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인간 같아, 루시 - S Novel+
제로마니 지음, 유키사메 그림, 고나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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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원을 들어주는 알라딘의 마법 램프가 있다. 치면, 무엇부터 소원을 빌까. 젊음을 되찾고, 부자가 되고 싶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으면, 사람마다 소원은 가지각색일 것이다. 어느 날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가 툭 떨어진다. 선량한 사람이라면 정의로운데 쓸 것이고, 불량한 사람이라면 사리사욕이나 범죄에 쓸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부모님의 목숨을 구하는데 소원을 빈다.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쫓기던 부모님은 아들을 숨겨놓고 미끼 역할을 하였으나 아무래도 부모님은 능력적으로 평범한 사람이었나 보다. 그래서 주인공은 눈앞에 나타난 '엑센트리 박스'에게 소원을 빌어 부모님을 쫓던 사람들을 물리친다. 하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원하는 게 있으면 대가가 따른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부모님을 구한 대가는 인간으로서 구성해야 될 무언가 중 하나였다.


마치 강철의 연금술사처럼 등가교환을 연상시킨다. 소원을 빌 때마다 인간이 가진 구성요소, 가령 희로애락이라던지 슬픔 등 감정과 사고 패턴, 습관을 하나식 빼앗긴다. 이렇게 하나식 빼앗기다 보면 나중엔 껍질만 남은 인간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죽음으로 직결된다. 그렇다면 이런 중요한 구성요소를 빼앗겨가면서 주인공은 무슨 소원을 빌까. 사람을 구하고, 나라를 구하고, 악에 맞서 싸우는 등 정의를 위해 소원을 빌까? 주인공 하기 나름으로 미국 영화 어벤저스처럼 그런 활약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장면들은 보여주지 않는다. 히어로란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닌, 내 주위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손길을 내미는 것으로도 히어로는 될 수 있다. 가령 치한에 쫓기는 여자를 구해준다던지, 담뱃불이 떨어져 발등에 화상을 입은 사람을 치료해준다던지...


어이가 없을 수도 있겠는데, 사람의 정의(正義)란 누군가의 잣대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정의(定義) 되지도 않는다. 자신의 구성 요소를 잃어가면서 타인을 도와주는 것에 동정은 보낼 수 있어도 비난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최소한 나는 행동을 하고 있으니까.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이 작품은 그런 거창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사실 소원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내가 나로 살아가는 이유를 그냥 구구절절 풀어놓을 뿐이다. 소원을 빈다는 건 등가교환이다. 내가 나로서 있기 필요한 구성요소가 빠지는 동시에 도움을 받은 사람에게서 내 기억이 지워진다. 주인공은 부모님을 구해준 대가로 부모님의 기억에서 나의 기억은 사라졌다. 아버지는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자기 집에 있는 게 못마땅하여 죽도록 팬다. 그리고 아들을 남겨둔 채 이사 가버린다.


​그러니까 하나의 소원에 두 가지를 잃게 된다. 주인공은 부모님을 구하면서 기억 말고도 '타산'을 빼앗겼다. 남을 구하는데 있어서 타산이 빠지게 되고 그렇다 보니 도와주는 것에 일말의 망설임은 없다. 그럴수록 주인공이 가진 구성요소는 하나식 없어진다. 주인공은 그렇게 사람을 도와주고 구하면서 미각을 잃고, 공복감을 잃고, 사고 패턴을 잃어간다. 여기서 하나 흥미로운 것, 그렇다면 주인공의 구성요소를 누가 빼앗아 가는 것일 것이다. 그의 소원을 들어주는 '엑센트리 박스'에서 튀어나온 12살짜리 소녀다. 주인공은 그녀에게 '스크램블'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스크램블은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에 보유자의 인간이 가진 구성요소 중 하나를 가져간다. 이렇게 주인공이 구성요소를 잃어갈수록 스크램블은 인간에 가까워진다.


주인공은 뭣 때문에 구성요소를 잃어가면서까지 타인을 도우는 것일까. 작품은 소원보다 주인공의 행동에 많은 초점을 맞춘다. 주인공은 살아가는 의미이자 이유를 사람을 도우는 데서 찾는다. 맹목적이고 집착에 가깝다. 그 끝에 기다리는 건 빈 껍질이라는 종말임에도 개의치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데 이유가 필요한가?라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할까.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런 거창한 건 들어있지 않다. 그저 읽는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무언가만 있을 뿐이다. 소원을 빌지 않으면 구성요소가 빠질 일은 없다. 소원이 없어도 사람은 충분히 도울 수 있는 레벨의 일만 일어난다. 그렇잖은가. 발등에 떨어진 담뱃불을 치료하는데 화상 치료제만 있으면 될 테니까 말이다. 치한에 쫓기는 여자가 있다면 경찰을 부르던가 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소원을 남발해 자가 지신을 죽여가는 주인공에게 도통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이미 부모님을 구할 때 타산을 빼앗기고, 그렇게 망가지기 시작하여 결국 부팅 프로그램이 소실된 컴퓨터처럼 바탕화면엔 들어오지 못하는 무한 부팅만 해대는 주인공만 남았다 뭐 그런 이야기 같다. 모순덩어리다. 소원을 빌 때마다 구성요소가 빼앗겨 간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소원이 없으면 해결 못한 사건들도 아니다. 자기 자신을 죽여가며 남을 도우고, 그렇게 망가져 가면서도 뭔가 바뀌려 하지 않는 주인공이다. 결국 자기 자신의 모순을 발견했지만 이번엔 모순을 없애기 위해 죽어 버리겠다고 나선다. 자신의 기억하는 사람들에게서 기억을 지우려 하고, 그것으로 인해 타인이 받을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미 그런 감정은 잃은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맺으며: 이 작품처럼 짜증을 불러온 작품도 없겠다. 글을 풀어 놓는 것에 독자들의 독해력은 안중에도 없다. 마치 덜 익은 현미밥을 먹는 듯 밥알이 따로 논다. 뭔가 온갖 미사여구는 다 갖다 붙여 놨는데 뭔 뜻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필자가 600권이 넘어가는 라노벨을 읽어오면서 이렇게 자기 멋대로인 작품은 처음이다. 결국 요점을 찾아보면 사람이 사람을 돕는데 이유가 필요하나?이고, 그로 인해 내가 뭘 잃든 상관하지 말아 줘라는 게 포인트다(아마도). 뭔가 큰일을 하면서 구성요소를 빼앗겨 간다면 개연성이라도 있을 텐데, 고작 발등에 떨어진 담뱃불을 치료해주고 구성요소를 빼앗긴다. 정말로 개연성이 하나도 없다. 주변에서 잊혀 간다는 것, 내가 나로 있지 못한다는 두려움도 없다. 그저 잊히기 위해, 남을 도주는 것에 삶의 이유를 찾는, 그저 자///살 지망생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필자가 이 작품이 전하는 의미를 전혀 이해 못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풀어내봐야 이해는 해도 공감하는 사람은 절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제목의 루시는 누구냐. 1권에선 나오지도 않는다. 1권이라는 걸 보면 2권도 나온다는 소리인데 솔직히 이런 작품은 정발 안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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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 소녀의 살아가는 길 2 - S Novel+
사토 마토 지음, 니리츠 그림, 김정규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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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주의, 긴 글 주의







