가는 길을 떠난 노기사의 따뜻한 성품과 검 실력에 매료되어 동료들이 모여들고, 들리는 마을에서는 그의 백성을 위하는 성품을 칭송합니다. 젊었을 적 백성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그의 다짐은 늙어서도 변함이 없었고, 힘들고 괴로운 사람을 만나면 도와주는 걸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이를 잊고 성을 탈환하는 그의 담력은 늙었다고 해서 쇠하지 않습니다. 영감이라도 할 때는 한다는 이런 것들이 이 작품의 매력이죠.

다만 발드의 연(聯) 하고는 인연이 없어서 언제나 엇갈리기만 하는 것에서는 마음을 짠하게 하죠. 어릴 적부터 보필해왔던 테루시아 가(家)의 영애 '아이드라'를 다른 영지로 시집을 보내야 했을 때, 그녀가 갓난 아이를 안고 1년여 만에 돌아왔을 때, 그녀의 안전을 위해 떠나야만 했을 때(연聯부터 여기까지 1권의 이야기), 이런 것들이 먹먹하게 감성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이번 아이드라의 아들 쥴란의 이야기에선 통쾌함도 있었습니다. 아이드라를 괴롭혔고 발드로 하여금 길을 떠나게 했던 이웃 영주의 최후는 후련함을 선사하죠. 그리고 이번엔 여기사를 만나 다시 옛 감정을 되살리는 발드에게서 애틋함이 엿보였군요. 그래서 3권이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만. 설마 3권도 또 2년 뒤에 나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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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공작으로 전생했으니까, 이번엔 너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 1 - Novel Engine
아이다 리즈무 지음, nauribon 그림, 박경용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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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하고 보니 돼지(진짜 돼지 말고)이고 주변에서의 나의 평판은 최악으로 치달아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더욱이 그게 좋아하는 여자와 맺어지기 위해 일부러 평판 나쁘게 만들어 놨는데 결과적으로 여자도 빼앗기고 집안에서도 쫓겨난다면? 이 작품은 전생물이긴 한데 이세계가 아닌 애니메이션 속으로의 전생을 다루고 있습니다. [슈야 마리오넷]이라는 애니메이션, 그 속에서의 서브 캐릭터 '데닝'공작가(家)의 3남으로 태어나 전대미문이라 할 정도로 정령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이는 곧 대마법사라는 의미이기도 함) 어릴 때부터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차기 공작이 될 거라는 수식어도 따라다니는 엄친아에 인싸였는데요. 하지만 그의 나이 6살에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일과 마주합니다.

 

6살에 숲에서 어떤 '경위(이게 이 작품의 포인트)'로 샬롯이라는 히로인을 만나버린 그는 모든 인생을 그녀를 위해 쓰겠다고 마음을 먹어요. 하지만 평민인 그녀가 3남이라고 해도 공작가의 자식인 자신(데닝)과 이어지는 건 절대적으로 불가능, 그렇담 6살짜리 꼬마 소년에게 남은 방법은 집안에서 쫓겨나서 평민이 되는 것, 이러면 그녀와 맺어질 수 있겠지? 퍽이나, 얄팍한 생각으로 일을 저질러 주시는 꼬마 소년은 10년 후 돼지 공작이라는 이명과 세계적으로 악동이라고 하면 귀여운 택이고 모두에게 악(惡)의 축이 되어 있었습니다. 온갖 저지래는 다 저질러 주시는데 소원대로 집안은 그를 내처 버리죠. 자, 이제 그녀와 맺어질 수 있겠지?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애니메이션 [슈야 마리오넷]의 진짜 주인공 '슈야'에게 샬롯을 빼앗기는 미래 밖에 없었는데요. 이쯤 현실의 [슈야 마리오넷]은 결말이 난 상태고, 열혈 마니아인지는 모르겠는데 애니메이션을 보던 현실의 주인공(이름 안 나옴, 이하 주인공)은 샬롯을 진짜 주인공(슈야)에게 빼앗기기 1년 전, 위의 돼지 공작으로 전생을 해버려요. 그러니까 현실의 주인공이 애니메이션 속 돼지 공작이 된다는 것이죠. 주인공 입장에서는 뭐 이런 멍멍이 같은 시추에이션이 있나 싶을 테죠. 이제 전대 돼지 공작이 싸질러 놓은 똥을 그가 치워야만 합니다. 사실 치우지 않아도 되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샬롯을 진짜 주인공(슈야)에게서 지키고 그녀와 맺어지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보다 애니메이션 속으로 전생한 것과 갑자기 돼지가 되었는데 혼란은? 다 개나 줘 버리죠.

