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블린 슬레이어 외전 : 이어 원 3 - SL Comic
사카에다 켄토 지음, 아다치 신고 외 그림, 김성래 옮김, 카규 쿠모 원작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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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에선 좀 힘들겠고, 외전에서 한 번쯤 고블린에게 된통 당하는 모험가들을 다뤘으면 좋겠더군요. 여기서 된통이라는 건 신참 모험가들이 자기 잘난 맛에 갔다가 당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도시 하나를 뭉개 버리는 수준이면 경각심을 일깨워주지 않을까 싶은 게요. 이쯤 되면 용사가 나서서 어떻게 해주겠지만 외전에서는 아직 용사는 꼬맹이일 때라서 스탬피드 수준을 막을만한 인재가 없어요. 본편이라면 물의 도시 때처럼 그렇게 되도록 고블린 슬레이어가 놔두지는 않겠지만, 혼자 모든 걸 짊어져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이점은 본편에서 동료들을 맞이하면서 어느 정도 해결이 됩니다만.)를 심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작가는 S 기질이 있는지 계속해서 고블린 슬레이어를 못살게 굽니다.

 

아직은 꼬맹이일 뿐인 용사가 사는 마을에 고블린 퇴치 의뢰를 받아서 간 고블린 슬레이어는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고블린 떼를 맞이하죠. 나름대로 방책을 강구하기는 했는데 5년 후처럼 동료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승에게 죽도록 수련을 받았으나 경험은 역시 현장에서 구르면서 익히는 수밖에 없다는 걸 친히 그가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만이 아니라 여느 판타지에서 으레 고블린이라 하면 마을 꼬맹이라도 한두 마리라면 쫓아낼 수 있는 게 고블린이라는 설정인데요. 그래서 고블린 하면 허접쓰레기라며 아무도 상대도 안 해주지만 사실은 힘이 없기에 가장 영약 하다고 이 작품은 역설합니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날의 상처는 가실 줄을 몰랐고, 눈에 보이는 고블린들에게서 그날의 아픔을 되새기는, 그래서 고블린은 몰살이라며 광기에 찬 모습으로 칼을 휘둘러대지만 영악한 고블린 떼들의 공격은 매섭기만 합니다. 여담이지만 작가가 건담 팬인지 고블린 3마리가 '검은 3연성' 어택을 감행할 때는 실소를 금할 길이 없었군요. 아무튼 한 마리씩 없애가지만 역시나 경험 미숙은 그의 목을 옥죄어 옵니다. 잠깐의 방심은 뒤통수를 맞는 것이고 그렇게 엎어지면 몰매 수준을 넘어서 목숨이 왔다 갔다, 문득 떠오르는 건 누나의 얼굴이라는 주마등이고, 여기가 내 무덤일까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패대는 고블린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어요.

 

그건 그렇고, 광산에서 록 이터를 때려잡는 '젊은 전사'쪽과 고블린 슬레이어랑 장면을 교차 시키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에 뭔가 시사하는 대목이나 의미가 있을 거 같은데 이게 뭔지 도통 떠오르질 않는군요. 록 이터에게 '하프 엘프 소녀'를 잃고 복수심에 불타는 젊은 전사와 고블린에게 누나들을 잃고 복수심에 불타는 고블린 슬레이어,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는 공통점을 안고 무서움에 발을 빼기보다 복수심에 인생을 건다. 그러나 한쪽은 홀로 싸우고 한쪽은 다른 모험가들과 함께 싸운다. 음지와 양지를 표현하려 한 것일까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길을 걷는 고블린 슬레이어와 모험가들의 도움을 받아 록 이터를 무찌르고 복수에 성공하는 젊은 전사.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정체할 것인가. 끝나지 않은 복수와 끝나버린 복수. 한가지 알 수 있는 건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메시지였군요.

 