이것은 이세계 소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마왕을 무찔러 달라고 소환된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세계에는 별과 지맥의 영향으로 이세계에 흘러드는 다른 별의 사람이 있다. 사리사욕을 위해 소환되는 사람도 있다. 결과 지구인은 이세계인들로 인해 언제나 고통을 받는다. 미완성인 인격의 학생들이, 평범했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던 세상과 동떨어진 세계에 떨어져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세계로 불려와 흘러가야 한다면.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커져가는 고향의 그리움과 가족과 친구를 만나고 싶어 하는 애틋함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세계는 지구가 아니다. 모습은 비슷해도 본질적으로 같은 인간은 아니다. 그러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든 세계에서 그저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게 죄인가를 물었을 때, 그것이 죄라고 한다면 이세계가 어찌 되든 내 알 바는 아니게 된다. 1천 년 전 그렇게 4대 재앙이 탄생했고, 이세계는 전멸이라는 수순을 밟게 된다.


메노우는 아카리를 죽이기 위해 들렀던 고도 가름을 떠나 다시 정처 없는 여행길에 오른다. 아카리는 죽지 않는다. 그녀의 능력은 [회귀], 목숨이 끊어진 순간 그녀의 시간은 역행하여 가장 안전한 곳에서 재시작하게 된다. 이세계는 1천 년 전의 교훈을 받아들여 교회를 필두로 이세계로 넘어오는 지구인을 철저히 수색하여 배척하는 일을 하고 있다. 메노우는 처형인으로서 그 선봉에 서 있다. 아카리는 교회에 대항하여 어느 왕족이 저지른 소환에 의해 이세계로 소환된다. 소환은 금지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왕족이나 되는 사람이 소환식을 거행했던 이유는, 지금에서야 생각났는데 1권에서 이미 복선이 투하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이세계 체재는 어딘가 부자연스럽다는걸. 너무나 힘이 커져버린 교회와 문답 무용으로 지구인을 배척하는 시스템이 옳은가를 묻기 시작한다. 아카리는 그 대답의 하나로 소환되었다. 왜냐면, 지구인은 이세계로 넘어오면서 강대한 힘을 소유하게 되고, 그걸 이용하면 정체된 세상을 타파할 수 있으니까.


여기서 불합리가 존재한다. 지구인은 이세계로 넘어올 때 능력을 받게 되고, 이 능력은 쓰면 쓸수록 사수의 영혼과 기억을 소모시킨다. 영혼과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내가 나로 있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능력은 지구인의 의식과 상관없이 존재하게 되고, 영혼이 갈려 나가고 기억을 모두 잃게 된 사수는 능력에 따른 행동만 되풀이하게 된다. 요컨대 사수가 죽어버린 기관총이 총알을 무한대로 공급받으면서 제멋대로 갈겨된다고 보면 된다. 사실 이 부분은 작중에서 보다 고차원적인 설명으로 이뤄져 있으나 상세한 설명은 귀찮으니 생략하도록 하자. 그래서 이세계는 지구인을 보는 족족 처형해 나가고 있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사상자는 끝도 없이 나올 테니까. 그 발로가 세계를 멸망 직전까지 이끌었던 1천 년 전 4대 재앙이다. 하지만 능력을 쓰지 않으면 영혼과 기억은 소모되지 않는다. 즉, 지구인을 교육해서 능력을 안 쓰게 하면 재앙은 오지 않는다는 아주 심플한 해결책이 있음에도 이세계는 그러지 않는다. 반대로, 지구인을 이용하면 이세계는 멸망한다. 그럼에도 소환에 주저하지 않는 것에서 알마나 이세계가 부조리로 정체되어 있는지 잘 나타내고 있다.


