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향신료 22 -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아야쿠라 쥬우 그림, 박소영 옮김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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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와 호로에게 있어서 양아들이나 다름없었던 '콜'이 세상을 바로잡고자 길을 떠난 지도 상당한 시일이 흘렀다. 이들의 딸내미 '뮤리'는 미래의 서방님 콜을 쫓아가버렸고. 산중에서 온천 여관을 열어 여행과 여생을 여기서 끝내기로 했던 이들은 둘의 안부가 궁금하여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10여 년 넘게 행상을 그만뒀던 로렌스에게 있어서 여행은 새로운 만남 같은 두근거림은 없고 몸이 녹슬어 불도 못 피우는 구박데기로 전락해버리는 게 여간 웃긴 게 아니다. 호로는 생각 날 때마다 놀려 먹기 바쁘고.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왔더니 이놈의 애시키들이 글쎄 세상을 뒤집어 놓고 있다. 콜과 뮤리는 교회를 개혁한답시고 벌집을 쑤셔 놓은 통에 가는 곳마다 그 영향권에 들어 있어서 골머리를 앓는 정도가 아니다.


이번에 그 뒷수습을 위해 이들과 마찬가지로 먼 길을 달려온 호로의 천적 '엘사'가 등장한다. 주근깨가 인상적이었던 원리원칙의 소녀가 어느새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다. 로렌스와 호로는 교회의 의뢰를 받아 저주받은 산을 조사하기 위해 어떤 지방을 찾는다. 거기서 엘사와 맞닥트려 저주받은 산을 둘러싼 소문과 진실을 파헤쳐 간다. 엘사는 파견 나와서 쇠락해가는 이 지방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 중이었고, 마을의 부흥을 위해 산을 팔아야 하나 세간엔 저주받았다느니 들어가면 돌아오는 사람이 없다는 둥 흉흉한 소문이 끊이질 않는 산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전전긍긍 중에 로렌스와 호로가 찾아온 것이다. 엘사에게 있어서 천군만마를 얻은 거나 다름없다. 다만 호로에게 있어서는 늘 원리원칙을 내세우는 데다 골수 교회파인 엘사가 달갑지만 않다.


그야 호로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고, 인간이 아닌 자는 이단으로서 화형을 시키는 게 교회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매사 깐깐하고 규칙과 검소함으로 살아가는 엘사와 반대로 술을 옆에 끼고 고기만 찾아대는 방탕한 생활을 하는 호로가 어울릴 리가 없다. 그래도 엘사는 로렌스와 호로의 결혼식 때도 와줬고 십수 년 전에는 궁지에 빠진 엘사를 호로와 로렌스가 도와줬기도 해서 으르렁거리는 사이라도 원수지간은 아니다. 그래서 이들의 묘한 신경전이 이 작품의 백미 중 하나라 하겠다. 어쩌면 엘사는 호로를 다루는데 일가견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고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호로에게 그녀는 마을에 가서 토끼 좀 받아 오라고 심부름 시키는 대목이 있는데 호로는 두말 않고 쪼로로 쫓아가서 받아온다. 평소엔 내가 왜?라는 게 호로의 성격이다.



호로는 살던 고향에서 쫓겨났다. 인간의 개발에 밀려 산이 황폐해지고 오염되고 더 이상 살 곳이 못되어 일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도 이젠 돌아갈 수도 없다. 그 아픔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1부에 해당하는 17권까지의 여행이 그녀의 고향을 찾는 여행이었으니까. 그것이 눈앞에서 되풀이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 산에는 '다람쥐'가 살고 있다. 그 산은 철광산과 소금광산의 채굴로 황폐해졌고 채굴이 끝나자 산은 버려졌다. 마을이 쇠락한 원인도 여기에 있다. 풀 한 포기 없을 거라는 생각에 찾았던 산은 어찌 된 일인지 녹음을 되찾고 있다. 질서 정연하게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이 산은 저주받은 산이라고 소문난 산이다. 들어간 자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도토리' 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자신이 살던 산이 황폐해져 가는 것을 두고 볼 수밖에 없을 때의 고통은 누구보다도 호로가 잘 알고 있다. 이 산에는 다람쥐가 살고 있다. 다람쥐는 사람이 아닌 자다. 우직하게 사람들이 떠난 곳을 지키며 나무를 심어왔다. 다람쥐는 떠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호로는 가슴이 더욱 먹먹해진다. 그런데 지금 엘사는 이 산을 팔려고 한다. 팔아야 마을이 굶어죽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의 말석을 차지하는 그녀로서는 사람들이 고통받는 걸 두고 볼 수는 없다. 로렌스와 호로는 산이 왜 저주받았다고 소문이 났는지, 들어간 자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는 소문이 도는지 알아간다. 거기엔 호로보다도 더욱 기구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 다람쥐는 떠나간 어떤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벌써 60념 넘게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사람은 그리 오래 살지 못한다. 호로에게 로렌스가 있듯이 다람쥐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한다.