맺으며, 역시 글로만 된 소설보다 그림으로 보는 것이 더 와닿는다고 할까요. 이거 무슨 학습지 보는 유아도 아니고, 사실 라노벨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 중에 이토록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참 드뭅니다. 원작과 비교해 스킵으로 인한 괴리감이 거의 없다는 건 작가의 자질이 대단하다는 뜻이기도 하죠. 특히 이번 록 이터를 맞이해서 여러 모험가들이 일심동체로 싸우는 장면은 꽤 박진감이 있습니다. 고블린 슬레이어가 고블린을 맞이해 처절히 싸우며 광기에 젖어가는 모습도 참 흥미롭죠. 그래서 이때 5년 후처럼 외전에서도 그의 곁에 서서 人 사람 '인'처럼 누군가가 받쳐 주었다면 고블린 성애자로 성장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묻어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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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사는 기도하지 않아 3 - Extreme Novel
스도 렌 지음, 니리츠 그림, 정혜원 옮김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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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 그저 거들 뿐, 도박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던 '라자루스'에게 다가온... 예전 같으면 리뷰에 닭살 돋는 멘트도 서슴없이 썼겠습니다만. 나이가 들고 보니 창피해서 더 이상 쓰지는 못하겠군요. 아무튼 제도(한 나라의 수도 같은 도시?)에서 도박으로 연명하던 주인공 '라자루스'는 도박에서 크게 이겨 어느 노예 소녀를 손에 넣게 되었죠. 그러나 이후 괴한에게 그녀를 빼앗기고 맙니다. 18세기, 치안이 유지된다고는 해도 아직은 무법자들의 세계에서 눈에 띄는 행동을 삼가하며 생활하던 그에게 노예 소녀 '릴라' 탈환 사건은 싫어도 모두의 주목을 받게 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제도에 있을 수 없게 된 그는 지방도시 '바스'로 잠시 몸을 피할 목적으로 여행을 떠났더랬죠. 가던 중 지주의 딸 '이디스'를 차지하려는 못된 남자를 응징하고 겸사겸사 메이드 '필리'와 함께 길동무로 삼고 바스에 도착은 하였습니다만.

 

온천의 도시 '바스', 우리 속담에 이런 게 있죠.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 아무리 인터넷이나 전화가 없는 시절이라도 소문은 퍼지게 마련이죠. 주인공 라자루스가 한가지 간과한 게 있다면 이런 것입니다. 소문의 속도, 제도에 있었던 소란의 중심인물을 어딜 가든 있는 동종업자들이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죠. 하필 도착한 온천의 도시 바스에서는 도시 전체를 주무르는 의전장과 부의전장간 이권을 놓고 알력이 생성되어 있었는데요. 그러니 하나라도 많이 아군을 끌어들이고 싶었던 양 진영은 제도의 유명인 라자루스에게 눈독을 들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 그러니까 라자루스가 바스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는 개미지옥에 빠진 것입니다. 머리는 제법 똑똑하고 눈치도 빠르고 분위기도 잘 살피면서 말은 온천의 도시라지만 이면엔 제도와 마찬가지로 도박으로 흥망성쇠를 이어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발은 들인 우둔함은 몸으로 갚으라는 듯 온천의 도시 바스는 그에게 시련을 선사합니다.

 

자, 사회적으로 힘이 있어 보이는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하면 될까. 무턱대고 내 사람이 되어라 해봐야 의심만 살 뿐이죠. 시간을 들여 친분을 쌓으면 되겠지만 그럴 수 없을 땐 강경책이 상책입니다. 뒤늦게 바스의 분위기를 읽고 어쩌나 하며 라자루스는 여느 날처럼 묵고 있는 여관방에 돌아왔는데 그를 반기는 건, 누군가에게 죽을 만큼 얻어맞아 피떡이 된 채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10살짜리 소녀였으니, 여기서 티비 드라마라면 경찰이 들이닥칠 테죠. 이제 그는 바스에서 일어나는 의전장과 부의전장간 알력의 중심에 서고 맙니다. 그런데 피떡이 된 소녀는? 일단 병원에라도 대려 가야죠. 소녀의 이름은 '줄리아나', 아버지 얼굴은 알아도 이름은 모르며, 이름을 모르는 아버지에게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고 해맑게 웃는 소녀, 자신이 이렇게 피떡이 될 정도로 맞은 것에 의문을 느끼지 않으며 필요하다면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모습은 어딘가 망가져 있다는 알려줍니다.

 

철저하게 누군가에게 도구로써 키워진 그녀(줄리아나)는 라자루스에게 어떤 결말을 가져다줄 것인가.

 

딱히 알력이 있다고 해도 여러 사람이 말려드는 시리어스함은 없습니다. 도박이라는 주제답게 도박으로 상황을 해결하려 들고, 수가 틀리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다며 으름장을 놓긴 합니다만. 양 진영 중간에 끼인 라자루스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고심해가고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걸 알아가죠. 자기들 문제는 자기들이 해결하면 될 것을. 시달리는 사람 심정 좀 헤아려주면 좋겠건만, 아랑곳하지 않고 함정을 파지 않나, 회유하지 않나, 사실 도박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거지 일보 직전인 그에게 있어서 양 진영 어느 곳에 속하든 이익만 챙기고 빠지면 될 텐데 고지식하게 그럴 마음은 추호도 없다는 것에서 사람이 좀 고지식한 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우유부단하게 있을 수만은 없는 게 '릴라'까지 은근슬쩍 잘못될 수 있다는 협박이 날아들고 도망가고 싶었던 그를 바짓가랑이 붙잡듯 붙들고 늘어지니 그는 이제 슬슬 빡쳐 갑니다.

