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위치 1 - 침묵의 마녀의 비밀, ROSY
이소라 마츠리 지음, 후지미 난나 그림, 이경인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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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모니카 에버렛'은 약관 15세의 나이에 나라에서 7명 밖에 없다는 마술사의 정점 칠현인(현자가 7명)에 뽑힐 정도로 마술에 능통하나 그녀에게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바로 '심각한 낯가림'. 인간은 무영창으로 마술을 쓸 수 없다는 법칙을 깬 장본인이기도 하고, 기사단이 떼로 덤벼도 어쩌지 못하는 흑룡을 단독으로 격파하는 등 당대 최강의 마술사로서 만인의 사랑과 아이돌 같은 우상을 한몸에 받고 있으나 극히 일부를 빼곤 그녀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사회와 벽을 쌓고 살아가고 있죠. 그녀는 사람들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사람들 앞에서 영창하길 꺼렸고 그럼 무영창으로 하면 되겠네? 하는 얼토당토않는 생각으로 해내버립니다. 그렇게 만인의 부러움을 사는 칠현인이라는 자리에 올랐고, 2년이 흐른 지금, 시골에서 숨어 살던 그녀에게 지상 최대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본 작품은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일본식 학원물입니다. 그래서 군기 잡는 장면도 제법 있고, 왕따와 괴롭힘 등 학원 내에서 못 배운 것들에 의해 일어나는 추악한 이면들을 사실적으로 그려 내고 있는데요. 알콩달콩 청춘 로맨스 학원물보다는 남을 깎아내리는데 도가 튼, 그런 귀족 세계를 바탕으로 해서 엄격한 위계질서와 자신 밑의 계급(평민은 말할 것도 없고)은 인간 취급을 안 해주는 사바나 같은 냉혹함을 보여주고 있죠. 물론 이게 메인이 아닌 바탕으로 깔려 있는데요. 여주 모니카는 지인에 의해 이런 사바나 같은 학원에 강제로 입학해서 어떤 인물을 호위해하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심각한 낯가림으로 인해 대인 관계는 궤멸적, 동성과도 눈 똑바로 보고 대화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대인 기피증, 용기 내서 대화를 해도 몇 분 못 가서 거품 물고 졸도. 과연 그녀는 무사히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 기간은 1년, 호위 대상은 이 나라의 제2 왕자. 왕자는 학원의 정점, 모든 여성이 우러러보는 미남(일러스트도 잘 나왔음), 모니카와 접점이라고는 개미 눈물만큼도 없을 관계지만 이런 작품이 다 그렇듯, 우연찮은 이벤트로 만나 왕자와 엮여가는 클리셰를 보여주죠. 흥미로운 건 품질 저하식의 장면이 아닌 개그로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군요. 그러다 왕자의 목숨을 노리는 사건이 터지고 모니카는 그걸 추적해서 범인을 찾아내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보다는 모니카가 학원 생활을 하며 그녀의 병적인 낯가림으로 인한 에피소드가 더 흥미롭습니다. 상위 귀족과의 트러블에서 내가 참으면 일이 커지지 않는다는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본식 피해자 대처법이라든지, 그걸 또 못 본 척하지 않고 정의 구현해 주는 미남 캐릭터라는 클리셰도 보여주죠.

여기서 더 흥미로운 점은 꾸미는데 소질이 없고 관심도 없고 못 먹어서 뼈밖에 없는 그녀가 칠현인이라고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가 칠현인이라고 밝혀진다면 학생들은 어떤 경악을 보여줄까 하는 기대가 있고, 맛보기로 왕자를 노렸던 범인이 그녀의 정체를 파악하고 뜨악?! 하는 장면은 이 작품에서 명장면에 속하죠. 그런데 학원물이라는 한정된 공간이라서 그런지 대규모 싸움보다는 왕자를 노리는 범인을 찾는 추리를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대인 기피증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호위 때문인데도 이걸 알 길이 없는 학생들의 (학원의 정점인 왕자의 곁에 얼쩡 거린다는 이유로) 악의와 질투를 받아도 '내가 참으면'으로 저자세로 일관해서 약간은 발암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마음은 도망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가 불쌍할 정도로 처절한 모습들을 보이죠.