다람쥐는 그 사람을 기다리며 우직하게 황폐해진 산을 가꿔왔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자들 중에는 현명한 자들이 많다. 시간의 흐름은 똑같지 않다는걸, 호로는 이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픈 것이다. 산을 팔아야 마을이 산다. 산에는 다람쥐가 있다. 언젠가 돌아와 줄 사람을 기다리며 지금도 우직하게 산을 가꾸고 있다. 이것이 플러스가 되어 산은 좋은 값에 팔릴 거라 한다. 로렌스는 다람쥐가 떠나지 않으면서 산을 팔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호로가 떠나라고 하면 다람쥐는 떠날 것이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다른 산에 가서도 기다릴 것이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정말 가슴이 아려와서 못 읽을뻔했다. 자, 로렌스는 서로가 윈윈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 열쇠는 호로에게 있다.


도토리 빵이 나온다. 다람쥐가 선물한 어마어마한 양의 도토리를 받아 어찌할 수 없었던 엘사는 갈아서 빵을 만든다. 호로는 질색을 한다. 이게 또 여간 웃긴 게 아니다. '인간'의 모습을 한 다람쥐는 호로에게 없는 것이 있다. 그래서 호로의 기분은 언짢아진다. 둘이(호로와 다람쥐) 처음 만났을 때도 여간 흥미진진한 게 아니다. 자신들을 훔처보고 있는 다람쥐를 물어다 로렌스 앞에 내려놓는 거라든지, 늑대 모습의 호로에 쫄아서 머리를 땅에 박고 안절부절 못하는 다람쥐가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그렇기에 호로는 다람쥐를 도와주려고 한다. 쫓겨나버린 자신의 과거를 다람쥐에게서 보게 된 그녀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다람쥐가 비록 보답받지 못하더라도...


맺으며: 긴 시간을 살아가야 되는 자들의 회환을 그리고 있다. 18권부터 줄곧 이래왔지만 이번 에피소드는 유독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알면서도 마치 인정하면 모든 게 끝나버릴 거 같은, 호로는 다람쥐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된다고 할까. 그래서 매일을 충실히 살아가려는 호로를 보고 있으면 쓸쓸한 기분이 들곤 한다. 작가가 이런 부분에서 표현력이 좋다고 할까. 아무튼 엘사에게 기를 못 피는 호로도 재미있고, 천진난만한 다람쥐에게선 힐링이 되는 어리바리와 이별의 아픔이 동시에 전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외전에서 개들의 왕이 된 뮤리의 활약도 볼만하다. 부모가 찾으러 온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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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술사의 재시작 7 - ~즉사 마법과 스킬 카피의 초월 힐~, J Novel Next
츠키요 루이 지음, 시오콘부 그림, 문기업 옮김 / 서울문화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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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고리타분한 개념을 설파하는 대목이 있으니 속된 말로 꼰대의 지적이 싫으신 분들은 읽지 않길 바랍니다.





마왕에게 먹혀 꼭두각시가 되어버린 지오랄 왕을 타도하고 나라를 되찾은 주인공 일행은 다음 타깃으로 대포의 용사 '브렛'을 처단하기 위해 움직인다. 별것 아닌 줄 알았던 대포의 용사는 작가의 띄워주기 버프를 받아 지금은 주인공에게 있어서 최대의 적이 되어버린 상황. 주인공은 그를(대포의 용사) 잡아다 이전생에서 당했던 굴욕을 되돌려주고 싶지만 현자의 돌을 손에 넣어 파워 업한 브렛은 주인공의 손아귀에서 유유히 사라져 버렸고 이에 주인공은 겉몸이 달아간다. 한편 전대 마왕을 쓰러트리고 새로운 마왕이 된 '이브'는 무사히 마족의 땅을 접수해서 정점에 올라 무난한 행보를 보이게 된다. 그러나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뿐이다.