 

상황이 나빠지지만 그런 건 알 바 아니고, 이 작품은 도박에 주제지만 메인은 러브코미디라고 작가가 단언해버렸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히로인이 제법 나오죠. 릴라를 필두로 해서 2권의 히로인이었던 이디스와 메이드 필리, 이디스는 나이가 너무 어려 연애전선에 투입은 힘들고 메이드 필리가 대신 그 자리를 꿰차고 있는데요. 그녀는 분명 엑스트라인데 등장할 때마다 독설이라던지 색기 등으로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라자루스와의 섬싱을 예고하고는 있지만 정작 라자루스가 남의 메이드와 엮이는 걸 꺼려 해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디스는 아직 들러리로써 크게 활약하는 건 없군요. 그리고 이번 3권 히로인 '줄리아나' 10살이라서 히로인 대열에 올릴 수는 없지만 모든 건 '아버지의 뜻대로' 설령 죽으라고 하면 시늉이 아니라 진짜로 죽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제대로 망가진 모습을 보이는 것에서 꽤 안타깝게 합니다.

 

근데 여담이지만 사실 줄리아나의 등장으로 주인공 라자루스가 어느 진영에 붙어야 되는지 진작에 밝혀주는 핵심인물이자 스포일러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작가가 이야기 강약 조절이 실패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군요.

 

아무튼 릴라, 그녀는 라자루스를 만나 노예로서 속박에서 벗어나 자주성을 띄게 되죠. 그 만나고 나서 표정과 감정이 조금식 풍부해지고 있는데요. 제도에 있을 때 경직된 사고관이었던 것이 이디스의 영지를 거칠 때 조금은 자신의 감정을 내비치기 시작했고, 바스에 도착해서는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심취하고, 무도회에 가고 싶어 하는 소녀의 감성을 내비치기 시작하면서 보는 이를 애틋하게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노예의 신분인 그녀에게 주어진 환경은 그렇게 녹록지만은 않죠. 그래서 라자루스는 그녀를 해방 시켜 떠나보내려 합니다. 애초에 제도에서 그녀를 구해준 것도 상황이 그러해서 구해준 것일 뿐, 그녀를 떠안는다던지 같이 지낸다던지 하는 마음은 그(라자루스)에겐 없었죠. 왜냐, 도박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수가 틀리면 언제든지 뒷골목에서 살해당할 운명인 그에게, 그가 떠나고 나면 릴라는 혼자 남겨지게 될 테니까요.

 

노예로 살 것인가, 자유롭게 살 것인가. 릴라에게 두 가지의 길이 제시됩니다. 그리고 그와 그녀가 선택한 길은...

 

맺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가 바로 곁에서 공존하는 세계에서 아무 힘도 없는 주인공 라자루스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랄까요. 그는 이번 바스에서의 소동에 휘말리며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손에 들어온 소중한 것도 내팽개칠 수 있다는 마음을 내비치죠.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정이 많은지를 보여줍니다. 내면의 갈등을 꽤 리얼리티 하게 보여준다고 할까요. 도망가면 살 수 있는데, 하지만, 무도회에 데려가지 못하는 릴라를 위해 야외에서 그녀의 손을 잡고 댄스를 같이 춰주는 장면이라든지, 릴라를 버리면 목숨을 건질 수 있는데도 그러지 않는다던지, 언제부터인가 눈을 뜨면 바로 곁에 있는 그녀가 눈에 밟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해서 주인공의 역린을 건드리는 꼴이 되어가는 악당들은 처벌되고 작가가 공언한 대로 이 작품은 러브코미디가 맞구나 하는 걸 새삼 알게 해줍니다.

 

사족을 더 쓰자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야기 강약 조절에 실패한 것인지 중반 이후 느닷없는 전개가 보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합니다. 스포일러라서 자세히는 못쓰지만, 이번에 등장하는 줄리아나와 그녀의 모친 그리고 모친을 구하고자 획책한 인물에 관한 건데 어째서 이렇게 이어지는지 하는 설명도 없고 엔딩도 흐지부지로 끝내버리는 황당함이 있습니다.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것도 유분수지, 줄리아나의 모친을 구하고자 하는 이유도 나오지 않고 이후도 언급 없이 끝나버리는 불친절은 어쭙잖게 러브코미디로 엮으려다 실패한 게 아닐까 했군요. 완전히 옥에 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위기를 맞이해가며 뭔가를 유추하고 알아가는 장면에서는 독자들이 유추할만한 재료를 내놓지 않고 주인공만 납득해버리는 불친절도 있습니다. 이게 제일 짜증 났군요. 어떻게 보면 필자의 독해력이 딸려서 그럴 수 있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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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해빠진 직업으로 세계최강 제로 3 - L Novel
시라코메 료 지음, 타카야Ki 그림, 김장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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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도시 안디카에서 신대 마법을 쓰는 해적소녀 '메일 메르지네'를 새로운 동료로 맞아들였습니다. 이로써 '밀레디'는 신대마법사 7명 중 자신 포함 4명을 모으게 되면서 꿈에도 그리던 교회 타도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되었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서 [해방자]라는 교회에 대항하는 반란군을 이끌며 모든 걸 짊어지고 있었던 그녀, 4년 전까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인 것처럼 옛날부터 교회에 반하는 이단을 처치하며 마치 잘 짜져진 프로그램처럼 세상을 살아가기만 했던 그녀, 그런 그녀의 눈과 귀를 뚫어줬던 벨타의 죽음에서 부조리한 세상을 바로잡고 신(神)에 맞서기로 했던 그녀는, 그녀의 의지를 받들어준 많은 동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이제 좀 어깨의 짐을 좀 내려놔도 되나 싶었던 그녀를 벌하듯, 이 세계의 신(神)은 처음부터 그녀의 편은 아니었다는 듯 옭아매기 시작합니다.