본 작품은 여성향입니다. 여주와 여러 미남 캐릭터 그것도 왕자라는 구도를 가지고 있죠. 처음은 그저 몰래 왕자를 호위하려 했으나 대인 관계가 궤멸적인 그녀로서는 방법이 서툴렀고 결국 왕자와 접점이 생겨버립니다. 거기에 왕자 주변에는 당연히 추종자로서 미남 캐릭터가 포진하고 있죠. 이벤트가 벌어져 왕자와 접점을 만들고 차차 미남 캐릭터들과도 접점을 만들어 가는데 미남 캐릭터들은 당연히 평민보다 못한 그녀에게 멸시의 시선을 보내나 주어진 임무와 맡겨진 일을 해내는 모습에서 차츰 그녀를 인정해가고 매몰차게 대했던 인물이 조금씩 그녀를 챙겨주는 모습들이 꽤나 인상적입니다. 물론 많은 작품을 봐온 필자 입장에서는 식상한 부분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건 왕자를 주축으로 해서 여러 미남 캐릭터들이 여주 모니카와 어떤 관계를 맺어갈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떠오르죠. 여주 모니카는 왜 중증 대인 기피증을 앓게 되었는가입니다. 과거에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학대를 당했고,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사람들을 기피하고 대화할 수 없을 정도로 낯가림을 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봤는데 그런 복선이 조금 나오면서 그녀의 과거가 궁금해지기도 했는데요. 그런 과거를 트리거로 삼아 그녀는 무영창을 실현했고, 그것으로 인해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 올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을 있게 한 원천인 과거를 넘어서지 못해 자기의 위치를 살리지 못하는, 그런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학원에 강제로 입학은 했지만 또래의 친구를 만나고 과거에서 아버지가 말했던 것을 가슴에 새기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 갈려는 모습에서 응원하게 되더군요.

맺으며: 비굴할 정도로 저자세와 말도 제대로 못해서 처음엔 발암으로 다가옵니다. 다만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바탕으로 깔기 시작하면서(저 위에서 언급한 학대 당한 거 아닐까 하는 것) 조금은 응원하게 되는 매력이 있습니다. 마음은 시골 오두막에 처박히고 싶지만 주어진 임무를 내팽겨 칠만큼 썩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지를 보여주기도 해서 중반을 넘어서면 발암적인 요소는 많이 희석됩니다. 그리고 마녀의 곁에는 검은 고양이는 필수라는 것처럼 '네로'라는 인간의 말을 하는 고양이를 투입해 소소한 개그를 이끌어 내는 재주가 있는데, 그 외에도 먹을 것은 주섬주섬 주머니에 넣는다거나 지인의 상위 정령의 말장난 등 분위기를 이완시키는 재주가 좋더군요. 마지막으로 그녀의 지인은 그녀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괴물". 누가 그녀를 괴물로 만들었는가가 더 궁금해지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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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포 현자의 이세계 생활 일기 11 - L Novel
코토부키 야스키요 지음, John Dee 그림, 김장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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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야기도 슬슬 클라이맥스로 치닫습니다. 방탕하고 제멋대로인 4신(神) 들에 의해 고대부터 마구잡이로 소환된 용사들이 죽어서 환생도 못한 채 구천을 떠돌고 그게 원인이 되어 이세계를 유지하는 시스템에 오류를 일으키고 나아가 차원 붕괴로 이어지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본의였는지는 이제 와 생각은 안 나지만, 아저씨(주인공)가 주워와 배양한 사신(神)이 제시간에 간신히 부활하여 시스템 오류를 바로잡아가면서 차원 붕괴는 가까스로 막아가고는 있습니다만. 시스템 오류 여파는 강력한 마물의 등장으로 연결되고, 아저씨는 이에 대응하느라 죽을 고생을 하게 되죠. 결국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집에서 게임하던 폐인이 4신에 의해 폭사 당하고 이세계로 끌려와 4신과 사신(神)이 벌인 전쟁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개고생 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뭐 폭사 당하고 끌려왔지만 이세계에서의 생활도 나름 괜찮고 정들면 고향이라고 도시에 정착해 잘 살아가고 있었죠. 능력을 발휘해 이거저거 만들며 이세계 먼치킨 계보를 잘 따라가는 등 클리셰 덩어리 같은 면모도 보였습니다만, 일본식 개그 만담 같은 개그로 승화 시켜서 저렴함은 있어도 식상함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일본식 개그 만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거부감이 좀 드는 호불호가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것도 10권까지의 이야기고 11권부터는 본격적으로 차원 붕괴를 다루고, 4신 타도를 위해 사신이 본격 부활하는 등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진척 시키면서 이야기는 진지하게 흘러갑니다. 첫 번째로 원수지간이었던 친누나와 최종 결판을 내고, 두 번째로는 그동안 신세 졌던 히로인들에게 프러포즈를 한다는 것입니다.

