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와 환상의 그림갈 3 -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사라고 납득하는 수밖에 없지만, NT Novel
주몬지 아오 지음, 이형진 옮김, 시라이 에이리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며칠전(2권 초반) 오르타나에 오크가 처들어와 난동을 부리고 물러난적이 있습니다. 3권에서는 오르타나 변경군은 토벌대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오크 토벌에 나선다는 이야기로, 옛날부터 오크와 인간은 숱하게 싸워왔고 그때마다 인간족은 오크의 '데드 헤드 감시 보루'를 잠시 점령 했다가 돌려주곤 하였지만 이번에는 아주 씨를 말릴 작정으로 대규모 원정군을 꾸려 '데드 헤드 감시 보루'와 그 뒤 오크 본대가 있는 '리버사이드 철골 요쇄' 탈취 작전을 입안, 변경군을 소집하고 하루히로 파티가 속한 의용병들에게서 지원자를 모집을 시작 합니다. 그렇게 변경군과 의용병 몇천명이 모이고, 두 부대로 나눠 동시에 오크와 전쟁에 돌입하게 됩니다.

 

'초코'​는 하루히로의 단편적인 기억 속에 있던 소녀였습니다. 그녀는 하루히로가 그림갈에 도착하고 얼마뒤 후속으로 도착한 그룹에 속해 있었고, 하루히로는 후속 루키(초보자)에 대해 소문으로 듣고 있었지만 초코가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습니다. 알아도 기억이 없어서 그녀가 자신의 기억속의 그녀인지 자각하지도 못 했을 것 입니다.

 

우연찮게 데스 스팟을 쓰러트린 요행이 언제까지고 계속될리 없을 거라는 걱정과 자신은 리더의 자질이 없다는 것에 고뇌를 되풀이하던 어느날 하루히로는 자신이 기거하고 있던 여관에서 초코와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둘 다 그림갈에 오기전의 기억은 없습니다. 여기서 좀 아쉬웠던 부분은 조금 더 하루히로의 기억의 단편을 끄집어 내어 아련함을 표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것 입니다. 하지만 기억이 있던 없던 어리바리 내성적이고 타인의 접근을 막는 하루히로에게 뭘 바라겠습니까...

 

그렇게 하루히로와 초코의 엇갈린 날이 지나고 D-day가 찾아 왔습니다. 오크 본대가 있는 리버사이드 쪽은 정규군과 의용병중에서도 상위 랭커 파티가 처들어가고, 비교적 적은 인원으로 이뤄진 '데드 헤드'쪽은 남은 찌꺼기..(라곤해도 렌지같은 좀 난다긴다하는 파티도 참가)가 처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찌꺼기중에 찌꺼기인 하루히로 파티와 초코 파티는 데드 헤드쪽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분량중 2/3가 오크와 전쟁씬 입니다. 처절 합니다. 옛날부터 수시로 인간족에게 점령당했다던 '데드 헤드 감시 보루'를 깔봤던 인간족은 자만과 오만과 방심의 댓가를 처절하게 받습니다. 변경군 주축으로한 본대에 의한 정문 공격은 뚤리지도 않고, 양옆문을 협공하여 처들어갔던 의용병 파티들은 보스에게 걸려 하루히로 파티, 와일드 엔젤스 파티와 렌지 파티를 제외한 대부분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초코'​는 허망하게 세상을 뜹니다. 의용병들은 보루 성내를 휩쓸며 들린 1층에서 잠시 쉬라고 내비뒀던 초코 파티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오크 보스가 난입하여 일순간 초코 파티를 비롯한 대부분의 파티를 쓸어 버립니다. 이 장면에서 '이거 뭐지?' '이런 흐름도 괜찮은건가?' 할 정도로 허망하게 흘러 갑니다. '이거 꿈은 아니겠지?' 그야 간신히 초코와 하루히로가 만났는데?

 

렌지가 뛰어 갑니다. 하루히로도 난입 합니다. 하지만 모든게 늦었습니다. 의용병중에서도 상위 랭커에 속해도 무난할 렌지가 보스전에서 밀립니다. 보스 똘마니들과 하루히로 파티도 난전에 돌입하지만 밀립니다. 메리는 시호루를 지켜주는데 필사적이 되고, 유메는 중상을 입습니다. 란타는 쫄랑쫄랑 잘도 도망 다니고, 모구조는 간신히 똘마니와 1:1 대결을 펼치지만 사태는 녹록치가 않습니다.