이번 이야기는 대포의 용사 브렛이 주인공의 최대의 적이 된다는 포지션 굳히기다. 이전생에서 브렛은 주인공 케얄가 등짝을 수시로 점검했었다. 그나마 여자에게 학대 당하는 건 참아도 같은 남자에게 당하는 건 씻을 수 없는 치욕이자 트라우마다. 주인공이 양성애자나 동성애자라면 또 모를까. 그래서 다른 복수 대상자 히로인들보다 브렛을 향한 분노는 매우 크다. 이제 그놈을 잡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유유히 사라졌으니 케얄가 입장에서는 미치고 졸도할 일이다. 지오랄 왕국을 탈환하고 그놈이 어디 있나 했더니 옆 나라에 가서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이에 옆 나라까지 가서 브렛을 잡기로 하는 게 이번 7권의 주된 이야기다.


아무튼 스토리 이야기는 이쯤 하고, 이번엔 좀 심각한 문제점이 있어서 짚어볼까 한다. 그동안 주인공의 성적 취향에 대해 언급 해왔기에 새삼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이번엔 좀 심각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루밍 성폭력이라는 말이 있다. 대상에게 접근해 정신적으로 지배해서 성적 관계를 맺는 걸 말한다. 주인공 케얄가에겐 신수(神獸)가 있다. 히로인 중 하나인 '이브'를 마왕으로 추대할 때 만난 신수에게 받은 알에서 태어난 여우 요괴다. 이름은 '구렌'이라고 하는데 6권 표지모델이기도 했다. 모든 동물은 알에서 태어나 처음 만나는 생명체를 부모로 인식한다지만 구렌은 태어나자마자 도망 가려 했다.


구렌은 주인공 케얄가의 마력과 마음의 영향을 받아 태어난 금수다. 그러니 그녀보다 주인공 케얄가를 잘 아는 히로인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정조의 위기를 알아챈 것인지 도망 가려 했지만 붙잡혀 속박의 저주를 받아 주인공 곁을 떠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그 여우가 자라 이제 14살쯤 되는 소녀가 되었단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히로인 브레이커다. 다시 말해 눈에 띄는 여자는 전부 비처녀로 만들어 버린다는 욕망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구렌도 당연히 그 욕망에서 벗어나진 못한다. 자, 분명 구렌은 주인공의 마력과 마음을 먹고 태어난 자식과도 같다고 언급한다. 즉 주인공은 구렌의 친아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이 소리를 들으면 윤리적으로 건든다는 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14살짜리를 건든다는 게(늑대 소녀 세츠나도 이 나이쯤 될텐데), 대체 작가의 윤리적 코드는 어떻게 되어 먹은 걸까 하는 의심을 들게 한다. 아니 이전부터 윤리 코드를 찾아 볼 수 없었느니 어쩌면 작가로서는 당연히 구렌도 예외는 아니었을 수 있다. 여기서 진짜 문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관계를 맺는 게 아닌, 이걸 하면 기분이 좋다는 둥 감언이설로 꼬드겨 관계를 가진다는 거다. 이 행위가 남녀 관계다라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고, 합의 따윈 애초에 없었다. 구렌은 주인공으로부터 도망가지 못하는 속박의 저주에 걸려 있다. 아무튼 마사지의 일부라며 속이고 성감대를 공략하다가 애가 흥분으로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삽입하면 더욱 기분 좋다는 말을 내뱉는다. 결국 구렌은 이 행위가 무엇인지 인지하지도 못하고 응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나마 19금으로 발매돼서 용서가 되는 걸까? 필자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이후에도 기분 좋은 것이라고만 할 뿐 구렌은 이 행위가 남녀 행위(sex)라는 걸 인지하지 못한 채 계속 주인공과 관계를 가진다는 거다. 주인공은 이전생에서 지독한 성적 학대를 당해 왔다. 보통 이런 트라우마가 있으면 관련된 행위는 멀리하지 않나? 이젠 4P도 거뜬하다. 어쨌건 이건 윤리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픽션에 너무 목매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 나올법한데 필자는 작중 내용의 문제보다 작가의 윤리적 코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성 관련 개념이 달라서 오는 괴리일 수는 있겠으나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런 내용은 상업지(어둠)에서나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맺으며: 본 리뷰는 지극히 필자의 주관적으로 작성되었다. 작가를 비난하는 듯한 글을 썼긴 하나, 비난이든 비평이든 읽는 본인의 판단에 달려 있긴 한데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해서 써 보았다. 보수적인 필자의 고리타분한 푸념으로 넘겨도 좋고, 건방지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위의 저런 점은 고쳤으면 하는 그럼 바람도 없잖아 있다. 19금으로 발매되어서 적어도 청소년들이 접할 기회는 없다는 게 다행이긴 한데, 그렇다고 19금으로 발매되었다고 면죄부가 되어선 안 된다고 본다. 사실 필자는 6권에서 하차하려 했으나 인터넷 서점 회원 등급을 유지하려 어쩔 수 없이 구매하게 되었다. 이젠 다른 작품들을 발굴한 이 시점에서 더 이상 이 작품을 구매할 일은 없지만 필자에게 있어서 이 작품은 흑 역사 중 하나라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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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여행 6 - S Novel+
시라이시 죠우기 지음, 아즈루 그림, 이신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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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사기 치는 마녀


