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양피지 1 - 늑대와 향신료의 새로운 이야기,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아야쿠라 쥬우 그림, 박소영 옮김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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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존재인 로렌스와 호로가 만나 예정된 이별을 감수하면서도 행복한 결말을 보여줬던 늑대와 향신료,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흘렀습니다. 원래 임산부는 술을 피해야 하건만 임신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술을 진창 퍼마시는 호로 때문에 이거 2세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아이는 무사히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너무 건강해서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 온 산을 뛰어다니고 짓궂은 장난을 치는 통에 로렌스는 늘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는 것에서 웃음을, 하지만 서열이 강하게 작용하는 늑대 사회에 걸맞게 엄마인 호로에겐 꼼짝을 못한다고 해서 또 한 번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하였습니다.

 

뮤리, 수백 년 전 동료의 이름을 딸에게 지어준 호로는 이 작품에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군요. 하지만 작중 간간이 뮤리를 통해서 아직도 쌩쌩하게 로렌스와 깨가 쏟아지는 생활을 하고 있다 하니 그리 섭섭하게는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온다고 해도 이젠 다 늙어가는 로렌스와 아직도 10대 소녀의 모습인 호로의 관계 때문에 괜스레 더 마음만 안 좋아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을 시작하는 콜을 배웅하는 건 로렌스뿐이라는 것에서 음울한 마음이 서리기도 했군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 작품은 과중한 세금에 나날이 돈만 밝혀대고 타락해가는 교회를 바로잡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콜과 그의 곁에서 마치 호로가 그랬던 것처럼 지혜를 빌려주는 뮤리의 여행담입니다. 하지만 세상 물정 어두워 눈뜨고 코베인 격으로 사기를 당해 오도 가도 못했던 10대 시절을 지나 나이를 먹고 로렌스와 호로 덕분에 조금은 성장했나 싶었는데 늘어난 건 책 속의 지식뿐이고 세상에 관련된 지식은 여전히 전무해서 사탕발림에 냉큼 넘어가버릴 순진한 청년으로 자라난 콜, 그의 곁에서 한숨을 짓는 건 뮤리의 몫이 되었고요.

 

그런데 신의 가르침에 반하는 교회를 바로 세우겠다고 뛰쳐 나오긴 했지만, 뭐랄까 원래 얘(콜)가 이런 성격입니다. 한 눈 팔 줄 모르고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옆을 안 봅니다. 그래서 약간 외골수 같은 면을 보여주죠. 교회를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신의 가르침은 경건히 받아들여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게 뇨히라에서 온천장을 물려받아 일생을 보내도 되건만 고행이 미덕 인양 고생을 사서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뜻으로 움직인다기보다 윈필국의 왕자(라고 처음에 그렇게 믿었지)인 '하이랜드'에 휘둘리는 꼴이 마치 혁명을 꿈꾸는 새파란 학생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주인공으로 콜을 세운건 미스가 아닐까 했군요. 얘가 머리는 좋은데 어리바리하고 세상을 덜 살아봐서 사람 무서운 줄을 몰라요. 그래서 사기도 당하고 하였는데 여전히 위험한 일에 발을 담그고 자 합니다. 세금 문제로 교회와 전쟁 직전에 직면한 윈필국의 왕자 하이랜드를 도와 세금을 낮추고 전쟁을 피하려 노력하던 콜은 교황에 의해 이단이라는 법정 최고형이 내려지고... 그렇다고 이대로 끝낼 순 없고 이전작에서 로렌스가 위기에 빠지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호로가 도와줬다면 이번엔 뮤리가 발 벗고 나섭니다. 이 작품에서 남자들은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콜은 더하죠. 이렇게 순진한 애를 악의로 가득 찬 세상에 던져 놨으니...

 

맺으며, 뮤리의 귀여움이라고 해야 하나 엄마의 피를 물려받아 현명하다는 수식어가 붙은 만큼 활약은 하는데 그 정력을 엉뚱한 곳에 쏟아붓는 통에 현명함보다 영악함이 더 어울릴 지경입니다. 가령 늑대로 변신은 하는데 하프라서 한번 변신하면 풀 수가 없다며 세상 무너지는 듯 행동하다가 '방법이 딱 하나 있는데 키스해주면 풀 수 있다.'라고 구라치고 콜의 키스를 받으려는 모습에선 이마를 탁 치게 하죠.

 

어쨌건 이 작품이 의미하는 건 결코 좋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영원을 살아가는 존재와 찰나를 살아가는 존재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의 삶은 비참하기 짝이 없죠. 영원을 살아가는 엄마보다 일찍 죽을 것이고 찰나를 살아가는 아빠보단 오래 살지만 아빠는 딸이 다 큰 걸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겠죠. 작가는 이런 암시를 작중에 심어두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불행한 삶을 살다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콜이 무던히도 뮤리를 신경 쓰는 대목은 애잔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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