아저씨에게 있어서 친누나와의 관계는 지구에서부터 악연 그 자체였고, 이세계에 다 같이 끌려와서도 제멋대로 살아가고 자신을 위해 친동생은 물론이고 타인을 아무렇지 않게 희생 시키는 누나는 마왕 그 자체였죠. 그러나 겉모습과 행동은 성녀와도 같아서 사람들이 마구 속아 넘어가는, 최종 보스여도 이상하지 않을 누나를 처단하기 위해 아저씨는 함정을 파고 주도면밀하게 준비를 시작합니다. 약간의 질질 끄는 장면을 지나 마침내 마주한 자리. 이후 사실 누나 때문에 여성 혐오증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건만, 그건 그거 이건 이거라는 듯, 그동안 신세 졌던 히로인들에게 프러포즈 하는 장면은 좀 감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작가가 연애를 못 해본 모양인지 밋밋하기만 하군요.

맺으며: 나이 40을 넘어 홀아비로 늙어죽나 싶었던 아저씨는 용기를 내서 히로인들에게 대시를 하고, 대시를 받은 히로인들의 순수한 모습에서 이 부분만큼은 저렴함이 없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이세계가 붕괴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서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지만 남녀 관계를 질질 끌지 않고 깔끔하게 맺어줘서 큰 점수를 줄만 했습니다. 사실 일러스트는 빈말로도 좋다 할 수 없고, 한국에서는 잘 먹히지 않는 일본식 개그로 인해 집중력을 떨어트리는 등 도처에 지뢰를 살포하고 있지만 그래도 질질 끌지 않는 낄끔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누나를 이용해 인간의 이기심을 잘 표현하고 있기도 하죠. 사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짓밟을 수밖에 없는 치열한 세계를 살고 있다는 사회 고발성을 엿보이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사신을 역시 소녀의 모습으로 만들어 버리는군요. 누가 라이트 노벨 아니랄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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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18 (한정판) - S Novel
오모리 후지노 지음, 야스다 스즈히토 그림, 김민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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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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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1권부터 시작되어 장장 18권까지 이어져 온 프레이야의 벨에 대한 집착의 종착점입니다. 소녀의 가면의 벗어던지고 내 사랑을 힘으로 빼앗기로 정한 프레이야는 오라리오 전체에 매료를 걸어 사람들의 인식과 기억을 개찬해서까지 벨을 고립 시켰으나 헤스티아의 활약으로 미수에 그치게 되었습니다. 이에 프레이야는 헤스티아에게 선전포고를 하죠. "워게임" 이긴 쪽이 벨을 차지하는 것으로. 프레이야는 자신의 아이들[프레이야 파밀리아]을, 헤스티아에겐 제약이 없는 무제한적인 인원을 동원하는 것을 용인. 프레이야의 기억 개찬에 열받아버린 오라리오 주민과 주신(神)들은 프레이야 타도를 외치며 헤스티아를 중심으로 해서 [파벌 연합]을 꾸리게 됩니다. 하지만 최대의 전력이라 여겼던 [로키 파밀리아]는 불참, 아이즈 또한 참가 불가령이 떨어지고 프레이야 편에 선 주신(神)들도 있는 상황에서 오합지졸이 모인들 오라리오 최강의 [프레이야 파밀리아]를 넘어설 수 있을까?