이전에도 언급한 거 같은데 여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돈(머니)이다. 여행 동반자? 낭만? 그딴 거 다 필요 없다. 지금 당장 먹을 게 없어서 배는 고프고, 잠 잘 곳이 없어 하늘을 이불 삼아 노숙하게 된다면 배부른 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마녀 일레이나의 여행기는 처절함으로 점철되어 있다. 누가 떠나라고 부추긴 것도 아닌데 뭐 하러 세계를 여행하며 오늘 일용할 양식을 걱정하고 잠 잘 곳을 걱정하는지 도통 모르는 게 일레이나의 기행이라 하겠다. 그래서 그럴까 사람이 참 지저분해진다. 돈을 벌어야 여행을 할 수 있고,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나온 결론이 사기에 가까운 행동이라 하겠다. 일례로 부탁하지도 않은 점을 봐주고 복채로 금화 한 닢 내놔라 하면 당하는 쪽에서는 칼만 안 들었지 순 도둑이나 다름없잖아. 그렇지 않나?


어느 도시에서 빗자루 레이싱 대회가 열린다. 여기에 최연소 소녀가 참가하는데 무려 9연승 중이다. 누구나 축하해줄 일이지만 어째서인지 이 도시의 사람들은 소녀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질투의 화신이 되어 소녀를 괴롭힌다. 그야 어른이 되어서 애한테 진다는 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값싼 질투가 횡행하는 도시에 일레이나가 찾아온다. 그리고 일레이나는 괴롭힘당하는 소녀에게 점을 봐준답시고 복채로 금화 한 닢을 내놔라 한다. 여기에 적당한 속담이 있었는데 생각 안 난다. 아무튼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소녀의 심지가 대단히 굵다는 것이다. 자기한테 사기 치는 마녀에게 쫄지 않고 되레 도와 달라고 부탁을 하니 말이다. 소녀는 질투를 받아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고, 이렇게 질투를 받으면서도 대회에 참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심금을 울린다. 수전노에다 사기꾼인 일레이나는 소녀를 도와주기로 하는데...


그건 그거, 사기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


사실 이 세계는 눈 뜨고 코베이는 약간은 시리어스한 이야기도 들어 있다. 일례로 어떤 마녀가 사기 치는 것만 봐도 그렇잖은가. 하지만 악행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웬일로 좋은 일 하나 싶었더니 도박에 전 재산을 걸었다가 홀랑 날려먹는 대목은 깨소금이 아닐 수 없다. 근데 실패에서 배우는 점이 없다는 게 그녀(일레이나)의 아이덴티티라고 할까. 이번엔 다른 도시에서 여행 자금을 벌려는 목적으로 또 도매금으로 물건을 떼다가 금화 한 닢으로 팔아재낀다. 그러다 신문사 기자에게 들통나서 약점 잡혀 협박 당하게 되는데 그렇고 그런 동영상을 촬영하게 되었다면 얼마나 흥미진진할까 싶기도 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무튼 나쁜 짓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신문 기자에게 들통난 건 다 계산된 행동이라고 밝혀지긴 하는데 언젠가 칼 맞을 일이 있지 않을까.