아카리는 지구인이다. 그녀의 능력은 [회귀]다. 그녀가 능력을 행사해서 기억과 영혼 모두 소모되었을 경우 이세계에 미칠 파장은 계산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메노우는 그녀를 죽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항구도시 '리벨'이다. 4대 재앙 중 하나인 '무마전'이 존재하는 곳이다. 1천 년 전 기억과 영혼을 모두 소진해서 순수한 능력 마(魔)가 되어 버린 '지구인 소녀'가 봉인된 곳이다. 보통 여느 라노벨이라면 魔가 되어버린 소녀를 구출해서 동료로 받아들여 여행을 떠나는 클리셰를 보여줬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거 없다. 어디까지나 순수 능력만 남아버린 지구인이 어떤 짓을 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이다. 순수한 능력은 그 능력만으로 움직이기에 컨트롤은 불가능하다. 메노우는 아카리를 魔가 봉인되어 있는 무마전에 같이 봉인 시키려 한다. 하지만 한가지 그녀(매노우)의 마음에 뭔가 걸리는 것이 있다. '죄악감'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아이를 죽이는 것에 오는 반발, 원래 처형자의 일을 하도록 철저히 훈련받은 그녀가 이런 마음을 가질 리가 없다.


이렇듯 메노우는 처형인으로써 본분을 다하고자 아카리를 죽이려 애쓴다. 개그나 코믹풍이 아닌 정말로 시종일관 사람이 예사로 죽어나가는 시리어스하고 진지한 장면을 그려간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카리는 매우 밝은 모습으로 메노우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며 정신 사납게 한다. 마치 미래를 알고 있는 듯, 지금의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듯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게 상당히 애틋하게 다가온다. 그런 아카리를 보며 메노우의 마음은 점차 처형인으로서의 존재 의문과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죄악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원래는 처형인에게 있어서 불필요한 감정들이다. 이러한 감정에서 이 작품의 또 다른 포인트 억압이 대두된다. 세계를 위해서라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을 죽인다는 행위, 그것으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야 하는 본말전도 같은 행위가 정당하고 올바른 세계인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그래서 거기에 대항하는 조직도 생겨난다. 뭉개지지만.

 

이번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마논 리벨'이라는 서브 히로인의 어머니다. 지구인으로서 정식 소환이 아닌 흘러들어와 이세계에 정착했고, 교회의 눈을 피해 리벨 항구를 지배하는 귀족에게 거둬들여져 딸 마논을 낳게 된다. 어머니 또한 능력을 받았지만 힘을 철저히 숨긴 덕분에 어머니는 기억과 영혼을 잃지 않게 된다(이게 포인트다). 마논을 낳은 후 행복하게 이세계에서 살아갔다면 아마 이번 2권의 이야기는 성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꿈과 희망이 없다. 몸은 이세계에 있어도 마음은 지구에 가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애틋한 감정을 들게 한다. 이렇듯 감정에 관련해서 제법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할까. 그래서 이번 이야기의 중추로 딸 마논 리벨이 메노우와 아카리를 막아서며 위에서 물었던 답을 요구하게 된다. 교회만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죽지 않아도 되었고, 지구인을 어머니로 둔 자신도 기대를 받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망가져버린 마논의 자유를 그리는 게 상당히 뼈아프게 다가온다. 


그리고 무마전에서 삐져나온 만마전(魔가된 소녀)과의 싸움은 지구인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부각시켜간다. 악은 지구인?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지구인들을 죽여가는 교회가 악? 사실 4대 재앙도 처음엔 평범한 지구인이었다. 그저 이들은 지구로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다. 아카리는 무사히 죽을 수 있을까. 이미 그녀도 기억과 영혼의 소모가 극심하다. 아카리의 소원은 메노우를 살리는 것. 그럴수록 메노우의 목을 죄는 아이러니가 어우러져 이야기가 상당히 재미있게 흘러간다. 그러고 보니 1권 표지에서 메노우가 시계를 들고 있던 의미를 새삼 알게 된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언급은 힘들지만.


맺으며: 사실 이 작품은 스포일러를 하지 않으면 리뷰 쓰기가 어려운 작품에 속한다. 아카리의 목적을 알아야만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할까. 사실은 메노우가 아카리를 죽이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 아닌, 아카리가 메노우를 살리기 위해 여행을 하는 거라는 조금은 복잡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거기에 싫든 좋든 계속 넘어오는 지구인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이세계가 멸망해버릴 거라는, 그래서 교회의 지구인 사냥에 면죄부를 주고 있는데 알고 보면 그게 또 아니라는 복선이 깔려 있다. 그런 의문을 느껴가는 메노우의 목숨이 풍전등화가 되고, 아카리는 그런 메노우를 살리기 위해 여행과 회귀를 하는데 기억이 자꾸만 소모되어서 내가 나로 있는 게 불가능해진다는 것의 안타까움도 있는 등 이야기가 좋은 뜻으로는 알차게 구성되어 있고, 나쁘게 말하면 난잡하다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메노우와 아카리 말고도 모모등 여러 히로인들이 나오는데도 언급할 여유가 없다. 다른 히로인들에 대해선 차후에 다시 언급하겠다.


어쨌거나 이 작품은 필자가 추천하는 작품이다. 여느 이세계물이 정도의 길을 걷는다면 이 작품은 사도의 길을 걷는다고 할 수 있다. 나쁜 의미가 아닌, 지구인이 이세계를 구하는 게 아닌 이세계를 파멸로 이끈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세계 사람들은 지구인과 어떻게든 공존을 모색하는 것도 아니다. 보는 족족 다 죽여버리니까. 그런 와중에 지구인 소녀를 주운 처형인이 같이 여행을 하며 이세계의 의문을 깨달아가고 반기를 드는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다. 요 부분은 조금 클리셰적이긴 하지만. 이번 2권에서는 그 전조가 조금 드러난다. 무마전에 봉인되어 있는 순수 魔의 소녀에 의해 누군가의 의지 아닌 나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고 할까. 그리고 아카리가 회귀하면서도 아직 자기가 실아 있는 것에 의문을 느껴가고 조금식 그 의문에 접근하면서 정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이 있다. 다만 독해력을 꽤 많이 요구한다는 단점이 있다. 사실 필자는 절반도 이해 못했다. 그러니 리뷰가 두서없어도 양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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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 슬레이어 13 - L Books
카규 쿠모 지음, 칸나츠키 노보루 그림, 박경용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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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주의