 

초코가 쓰러지자 하루히로도 보스전에 뛰어듭니다. 하지만 대미지는 1,1,1 뜨며 보스가 휘두른 팔 한방에 나가 떨어지고, 주마등이 흘러 갑니다. 그림갈에 오기전의 기억, 자판기 옆에 쪼그리고 앉은 하루히로와 초코, 하루히로는 초코를 좋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무골충 하루히로는 친구 이상의 말을 걸지 못하고, 초코는 같은 클래스 메이트 남자를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하루히로는 다리를 놔줍니다. 다리를 놔주면서 초코의 남친이될 남학생이 착해서 다행이다. 라고 스스로 무덤을 팝니다. 

 

'미처 피지도 못한 꽃'​은 이런걸 말하는건가 봅니다. 하루히로는 초코를 지켜줘야된다는 자각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억이 없다보니 타인 이상의 감정을 가지지 못 했습니다. 그림갈에 오기전에 그렇게 사모했던 초코를... 고백은 죽어도 못할 것이라고... 평생 못할 것이라고 했던 독백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림갈에서 지켜지게 되어 버렸습니다.

 

많이 안타깝습니다. 간만에 히로인급 여자 애가 나왔나 싶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도 되나 싶을 정도 입니다. 필자의 가슴을 더욱 쥐어짜게 만든건, 기억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슬프다 라는 의미를 전혀 살리지 못했다는 것 입니다. 이런 부분은 '주몬지 아오'의 전매특허인지 다른 작품에서도 비슷한 전개를 보여주는데요. 독자로 하여금 감정이입에 몰입시켜 분위기를 극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었음에도 일정 고도 이상으로는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초코의 죽음에 타 의용병 죽음 이상의 느낌을 보여주지 않는 하루히로의 모습에서 이놈 사실은 감정이 매우 매마른 녀석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런 저런 일들이 있지만 이번 3권의 몰입도는 상당히 높습니다. 대부분이 하루히로 1인칭 시각과 생각으로 진행이되지만 오크와의 전투 설명 디테일이 살아있고, 하루히로의 마음이 절절하게 뭍어나 있습니다. 그 강대한 렌지가 보스전에서 보여주는 절체절명의 순간, 쫄랑 쫄랑 뛰어 다니며 강대한 정력을 자랑하며 상처 하나 입지 않다가 오크 주술사가 뿜어내는 화염으로 통구이가 되는 란타, 항상 파티네 무드 메이커로 활약하는 유메가 중상을 입고도 우는 소리 하나 안하는 강인함, 전위에 서서 자신보다 강대한 적을 상대하며 기죽지 않는 모구조가 빛을 발하여 전멸의 기로에선 의용병 부대에서 렌지 파티와 더블어 하루히로 파티는 살아 남게 됩니다.

 

사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번 에피소드에서 렌지 파티보다 하루히로 파티가 더 강하게 표현 되는데요. 렌지 파티는 보스전에만 몰입 했다곤해도 하루히로 파티는 의용병 부대를 궤멸시킨 보스 측근들을 다 막아내고 현상금 50골드나 걸린 주술사 3마리를 없애 버렸습니다. 그리곤 보스전에도 참여하여 하루히로는 보스 토벌에 지대한 공을 세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구조가...

 

마지막으로 기억이 없다는건 이렇게 무서울 수도 있구나하는걸 내포하고 있기도 합니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잠에서 깨었을때 꿈이 손바닥 사이로 흐르는 물처럼 흩어지듯, 아무리 기억 해내고 싶어도 손바닥 사이로 흘러 나가는 기억은 사모하는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게 하였습니다. 기억이 없더라도 좀 더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 보고 이세계에 대해서 알려 주고 싸움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고 했더라면...

 

그렇게 기억과 추억을 만들어 갔더라면... 아마도 3권은 최고의 에피소드가 되었을 것 입니다. 마나토를 그렇게 보내야 되었을때보다 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