 

아무튼 전대 돼지가 집안에서 쫓겨나기 위해 온갖 악한 짓을 다 저질러 놓았고, 몸도 출하 직전 돼지같이 만들어 놨으니 시작 난이도가 장난 아닙니다. 악행을 저질러 평민이 되는 건 포기하고 선행을 베풀어 그녀(샬롯)의 마음을 잡겠다는 그, 진짜 주인공(슈야)에게서 샬롯을 지키고 그녀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다는 실행 불가능 미션을 부여받아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무얼까. 일단 뛰자. 살부터 빼야 뭘 해도 할 거 같단 말이지. 대답 대신 꿀꿀 거리기도 하고, 운동하다가 관절염 걸릴 거 같고, 유배 당하듯이 마법 학원에 입학은 했는데 주변 모두가 돼지라며 놀린다. 친구는 당연히 없음, 삥 뜯는다는 소문이 돌고, 마음에 안 들면 줘팬다는 허위사실이 유포되고 있지만 그런 경우가 진짜로 있어서 반박을 못하는 어이없는 학원 라이프.

 

대체 전대 돼지는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녔던 것인가. 그래도 결정된 미래는 거부한다. 애니메이션 [슈야 마리오넷]에서 주인공(데닝)의 악한 짓 때문에 그와 멀어졌던 샬롯,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진짜 주인공(슈야), 그리고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이런 결말을 알고 있는 주인공은 샬롯을 지키고 맺어지기 위해 무던히도 애쓴다가 이 작품의 골자입니다. 참고로 진짜 주인공 슈야는 그리 나쁜 놈이 아닙니다. 천연 기질에 누구나 다 호감을 느끼는 전형적인 여느 작품들에 나오는 주인공 포지션이죠. 주인공(데닝)은 이 진짜 주인공과 경쟁보다는 자신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합니다. 그동안의 악평을 없애고 다이어트를 통해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기 시작하죠.

 

자, 주인공의 노력 덕분인지 슬슬 그를 눈여겨보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성은 물론 친구하나 없던 그에게 슬슬 친구도 생기고 이성도 생기고 있는 겁니다. 이 부분은 이세계로 가면 돼지든 훈남이든 반드시 붙는 히로인이라는 클리셰일 수도 있으나 이 작품의 경우는 주인공이 눈물 쏘옥 빠지게 노력을 통해서 얻어 가는 것인지라 개연성은 확보한 상태입니다. 그전에 샬롯은 주인공을 좋아하는 히로인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텐데, 시작은 다 그렇듯 호감도 0(제로)이죠. 게다가 시종이면서 주인인 그(주인공 데닝)에게 대놓고 돼지라는 등 독설도 서슴지 않아요. 시종 일 보다 월급에 관심이 더 많고, 일이라도 잘하면 모르겠는데 요리는 못해, 매사 사고나 치는 덜렁이에 약 만든답시고 독을 만들어 주인에게 먹으라고 내밀죠. 물론 이런 점은 히로인 특유의 개그 포인트일 뿐 심각한 건 아닙니다.

 

이미지 개선을 해서 샬롯과 맺어진다. 아무것도 못해서 빼앗기기만 했던 미래는 내 쪽에서 거부한다. 방 닦는 걸레는 빨아도 걸레인가 행주가 될 것인가 나아가 수건이 될 것인가. 한번 걸레가 되어버린 수건은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기란 불가능합니다. 그걸 주인공 데닝은 하려 하죠. 그리고 그 전초전이 시작됩니다. 이웃나라에서 학원으로 숨어든 첩자를 잡아내는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진짜 실력, 전설은 지금부터라는 듯 대지에 우뚝 서서 금화 500개나 걸린 실력자(첩자)를 맞이해 그가 보여주는 분투, 모두가 돼지라 부르며 괄시하고 약혼자까지 진짜 주인공(슈야)에게로 가버린 그의 뼈아픈 과거를 곱씹듯, 지금 돼지라는 고치를 뚫고 그는 나비가 되려 합니다.

 

맺으며, 오글오글 거립니다. 중2병은 아닌데 누군가가 사랑의 세레나데를 힘껏 부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주제를 놓고 쓴다면 이런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군요. 중반을 넘어서서 주인공이 샬롯을 바라보는 심정과 첩자에게서 전(前) 약혼자를 구해내는 장면은 정말 멋지면서 오글 거립니다. 남자로 태어나 한 번쯤 해보고 싶은 대사 순위 10위권에 몇 개나 들어갈만한 것들이 나와요. 아무튼 돼지의 헌신적인 사랑이라든지 히로인의 타산적인 모습이라든지 흥미요소가 꽤 많았습니다. 나아가 1년 후인 지 몇 년 후인지 이웃나라와의 전쟁이라는 복선도 깔아 두면서 샬롯과의 인연은 그리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음으로써 흥미를 더욱 끌고 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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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사 치트가 너무 최강이라 이세계 녀석들이 전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만. 6 - J Novel Next
후지타카 츠요시 지음, 나루세 치사토 그림, 권미량 옮김 / 서울문화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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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게 이상한 이세계, 다른 세계에서 침공해오는 로봇 등을 상대로 이세계를 지키기 위해 현자가 있고, 세계를 지키기 위한 현자들이 정작 지켜야 될 백성들을 괴롭히고, 아무리 천하무적이라도 죽을 땐 죽는 현자들을 보충하기 위해 다른 세계에서 애들을 왕창 불러다 싸우게 해서 한 놈만 키운다며 방임주의로 해놨더니 뜻대로 지들끼리 싸우고 지지고 볶고 하다가 자멸해버린 끝에 뭐 하러 다른 세계에서 애들을 불러 가지곤 본전도 못 찾나 하는 일들이 벌어졌었죠. 게다가 현자 보충하려 했더니 되려 그놈들에게 죽임 당하는 본말 전도란 건 이런 거다라며 주인공에 의해 현자들이 토벌되는 일이 벌어지는 등 난장판이 되어 갑니다.