 

근데 뭘 써야 되나, 이번엔 좀 많은 일들이 벌어져요. 이걸 어떻게 압축해서 조리 있게 쓸까 하루 종일 생각을 했지만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았군요. '메일'을 동료로 맞아들이고 수개월, 해상도시 안디카의 주민들을 [해방자]로 맞아들이면서 이들을 수용할 각 지부라든지 살 곳을 찾아 동분서주하는 게 초반의 이야기입니다. 밀레디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으면 발과 입에 가시가 돋는지 '오스카'에게 깐족깐족 거리다 기어이 그에게서 안경빔을 처맞고 실명을 하고, 안디카 주민들이 살 곳을 수소문하다가 사막에 집을 짓는 오스카의 엉덩이를 노리는 여장남자에게 메일이 그를 재물로 바치는 등 제법 유쾌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그 유쾌함에 감춰진 뒷면에서는 밀레디가 안고 있는 짐의 무게는 보통이 아니라는 걸 역설하기 시작 하죠.

 

불과 14살이라는 나이에 수천 명이나 되는 [해방자]들을 이끌고, 교회에 맞서 싸우고, 그러면서 마치 사회주의 국가에서 모든 대화와 행동이 검열 당하는 것처럼 인간이 인간답게 못 사는 세상을 아파하며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런 아픔과 고생을 애써 감추기 위해 그녀는 깐족거림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무게 있는 이야기가 시종일관 가슴을 묵직하게 만듭니다. 작가가 본편은 말할 것도 없고 외전 1~2권에서도 오글거리는 중2병을 작렬 시켜놓았으면서 이번 3권은 꽤나 진지한 모습을 보여서 놀랐다고 할까요. 사실은 밀레디의 깐족거림은 힘든 내색을 하지 않기 위한 포장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더 이상 개그라든지 중2병이라고 언급을 못하겠더라고요. 메일의 사디스트는 그런 그녀를 뒷받침해주기 위한 그녀만의 배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아무튼 마왕이 등장합니다. 본편에서도 마족이 나오죠. 하지메에게 끔살을 당한 마족 여자가 살았던 마왕국, 여느 판타지에서 그러하듯 인간들과 싸우지 못하면 온몸에 가시가 돋는지 마족 우월주의를 내세워 호시탐탐 인간족을 족치려 들었지만 이번 대의 마왕은 온건주의였다는데 뭘 잘못 먹었는지 갑자기 온건에서 강경으로 돌아서서는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습니다. 막강한 교회에 대항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으려는 마왕은 같은 마족이라도 씨가 틀리다며 하위 종족을 잡아다 병기를 만든다고 생체실험을 하고 있었더랬죠. 근데 여기까지는 좋아요. 중요한건 마왕이 밀레디를 그동안 스토킹을 해왔다는 것인데요. 옛날부터 마족과의 전쟁에서 인간 측 선봉에 섰던 밀레디 가문이 무서웠던 마왕은 밀레디의 발을 묶기 위해 오스카의 동생 등 [해방자]의 동료들을 포로로 잡으려 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하죠.

 

흠... 이번 3권은 본편과 더불어 제일 흥미로운데 어째서 리뷰 쓰기는 죽기보다 싫은지 도통 알 수가 없군요. 여기까지 쓰는데 3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아무래도 1~2권과 괴리감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 작가 '사라코메 료'하면 개그 중2병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잖아요. 그래서 그럴까요. 이와 상반되는 이야기를 초반 빼고 시종일관 매우 진지하게 써놨으니 필자가 적응을 못하나 봅니다. 특히 마왕과의 일전은 정말 뼈와 살이 분리되는 게 이런 걸까 싶을 정도로 밀레디, 오스카, 나이즈의 싸움은 처절합니다. 마왕이 준비한 적을 알고 나를 날면 100전 100승이라는 필승의 전략을 구사하면서 위기란 이런 거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죠. 마법 봉인, 마법에 특화 한 밀레디 일행에게 있어서 마왕은 천적이나 다름없게 다가와요. 여기에 새로운 신대마법사가 마왕에게 인질로 잡혀 있었고 그에게서 눈물 나는 인생 스토리까지 합처지니 정신을 못 차리겠습니다.