본 18권을 읽기 전에 외전 '파밀리아 크로니클 프레이야 에피소드와 류의 과거 이야기인 아스트레아 레코드'를 먼저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유는 개연성 때문이군요. 외전들은 보다 18권에 집중할 수 있는 장치로서 일본에서 뭐가 먼저 발매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18권 발매 전에 외전을 먼저 내보인 건 신의 한 수 아니었나 싶습니다. 18권에서는 프레이야가 바라는 사랑이 무엇인지, 이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사랑을 찾아 헤매는 절절한 마음이 그녀를 한 명의 소녀로 만들고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게 무엇인지 고뇌하는 것을 보여주죠. 류는 절체절명에 빠진 지금의 사랑하는 이를 구하기 위해 뭘 해야 되는지, 그에게서 과거를 마주하고 뛰어넘기 위한 [희망]을 봤고, [희망]을 관철하기 위해. 더 이상 과거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금색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당당히 전장에 서기까지의 이야기를 보다 집중하려면 '아스트레아 레코드'를 먼저 읽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헤라와 제우스가 없는 오라리오에서 사상 최강이라고 일컬어지는, '핀'도 전신 전력으로 나오면 이길 자신이 없다는 그 [프레이야 파밀리아]를 상대로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헤슽티아 중심의 파벌 연합]과의 대결은, 내기에서 100:0 승률이 나올 정도로 [파벌 연합]의 승리의 가능성은 개미 눈물만큼도 없습니다. 그래도 헤스티아는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릴리는 사령관의 자리를 맡아 승리 가능성이 없는 워게임을 두고 절망에 빠집니다. 이렇듯 이야기는 성립 자체가 안 된다는 듯이 시작되죠. 하지만 벨은 그 끝을 절망이 아니라 다른 것을 봅니다. 벨의 마음에는 "시르"가 자리하고 있죠. 프레이야는 "시르'를 버렸습니다. "시르"를 그만두고 [반려]로 인정한 소년을 독점하기 위한 프레이야의 처절한 몸부림과 "시르"를 구하고 싶은 소년의 몸부림, 그리고 시작되는 워게임은 단 한 번의 충돌로 [파벌 연합]은 궤멸에 직면합니다. 가공할 [프레이야 파밀리아]의 맹공을 과연 벨은 뚫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울고 있는 "시르"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18권은 약자들이 강자를 상대로 싸워 이겨 나가는 클리셰를 기용하고는 있으나, 본질은 '울고 있는 아이는 구해주는 게 맞다'로 귀결된다 할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진부하기도 하고, 크로니클 프레이야 에피소드를 읽지 않았다면 개연성이 부족해서 좀 낮은 평가를 주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만. 프레이야는 이 사랑이, 이 마음이 무엇인지 모른 채, 방황하고, 집착으로 변질되고 그렇기에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끝에 실력행사라는 어린애 같은 장면들을 보여주죠. 그런데 그런 클리셰 속에서도 작가의 진면모를 볼 수 있는데요. 그녀의 종자이자 거울인 "회른"을 통해 지금의 프레이야가 품고 있는 마음을 조금씩 밝혀가고, 세상에서 제일 강한 여신은 사실 xx(스포일러라서)에 빠져 있다는, 하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울고만 있다는, 그녀의 마음은 평범한 소녀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역설하죠. 클리셰의 범주에 들어가면서도 애틋하게 하는 작가의 실력이 대단히 좋습니다.

사실 완결 편이라고 해도 될 18권입니다. 벨은 프레이야가 품고 있는 마음(특대 스포일러라서)을 깨닫게 해주었고, 프레이야는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미련을 벗어던지죠. 그렇다는 건 과감히 벨의 품에 안기나?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보는 것이라 하죠. "벨이 바라보는 곳은..." 사실 그동안 꾸준하게 벨이 바라본 곳은 딱 하나 있었죠. 그의 스킬이 발현한 조건이기도 한. 그렇기에 우는 아이를 구해주기 위해 처절하리만치 몸을 사리지 않고 프레이야가 있는 곳으로 갔던 벨은 프레이야의 바람을 들어줄 수는 없었습니다. 벨이 구해주고 싶었던 소녀는 프레이야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엔딩은 프레이야가 아닌 다른 소녀로 귀결되죠. 이것도 클리셰일 수는 있으나 그래도 높은 점수를 줄만한 게, 여느 라노벨이라면 주인공 품에 히로인이 뛰어드는 엔딩을 택하겠지만 이 작품은 그런 게 없다는 것이죠. 미련이 없다는 것, 더 이상 만날 일이 없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엔딩은 상당히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못 쓰는 게 가슴 아픕니다만, 천 갈래의 길이 있고,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은 그 천 갈래의 길 중에 하나, 앞으로도 그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걸어 갈려는 프레이야의 뒷모습은 더 이상 악녀의 이미지는 없었습니다. 그저 한 명의 소녀일 뿐이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 그 길을 홀로 걸어갈 뿐. 어디로 가야 할지는 지금부터 정할 뿐. 미련을 버렸다는 것은 사랑하는 이의 품에 뛰어드는 것이 아닌, 홀로 다시 걸어간다는 의미. 정말 오랜만에 센티해지는 느낌의 엔딩이었는데요. 이렇게 끝내야 했습니다. 그래야 한 편의 드라마가 완성되었을 테니까요. 근데 작가는 프레이야에게 미련을 버리게 했으면서 자기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군요. 하기야 벨이 구하고자 했던 건 프레이야가 아닌 "시르"였으니까요. 이 정도면 스포일러로서 세이프일까요? 갈려나간 [파벌 연합]은 대체 뭣 때문에 출연한 건지...