이 업계도 인재난인가 보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모험가에 갓 입문한 초보들의 사망률이 굉장히 높다. 혹은 망가져서 수녀원에 보호되거나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영애 검사처럼 떨치고 일어나는 경우는 극소수다. 그래서 은등급 정도 되면 경외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 보니 만성적인 인재난이다. 살던 마을을 뛰쳐 나와 기껏 고블린 한두 마리 쫓아 보냈다고 기고만장해서 던전에 들어갔다가 못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럴 경우 피해를 보는 건 누구일까. 죽어버린 당사자일까. 일손이 부족해진 모험가 길드일까. 아니면 솟아나는 마물떼에 시름하는 마을 사람들일까. 어쩌다 첫 모험에 성공해서 그 길로 용기를 얻어 승승장구하는 경우는 축복받은 거겠지. 곤봉 전사와 수습 성녀가 그런 경우고. 바위를 먹는 괴물에 파티가 전멸해버린 신참 전사는 운이 매우 좋은 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살아남은 자들의 공통점을 찾으라고 한다. 그것은 신중함과 기본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100전 100승이라는 말이 있다. 병사가 전쟁에 화살을 들고 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적을 과소평가했을 때의 비참함은 말할 것도 없다. 준비는 자신의 목숨과도 직결된다. 전쟁에 눈에 띄는 화려한 옷을 입고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몸을 보호해주는 장비를 착용하지 않는다면 눈먼 화살은 반드시 나를 노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신중함과 기본을 조롱한다. 멋진 활약을 보여줄 거라며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준비에 게을리한다. 그 대가는 목숨이다. 다만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여신관은 그런 점을 첫 모험에서 뼈아프게 배우게 된다. 곤봉 전사와 수습 성녀는 기본에 충실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승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여기 또 한 명의 모험가가 등장한다. 시골 마을에서 엄마가 누구인지 모른 채, 쓰레기 아빠와 살다 모험가가 되기 위해 소녀는 도시로 찾아온다. 그녀도 흔하디흔하고 화려한 성공을 꿈꾸다 눈 밑에 보이지 않는 모험가 A, B, C 중 하나일까. 접수원 누님은 모험가 모집을 위해 한가지 꾀를 낸다. 미궁을 만들어 초보들의 훈련을 겸한 경기를 해보자고. 그러면 조금은 생환율이 올라갈까. 고블린은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 잡몹이지만, 초보들의 생환율을 극단적으로 떨어트리는 주범이기도 하다. 그리고 던전에 도사리는 각종 함정들. 이걸 인위적으로 만들어 초보들로 하여금 답파하게 하면 그들도 모험가 나부랭이라고 불러도 좋겠지. 그러니까 잘 부탁합니다. 고블린 슬레이어 씨. 사실 뭐 미궁 경기는 접수원 누님이 고블린 슬레이어와 좀 더 같은 시간을 보내려는 목적도 있다. 언급은 없지만.


시골 소녀도 미궁 경기에 참여한다. 그녀는 잡몹에 쓸려나가는 흔한 A, B, C일까. 아니면 곤봉 전사와 수습 성녀처럼 자신의 발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게 될까. 이야기는 그녀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 않는다. 흔한 모험가 지망생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 그녀의 에피소드는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남들과는 다른 모습을 들라면 그녀는 모험가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초보들이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인 장비의 효용성을 무시하지 않는 모습에서 이미 절반의 성공을 보인다. 던전에서 두 손의 자유는 생사를 가른다는 걸 그녀는 감각적으로 알아간다. 그래서 고블린 슬레이어는 감탄해 마지않는다. 하지만 싸움 실력은 빈말로도 좋다 할 수 없다. 미궁 경기가 아닌 실전의 던전이었다면 그녀의 운명은 여느 A, B, C처럼 되지 않았을까. 신의 변덕이 작용한다는 운명의 주사위는 그녀를 버리지 않는다.


사실 그녀의 백치미가 이번 13권의 핵심이다. 소꿉친구의 괴롭힘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미궁 경기에서 길을 잘못 들어 그녀로서는 감히 범접하지 못할 마신(魔神)을 만났을 때도 경기 감독관으로 착각해서 함부로 말을 거는 등 누가 봐도 상황적으로 이상함에도 그 상황에 이상함을 못 느끼는 백치미는 잔잔한 웃음을 자아낸다. 이런 장면들은 사실 이 작품에서 흔한 장면이 아니다. 걸핏하면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세계에서 그녀 또한 특별시 되지는 않을 터였을 것이다. 더욱이 그녀는 혼자 다닌다. 이 말은 100% 사망 코스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신중함과 기본에 충실한 사람은 반드시 살리는 경향이 있다. 이게 이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고. 그녀는 벌벌 떨면서도 도망치지 않았고, 조롱 당했다고 물러나지 않는다. 그녀에게서 미궁 경기의 본질을 엿볼 수 있다.


여전히 히로인들의 고블린 슬레이어 앓이는 계속된다. 여신관은 미묘하지만. 그중에서 접수원 누님은 이번 13권에서 발군의 실력을 뽐낸다고 할까. 미궁 경기를 준비하면서 고블린 슬레이어를 끌어들이고, 그것이 옳았다는 게 증명되고, 이걸 계기로 살짝 데이트를 신청하며 부뚜막 올라가는 고양이가 되는 그녀의 모습은 순수하면서도 약간은 영악하다고 해야 할까. 다만 그 고블린 슬레이어의 관심은 고블린뿐이라는게 함정이다. 아무튼 시골 소녀를 인도하는 고블린 슬레이어도 흥미롭다. 미궁 경기에서 길을 벗어난 시골 소녀에게 한 마디쯤 해줄 만하겠건만, 그녀는 길을 벗어나도 길을 벗어났다는 자각도 없고, 마신을 동네 아저씨 취급하며 성격 나쁜 감독관이라고 투덜거리는 그녀에게 그동안의 노력의 대가로 칭찬의 한마디는 정말 흐뭇하기 짝이 없다.