 

맺으며, 이번 리뷰도 뭔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댓글이 달리지 않을까 하는군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번 리뷰는 쓰는데 고생 좀 했습니다. 적응이 되질 않아요.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살아야 하는데 왜 뽕잎을 먹고 그러시는지 원. 아무튼 밀레디가 품고 있는 깐족거림의 진실은 이것이다라는걸 알려주는 에피소드가 아니었나 합니다. 가시밭길을 걷는 고통을 감추기 위한 거짓 웃음, 이것이 없었다면 4년 전 밀레디의 눈과 귀를 뚫어주었던 벨타의 죽음에서 이미 그녀는 정신이 망가졌을 테죠. 그래서 다시는 잃지 않기 위해 거짓 웃음으로 겉을 포장하고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누군가를 구하는데 진심을 다한다. 이것이 이번에 표면화됩니다. 사실 전체적으로 넓게 보면 중2병의 연장선이긴 한데 중2병을 공공연히 언급하는 작가치곤 꽤 진지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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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거라 용생, 어서 와라 인생 6 - L Novel
나가시마 히로아키 지음, 이치마루 키스케 그림, 정금택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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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주인공 '드란'을 환생 시켰는지에 대한 복선을 쬐금 투하 해놓고는 나 몰라라 하는 작가의 클래스. 거기에 낚여서 초반에 하차하려 했던 필자는 기어이 6권까지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까마득한 과거 세상 볼꼴 못 볼 꼴 다 겪고 이제 삶에 회의를 느끼던 차에 마침 자신을 찾아온 용사 무리에게 토벌되어 그대로 사라지려 했던 고신룡(범우주적으로 엄청 드래곤)을 다시 깨워 인간으로 환생 시켰던 누군가는 누구인가. 궁금증만 자아내고 일언반구도 없다니 직무유기도 저 정도면 죄가 아닐까요. 그나마 고신룡을 죽인 용사 후예들은 하나둘씩 나오고는 있지만,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주인공 드란은 '가로아 마법학교'에 입학하여 청춘을 구가중이군요.

 

근데 이 작품의 원류가 무엇인지 아시는 분 계시나요. 일단 소설가가 되자에 연재된 작품이고 서적화는 이걸 바탕으로 해서 발매가 되었죠. 근데 소설가가 되자에 연재되기 전에 R-15로 이미 제작되었다는 걸 아는 분은 잘 없으실 겁니다. 거기다 R-15답게 주인공은 성욕이 왕성하다는 기본 전재를 깔고 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그 분위기를 정발본에서도 느낄 수 있느냐, 하나도 없으니까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 다만 히로인들이 그에 못지않게 나옵니다. 이거에 희망을 걸고 계속 보실 분은 보셔도 되지 싶은데 필자는 말리고 싶군요. 같은 방에 같은 침대를 쓰는 진히로인 세리나에게조차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 뭐...

 

어쨌거나 무슨 연애 시뮬 게임도 아니고 히로인들 진짜 많이 나옵니다. 진작에 낌새는 눈치채고 있었지만 끝도 없이 쏟아져요. 6권까지 주인공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히로인 수만 14명 아니 15명인가. 세다가 질려 버려서 관뒀을 정도군요. 거기다 초월적인 미모라는 둥 도자기로 빚은 듯한 미모라는 둥 한번 보면 현기증으로 쓰러질 정도의 미모의 소유자라는 컨셉을 잡고 있는 통에 읽고 있다 보면 드러운 외모지상주의 같으니라는 말이 절로 떠오릅니다. 히로인 이외의 여자 엑스트라는 인간도 아닌지 등장은 시켜도 외모에 관해선 언급조차 없는 게 엑스트라인 것만 해도 서러운데 외모에서도 밀리는 어처구니, 그래서 절세 미녀 히로인들만 모여있다 보니 누가 말했더라 작중에 보면 드란에게 너님 밤 길에 칼 맞을지도 모른다(대충 비슷할 겁니다.)라는 대사가 나와요.

 

그런 애들이 모이면 뭐라고 하는지 아시나요. 인싸들의 모임이라고 합니다. 꽃보다 남자 F4가 있듯이 히로인들 면면이 학원에서 누구나 우러러보는 절세 미녀에 하나같이 행성도 삶아 먹을 실력을 갖춘 능력자들이 모여 있으니 무슨 프리저 기뉴 특전대도 아니고, 그 중심에 주인공 드란이 있습죠. 평민 주제에 이런 미녀들을 끼고 있으니 주위의 시샘은 장난 아니고, 그러다 보니 입학 때부터 진히로인 세리나에게 시비를 걸어왔던 그라프인지 그라탕인지의 분탕질은 더욱 주인공의 입지를 공고히 해주는, 아싸들이 보기엔 뭐 같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대체 주인공 드란이 어디 가 좋아서 히로인이 들러붙는 것일까. 나도 고신룡이 되면 인기를 얻을까?