맺으며: 액션신은 예전부터 좋았으니 이번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벨에게 있어서 뛰어넘어야 하는 사람은 딱 두 명이 있죠. 한 명은 출전 불가가 내려졌고, 나머지 한 명은 뭐... 지면도 많이 할애하고 전투 표현도 좋지만 넘어가고요. 이번 18권은 그동안 정체되어 있던 것을 한꺼번에 터트립니다. 프레이야 이야기를 끝내고 이어, 류는 벨을 도와주기 위해 5년 전에 피신 시켰던 주신 '아스트레아'를 찾아가고, 그동안 스테이터스 갱신을 하지 못해 류의 레벨 업이 이루지 지지 않은 것을 해소 시키고, 외전을 먼저 소개하고 이번 18권에서 여신 아스트레아를 등장 시킴으로서 훙분도를 배가 시키는 재주가 상당히 좋습니다. 특히 피신해 있으면서 새로운 단원들을 맞아들였던 여신 아스트레아가 그 단원들을 이끌고 류를 도와주기 위해 등장하는 장면은, 마치 친엄마가 이복동생들을 대리고 나타난 듯한 느낌을 받게 해서 상당히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있지만 넘어가고, 700페이지나 되는 분량이 지루할 틈 없이 흥미로웠습니다. 필력도 최고조에 다다랐는지 표현력도 상당히 좋고요. 1만 5천원이라는 돈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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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이 어둠이 아늑했다 1 - L Books
호시자키 콘 지음, Nio 그림, 박춘상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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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한때 자라나는 새싹들의 장래희망으로 유튜버가 인기를 끌었죠. 자신만의 영상을 만들어 개성을 연출하려는 아이들도 있었겠습니다만, 당시만 해도 영상이 좀만 팔려도 강남에 건물 올리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을 만큼 벌이가 좋았거든요. 지금은 500만 헤비 유툽도 적자를 면치 못한다고 하니까 세월의 무상함이란. 아무튼 본 작품은 그런 발상에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세계(지구) 사람들을 이세계로 보내어 서바이벌을 찍게 하고 그걸 전 세계에 방영한다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주최 및 진행자는 신(神), 출연자는 지구인 중 무작위 선출된 1,000명. 어느 날 갑자기 모든 미디어에 신(神)이라는 작자가 출연해 너희들 중 1천 명을 선발해 이세계로 보내겠다고 선언합니다. 남겨진 자에겐 미디어,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고요. 출연자는 자신의 채널에 시청자가 몰리면 몰릴수록 각종 특전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생깁니다.

본 작품은 이세계 전이를 바탕으로 두고 있으나 주인공 보정 받는 먼치킨은 아니며, 이멋세류 같이 밝고 쾌활한 웃음과 재미를 선사하지 않습니다. 장르를 따지라면 재와 환상의 그림갈 같이 다크 판타지 계열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세계로 전이까지 앞으로 6개월, 선발된 1천 명에게는 가고 안 가고의 선택할 권리가 없으며, 가족과 떨어지게 된다는 점, 선택된 사람을 죽이면 권리가 이양될 거라는 뜬소문에 목숨이 노려진다는 것, 이단으로 여겨 죽임을 당하고, 각종 매스컴과 범 정부적 관심을 한몸에 받아 사생활은 보호받지 못합니다. 그런 혼돈의 상황에서 주인공은 선택된 자들의 리스트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속칭 음침 캐릭터로 로또 보다 더 낮은 확률에 자신이 선택될 일은 없다고 낙관하고 있었고, 그렇게 되었죠. 하지만 소꿉친구 '나나미(히로인)'가 선택된 순간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게 됩니다. 그렇게 6개월간 주인공은 소꿉친구가 이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온갖 정보를 모아줍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본 작품은 다크 판타지입니다. 그것도 꿈도 희망도 없는 무자비한 세상을 그리고 있죠. 주인공은 선택된 자들이 이세계로 전이되는 당일 소꿉친구 집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소꿉친구를 발견합니다(뒷표지 시놉시스에도 밝혀져 있는 내용). 여기서부터 주인공은 만능이 아니며,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소년일 뿐이라고 역설하기 시작합니다. 왜냐면, 소꿉친구가 전이자로 선택된 후 사람들에게 얼마나 시달렸는지, 주변으로부터 선택된 자를 죽이는 자들이 있다는 걸 들었으면서도 이것들을 간과하고 있었으니까요. 돌이켜보면 여기서부터 알아채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의 전개가 암울하다 못해 발암 수준이라는 것을요. 주인공은 사태를 간과한 벌을 받았는지 습격을 받고 소꿉친구 뒤를 따라가게 되죠. 그리고 극악한 확률로 새로운 전이자로 선택되어 이세계로 전이하게 됩니다. 마치 비행기 탑승 대기자 명단에 올렸더니 차례가 돌아온 것처럼.

