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11 - S Novel
오모리 후지노 지음, 야스다 스즈히토 그림, 김민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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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켈로스 파밀리아]에 의해 저질러진 인간의 말을 하는 몬스터 '제노스' 밀수 사건으로 시작된 벨과 비네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제노스'의 지상 진출 사태는 종반으로 향해 갑니다. 벨과 기타 친구들(?)의 활약으로 [이켈로스 파밀리아]는 궤멸되어 버렸고요. 이로써 아폴론, 이슈타르에 이어 이켈로스까지 3개나 되는 거대 파밀리아를 부숴버려 이제 파밀리아 브레이커로 불려도 손색이 없지만 다들 개의치 않으니 아무래도 좋습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비네를 필두로 제노스들을 던전으로 돌려보내기와 일전에 마을 구경하던 비네의 정체가 발각되면서 일대 소란이 일어나고 그걸 감싸는 듯한 행동을 해버린 벨과 그의 동료들은 인류의 적이 되어 가는 모습을 다루고 있는데요. 상대가 누가 되었던 수천 년 동안 적대 관계였던 몬스터가 지상으로 나왔으니 패닉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전에 몬스터 필리아(외전에서 나옴)에서도 한바탕 소란이 있었으니 공포는 더 했겠죠. 그걸 감싸는 벨과 그 일행은 역적이 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그리고 벨 앞에 [로키 파밀리아]가 막아서면서 사태는 태풍전야로 번져 갑니다. 그들 [로키 파밀리아]도 사람들로 구성된지라 자기도 그랬던 것처럼 말하면 도와줄 것이고 이해시키면 공존의 가능성을 점쳐줄 것이다. 벨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명확한 거부, 이래서는 장사를 할 수가 없게 되겠죠. 서로가 이해해서 뭐 어쩌자고, 그러니까 던전에서 몬스터를 잡아 생활하는 오라리오에서 몬스터와 공존은 자멸을 의미합니다.

 

벨이 제노스들을 보호하는 듯한 모습에 몬스터 편이 되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가진 모험가들과 마을 사람들의 악의적인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일전까지는 영웅처럼 선망의 대상이 되어 가던 소년은 한순간에 악의 근원이 되어버렸습니다. 멋대로 (벨을) 선망하고 멋대로 실망하고 참 바쁘게도 살아갑니다. 개중에는 벨 주위에 여자들 투성이라 질투심에 나선 녀석들도 있겠죠.

 

뭐 어쨌건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고, 무너지는 하늘에 솟아날 구멍은 있다잖아요. 모두가 으르렁 거려도 벨은 자신의 인연이 닿았던 사람들에서 희망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앞 길을 개척해주고 던전으로 향하는 제노스를 도와주며 몬스터와의 공존은 꿈만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알려 갑니다. 의외였던 건 공식은 아니지만 [헤파이스토스 파밀리아]도 벨에게 가담했다는 것이군요.

 

시종일관 이런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요인을 경호하는 것처럼 제노스를 던전 입구까지 어떻게든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벨과 [헤스티아 파밀리아] 일원들,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의 결실은 조금식 맺어가는 듯하지만 [로키 파밀리아]의 수뇌진과 맞부딪히면서 위기에 봉착합니다. 하지만 비네를 뒤쫓는 베이트를 마주하고 목숨을 마다하지 않은 하루히메라던지 변신의 귀재 릴리의 덕분으로 어떻게든 되어 가는 게 조마조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담으로 하루히메의 노력 덕분인지 제일 먼저 앞뒤 분간하지 않고 날뛸 줄 알았던 베이트가 의외로 조용히 지켜보는 것에 상당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외전 소드오라토리아 6권에서도 그러더니 베이트와 하루히메의 상성이 의외로 좋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입은 엄청 험해도 유독 하루히메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제 두 번 밖에 만나지 않았으니 더 지켜봐야겠지만요.

 

아이즈는 몬스터 관련해서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지 않나 하는 복선이 투하되었습니다. 아이즈에게 몬스터란 '일단 죽여'라는 의식을 안고 있습니다. 이것은 외전 소드오라토리아와 연계되지 싶은 느낌을 받았는데요. 벨의 적이 되어 비네를 악착같이 쫓는 와중에 막아서는 벨을 마구 패면서 몬스터는 처치해야 될 존재라고만 여기는 부분은 자신의 출신 성분(1)에 관련이 있어서 그랬지 않나 했습니다. 본편에서는 외전의 이야기가 거의 다뤄지지 않으니 정확한 건 이것도 조금 더 두고 봐야겠지만요.