 

위에서 연애 시뮬 게임을 언급했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게임에 쓰일법한 소재가 제법 나와요. 드란의 전생이었던 고신룡의 피와 살을 이용해 탄생했던 신조마수의 환생이라는 이력을 가진 '레니아'는 주인공 드란의 딸을 자처하며 아버지(드란)의 이쁨을 받기 위한 광기를 보여주는 모습은 가히 소름이 다 돋을 정도고요. 수룡황이라는 타이틀을 가지며 행성 한두 개는 쪼개버릴 힘을 가지고 있는 '류키츠'라는 히로인은 딸 '루우'와 함께 드란을 남편으로 들이기 위해 전전긍긍, 히로인들 면면을 들여다보면요. 진히로인 라미아(반수반인) 종족 세리나, 불을 뿜는 화룡, 물을 뿜는 수룡 모녀, 고신용(주인공)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신조마수의 환생체 딸, 그 고신용을 죽인 용사의 후예, 집안 대대로 환수를 기르는 히로인들, 흡혈귀, 꽃의 정령, 사신, 여신, 순수한 인간, 하아... 또 있을 텐데...

 

그래도 이렇게 많이 나와도 주인공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지 않는 게 참으로 용하다고 할까요. 아니 싸우면 행성이 뽀개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게 문제지만요. 아무튼 티격태격 싸우면 드란에게 미움을 받게 되고 그러면 인싸들의 모임에서 탈락할 테니 그러지 않을 것일 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작중 간간이 드란에게 미움받을지도 모른다는 대사가 있으니 전혀 관계가 없는 건 아닐 테죠. 진히로인에 대한 예우도 깍듯해서 히로인중에 그나마(!) 힘이 제일 약한 세리나를 배려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 것에서 희한하게 흐뭇하게 한다는 말이죠. 대놓고 싸우진 않지만 은근히 드란을 차지하기 위해 알력을 보이면서도 드란과 같은 방에 같이 살고 있는 세리나에게는 전혀 태클 걸지 않는 것에서 얼마나 그녀가 우대받고 있는지 여실히 알 수 있죠. 그전에 괴롭혔다간 드란에게 미움받을 테지만요.

 

아무튼 이번 이야기는 몇 달 뒤에 찾아온 경마제(마권 놓고 하는 경기 아님) 본선에 참가하기 위한 예선을 치른다는 이야기입니다. 몇몇 히로인은 예선을 치르지 않고도 당연하게 본선 진출을 확정했고, 농땡이만 피워서 자동 본선 진출권을 박탈당한 레니아와 자력으로 출전을 결심한 드란이 예선에 참가하여 무쌍을 찍는 이야기입니다. 학교에 입학하고 몇 달간 평민 허접쓰레기라며 주변에서 괄시를 받았던 드란이 본연의 실력을 보이며 주변을 닥치게 만들고 평민 주제에 인싸에 합류하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그런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겸사겸사 그동안 진히로인 세리나를 괴롭혔던 우둔한 귀족 나부랭이도 혼내주고요. 그리고 본선에 대비해 히로인들과 훈련은 한다는 아싸들이 보면 피눈물을 흘릴만한 이야기가 잔뜩 들어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고대 때부터 살아와서 그런지 주인공은 참 고지식한 면도 보입니다. 인싸들의 다과 모임에서 과자를 입에 욱여넣는 히로인들을 나무라는 모습에서 먹는 걸로 눈치 주는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군요. 먹는 걸로 눈치 받으면 얼마나 서러운데요. 아닌 게 아니라 애들 기가 팍 죽어요. 학벌을 중요시 여기기도 하고 애들 좀 들떠 있는 상황에서 니들 뒷바라지해주는 부모들들을 생각하라는 둥 한창 사춘기를 겪는 애들에게 못할 말을 늘어놓는데, 분명 맞는 말도 있지만 분위기도 좀 봐가면서 하던지 애들 왜 기죽이고 그래요라는 말이 떠올라 실소가 터지기도 했군요. 그러고 보면 드란은 고자는 아닌데 그렇다고 손을 대는 것도 아니고, 히로인들도 적극적이지 않은 것에서 분위기는 참 오묘하다고 할까요. 천칭의 추를 중간에 짝 맞춘 것처럼 균형을 맞추고는 있는데...