그도 그럴게 딱 자기와 비슷한 사기를 치는 10살 소녀에게 속아서 약을 낼름 받아먹어서 초곤란을 겪게 되니 말이다. 이렇게 이 작품은 유쾌한 일의 연속이다. 읽는 내내 지루함이란 단어는 찾을 수가 없다. 가슴이 커진다는 말에 속아 뭔지도 모를 물약을 냉큼 받아 먹어버리는 모습은 오늘만 사는 그녀답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가는 말해 뭘 하겠나. 고생이라는 말로 끝나지 않는다. 그런 주제에 부탁엔 약해서 사기꾼이 사기를 치는데 속아 넘아가는 모습이란.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일레이나로서 이걸 또 전화위복으로 삼아 사기를 치는 모습은 천성은 못 버린다 싶은, 이젠 대놓고 사람들을 호구라고 칭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흉악한 범죄자 같은 느낌으로 비칠 수 있으나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대가를 치르니까 권선징악식 메시지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시사하는 것도 있다.


빗자루 레이싱 대회에서 사람들이 왜 소녀를 질투했는가. 어린 나이에 승승장구하다가 패배했을 때의 반동을 어린 소녀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내적인 이야기도 있다. 근데 이건 일레이나의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장면에선 씁쓸함이 묻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친구가 부조리한 행정 때문에 날개를 펴지 못하는 것에 울화가 치밀어 세상을 바꾼답시고 나쁜 길로 빠지게 되면서 주변에 민페를 끼치는 에피소드가 있다. 근데 세상을 바꾼다 해놓고 주변을 희생 시키는 건 본말 전도라는, 정작 그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는데 혼자 나대는 장면에서는 왜 멋대로 남의 행복 가치를 자기가 판단하는가 하는 충고적인 메시지도 있다. 그 친구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그리고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걸 이미 일레이니가 몸소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


맺으며: 일레이나라는 캐릭터를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부탁이 왠지 귀찮아질 거 같아 거부하려는데 돈(머니) 줄게 하니까 냉큼 응하는 거 하며, 살기 위해서라지만 사기를 아무렇지 않게 치는 죄의식이 없으면서 타인이 사기 치는 건 못 참는 성격하며, 부탁엔 또 약해서 분명 귀찮은 일이 될 텐데도 부탁을 들어주는 마음 약한 모습도 보인다. 정말 이런 캐릭터 만들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지루함이란 찾을 수가 없다. 그건 그렇고 부제목을 저리 지은 건, 이 작품이 은근히 그런 쪽(백합은 기본이고 이성간 교류도 활발하다) 개그를 많이 선보인다는 거다. 이번엔 대놓고 노빠꾸 에피소드를 보여주는데 산전수전 다 겪은 일레이나도 학을 떼는 모습은 여간 웃긴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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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여행 5 - S Novel+
시라이시 죠우기 지음, 아즈루 그림, 이신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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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 당하는 마녀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미인이니 미남이니 잘 생겼다느니 하면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말로 미인이라서 칭찬을 하는 경우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입에 발린 소리다. 거기에 홀랑 넘어가서 좋다고 헤실헤실 웃어봐야 호구만 당한다고 보여주는 게 이 작품이다. 그래서 노점 아주머니가 내미는 빵은 '네가 미인이라서 덤으로 주는 거야'라고 받아들이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기분 좋게 빵을 뜯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손을 내민다. '동화 한 닢 내야지?' 평소에 일레이나는 자뻑이 굉장히 심한 편이다. 거울을 보는지 안 보는지, 이렇게 호구 당하는 일이 간혹 있다.


취직을 꿈꾸는 마녀


여행엔 돈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금수저가 아닌 일레이나로서는 돈이 떨어지면 당연히 일을 해서 벌어야 한다. 이런 부분이 이 작품의 매력이자 리얼리티다. 그래서 일자리를 알아보는데 어째 요상한 것들만 들어온다. '왕녀 호위해보실래요? 목숨은 보장 못하지만, 마약 밀매상 구인중' 그나마 멀쩡한 우체국에 갔더랬죠. 우체국 하면 공기업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거긴 블랙 기업이었으니. 하루 24시간 노동을 해도 일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블랙 기업에서 탈출을 꿈꾸지만 고생하는 선배가 눈에 밟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게 아니라, 사실 일레이나의 성격은 참 끝내준다. 남을 도와주려는 성격은 있지만 내가 고생할 거 같으면 가차 없이 도망가 버린다. 그래도 블랙 기업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해주는 착한 마음씨도 있다.