 

어쨌건 벨의 외침도 소용없이 비네와 마주한 아이즈는 비네의 눈물 나는 어떤 행동으로 그녀도 결국 제노스의 존재를 받아들이고야 맙니다. 이게 참 인상 깊었습니다. 모든 몬스터를 다 잡아 죽일 듯 움직이면서 진정으로 훌리는 눈물 앞에서 칼을 내리는 아이즈의 모습에서 이것은 몬스터와 인간은 서로 공존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이 뒤 베이트와 조용히 관전 모드인 게 또 인상 깊었고요.

 

류는 하루히메에게 마술(버프)을 받았음에도 아이즈를 상대로 3분 밖에 버티지 못 했습니다. 기절했다가 깨어나 5년이라는 시간(공백기)은 뼈아프다는 말을 남기는 걸로 보아 곧 컨버트 하지 않을까 하는 복선이 나왔군요. 류 외전도 나왔고 하니 언제가 되었든 본편에서도 류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더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여담으로 주신도 아직 하계에 살아 있고 하니 컨버트 하게 된다면 [헤스티아 파밀리아]로 가지 않을까 싶군요. 범죄 기록은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요.

 

뭔가 신나게 설칠 줄 알았던 [로키 파밀리아]는 바삐 움직인 것치곤 아무런 성과도 내지 않고 잠정적으로 관전 모드로 들어가면서 점차 벨 쪽으로 승산이 기울어 갑니다. 그러나 [프레이야 파밀리아]가 물 밑에서 움직이기 시작하고 [헤르메스 파밀리아]가 뒷공작을 하는 등 벨이 모르는 곳에서 태풍은 엄청나게 커져만 갑니다. 이제 다 끝났다고 안도하는 순간 진짜는 지금부터지 하며 주신 헤르메스의 끝나지 않은 못된 짓과 검은 미로타우로스의 등장은 얄궂게도 벨로 하여금 레벨 1때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초심을 잃은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아마 3권 이후부터지 싶은데(8권이 정점) 들어가라는 던전에는 안 가고 여자를 구출하거나 파벌 파밀리아를 때려 부순다거나 같은 일상생활만 이어지면서 작품의 아이덴디티였던 영웅 선망과 모험이라는 두 글자를 잃어버린 게 아닌가 했습니다. 사선을 넘나들고 던전을 개척하며 모험심을 자극하던 건 어디로 가버렸을까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11권을 접했을 때 이거 본편 맞나 싶었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줄곧 외전에서만 느끼던 시리어스 한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꼈습니다. 비네를 비롯한 제노스를 구하려는 벨의 노력과 주변 사람의 헌신에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덕을 얼마큼 쌓아야 이렇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게 하였습니다. 제노스를 인간으로부터 지켜준 영웅, 검은 미노타우로스를 맞이하여 모험을 하고 인간을 지켜주며 영웅으로의 등극은 이 작품의 아이덴디티를 살리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물론 이게 짜여진 각본이라도요.

 

모습이 다를지언정 인간의 말을 하고 이해하고 똑같은 감정을 소유한 제노스들에게서 인간보다 더한 감정을 느껴버린 벨, 그것을 존중해주는 주변 사람과 거기에 감화 되어가는 [로키 파밀리아]가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어느 신에 의해 놀아난 꼴이라는 꼬리를 달아버리면서 뒷맛을 씁쓸하게도 합니다. 어쨌건 벨은 제노스와의 만남으로 인간으로서 한층 더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분위기가 이전보다 사뭇 다릅니다.

 

덧붙이기, 검은 미노타우로스와의 싸움은 3권에 비해 좀 밋밋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서로 숨소리만 내다가 끝이 난 거같군요. 그리고 이야기를 거짐 500페이지까지 늘릴 필요가 있었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좀 길게 갑니다. 그래도 쪼는 맛은 굉장했습니다. 제노스들이 모험가들, 특히 아마조네스 자매에게 위기에 몰리는 장면을 잘 처리했더군요. 그리고 역자 분이 바뀌고 분위기가 어떻게 될까 내심 걱정했는데 앞전 역자 분 보다 나은 느낌이었습니다. 다소 경직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요.