어쨌거나 시골 소녀에게 있어서 미궁 경기는 첫 모험이었고, 첫 모험을 무사히 마친 모험가는 죽지 않은 불문율에 따라 그녀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첫 모험을 무사히 마쳤다고 무조건 죽지 않는 건 아니다. 몇 권인지 까먹었는데 고블린 성체에 잠입했던 여성 3인조는 운명을 달리했으니까. 아마 기준은 엑스트라인가 아닌 가로 나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시골 소녀의 임팩트는 있었다. 고블린 슬레이어가 거둬들이면 좋겠는데 곤봉 전사와 수습 성녀처럼 언젠가 새로운 이야기의 주연이 되지 않을까 바라본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시골 소녀는 자신을 괴롭혔던 소꿉친구를 뛰어넘어 새로운 길로 나아간다. 이것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맺으며: 딱히 쓸 건 없다. 일러스트는 여전히 입체적인 게, 특히 시골 소녀의 일러스트는 상당히 수준급이다. 여신관과 왕매(왕의 여동생)의 자매 같은 일러스트도 좋았고. 그리고 시골 소녀를 통해 순한 고블린 슬레이어의 탄생을 보는 듯했는데 이후의 이야기가 기대된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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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공작으로 전생했으니까, 이번엔 너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 9 - Novel Engine
아이다 리즈무 지음, nauribon 그림, ruleeZ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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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스포일러 주의, 긴 글 주의






이건 마치 풍선효과를 보는듯하다. 한쪽을 틀어막으면 반대편이 볼록 튀어나와버리고 또 이쪽을 막으니 반대편이 튀어나는 바람에 버틸 제간이 없다. 주인공 '데닝'은 드디어 '샬롯'에게 고백을 하였고 남들에겐 비밀인 연인 관계가 된다. 이제 남은 건 부모님을 설득해 공식 연인이 되는 길만 남았지만 애초에 평민인 샬롯이 공작가의 자재와 결혼한다는 건 어불성설, 고백과 동시에 그냥 야반도주나 했으면 해피엔딩인 것을 뭔 미련이 남았다고 계속 미적대더니 돼지 꼬리가 밟히고 개목걸이를 차게 생겼다. 주이공은 이전생에서 샬롯과 결혼하겠다고 공작이라는 지위를 버리고 망나니 짓을 했다가 정나미가 떨어진 샬롯이 엄한 남자에게 가버리는 전생을 거쳐 이번엔 제대로 돌아보게 하겠다며 개과천선하여 구국의 영웅이 되었더니 이번엔 집안에서 다른 여자와 결혼하란다.


나라의 멸망이 걸린 굴직한 사건을 해결하고, 여왕이 마음에 들어 하고, 방구석 폐인 왕녀가 찾아와서 마음을 열고 기대는 남자를 가만히 내버려 둘리가 없다. 시대는 영웅을 바랐고 주인공은 영웅이 되었다. 어릴 적 바람의 신동이라 일컬어지며 마법에도 특출났던 주인공, 집안에서도 장남이 아닌 셋째 주인공에게 공작가를 물려줄 만큼 나라에서도 큰 기대를 받았던 주인공이 어쩌다 망가져서 쌩양아치가 되어 버렸던가. 그건 한눈에 반한 '샬롯'과 맺어지기 위한, 쌩아치를 하다 보면 집안의 기대를 받지 않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쫓겨 날 테니 평민인 샬롯과 맺어질 수 있다는 얄팍한 어린애 다운 생각에 따라 행동한 결과다. 그 결과 쫓겨났고, 꿈에도 염원하던 샬롯에게 고백도 성공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바로 주인공 어릴 적 정략결혼 상대였던 이웃나라 서키스타의 왕녀 '알리시아'다. 주인공이 속한 나라와 알리시아가 속한 나라는 동맹의 의미로 둘을 결혼 시키려 했는데 그만 주인공이 샬롯에게 꽂혀서 양아치 짓을 하는 바람에 파혼이 되어버렸고, 그 비난은 오롯이 알리시아가 뒤집어써야만 했다. 보는 안목 없다 운운은 성장한 지금까지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그녀의 흑역사다. 그러니 알리시아가 주인공을 미워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주인공이 구국의 영웅이 된 지금 세상은 다시 둘을 엮으려고 한다. 세상 참 불공평하기 짝이 없다. 그 좀 양아치 짓 했다고 내쫓을 땐 언제고, 지금에 와서 바람의 신동의 귀환이라는 둥 자기들(집안) 멋대로 본인(주인공과 알리시아)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일을 추진하니 기쁠 리가 있나.


이번 이야기는 돼지(주인공)와 결혼하기 싫어하는 알리시아의 고군분투기를 다룬다. 정확히는 싫어한다기보다 집안에서 본인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멋대로 정해주는 정략결혼이 싫다고 해야겠다. 주인공이 정신을 차린 후 알리시아를 몇 번이나 구해주게 되면서 알라시아는 딱히 주인공이 싫어지지 않게 되었다고 할까. 하지만 알리시아는 멋대로인 집안에 반발할 겸 그렇다면 결혼보다 더 중요한 걸 찾아 주면 결혼은 유야무야되겠다 싶어 대미궁(던전) 깊숙이 처박혀 있는 국가 보물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알리시아는 행동파다. 한번 정하면 일사천리로 진행 시키고 그게 무엇이든 관철 시키려는 노력파다. 그런데 그걸 관철 시킬만한 능력은 없다. 누군가가 그녀의 곁에 서서 같이 행동해주어야만 시너지 효과를 얻어 성공시키는 타입이랄까. 그동안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 '슈야'가 그 몫을 해주었다.