사기꾼 마녀


여전히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자리는 원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그래서 조화(가짜 꽃)를 도매금으로 끊어와서 팔기로 하는데 원가가 동화 한 닢이다. 그걸 금화 한 닢에 내다 판다. 행복인지 뭔지를 불러들이는 아주 요험한 꽃이라고 선전하면서. 사람들은 거기에 낚여 구입해 간다. 언젠가 마녀는 천벌을 받을 것이다. 한 날은 점술가 행세를 하며 떼돈을 벌어들이는데, 당연히 점술가로서 능력 따윈 없다. 그냥 사람 심리를 이용한 트릭으로 끼워 맞추니까 사람들은 용하다며 지갑을 연다. 마녀는 언젠가 벼락을 맞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경찰이 찾아왔다. 쫄아버린 마녀는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납치당한다.


마녀 일레이나의 여행은 이런 식이다.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걸 먹고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며 힐링하는 그런 여행 따위가 아니다. 삶은 언제나 처절하다. 그럼에도 일레이나는 여행을 꿈꾼다.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전 세계를 여행하며 그 나라의 특색을 경험하고 의뢰를 받아 해결하면서 나아간다. 때론 사건에 휘말려 고생도 하고, 남의 말을 안 듣는 사람 때문에 곤란을 겪기도 한다. 이번에는 왕녀를 만나 대도(도둑)을 잡아오라는 의뢰를 받는데 당연히 일레이나는 귀찮을 거 같은 일이기에 거부하려 했으나 '너에게 거부권은 없다'라는 왕녀의 말에 의뢰를 수행해야 하는 그런 곤란을 자주 겪는다.


그렇기에 야무지게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제 코 베일지 모르는 게 이 세계다. 방금도 왕녀의 의뢰를 수행하는데 어떤 아가씨의 낚시에 걸려 된통 당하기도 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이야기 자체가 시리어스한가?라는 의문이 들 텐데,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일레이나가 여행을 하며 좌충우돌하는 그런 이야기를 코믹스럽게 그려 놓은지라 호구 당하는 것도, 낚시에 걸리는 것도 다 일레이나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고 거기에 걸려도 일은 심각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가령 위 아가씨의 낚시에 동원되었던 동네 꼬마의 말을 예로 들자면. '멍청이랑 외지인은 식은 죽 먹기라니까'같은 유쾌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독설도 예를 들 수가 있다. 이번에 일레이나의 스승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스승이 동문과의 에피소드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동문이 제자에게 담배를 선물 받는다. 그러자 일레이나의 스승이 말하길 '어머나 일찍 죽었으면 하는 걸까요? 사랑받고 있군요.'라고 한다. 물론 속으로지만, 동문과 처음 만났을 때도 동문을 바라보며 독설을 내뱉고 있으니 독을 뿜고 있다고 과언이 아니라는 둥 표현에 거침이 없는 게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다. 이 작품은 이런 재미가 있다. 표현에 거침이 없지만 그걸 개그로 승화 시켜서 독자로 하여금 웃음을 끊이질 않게 한다. 


시간의 흐름이란...


이 작품은 성장하는 이야기보다 시간의 흐름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주인공은 나이를 먹어간다. 시간의 흐름은 아무도 못 막는다는 듯이. 일레이나의 엄마가 주인공일 때가 있다. 그 엄마는 제자를 들이고 여행을 떠난다. 제자는 성장을 하고 엄마는 은퇴를 한다. 그 제자는 또 제자를 들인다. 스승은 일선에서 물러나고 그 제자는 지금 여행 중이다. 그 제자는 엄마가 지나갔었을지도 모를 길을 걷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아무런 생각도 없다). 이런 부분을 보면 참 서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스승과 제자는 다시 만난다(엄마는 안 나온다). 자신에게 많은 걸 가르쳐 주었고, 마녀로서의 길을 제시해줬던 스승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일레이나도 언젠가 나이를 먹고 제자를 들이고 그렇게 늙어 갈 것이다. 독설이 난무하고 사기가 횡행하는 이야기에서 이런 조그마한 서정적인 느낌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다고 할까.


맺으며: 흔한 이세계물에 식상한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볼만한 작품이 아닐까 한다. 사기 치고 사기당하고 돈에 인색한 일레이나의 모험이 꽤나 유쾌하기 짝이 없다. 거기에 일반적이지 않은 등장인물들과 주변 사람들로 인해 오즈의 마법사 같은 동화적인 이야기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상식이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고 주관은 개개인마다 다르다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그런 개념이 존재하는 세계를 여행하며 곤란을 겪기도 하고 때론 그걸 이용해서 떼돈을 버는 일레이나의 모습은 흐뭇함이라기 보다 영악하기 그지없는 악마를 보는 듯하다. 이런 점들이 필자로 하여금 이 작품을 놓지 못하게 한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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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의 하극상 제4부 귀족원의 자칭 도서위원 7 - 사서가 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V+
카즈키 미야 지음, 시이나 유우 그림, 김봄 옮김 / 길찾기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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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우 매우 강한 스포일러 주의