 

  1. 1, 스포일러라 자세히 언급은 힘들고, 아이즈 엄마는 인간이 아닙니다.
    외전 이야기 상당 부분이 아이즈의 엄마와 관련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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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을 위해서라면, 나는 마왕도 쓰러뜨릴 수 있을지 몰라 3 - L Books
CHIROLU 지음, Kei 그림, 송재희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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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에 걸친 데일의 친가 방문이라는 여행을 무사히 끝내고 데일과 라티나는 크로이츠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데일의 오랜 지인 헤르미네라는 하프 엘프 미인이 찾아오면서 라티나에게도 데일에게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합니다. 데일에겐 라티나의 동족인 마족 토벌이 곧 실행된다는 것, 라티나에겐 작은 체구로 인한 콤플렉스를 안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자는 3권 이후에 있을 일을 예견하는 이른바 복선의 투하고요. 후자는 라티나의 일그러진 성의식이 시작되는 분기점이기도 합니다.

 

전자인 마족 토벌이라는 복선은 일단 더 이상 안 나오니 일단 재껴 두고, 후자의 경우 라티나는 헤르미네가 다녀간 이후 자신의 체형이 작다는 것에 유독 신경 쓰기 시작합니다. 누가 작다고 하면 화를 낼만큼 민감한 사안으로 번져가는데 근데 알고 보니 이 작다는 것이 체형이 아니라 특정 부위, 엄마의 가슴이 작았다는 것에 지대하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것, 자신도 크지 않아서 데일이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집니다.

 

그동안 라티나는 데일을 한 사람의 이성으로써 의식해왔습니다. 이것이 헤르미네를 만나면서부터 가속화가 되어버리는데요. 하지만 데일은 여전히 라티나를 어린애 취급이고요. 이런 데일의 반응이 라티나의 불을 더욱 당겨버린 것이 아닐까 했습니다. 뜬금없지만 왜 이런 형식의 작품은 하나같이 키잡물로 흘러가는 것일까요. 보석을 토하는 소녀도 그렇고 자신을 주워준 사람에게 은의를 느끼는 건 당연할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째서 연애의 감정으로 변질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토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문득 옛날 어떤 의학 관련 교수 아니면 박사가 썼던 칼럼이 생각 났습니다. 부녀(혹은 삼촌 조카)의 가정이 되었을 경우 남여 경계를 명확히 하라, 자칫 서로가 일그러진 성의식이 생길지 모르니 방이 하나 밖에 없다면 중간에 커튼을 쳐서라도 공간을 분리 시켜라, 애초에 가족에게 그런 마음을 품는다는 게 역겨운 일이긴 하지만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데일은 라티나가 14살이 되는 현재에도 같은 방에서 서로 껴안고 자기도 하는 등 데일은 딸바보가 되어 다가오는 남자는 누가 되었든 다 죽여버리겠다며 라티나에게 이성에 대해서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게 아버지로서 하는 행동이 맞는지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4살이 된 여자애를 독립된 방에서 지내게 하지 않고 껴안고 잔다는 게 있을 수 있나(1), 물론 이 도서 제목 자체가 그런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지라 어쩌면 본질에 가장 충실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데일의 영향 때문에 라티나는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가능성은 처음부터 막혀 버렸고, 그런 주제에 데일은 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아 이야기는 상당히 꼬여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런 작품의 묘미일까요? 어째서 고통을 받는 건 여자여만 하는가? 하는 키잡물의 특성을 고스란히 이 작품에서도 느껴져서 매우 불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물론 필자 주관적)

 

물론 데일은 밤늦게 축제가 끝나고 클래스메이트인 루디(남자애)가 배웅해 주러 범고양이에 왔을 때 루디에게 보였던 질투심은 아버지로써라기보다 여자를 빼앗긴 남자 그 자체라는 것에서 은연중에 라티나를 여자로 보고 있지 않나 하는 복선을 투하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키잡물 확정?) 사실 데일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헤르미네와 대화에서 더욱 명확 해졌을 겁니다. 그건 필자가 간간이 언급하는 시침과 분침은 서로 같이 갈 수 없다는 지론(?)을 헤르미네에게서 듣고 부녀라는 경계를 더욱 명확히 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 또한 있긴 했습니다.