 

맺으며, 이전엔 시리어스 한 이야기가 좀 나왔지만 근본은 그냥 학원 라이프입니다. 졸업 후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드래곤 볼의 등장인물들이 학교에 다닌다면 어떨까 하는 주제를 놓고 만들면 이런 분위기이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군요. 죄다 행성 파괴급의 실력자에 미모도 출중한데 집안까지 하나같이 화려하고, 급기야 수룡황 류키츠가 등장할 때는 그녀의 미모에 길 가던 모든 사람들이 다 혼절... 이 정도면 작가가 무슨 병을 앓고 있지 않나 싶더라고요. 미모에 대해 온갖 미사구여를 늘어놓는데 학을 떼겠습니다. 그렇다고 거기에 따른 흥미진진한 이야기, 가령 싸움이 난다던지 같은 것도 없고 뭐 하자는 건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아니 싸워봐야 행성 파괴급을 누가 이긴다고, 작가에게 파워 인플레도 좀 적당히라는 말은 해주고 싶었군요. 그 덕분인지 나름대로 힘을 가졌음에도 빛을 못 보는진 히로인 세리나를 배려하는지 다들 그녀를 보호하려는 모습에선 조금 훈훈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6권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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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의 주인님 4 - S Novel
히구레 민토 지음, 팀에스비 옮김, 나포 그림 / ㈜소미미디어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모험심 강한 사람이라도 느닷없이 지식에도 없는 땅에 떨어진다면 어떨 것 같나요. 가령 우리나라같이 안전한 곳에서 살다가 알몸으로 아프리카에 떨어진다고 생각해봅시다. 거기엔 사자 등 사람에게 위협이 되는 동물이 아주 많아요. 그나마 총이라도 쥐어져 있으면 몸이라도 지키겠는데 생전 군에도 안 갔다 온 사람에게 총을 쏘라고 하니 미치고 졸도할 일이 아닐까요. 총이고 좌시고 그런 일을 당하면 당연히 누구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겠죠.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 달라고 할 텐데 하필이면 식인종(진짜로 아프리카에 식인종이 있는지는 차지하더라도)이고. 그럴 때 누군가가 말합니다. 식인종이든 뭐든 하여튼 사람들에게서 무엇이든 빼앗아라. 그러면 길이 열릴 것이다. 그게 집으로 가는 열쇠일지도?

 

세상 모든 것들이 나만 미워해. 괴롭히고 얕보고 인간으로 대접 안 해준다면 내가 할 일은 무얼까. 바득바득 대들며 나 죽지 않았다고 어필을 하면 괴롭힘이 좀 나아질까요. 근데 괴롭힘에도 등급이 있는지라, 목숨까지 위협받는 괴롭힘이라면 이거 진짜 장난 아니고만 하고 이 사태를 벗어날 궁리를 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그런 자기를 못 본 체한 세상은 죽도록 미울 수밖에 없겠죠. 아무도 안 도와주는 현실, 그렇담 남은 건 소원을 비는 것 밖에 없어요. 나에게 힘을, 나 빼고 모두가 적이니까, 적이라면 당연히 죽여야 되는 게 이치겠지 하는 생각을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겠죠. 그리고 힘을 얻은 덜 성숙한 개체는 세상을 향해 적의를 드러냅니다. 이번에 주인공과 대척점이 되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같은 괴롭힘을 당하고도 생각의 차이가 낳은 두 개의 미래, 하나는 지키는 쪽으로, 하나는 세상 모든 것을 멸망 시키는 쪽으로...

 

이번 4권에서는 위의 이야기 두 가지가 나옵니다.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단을 발견했고 돌아가기 위해선 힘을 모아야 하는데 깨작깨작 모아선 늙어 죽어도 다 못 모으겠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당연히 큰 거 한방을 노릴 수밖에 없죠. 그 힘은 몬스터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인간들에게서도 얻을 수 있다면? 그걸 알아버린 학생A, 주인공 '타카히로'는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수해(樹海)를 지나 간신히 사람들이 사는 성채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도착했다는 기쁨보다 이면에 감춰진 이세계 인간들의 추악한 본심을 봐야 했고 질려버린 주인공은 이세계에 대해 정보를 모으고 도망 치려하였죠. 하지만 진실된 마음가짐으로 숲에서 쏟아지는 마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가려는 엘프 자매(정확히는 고모와 조카)를 만나면서 그래도 이세계엔 썩어빠진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치유를 받아 갔었죠.

 