책에 너무 정신이 팔려버린 나머지 '마인'은 주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지금까지 쭈욱 그래왔다. 결국 영주의 양녀가 된 원인도 책에서 비롯된다(그렇지 않으면 가족이 죽는다). 이 작품은 현실 세계의 문물을 이세계에 너무 많이 도입하면 주인공이 어떻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 여느 이세계물처럼 치트 능력도 동반되어 내 스스로 지키는 능력이라도 있으면 도망을 가거나 주변을 지킬 수는 있었을 것이다. 이 작품이 그런 이세계물과 차별을 두는 게 이런 부분이다. 주인공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한다. 좀 더 세분화해서 그녀를 평가하자면, 힘(마력)은 있다. 그런데 체력은 없다(곧잘 쓰러진다). 물품을 만들 지혜는 있어도 남을 속일만한 지력이 없다. 책이나 소재를 던져주면 지옥을 마다하지 않는 집념을 보인다(모르는 사람이 사탕 주면 따라갈 타입이다). 그녀는 책에 살고 책에 죽는다. 그래서 주변은 항상 그녀에게 휘둘려 위험에 노출된다.


이 세계는 동화 같은 세계가 아니다. 영주의 자리를 놓고 형제 남매끼리도 치고받고 싸운다. 파벌은 부모와도 원수지간으로 만든다. 아버지가 같은 이복형제는 말할 것도 없다. 독살이 횡행하고 같은 나라에 속해도 이웃 영지를 서슴없이 침공해서 약탈을 한다. 귀족은 평민을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는다. 아이는 세례를 받기 전엔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병으로 유아 사망률이 매우 높다왕권을 둘러싸고 정변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버렸다. 권모술수가 판치고 남을 끌어내리기 위해 혈안이 된 곳이 이 세계다. 그런 세계에서 황금알을 낳는 마인의 가치는 말해 무얼 하겠나. 작품 초반(1부) 지식이 없다곤 해도 자신의 행위(책 만드는 것)로 인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전생에서 20살이나 먹은 성인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 건만, 결국 벌로 친부모와 친언니와 생이별하는 꼴을 당하게 된다(그렇지 않으면 죽는다)이쯤 되면 자신의 행위에 신중해질 법도 한데 말이다.


작가가 참 외골수랄까. 주변을 초토화 시키면서도 책을 위해서라면 지옥도 마다하지 않는 마인의 성격을 계속해서 그대로 밀고 간다. 어떻게 보면 아이덴티티를 잃어버리지 않고 초심 그대로 밀고 가는 뚝심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뚝심이 이번 4부 7권에서 정점을 이룬다고 하겠다. 마인은 제3왕자를 모셔다 놓고 다과회 중 왕자가 왕궁의 도서실에 갈 수도 있다는 말에 실신을 해버린다. 너무 기뻐서 까무러친 것이다. 사실 마인은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체력이 없다. 흥분하면 체력이 따라가지 못해 정신을 잃어버린다. 그렇지 않아도 책이라면 부모가 죽건 말건 상관없는 애에게 도서관의 정점인 왕궁 도서관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기쁘지 않겠는가. 근데 문제는 이게 아니다. 정말 심각한 건 왕자 앞에서 까무러쳤다는 것이다.


눈앞에서 갑자기 사람이 실신해서 쓰러지는 걸 상상해보라. 그게 트라우마가 되지 않는다면 인간이 아니지. 에렌페스트(마인 영지)보다 상위 영지의 영애까지 대려다 놓고, 왕자와 영애의 시종들과 호위 기사들이 바글바글한 곳에서 애가 실신을 했다. 마인 덕분에 중위 영지는 되었다지만 여전히 하위 영지 취급 당하는 에렌페스트로서는 멸망의 기로에 선거나 다름없다. 그렇게 친부모와 헤어지게 된 원인이 책에 있음에도 이젠 영지까지 박살 낼 기세다. 이 사건을 들은 그녀의 양부모와 후견인 페르디난드는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까 싶은 게 이 작품의 백미이다. 그런데 문제는 영지까지 박살 나게 생겼는데 '마인'은 자신이 뭔 짓을 했는지 모른다는 거다. 초 파워 당당이다. 내가 왜 꾸중을 들어야 되는지 이해를 못한다. 이보다 철면피는 없을 것이다. 더더욱 문제는 마인 멋대로 제3 왕자를 자기 부하로 만들어버렸다는 거다(참고로 왕자는 마인보다 어림). 하늘이 노래진다는 건 이런 거다.