 

종을 뛰어넘어 서로가 맺어져서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헤르미네는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하프엘프가 왜 멸시를 받는가, 인간은 자신보다 오래 사는 하프엘프 자식을 끝까지 키워줄 수가 없습니다. 엘프는 자신들의 절반 밖에 못 사는 하프엘프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야 합니다. 이것은 이별의 아픔을 감내할 수 있느냐로 직결됩니다. 그렇지 못하니까 하프는 멸시받는다고.. (정확하지는 않고 비슷할 겁니다.) 만약 데일과 라티나가 맺어졌을 경우 라티나에게 있어서 데일은 찰나의 순간일 뿐입니다. 그러면 남겨진 라티나 마음은?

 

이번 3권은 이런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물론 일상 이야기나 축제 등도 들어가 있지만 주된 이야기는 이것이죠. 이성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해 무방비 해진다거나(2) 같은 과보호의 폐해도 드러납니다. 친구 클로에인지 실비아인지의 꼬드김에 넘어가 데일과 동침(행위)을 하라는 말을 덥석 물어서 실행 할려고 하고요. 심지어 아이도 가지고 싶다는 말까지 합니다. 물론 라티나는 데일을 향한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일 수 있으나 이걸 제어해야 될 장치가 전무하다는 것, 어쩌면 이 작품은 키잡물중에 가장 무서운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석을 토하는 소녀의 클루보다 더한 모습을 보여서 필자는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거와 별개로 이번 에피소드에서 데일과 인연이 있고 마력 형질이라는 체질을 가지고 있는 '로제'가 찾아오면서 라티나의 엄마에 대한 복선도 투하되었습니다. 로제는 첫 번째 마왕을 살해하고 라티나의 고향 바시리오를 궤멸 시켰던 두 번째 마왕에게 죽을뻔하고 도망쳐서 마왕을 죽일 수 있는 용사라는 직업을 가진 데일의 보호를 받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로제의 에피소드에서 라티나 엄마로 보이는 여자 마족이 등장하면서 저 위에서 언급했던 마족 토벌과 연계되어 드디어 이 작품의 주제인 마왕을 토벌할 날이 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맺으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과보호도 이쯤 되면 문제가 있다는 것, 사랑에 빠진 여자는 무섭다는 걸 잘 보여준 에피소드가 아니었나 합니다. 라티나는 친구가 동침하라는 말에 어째서 거부하지 않는 것일까, 선택의 여지도 없이 눈에 콩깍지가 끼였으니 그럴 수 밖에요. 그래서 라티나가 더욱 성장했을 때 데일을 그런 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일까요? 카카오 페이지에서 4권에 이어 5권도 연재 중인데 무서워서 볼 수가 없습니다. 


 

  1. 1, 행여나 오해하실까봐 언급 하는데, 그렇고 그런 관계가 아닌 가족 그자체로서 같이 잔다는 겁니다.
    한 집에 친남매가 같이 살고 있다고 비난 받지 않는 것처럼 그런 행동
  2. 2, 물론 라티나에겐 선의와 악의를 구분할 줄 아는 기능(?)이 탑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순수하게 데일과 같은 부정(父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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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 슬레이어 1 - L Books
카규 쿠모 지음, 칸나츠키 노보루 그림, 박경용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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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있으니까 오르는 산악인이 있듯이 당연하다는 듯 고블린이 있으니까 죽이는 모험가가 있습니다.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모험가들은 고블린만 사냥하는 그를 고블린 슬레이어(이하 남자)라 부르게 되었지만 이것은 경외의 언어가 아닌 경멸의 언어입니다. 고블린은 쪼렙들이 사냥하는 것이라며 경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도 길드에서 퀘스트를 수령합니다. 언제부터일까... 무수한 나날을 꼬질꼬질하고 냄새나는 장비만 걸치고 늘 고블린만 잡아온 남자는 어느덧 중견 모험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문제가 있으니까 답을 내놓고 배가 고프니까 밥을 먹습니다. 남자에게 있어서 고블린이란 그런 존재입니다. 남자는 오로지 고블린을 죽이기 위해 살고,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을까 만을 생각해 왔습니다. 철저한 준비 끝에 그 수가 얼마가 되든 기어이 전멸 시키고 마는 그에게서 대체 어떤 연유가 있길래 이토록 고블린 퇴치라는 외길 인생을 살아가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블린, 그것은 그저 칼 한번 휘둘러서 죽이고 경험치 얻는 것에 불과한 최약체 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판타지에선 이게 정석으로 통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개별 개체는 약해도 숫자의 폭력 앞에 설사 그게 사자라도 개미에게도 당한다는 걸 여실히 보여줍니다. 개미 한 마리 밟아서 찌브려 트렸다고 득의양양해진 마을 소년과 소녀가 초보 모험가가 되어 무리에게 도전했다가 전멸 당하는 걸 이 작품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가 매우 참혹하다는 건 덤으로 증정되고요.