이세계로 갔으니 아무리 평범한 주인공이라도 먼치킨이 되겠지? 같은 것은 없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이세계로 전이했을 때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같은 리얼리티를 보여줍니다. 도착지는 랜덤, 주인공이 도착한 곳은 사방 약 400킬로 이내에 민가는 찾을 수가 없는 마물이 득실 거리는 마경. 지금 주인공이 가진 것은 온라인 게임에서 캐릭터를 처음 만들었을 때와 같은 장비. 그리고 신(神)이 만든 웹 사이트라는 디스플레이 같은 윈도 창, 거기서 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는 각종 물품이 있지만 주인공이 가진 포인트는 한정적. 마경에서 살아날 확률은 절망적, 주인공이 받은 능력은 정령의 총애. 다른 능력치는 없음. 캐릭터는 초보, 고렙존에서나 나올법한 몬스터들, 밸런스 붕괴도 정도가 있지 같은 일들이 벌어지죠. 그리고 주인공을 더욱 절망하게 하는 건 소꿉친구를 죽여서 이세계 전이 권리를 강탈했다는 누명. 신(神)은 잔혹하게도 현실 지구에서 이세계 전이자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버렸습니다.

급하게 선택되어 제대로 능력을 고르지도 못했고, 소꿉친구가 살해당했다는 충격, 자신도 살해당했다는 충격, 시스템이 구축되고 처음 온 메시지가 소꿉친구 살인자라는 매도, 나가 뒤지라는 욕설, 생존 확률이 절망적인 마경, 주인공을 잡아먹으려는 몬스터들의 악의, 이 모든 걸 마치 유툽처럼 미디어로 지켜보는 전 세계 인구(적게는 몇천만, 많게는 억 단위). 그나마 잘 해보자고 다짐은 했지만 그것 비웃는 암울한 상황의 연속은 평범한 일개 고등학생이 감당할 수준을 진작에 넘어섰고, 시스템의 힌트를 받아 어둠의 정령술을 익힌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건 검은 안개에 자신의 몸을 숨겨 세상으로부터 단절되는 것. 그래서 본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주인공에게 있어서 어둠은 집보다도 아늑하게 됩니다. 보통 1권이라도 중반을 넘어서면 아무리 무능력이라도 먼치킨이 되곤 하는데 본 작품은 그런 게 없습니다. 암흑과 절망과 인간 혐오증에 걸린 주인공의 비일상을 다루고 있죠.

비일상이라는 걸 알고 읽어가면 주인공이 허접하게 보여도 지루하지 않으며, 오히려 일반인이 갑자기 남아메리카 밀림 지역에 떨어졌을 때 같은 리얼리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현실 지구인이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대자연 앞에서는 무력하니까요. 이런 점은 잘 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소꿉친구가 살해당했다는 충격과 그 누명을 덮어쓰게 되면서 세상과 단절을 선택해가는 주인공이 안타깝게 다가오죠. 그래서 인간과의 교류를 피하고 던전에 들어가 시체를 뒤지며 그들이 남긴 장비를 훔쳐 팔며 연명해가는 장면들은 여느 작품에서 볼 수 없는 비참함이 있습니다. 사람이 망가진 거죠. 히키코모리를 자처하듯 자신의 특기를 살려 낮보다는 밤에 던전에 들어가고, 거기서 하염없이 검은 안개를 몸에 두르고 지나가는 모험가들을 관찰하거나 남들이 떨어트린 아이템이나 장비를 주워 파는 노숙자 같은 장면들은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닐 것입니다.