사실 이전생에서 샬롯을 빼앗아간 남자가 바로 또 다른 주인공 '슈야'다. 알리시아 또한 슈야에게 가버리게 된다. 이걸 알고 있는 주인공이라면 슈야를 어떻게든 알리시아에게 붙여줘서 둘을 맺어지게 하고 자신은 샬롯을 붙들면 될 것이다. 문제는 작가가 이번 9권 집필에 매우 귀찮아했지 않았나 하는 티가 역력하게 묻어난다는 거다. 한마디로 이번 9권에서의 주인공을 표현하라면 쓰레기다. 일단 알리시아는 드래곤도 혼자서 때려잡으며 구국의 영웅으로 떠오른 주인공을 대미궁에 들어가는데 동행 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모든 속성의 마법을 구사할 수 있고, 상황 판단도 뛰어나다. 그런 주인공에게 알리시아는 대미궁에 들어간다는 말조차 꺼내지 않는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알리시아와 결혼하게 되고, 그렇다면 샬롯하고 맺어지는 건 불가능해진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절박함이 없다. 8권까지 그토록 샬롯 앓이를 해놓고 알리시아가 하는 일은 자신에게도 유익한 것이 건만 그녀가 대미궁에 들어간다는 첩보를 입수 했음에도 소 닭 보듯이 한다. 국가 보물을 탈환해서 국가에 반환하면 결혼은 안 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주인공이 나서서 알리시아의 손을 이끌어줘도 모자랄 판에 야밤에 행동을 개시하는 알리시아의 뒤를 밟아 나도 가겠다고 껴든다. 준비는 알리시아가 다 해놨는데 숟가락을 얹을 뿐이다. 알리사아가 고용한 모험가와 사사건건 시비를 틀고, 모험가가 잡아온 식량을 얻어먹는 주제에 반찬 투정을 해댄다. 야영에 있어서 손이 많으면 편해지건만 가만히 있는다. 애초에 남의 일이 아닌, 주인공 본인의 일이다. 알리시아의 행동에 따라 주인공은 샬롯과 맺어질 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다는 걸 작가는 표현조차 하지 않는다. <- ​작가가 집필하기 얼마나 귀찮아 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할까.


나아가 알리사아가 고용한 모험가의 실력을 보겠다고 알리시아를 습격하는 도적을 일부러 막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최악이 아닐 수 없다. 알리시아는 별다른 능력이 없다. 그래놓고 모험가에게 왜 알리시아를 구해주지 않았냐고 타박한다. 순간 미친놈이 아닌가 했다. 애초에 알리시아가 하는 일은 주인공과도 무관하지 않다. 결혼을 무효화 시키는 일은 원래 주인공이 더 나서서 해야 될 일이다. 알리시아에게 있어서 절박함은 크지 않다. 집안에서 정해주는 남편감은 고를 수가 있으니 그녀에게 있어서 여지는 있다. 그러나 주인공에게 있어서 샬롯 이외엔 여지가 없다. 남여 평등 어쩌구를 떠나 '일부러' 도적을 통과시켰다는 것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모험가가 가만히 있자 왜 가만히 있었냐고 대든다. 웃긴 건 알리시아도 뭔가 한마디쯤 해줄만 한데 그런 거 없다. 작가는 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걸까.


이대로 대미궁 공략이 실패하면 주인공은 알리시아와 결혼해야 하고 이것은 샬롯과의 이별을 뜻한다. 그러니 절박함은 주인공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크다. 그런데 절박함은 온데간데없고, 반찬 투정이나 하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투정하고, 모험가에게 시비나 터는 주인공이라니. 결국 대미궁에 잠입해서 일은 터지고 만다. 알리시아는 별다른 능력이 없다. 그런 그녀가 대미궁에 들어온다는 건 그만큼의 각오가 필요하다. 대미궁은 상위 모험가도 마구 죽어나가는 마굴이다. 거기서 뿜어지는 독기는 일반인이 감당하기엔 버겁다. 그럼에도 미궁에 발을 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의 의지, 그 의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어야 할 주인공은 소 닭 보듯이 한다. 그러니 그녀는 몸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작가는 일말의 양심은 있었는지 주인공에게 마물에게 잡혀가는 알리시아를 구하려 애를 쓰게 하긴 한다. 안 하면 어쩔 건데 싶긴 했지만.


홀로 서고 싶다는 마음, 집안의 뜻대로 흘러가는 것에 분하다는 마음, 하나의 인격체보다 물건 다루듯 다른 나라에 시집보내려는 것에 오는 반발심, 그런 그녀가 주인공에게 같이 가자고 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그런 그녀의 마음을 하나도 알아주지 않는 주인공, 애초에 자신을 선택하지 않고 모험가를 고용해 대미궁에 들어가는 것에 의문 하나 느끼지 않는 게 말이 되나 싶다. 버림받았다는 걸 모르는 무골충이가 따로 없다. 고생 끝에 대미궁의 안쪽, 드디어 목표로 하던걸 눈앞에 뒀다. 그리고 주인공을 막아서는 마물은 인간족에게 있어서 당대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왕의 수호자 가디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슬라임이다. 순간, 전생슬(전생 했더니 슬라임)이라는 작품이 떠올랐는데 작가가 어지간히도 아이디어가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맺으며: 운명과 맞서 싸운다. 내 운명은 내 것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주인공을 어느 에피소드보다 빛나게 할 수 있었는데 다 말아 먹는다. 의욕 없는 주인공은 내다 버리고 알리시아를 위해 발품을 팔아준 '슈야'를 집어넣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남이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얹는 것도 모자라 반찬 투정이나 하는 주인공이라니 최악이다. 남의 일이 아닌 주인공 자신에게 들이닥친 일인데 왜 주인공은 자기기 나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은 걸까. 시종일관 이런 식이다. 알리시아가 고용한 모험가에게 일일이 시비 걸기 바쁘고, 대미궁에 내려와서도 끝에 조금 활약할 뿐이다. 마지막 보스전에서도 뭔가 근본이 없는 전투신을 보이는데 주인공의 의욕 문제가 아니라 작가가 의욕이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해준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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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이끄는 이세계 여행 6 - L Novel
아즈미 케이 지음, 마츠모토 미츠아키 그림, 정금택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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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스포일러 주의, 긴 글 주의