 

남자는 그런 초보 파티에서 여신관을 구해줍니다. 파티원들의 죽음에 명복을 빌어줄 시간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되는 지독한 현실은 여신관의 어깨를 짓누릅니다. 그리고 금방 태어난 고블린이라도 용서 없이 죽이는 고블린 슬레이어와 그걸 막으려는 여신관에게서 인간과 고블린의 연쇄랄지 고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새끼 고블린이 가엽다고 살려주면 그 개체는 악의를 품고 자라 인간을 습격하게 되고, 인간은 그런 고블린을 죽이러 다닌다는 끝나지 않는 연쇄, 그 연쇄 속에서 고블린에게 죽임을 당한 가족의 복수를 위해 모험가가 되어 고블린만 죽이러 다니는 남자가 있습니다. 여담으로 고블린 슬레이어 2호를 만들려는지 여신관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가르쳐 주는 남자의 기행을 엿볼 수 있습니다.

 

뭐랄까 열심히 고블린만 잡아대는 주인공 때문인지 좀 밋밋했습니다. 무뚝뚝함의 대명사처럼 '어, 그래, 그런가' 같은 말만 해대는 통에 분위기를 좀 띄워야 될 여신관은 어리바리합니다. 그래도 여신관 나름대로 실력은 있는지 중요한 때에 빛을 반짝여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주인공이 바뀌지 않았나 싶기도 했군요. 새끼 고블린을 죽이는 남자를 바라보며 연쇄의 고리가 왜 생겨나는지 모르는 장면에서 남자와 대립각을 세우나 했지만 실상을 알고 차츰 이해자로 변신해가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공기화 진행 중이어서 이후 어떻게 될지는...

 

남자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하이엘프/드워프/리자드맨과 파티를 짜고 오우거를 토벌하기도 하고 여행을 하며 지낸 시간 동안 조금식 남자(고블린 슬레이어)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동료들을 만나가는 장면도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언제까지고 혼자였을 거라 생각했던 지난 나날,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를 불안한 미래 속에서 남자에게 다가온 손길에 얼어붙은 그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는지 앞으로가 상당히 기대가 됩니다.

 

맺으며, 코믹에서 보여줬던 처절함은 순화되었는지 그리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약하니까 죽는다. 같은 말은 인간이나 고블린이나 똑같이 적용되고 있어서 이건 좋았군요. 그리고 언제까지고 마음을 닫고 살 거 같았던 남자가 소꿉친구와 여신관과 하이엘프 그리고 길드 언니를 만나 조금식 주변과 동화해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일러스트가 수준급이군요. 어디서 읽기론 몇 장이 빠졌다고 하던데 아쉬울 정도로..

 

끝까지 다 읽고 나서 앞만 보고 달리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 보고 때론 뒤에서 오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건 어떨까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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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트 약사의 이세계 여행 2 - S Novel
아카유키 토나 지음, kona 그림, 이신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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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리에'가 달라졌어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지만 유지로의 한결같은 마음에 활짝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마음을 트기 시작합니다. 표지만 봐도 표정이 얼마나 유들해졌는지 알 수 있죠. 그동안 인간에게도 엘프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하프가 살아가기엔 세상은 참으로 모질고 사나웠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만난 인간족 유지로, 자신을 치료해주고 하프의 상징인 귀를 숨겨주는 약까지 개발해준데다 이젠 그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으니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어쨌건 이번 에피소드는 세리에의 최종 목표인 엄마 찾기라는 종막을 그리고 있습니다. 4050세대라면 친숙한 엄마 찾아 3만리라는 작품을 보면 주인공 마루코가 헤어진 엄마를 찾아 여행을 떠나서 결국엔 다시 만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데요. 세리에도 그런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까? 엄마를 만나고 나면 세리에는 거기서 멈출 것인가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게 이번 2권의 핵심입니다. 물론 유지로의 대시는 더욱 강해지고요. 발로 밟혀도 좋아 좋아 연발할 거 같은...