맺으며: 설정만 놓고 보면 유툽의 재해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판타지라는 장르를 이용해 시청자가 많을수록 광고비가 많이 들어오는 구조를 취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법의 테두리에 있는 현실 지구와 다르게, 윤리와 도덕이 존재하기나 하는지 미심쩍은 이세계에서 법의 제재를 받기 힘드니 전이자들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세계관이라는 것이고, 자극적인 일을 꾸밀수록 시청자가 더 늘어난다는 것, 서로 힘을 합친다는 발상은 없는 거 같고, 이런 종합적인 여건이 합쳐져 전이된 당일에 수백 명이 리타이어 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런 현실에서 제일 먼저 죽을 거 같았던 주인공이 살아남게 되면서 주인공 채널의 시청자 수는 늘어나고, 그 덕분에 포인트를 얻어 신이 만든 웹 사이트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면서도 그 시청자들의 악의에 히키코모리가 되어 버리는 제법 탄탄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근데 라노벨 특성의 한계는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가령 던전에서 구해주는 '리프레이아(히로인)'의 발암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본 작품을 순식간에 나무야 미안해로 전락 시키고 만다는 건데요. 주인공이 음침하고 어둠 계열인 반면에 '리프레이야'는 빛 계열의, 어둠의 주인공과 반대되는 속성으로서 주인공을 밝은 곳으로 이끌어내는 아주 중요한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출연 시점을 지금이 아니라 좀 더 인간에게 마음을 여는 좀 더 뒤에 출연 시켜 주인공의 마음을 견인 시켜야 되지 않았나 싶었는데요. 한창 인간 혐오증에 걸려 던전에 틀어박히고 밤에만 싸돌아다니며 세상과 등질대로 등지고 망가져 가는 다크 판타지의 정점에 올라가는 중간단계에서 좀 도움받았다고 느닷없이 웃는 얼굴로 그토록 숨기려고 노력하는 주인공의 본 모습을 까발리고 멋대로 보답하겠다며 주인공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비집고 들어와 당일에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어요'라며 웃을 훌렁 벗어 재끼고 우리 레슬링 해요! 라니요. 대체 왜?라는 말 밖에 안 나오고, 순간 도서를 찢어 버릴까 싶을 정도로 분노를 느꼈는데요. 분위기랑 너무 안 맞는 전개에 당황을 넘어 황당하기 그지없었군요.

주인공 인생에 있어서 '리프레이야'는 터닝포인트에 해당되는 장면일 수는 있으나 등장 포인트 조절에 실패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첫눈에 반했다, 좋아하게 되었다는 감정은 삽입할 수 있으나 그걸 왜 지금에? 제대로 망가져 가는 주인공이라는 장면들을 이리도 쉽게 깨도 되나? 고양이 수인을 도와주고 그 고양이 수인을 보며 그래도 억척같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가는 주인공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었는데? 갑자기 막 비집고 들어와도 되나? 해도 그 고양이 수인을 기용하든가 왜 게임을 망게임으로 만들지? 같은 온갖 분노가 다 치밀어 올랐군요. 리프레이아와는 분위기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요. 그리고 그걸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동정 시키 주인공도 발암 그 자체고요.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 장면들을 넣었지? 주인공이 리프레이아에게 창부냐?라는 대사를 하는데 진짜 딱 그런 장면들을 보여 버리죠. 히로인을 이렇게 싸구려로 만들다니. 간만에 다크 판타지가 나와서 좋아라 했더니 이 무슨 꼴인지... 그런 의미에서 10점 만점에 1점 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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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드 월드 3 - 하 - 현상수배급 토벌 요청 , Novel Engine
나후세 지음, 긴 그림, JYH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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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기껏 미발견 유적을 독차지할 수 있었는데, 마치 상처 입은 동물을 발견한 피라냐들처럼 헌터들이 몰려와 뼈도 안 남기고 싹쓸이해버리는 바람에 주인공은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메인 히로인이지만 결코 메인으로는 올라가지 못할 '셰릴'이라는 히로인이 납치되어 죽을 뻔도 하였죠. 그래도 의미 없는 삶은 아니라는 듯, 나 이외에 타인은 관심이 없었던 주인공이 히로인을 구출하러 갔다는 것에서 큰 의미가 있지 않았나 싶긴 합니다. 이번 이야기는 돈 독은 올랐지만 출세욕은 없는 주인공의 활약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활약 때문에 헌터들 사이에 소문이 나고, 평범한 세상이었으면 추앙받아 마땅할 활약이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이곳은 상대가 상처 입기만을 바라는, 먹잇감을 그대로 둘 이유가 없는 하이에나들이 득실 거리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3권 하편에서는 주인공이 발견한 미발견 유적에서 쏟아진 현상수배급의 몬스터로 인해 도시 간 교역이 중단되고 이에 현상금이 걸리면서 한탕을 노리는 헌터들이 앞다퉈 달려가지만 죄다 역으로 소탕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현상금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이에 도란캄이라는 헌터 조직의 조직원의 의뢰로 주인공은 그 현상수배급 몬스터 사냥에 나섭니다. 보통 이런 이야기에서 여느 작품들이라면 주인공이 전면에 나서서 처리하고 영웅으로 등극하잖아요. 그러나 작가는 주인공을 출세 시킬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하루 연명할 수 있는 돈을 벌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할 뿐이죠. 근데 그로 인해 그 최선을 눈여겨 본 무리들이 주인공에 접근하게 되고, 주인공을 이용하면 한몫 벌 수 있겠다, 조직의 파벌 싸움에 이용할 수 있겠다 등 인간 군상들을 상대로 주인공은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고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 작품은 판타지 세계의 모험가와 던전의 이야기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유적은 던전이고, 그 유적을 지키는 경호 기계 로봇들은 몬스터이고, 헌터는 모험가입니다. 헌터들은 유적에 들어가 인간을 적으로 간주하는 경호 기계 로봇들을 없애고 구유물을 구해다 팔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죠. 사실 단순히 이런 이야기였다면 여느 판타지를 모방한 레플리카 취급이었겠습니다만, 필자가 높게 평가하는 부분을 들라면 인간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는 것이군요.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뒷배로 주인공을 붙잡아 두기 위해 필사적이 되어 가는 셰릴(히로인), 만인을 구하기 위해 무모한 짓을 저지르는 '카츠야(서브 주인공)',그걸 우상화하는 어른들, 그런 카츠야의 행동에 끌려가는 히로인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주인공을 컨트롤하려는 '알파(내비게이터)', 타인에게 무관심한 주인공을 그래도 보살펴주는 히로인 등, 본 작품은 출연하는 캐릭터들의 감정 표현에 매우 충실한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이번 3권 하편에서는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총을 쥐여주면 어떤 꼴이 생기는가 같은 일들이 벌어지죠. 베테랑 헌터들도 나자빠지는 현상수배급 몬스터를 상대로 자신들의 파벌 싸움을 위해 신인 헌터 아이들을 몰아붙이는 어른들, 그런 어른들을 바라보며 해주겠어 하며 주제도 모르고 날뛰다 죽어가는 아이들 등, 유적에서 유물을 모아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 보다 인간의 추악한 이면들을 많이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여기엔 감언이설과 사탕발림 같은 어른들 사정이 동원되고 주인공도 농락 당할뻔하는 등 삶이란 무엇인가,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게 무엇인가 같은 철학적 물음도 던지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카츠야와 반목하면서도 서로 도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고 그럴수록 사이가 더 멀어지는, 결국 어중이떠중이 같았던 카츠야가 주인공급으로 성장하며 주인공과 대척점에 서는 그런 이야기들을 보여주죠.