좀 아쉬운 게 주인공이 못생겼다는 아이덴티티를 끝까지 밀고 갔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황야에 떨어지고 처음으로 들렸던 마을에서 마물 취급받으며 쫓기던 유쾌함은 이제 없다. 여신이 외모지상주의를 표방한 끝에 이세계에서 지나가는 개도 미남, 미녀다. 더구나 주인공은 이세계 종족 휴만(이제야 언급하는데 휴만은 모습은 같아도 인간하고 개념이 약간 다르다) 말도 못한다. 그러니 어디 가서 밥 빌어먹으려고 해도 불가능이라는 소리다. 그 고생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건 자명한데, 1년이 지난 지금은 어엿한 상회를 열어 떼돈을 벌고 있다. 당대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을 종자로 들이고, 실미도처럼 아공(쉽게 말하면 커다란 비닐하우스 같은)에서 이세계 아인들을 대려다 혹독한 훈련을 시켜 엄청난 실력자들(이하 아공 주민)도 양산해내고 말았다. 


상회도 궤도에 올랐고, 학교에서 제자들을 훌륭하게 가르치는 등 삶은 순풍에 돛 단 듯 순조롭다. 이제 주인공은 이세계에서 부모님 단서를 찾고, 여신에게 한방 먹이는 일만 남았다. 이런 주제로 이번 6권부터는 새로운 이야기로 접어든다. 그동안은 주인공의 성장과 정착을 다뤘다면 이번부터는 본격적으로 부모님의 단서를 추적하려고 하는데 마족이 끼어들고, 여신에 반기를 든 조직이 덤벼온다. 일회성이 아니라 앞으로 쭈욱. 덤으로 사회적으로 훌륭하게 성공한 주인공에 들붙어 쪽쪽 빨아먹으려는 자들과 주인공의 힘을 이용하려는 각종 무리들에 맞선다는 이야기도 있다. 주인공의 부모님은 이세계인이다. 이세계에서 살다가 지구로 넘어간 케이스인데,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아마도). 그래서 부모님이 이세계에서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여신이 애초에 요구한 누나와 여동생 대신 이세계로 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주인공은 가족을 아낀다. 이 신념은 지금의 아공 주민들을 아끼는 것에서 그 연장선을 느끼게 한다. 인간 우월주의에 빠진 모험가들에 의해 아공 주민이 사망하자 크나큰 상심과 죄책감에 시달린 게 주인공이다. 이런 점이 아인들과 종자들에게 각인이 되었고, 그를 신적으로 추종하게 만든다. 아무튼 그런 주인공이 겨우 부모님 단서를 손에 넣게 된다. 지금은 멸망해버린 나라에서 나름 잘 나가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조금 아쉬웠던 건 회귀본능을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고향을 알았고, 부모님의 발자취를 알았는데 바로 쫓아가서 확인은 하지 않는다. 사실 이 부분에서는 인간미가 떨어진다기 보다 고향이 마족이 지배하는 적지라서라는 이유가 크다.


어쨌거나 여신에게 한방 먹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주인공만이 아니다. 주인공은 자신(여신)이 잘못 끌고 와놓고 못생겼다고 세계의 끝 황야에 내동댕이치는 것도 모자라 통역 기능도 주지 않아 고생을 참 많이 했다. 그 흔한 치트키도 받지 못했다. 다만 부모님이 이세계인이라서 그런지 마력 하나만은 유복해서 이걸로 어떻게든 살아왔다. 그러니 여신 아구창 한대 때린다고 벌은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악감정을 주인공만 가진 게 아니다. 여신의 개입을 막고 이제 휴만들만의 세계를 만들겠다는 조직이 나타난다. 만들었다고 주인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서 나대는데 사실 주인공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근데 조직이 여신에 대항하는 방법이 눈뜨고 못 봐줄 정도로 도가 지나치다. 생체실험을 자행하는 등 반인륜적인 모습에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이 좋게 봐줄 리가 없다.


근데 사실 나중에 결과적으로 보면 이런 조직들은 주인공에게 짓밟히는 역할이 될 테니 굳이 크게 언급할 가치는 없다. 마족도 어떻게 보면 여신 타도라는, 주인공과 맥을 같이 하지만 애초에 주인공을 죽이려 했으니 적이나 마찬가지다. 이렇듯 크게 보면 하나의 목표(여신 타도)로 저돌맹진하는 각각의 주체들이 주인공과 휘말리게 되고 썰려 나간다는 구도다. 재미있는 점은 주인공을 구워삶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이미 주인공은 그런 점을 꿰뚫고 있다는 거다. 여기서 유념해야 될 건 능력이 좋아서 알아챈다기 보다, 가령 주인공과 그의 종자들 사이 이간질 시키려는 마족녀(女)가 나오는데 종자들의 행동들을 이미 주인공은 알고 있다는 거다. 즉, 주인공에게 있어서 유해하지도 않고, 새삼스럽지 않은 걸로 나불나불 떠들어서 되레 주인공의 적이 누구인지 자기가 각인시켜버리는 어이없는 일도 일어난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사실이 하나 생겨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번 6권부터는 새로운 이야기로 접어든다고 했는데, 마물과 인간(이세계 주민인 휴만 말고) 사이에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복선이 나왔다. 여기서 마물이란 당연히 주인공의 종자들인 야생 드래곤 '토모에'와 과부 독거미 '미오'를 말한다. 주인공을 만나 인간으로 변신은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녀들의 본모습은 이세계에서 악몽이라고 일컬어지는 대단히 위험한 마물들이다. 여신이 독설로 내뱉었던 마물과 교미하며 살아가라는 의미가 이런 뜻이었나 본데, 이미 1권부터 복선이 나와 있었건만 이제야 생각나게 된다. 아무튼 토모에와 미오에게 있어서 광명이나 마찬가지다. 작가가 고생하는 그녀들을 위해 하나의 선물을 준게 아닐까 싶다. 근데 토모에는 알아도 미오는 아직 모른다는 것에서 흥미를 돋운다. 왜냐면, 미오는 얀데레 습성에 눈을 떴기 때문.