 

세리에는 엄마의 단서를 찾는 동시에 유지로와 함께 이 마을과 저 마을에서 퀘스트를 받아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드디어 엄마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찾게 됩니다. 꿈에도 그리던 엄마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기대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나와 그 아버지 마저 돌아가시고 10년 동안 줄곧 찾아 헤매면서 받아야 했던 멸시, 그 모든 설움을 한 번에 날려줄지도 모를 엄마와의 재회는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유지로가 세리에를 향한 마음은 일편단심 그 자체, 솔직히 한눈에 반했다며 노골적으로 들이대는 통에 첫인상이 매우 좋지가 않았습니다. 상대의 기분을 헤아려주지 않고 오직 자신의 감정만 앞세우는 건 상대에게 있어서 민폐가 따로 없죠. 보는 이로써는 암 걸리게 하고요. 하지만 이번 2권에서는 그 마음에 거짓이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두 번 터지는데요. 첫 번째가 어떤 귀족의 재산 다툼에 끼였다가 세리에가 그만 독을 먹고 사경을 헤매게 되었을 때 그가 흘린 눈물에서 이건 진심이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두 번째는 매우 큰 스포일러라서 주저되는데요.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세리에의 엄마를 찾았지만 이미 20여 년 전에 불귀의 객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찾아다녔던 엄마의 사망 소식에 그만 세리에는 망가져버리고 마는데요. 이걸 끝까지 추슬러준 게 유지로입니다. 공허한 눈을 한채 삶의 의욕이 꺾여버린 세리에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그가 노력하는 장면은 꽤나 울컥하게 합니다.

 

물건을 배달해주고 받지도 못한 보상 이래 세리에는 늘 빈털터리였습니다. 노숙을 밥 먹듯이 하고 마을에서 지 내려고 해도 돈이 들어가는 현실에서 유지로의 도움이 없었다면 언제 객사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지난 삶 속에서 꿋꿋하게 곁을 지켜줬고, 엄마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삶을 포기했을 때도 자신을 버리지 않고 곁을 지켜줬던 그에게서 새로운 기댈 곳을 찾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 대성통곡을 하고 마는데... 그런 유지로가 다른 여자와 대화하고 선물하는 것에 조금은 질투하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지만 아직은...

 

판타지답게 느닷없이 용사가 등장하고 마왕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포션 제조에서 이능력이 추가되었습니다. 미래를 보기도 하고 염동력을 쓰기도 하고 곤충과 이야기를 할 수 있다질 않나, 갖다 붙이기 나름이라더니 약초로 못하는 것도 없고 포션만 있으면 일당 100은 우습다는 마냥... 다소 짬뽕이 되는 듯한 이야기가 아기자기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원래 세리에는 용사와 만날 예정이었는데 유지로 때문에 미래가 바뀌어 버렸다는 둥 너 님이 아니어도 세리에는 구원받을 수 있었어 하며 주인공 유지로를 물 먹이는 듯한 진행은 실로 유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곤 '로리' 마왕에 대한 복선을 투하해버립니다. 이거 막 나가자는 거지요?

 

하여튼 간에 이번 에피소드는 세리에의 마음을 여는데 성공한 유지로와 '로리' 마왕과 용사에 대한 복선이 투하되고 새로운 전생자(1)가 등장하면서 주인공 유지로와 대립각을 세우게 될지 나비 날갯짓이 시작되는 분기이기도 했습니다. 망가졌다가 되살아난 세리에에게 '널 버리진 않아'라며 대놓고 사망 플래그를 세워주시는 주인공의 닭살의 향현이 돋보인 에피소드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일편단심 유지로 덕분에 하렘이 형성되지 않는 게 좋았습니다.

 

그런데 에필로그에서 세리에의 나이가 밟혀지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허걱 하계 합니다. 아직 유지로는 모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엘프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죠. 어쩌면 이건 유지로와 맺어지게 하려는 사전 포석일 수도 있습니다. 그야 하프라도 유구의 시간을 살아가는 세리에와 짧은 생을 살아가는 인간관계인지라 시침과 분침이 같은 선상에서 출발해봐야 분침이 먼저 나갈 뿐이죠. 그래서 어느 정도 나이를 맞출 필요가 있지 않나 했습니다.