사실 이런 부분에서도 리얼리티가 느껴진다고 할 수 있다. 카스트 제도가 없는 이전 생에서의 몸에 밴 습관대로 이 세계에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뿐으로 태어날 때부터 교육을 받아온 귀족들과 다르게 환생 후 평민으로서의 자아가 성립된 시기에 귀족이 된 데다 이전생의 기억까지 가지고 있으니 바로 귀족과 같은 행동을 보이라는 거 자체가 무리인 것이다. 원래는 감히 말도 못 붙이는 상위 영지의 영애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첫째, 둘째, 셋째 왕자하고도 친구 먹자고 덤비니 보호자들의 위가 구멍 나지 않은 게 이상한 거다. 권력 다툼이 일상화되어 있고, 왕권을 둘러싼 대립도 리얼하게 그려대는 이 작품에서 마인의 행동은 자//살 폭탄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본인은 전혀 이해하지도 자각하지도 못하고 그걸 지적하면 왜?라는 의문만 표할 뿐이다. 


그런 와중에 '왕이 될 상'이라는 폭탄 위에 원자폭탄이 얹혀진다. 이야기는 결국 파국으로 치달아 간다. 책에 미쳐서 가리지 않고 읽어대다 성전이라는 책에서 너는 '왕이 될 상인가?'라는 물음을 마인에게 던진다. 지금의 왕족에게 있어서 역모나 다름없는 이야기가 흘러나온 것이다. 보호자인 페르디난드는 현실을 도피해버린다. 아무리 막강한 그래도 이건 좀...이라는 인상이 매우 강하게 느껴진다. 그런 와중에 타이밍 좋게도 지금의 현왕에게 정통성을 묻는 일이 벌어진다. 정통성이란 마인이 아까 읽었던 성전이 던졌던 물음을 말한다. 거기에 대답해야만 왕이 될 자격을 얻는다. 이 물음은 아무에게나 보이지 않는다. 왕은 이걸 찾고 있다. 이 의미가 뭔지.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귀족원(학교)의 연례행사에 참여한 왕족을 노리고 테러가 일어난다. 


맺으며: 잔머리는 늘어서 책 읽을 핑계를 만드는 게 보통이 아니다. 마인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양어버지(영주)를 감시하라고 해놨더니 그 양아버지의 사탕발림에 홀랑 넘어가 책 읽으러 갔다가 페르디난드에게 꾸중 듣는 게 여간 웃긴 게 아니다. 일만 저지르는 마인을 단속하느라 자꾸만 다크서클이 늘어나는 페르디난드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들의 만담식 말싸움을 보고 있으면 둘이 아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페르디난드가 꾸중을 하면 마인은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하며 대들고 그러다 또 혼나고. 그러면서도 페르디난드는 마인을 챙겨주는 모습은 또 흐뭇하게 다가온다. 이번 왕족을 노린 테러가 일어났을 때 마인을 지키는 페르디난드는 멋있다고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늠름한 모습을 보인다. 일러스트도 한몫해서 유부녀(작중)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해주기 충분했다. 일러스트 말 나와서인데 필지가 이때까지 본 여타 작품 포함 일러스트 중 제일 멋이었다.


이번 4부 7권은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집념이 불러온 절망이라고 하겠다. 이 절망은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온다. 마인은 자신의 울타리로 들어온 사람이라면 설령 적이라도 보호해준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모두를 지키다 보니 이번 왕족을 노린 테러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너의 주위는 어째 희생자가 없다?'라고. 이 말은 즉 테러에 관련된? 결국은 책에 미처 앞뒤 분간 못하고, 책 때문에 친부모와 생이별한 원인이 책에 있음에도 버리지 못했고, 친부모와 헤어진 트라우마로 인해 사람들을 지키려는 행동이 되려 그녀의 발목을 잡게 되었다는 거다. 그녀만이 아닌 영지 에렌페스트 전부가 휘말릴지도 모를 파란이 예고되었다고 할까. 남은 건 절망이라는 열매뿐... 그건 그렇고 복선을 정말로 많이 깔아댄다. 발매 텀을 보면 기억도 못하는 거 왜 자꾸 깔아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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