 

주인공 요기리와 히로인 토모치카 그리고 토모치카 조상님 모코모코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현자의 돌을 찾아 여행을 계속하고 있었는데요. 이번엔 바다 건너 동양의 어느 섬에 현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주인공 일행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현자의 돌은 살아 있는 현자의 몸속에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바다 하면 해적이고 약속된 상황이라는 건 이런 거라는 것처럼 해적들이 등장하고 거기에 히로인 '토모치카'를 노리는 마도사까지 등장하면서 상황은 많이 시리어스해져 가죠. 하지만 주인공 '요기리'가 있는 한 무엇이 오든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이 작품이 나무야 미안해라는 소리를 듣는 원인이기도 해서 씁쓸하다고 할까요.

 

그래서 작가는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이야기를 집중 시키려 하죠. 첫 번째로 이세계는 용사들의 집합소라는 것입니다. 전생을 통해서, 전이를 통해서, 여신에게 부름받고 기타 등등, 몇 권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이세계로 전이된 마법소녀도 있었죠. 그리고 이번엔 게임을 통해서도 들어오는데요. 이놈은 용사가 아니지만 상당히 비중 높게 활약을 하죠. 용사들을 포함해서 이들의 공통점은 저마다 자신만의 정의를 내세워 활약을 하고 그러다 주인공에게 나가리 되기도 하고, 때론 마왕과 싸우다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일도 벌어져요. 이 과정에서 몰입도를 높이는 게 보는 이로 하여금 신경을 건드리는 점이 있다는 겁니다.

 

신경을 건드린다는 게 무슨 뜻이냐면, 나만의 정의에 심취해서 내가 주인공이고 내 마음대로 해도 누가 뭐라 할 것이냐 하는 건데요. 이번에 게임을 통해 이세계로 넘어온 '요스케'의 게임 감각으로 이세계 사람들을 대하는 장면들에선 사람의 인식이란 이렇게 무서운 거라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죠. 두 번째 초점이자 또 다른 특징이 할 수 있는, 이 작품엔 용서와 기대가 없습니다. 서브 캐릭터로 활약해주겠지, 얘는 살아서 주인공과 엮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여지없이 박살 내버립니다. 이건 용사라도 예외가 없어요. 우리가 여느 판타지에서 보는 용사들의 활약은 사실 허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심어준다고 할까요. 히로인들과 노닥거리고 마왕을 무찔러 금의환향한다는 걸 비웃듯 이 작품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죠.

 

아무튼 주인공의 '죽어' 한마디 때문에 이 작품이 나무야 미안해로 귀결된다고도 하시는데, 사실 주인공의 죽어 한마디 때문에 악당들이 참회도 없이 픽픽 죽는 것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허무하게 하는 건 사실입니다. 자신만의 정의에 심취해 날뛰거나 온갖 악행을 다 저지르다 기고만장해져서 주인공이나 히로인에게 이(빨)를 들이밀었다가 단역 엑스트라 저리 가라 할 만큼 순식간에 리타이어 되는 장면은 좋게 말해서 흥미롭진 않죠.

 

하지만 그걸 제외하고 다른 부분에서 흥미 요소를 찾는 건 어떨까 싶은 게 이 작품의 매력인데요. 가령 등장인물들의 주인공이나 타인에게 죽기 직전까지의 행위, 이번에 토모치카를 노리는 마도사가 그녀에게 자신의 아이를 낳게 한다는 배덕감(라기 보다 변태지만)이라든지, 이 등장인물은 크게 될 인물이고 주인공과는 또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진행 시키지 않을까 했던 인물들의 허무한 죽음에서 오는 멍해지는 감각, 속된 말로 뒷통수 맞는 감각은 이 작품만의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맺으며, 이번엔 히로인 토모치카의 정체에 대한 복선이 투하되면서 한층 더 흥미로웠군요. 주인공 요기리가 왜 토모치카를 지키려 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는 에피소드랄까요. 그리고 예전에 필자가 언급했던 이세계는 만들어진 세계가 아닐까 하는 부분은 이번에 작가가 어물쩍 넘어갔지만 현실미를 띄게 되었고요. 아무튼 필자는 흥미가 동하지 않거나 재미없는 작품은 신랄하게 까는 편인데 어째서인지 이 작품은 굉장히 흥미롭게 보고 있군요. 다른 작품보다 읽는데 시간이 절반 밖에 들지 않을 정도인데 어째서 나무야 미안해 소리를 듣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뭐 사람의 취향이야 제각각이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치부할 사항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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