 

맺으며, 마을을 들리고 퀘스트를 받고 사건에 휘말려서 해결하는 등 다소 따분한 진행을 보여 줍니다. 약간은 긴장감을 불러와도 좋았을 장면을 삽입하면 어땠을까 했지만 작가가 일이 커지는 걸 두려워하는지 매듭을 빨리 지어버려서 몰입에 방해를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조금식 변하며 마치 봄이 온 것처럼 꽃 봉우리였던 세리에의 마음이 마침내 개화했을 때는 모든 게 다 보상받는 느낌입니다. 이야기가 엉망진창이면 어때 같은 기분?

 

그런데 일러스트는 영 아니었습니다. 일러스트만 좀 개선하면 인기 좀 끌겠던데 아쉬웠군요. 

  1. 1, 유지로처럼 이세계 전생이랄지 몸뚱아리만 넘어 왔던지 하튼 남자 하나 출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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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에서 시작하는 마법의 서 1 - NT Novel
코바시키 카케루 지음, 김혜성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작금의 시대에서 마녀라 함은 칙칙한 움막에서 끓는 솥을 걸어놓고 저주를 퍼붓듯 주문을 외는 것부터 손오공식 마법을 쓰는 마녀와 발랄한 게 포인트인 어린 소녀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죠. 이 작품에서도 마녀가 나옵니다. 마법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마술만이 존재하는 세계, 인간에게 핍박받는 마녀가 있는 세계, 천재지변도 마녀 때문이라며 화형을 서슴지 않는 세계에 10년 동안 홀로 움막(동굴)에서 지내다 인간의 세계로 나온 마녀가 있습니다. 10년 전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만을 남겨둔 채 돌아오지 않는 동포 13번을 찾아 마녀는 여행길에 올랐고 숲 속에서 동료라 부를 수 있는 반인반수 짐승 용병을 만나게 되는데요.

 

 

마녀의 이름은 '제로(오른쪽)'입니다. 본명은 불명, 숲 속에서 만난 '짐승 용병(왼쪽)'도 본명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 세계에서는 본명은 곧 죽음과 예속에 관련되어 있어서 등장인물 대부분은 실명이 거론되지 않습니다. '짐승 용병'은 마녀가 고위술을 펼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재료인 머리(글자 그대로 머리통)를 가졌다는 죄로 마녀에게 쫓기는 일상을 보내다 느닷없이 자기 밥을 강탈한 제로를 만나 여행길에 오릅니다.

 

제로가 여행을 떠난 이유, 10년 전 제로가 마법이라는 획기적인 마술을 집필해뒀던 마법의 서가 도난당합니다. 동포 13번은 그것을 찾고자 제로의 곁을 떠났고 제로는 기다리다 지처 13번과 마법의 서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 것인데요. 마술이란 무엇인가, 마녀가 부리는 주술과도 비슷합니다. 마녀는 고위 악마를 불러내 악마의 힘을 빌려 마법이나 주술을 발동 시킬 수 있으나 매번 마법진을 그리고 악마를 불러내 계약해야 하는 등 주술을 한번 쓸려면 매우 불편하였는데 제로가 이것을 단축 시켜서 집필한 게 마법의 서라고 합니다.

 

초반에도 서술했지만 이 시대에 마녀는 걸핏하면 인간에게 잡혀서 화형 당하던 때였습니다. 500년 전 참다못한 마녀들은 인간과 전쟁을 벌였지만 참패하였고 이걸 계기로 더욱 마녀는 나쁘다는 편견이 생겼는데요. 이건 지금도 진행형으로써 핍박의 강도는 날로 커져만 가던 때에 제로의 마법의 서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마법의 서는 쉽게 말해서 주술을 간략한 영창으로도 불러낼 수 있는 황금의 알이었던 것이죠.