자, 학생A에 의해 세상이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질서가 어른들에 의해 지켜지고 법이라는 테두리를 끼고 죄를 범하면 벌을 받는 세상에서 살다가 그것이 없어진 세상에 떨어진다면, 주변 온통 나를 위협하는 것뿐인 세상, 누구도 날 지켜주지 않는 세상, 아직 정신적으로 미숙한 아이가 지금 당면한 현실을 부정하고 이전 세계에서 받았던 보호라는 테두리를 찾아 안녕을 원하게 된다면, 그리고 그런 아이에게 힘이 깃든다면, 남이사 어떻게 되든 나만 살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겠죠. 이것은 예능 프로에서 자주 언급되는 '나만 아니면 돼'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로 다가옵니다. 자,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힘(마력)을 모으는 것, 이것은 마물을 처치하고 얻을 수 있는데 여기서 생각을 전환해서 마물도 동물의 일종이고 인간도 동물의 일종이잖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해야 될 성채는 처절한 아비규환으로 탈바꿈합니다. 느닷없이 마물 대군이 몰려와 성내로 침입하고, 자기만 살아서 현실로 돌아가겠다는 학생A는 살육을 시작합니다. 힘이라는 경험치(마력)를 얻기 위해, 주인공 일행은 이것들에 맞서서 처절한 사투를 벌여가죠. 그리고 인간 불신에 빠졌던 주인공은 이 무력한 현실에서 성채에 오면서부터 자신에게 빛이 되어주었던 어떤 여성과의 가슴 아픈 이별과도 마주해야만 합니다. 부조리한 세상, 부조리한 소원 앞에서 무력하게 쓰러져가는 성내 사람들과 현실에서 같이 이세계로 날아온 학생들, 좀 뜬금없습니다만. 3권까지 이런 상황인지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아 리뷰에선 쓰지 않았는데요. 이세계는 마물과 전쟁 중이었습니다. 수해 -樹海라 여겼던 단어는 다름 아닌 樹害였던 것- 그리고 현실에서 전이되어온 사람들은 용사가 되어 마물과 싸워야만 했고, 그 역사는 수백 년, 그럼에도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현실에서 덜 성숙한 아이(학생A)가 앞뒤 분간도 못하는 세상에서 떨어져 힘이라는 걸 손에 넣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부조리한 일을 당하면 어떤 짓을 벌일까. 전부가 사람을 위하고 지키는 용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이미 오래전부터 이 작품은 역설하고 있었죠. 그것을 우린 도덕적 해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을 살면서 정말 어쩔 수 없이 둘 중 하나만 살아야 되는 상황에서 내가 살기 위해 상대를 희생 시키는 걸 '카르네아데스의 판자'라고도 하지요. 이 작품은 이 두 개가 공존한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정의라는 개념에 혼동이 올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작가는 전자를 우선시합니다. 이것은 결코 카르네아데스 판자 따윈 아니라고, 성채에서 천(千)에 이르는 희생자를 내며 싸움은 격화일로를 걷습니다.

 

참고로 중간중간 학살해대는 인물을 학생A라 칭한 건 이름 자체가 스포일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 위 두 번째 문단의 등장인물도 언급할까 했는데 글이 길어지니 다음으로 미뤄야겠군요. 성채로 몰려온 마물 대군을 부린 핵심 인물이긴 합니다만. 어쨌거나 나중에...

 

맺으며, 용기 있는 용사는 있어도 착한 용사는 없다. 이세계 전이해서 마왕이 되든 뭐가 되든 착한 길로만 가는 등장인물들은 다 허구라는 듯 이 작품은 현실을 들이밉니다. 세상엔 별의 수만큼 사람의 마음이 있다는 걸 알려주죠. 내가 살기 위해 타인을 짓밟는 짓을 서슴지 않으며 그걸 정당화하고 의심하지 않는 행동을 보고 있으면 나도 아프리카 오지에 떨어지면 같은 길을 걷게 될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고 할까요. 그것이 정의롭지 않고 윤리와 도덕에 반한다고 해도, 도덕과 윤리란 내 목숨보다 우선시할 수 있는 것인가. 하지만 감정과 사고를 가졌기에 인간이고 윤리와 도덕을 알고 있으니까 우린 동물과 다른 점이라는 철학적인 메시지도 담고 있는 듯한? 작가의 의도야 필자는 모릅니다만. 한가지 아쉬웠던 건 학생A가 혼자만 살기 위해 저질렀던 만행 부분에서 그를 철저한 악이 아니라 고뇌에 찬 악으로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 좀 더 심도 있는 철학물이 되었겠죠.

 

아무튼 일본에서 이 작품의 평가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상당수 라노벨에서 작품이 좀 팔린다 싶으면 고질병이 하나 생깁니다. 바로 이야기 질질 끌기, 하나의 주제를 놓고 대체 몇 페이지나 생각을 구구절절 늘어놓는지 정말 학을 떼게 합니다. 이러면 기승전결이 먹혀 버리죠. 긴박했던 분위기는 식어 버리고요. 그러다 보면 놓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바로 잘 싸우다가도 적을 놓치게 되거나 보내줘야 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짜증을 확 불러옵니다. 이번에 주인공이 성채에서의 공방전을 거치며 뭔 놈의 생각과 느낀 점을 늘어놓는지 이 작품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필자로써는 순간 0.5점을 줘도 시원찮을 판이었다고 할까요. 게다가 추리를 하면서 답을 유추하기 직전 뭔가가 끼어 들어서 답을 내놓지 않는, 맥을 끊어버리는 짓 때문에 짜증 지수가 더 높아졌었는데요. 결국 기승전결은 물 건너가는 것에서 막말로 불쏘시개로 써버릴까는 생각도 들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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