맺으며: 이번 3권 하권이 의미 있는 점을 꼽으라면 당연 셰릴이 되겠군요. 조금씩 카츠야와 접점을 만들어 가더니 기어이 건담의 아무로와 샤아의 사이에 있었던 라라슨 관계로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동료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정신이 죽어가던 카츠야는 셰릴이 건넨 인사치레 같은 말에 정신을 차리고 셰릴을 신앙에 가까운 존재로 받아들입니다. 셰릴은 그럴 의도가 없었지만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카츠야를 띄워준 것이건만. 셰릴은 주인공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고, 카츠야는 주인공을 죽도록 싫어합니다. 주인공은 카츠야를 슬슬 짜증 나는 쉑기로 인식해가고 있고요. 카츠야는 셰릴을 인식하게 되었죠. 그래서 이 세 명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본 이야기보다 이게 더 궁금해지더란 말이죠. 근데 문제는 작가가 이렇게 아침 드라마로 만들어 갔으면 좋았을 텐데 '알파(내비게이터)'를 이용해 엄한 설정을 넣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밝힐 수 있는 건 내 인식이 조작된 거라면? 정도군요.

아무튼 본 작품은 필자가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히로인이 제법 나오지만 하렘의 느낌은 없고요.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아이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같은 현실미도 상당히 좋습니다. 그리고 그 끝은 언제나 좋게 끝나지 않는다는 교훈적인 메시지를 던지죠. 주인공은 그 뒤처리로 바쁘고요. 그리고 눈뜨고 코 베일 수 있으니 언제나 조심하라는 메시지도 던집니다. 주인공처럼 착실하게 하면 출세는 힘들어도 먹고사는데 지장 없다는 메시지도 있고요. 그러다 보면 인정해 주는 사람도 있다는 것도. 다 나자빠지는 상황에서 주인공으로 인해 살아난 사람도 있고, 그 덕분에 보답도 받기도 하고. 사실 좀 더 내용적으로 들여다보면 주인공과 카츠야와의 관계, 어른들의 사정 등 복잡한 설정이 꽤 있습니다. 이들의 관계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복선도 있고 설정을 몇 개 중첩적으로 이어가고 있어서 리뷰어로서 좀 애로사항이 꽃 피는 작품이기도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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