 

그동안 주술로 사람들을 죽이려면 막대한 품을 팔아야 했으나 이젠 재능만 있으면 마법을 쓸 수 있으니 그동안 핍박받던 마녀들이 이걸 배우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 풍전등화의 일이 지금 제로와 짐승 용병이 가는 왕국의 수도에서 벌어지려고 합니다. 어떤 일로 인해 고명한 마녀가 억울하게 화형 당하자 그동안 쭉 담아뒀던 물병이 깨지듯 들고일어난 마녀에 의해 전쟁의 분위기를 풍기고 그 중심에 제로가 집필한 마법의 서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사태는 격랑 속으로 빠져듭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과 마녀간 얽히고설킨 이야기로 인해 제법 머리를 써야 되는 추리물을 방불케 합니다. 또한 마녀가 화형 당하는 시대를 표현한 작품에서 다 그렇듯 무지로 인한 서로가 피해자라 울부짖으며 서로가 헐뜯고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죽어가는 마녀와 인간도 있다는 걸 역설합니다. 누가 전쟁을 시작하였는가, 누가 먼저 빌미를 제공 제공하였는 가를 두고 앞과 뒤가 다른 전개가 펼쳐치면서 양측이 내세우는 정당성은 혀를 내두르게 하고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이게 이 작품의 포인트이자 백미)

 

제로는 짐승 용병을 고용해서 13번이 살고 있는 왕국의 수도로 향하면서 초보 마녀 '알바스'를 동료로 맞아 지금 왕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차츰 접하면서 자신이 저지른 일을 뼈아파 합니다. 사실은 마법의 서는 싸움에 이용하라고 만든 게 아닌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만든 것뿐인데 어째서 악용되는 것일까 매번 부싯돌로 불 붙이는 수고를 마법 하나로 붙이면 편하잖아? 같은 순수한 마음에서 만든 마법이 어째서 불의 화살이 되어 타인을 죽이는 것에 이용되고 있는 것인가...

 

언제까지고 침울해 있을 수는 없으니 범인이 있으면 잡으면 되는 것이고 행동에는 결과가 있듯이 마법의 서를 훔쳐 간 범인이 밝혀지고 왕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간과 마녀 간 전쟁의 흑막이 밝혀지면서 모든 게 하나로 이어지는 장면은 결국 이럴 줄 알았다로 귀결되지만 이 과정을 새로운 접근법으로 서술하다 보니 꽤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다 읽고 보면 처음부터 답이 정해져 있어서 조금은 허탈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처음엔 일방적으로 마녀에 대해 편견을 가졌던 짐승 용병이 제로와 알바스랑 지내며 마녀에 대한 편견을 치료해가는 과정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츤데레 같이 너 싫어했지만 마녀라고 다 같은 게 아닌 제로만큼은 특별하다는 감정이 생겨 갑니다. 철이 들 때부터 자신의 목숨을 노렸던 마녀의 동족인 제로와 상성이 좋을 리 없었습니다. 하지만 짐승 용병이 가지고 있는 내면을 꿰뚫어본 제로의 집요한 어택에 결국 손을 내밀어 주는 장면은 훈훈하게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빼놓을 수 없는 알찬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육화의 용사처럼 용의점을 뿌리고 해답 편 형식으로 진행한다는 것이군요. 그래서 앞의 내용을 잘 기억하지 않으면 약간의 애로사항이 있을 수 있고요. 또한 마녀가 잘못 했네 했지만 알고 보니 인간도 잘못 했네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부조리는 독자로 하여금 깨닫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깨닫지 못하는 독자를 위해 어물쩍 해답을 서술하는 등 작가의 치밀성이 돋보이기도 합니다.

 

맺으며, 필자의 주관적으로는 재미있었습니다. 이 한마디만 써도 될 정도로 이 작품은 가치가 있었군요. 그리고 중간중간 개그와 허를 찌르는 단어 표현은 혀를 내두르게 하였습니다(이것도 이 작품의 포인트). 그걸 글이 길어져서 표현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지경입니다. 다만 흑막이 밝혀지고 권선 성악이 아닌 '모두가 좋으면 좋은 거' 같은 엔딩은 다소 김빠지게 합니다.

 

그 외 제로의 무뚝뚝한 할머니 같은 말투와 세상 물정이 어두워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재미있었고, 처음엔 진심으로 으르렁 거리다가도 본질은 그렇지 않다는 듯, 가면서 츤데레로 변하는 용병도 귀여웠습니다. 하지만 마녀사냥과 화형이라는 키워드가 내포된 작품에서는 삼가야 될지도 모를 단어(귀엽다느니)가 아닐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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