이 모든 게 '루토'라는 상위 드래곤이 출연하면서 시작된다. 6권을 기점으로 주인공의 인간관계는 급속하게 늘어만 간다. 엄밀히 따지면 인간이 아닌 주로 마물들이라는 게 함정이지만. 사실 루토는 리뷰에서 언급 안 하려 했는데 앞으로 주인공과 엮일 거 같아 언급해본다. 첫 출연부터 BL을 찍겠다고 덤비는 통에 주인공 입장이 말이 아니다. 힘의 차이에서 우월감에 삐진 듯한 사람을 짜증 나게 하는 말투가 장난 아니다. 호시탐탐 주인공 엉덩이를 노리고 있어서 정신 차리지 않으면 큰일 낼 인물이다. 하지만 꼴에 엄청 오래 살았다고 지식은 많다. 주인공이 지구로 복귀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단서 등 루토가 가진 지식은 주인공에게 도움이 된다. 그리고 여신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흔치않은 동료다.


아직은 미숙한 모습을 보인다. 휴만 관계에서 경험이 미천하다 보니 악의적으로 접근해오는 사람들에 놀아나기 직전까지 가곤 한다. 종자들이 그의 곁에서 막아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쪽쪽 빨렸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주인공에 빌붙으려 하고, 그의 재력을 탐내는 이런 점들이 더러운 사회의 이면을 보는 듯한 리얼리티가 있다. 여타 이세계 작품들과 차별화하는 게 이런 점들인데, 능력 위주의 이세계물과 다르게 주인공은 이런 더러운 사회 이면에 대항해 살얼음판 같은 길을 걸어가며 자신의 입지를 다진다는 거다. 로봇계를 수퍼 로봇과 리얼 로봇으로 나눈다면 여타 이세계물이 수퍼 로봇이라면, 이 작품은 리얼 로봇이라 하겠다. 사실 주인공이 잘못된 길에 들어서도 종자들이 바로잡아 줄 테고, 어중간한 조직들은 토모에와 미오가 나선다면 나라가 멸망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여타 이세계물 합쳐서 이 작품의 주인공은 가장 성공한 축에 해당되지 않을까 한다. 그만큼 인덕이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맺으며: 사실 쓸 말이 더 있긴 하다. 글이 길어져서 이만 줄여야 되는 게 아쉽다고 할까. 필자가 가방끈이 짧아서 조리 있게 쓰는 방법을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여신에 대항하는 주인공에게 적대적인 조직이 등장하고, 드래곤의 정점 루토가 주인공 엉덩이를 노리기 시작했고, 마물과 인간 사이 아이가 생길 수 있다는 복선이 투하되었다. 이로써 가족끼리 하는 거 아니라며 애써 외면했던 주인공은 코너에 몰리게 된다고 할까. 그리고 이건 이전에 나온 내용이지만, 지구의 인간과 이세계의 휴만은 개념을 약간 달리한다. 주인공은 이세계에서 인간 취급이다.


여기서 설정 구멍이 발생하는데 주인공의 부모님은 이세계인이고, 이세계인은 휴만이다. 주인공은 부모님의 1세대 자녀로써 이세계 기준으로 휴만이 된다. 인간은 고대에 살았던 종족으로 특별한 무언가가 있나 보다. 그래서 작가는 주인공을 인간, 즉 무언가로 추앙하고 싶어 하나 본데 작가 스스로 구멍을 만들어 버렸다. 또한 주인공은 휴만이라서 마물(토모에와 미오)과는 아이를 만들지 못한다. 나중에 토모에나 미오에게 아이가 들어서면 진짜로 설정 구멍을 크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아마 휴만을 지구로 보내면 인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복선을 만들지 싶은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렘은 아니면서 은근히 하렘을 만들어 간다. 이미 제자들도 그렇고, 이전에 저주에 걸린 상인의 딸들을 치료해준 적이 있는데 저주가 낫자마자 얀데레 짓을 한다. 마물인 토모에와 미오는 말할 것도 없고. 아공에 주민을 들이면서 주인공에 호감을 가져가는 아인들이 늘어나는 등 최초의 못생김 주의보 아이덴티티는 이제 눈 씻고 찾으려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휴만중에서도 이미 못생김은 이제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비록 사심이라고는 해도 팔자 피려고 주인공을 향해 닥돌하던 학교 여학생들도 많았으니까. 마족녀(女)도 주인공을 포섭하기 위해 이간질에 나서는 등 주인공 몸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근데 다 부질없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주인공 곁에 마물(토모에, 미오) 두 마리가 버티고 있어서 하렘은 피다가만 꽃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건 그렇고 이번 6권은 일본색이 상당히 짙게 갈려 있다. 일본 작품이니까 일본색이 짙은 건 어쩔 수 없지만 너무 노골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작품을 좋게 보는 필자로서는 호감도가 낮아진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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