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의 왕 1 - Novel Engine
츠키카게 지음, 에렉트 사와루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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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세계 먼치킨이지만 죽도록 일하기 싫어하는 니트의 이야기입니다. 현실 지구에서 사축으로 쪽쪽 빨리다 비명횡사한 후 눈을 떠보니 이세계였고, 마왕이 되어 있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침대를 끔찍이 사랑하고, 잠(슬립)은 최고의 특기이며, 나태는 나의 본성. 언제부터 이래왔는지 기억은 까마득하고, 말하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최고의 니트는 어째선지 19명이 있다는 마왕 서열 제3위(5위였는데 3위로 올라섬)가 되어 있었습니다. 보통 이세계물 하면 용사가 되거나 그에 준하는 선(善)에서 시작하는 반면에 본 작품은 마왕이라는 악(惡)에서 출발합니다. 그렇다고 인간들을 몰살하러 다니는 호러틱한 건 아니고 사람이 어디까지 나태해질 수 있는지 실험적인 작품이 아닐까 하는데요. 침대에서 일어나는 법이 없으며, 전속 메이드가 밥을 떠서 주인공의 입에 넣어주는 아주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합니다. 만약 19금이었다면 대소변도 받아주는 장면도 있었을지 않을까 하는 그런 분위기를 보이죠.

비탄의 망령을 집필하고 있는 츠케카게 작가의 또 다른 작품입니다. 웹에서 연재 중이고 7~8년쯤 된 걸로 보이는데 아마 비탄의 망령과 교차 연재 중이 아닐까 싶군요. 아무튼 본 작품의 주인공은 비탄의 망령의 주인공이 그토록 바랐던 나태한 삶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탄의 망령에서 동료에 해당하는 메이드는 주인공을 끔찍이 보살피고, 부마스터역인 '리제'는 나태한 주인공을 침대에서 끌어내려 일 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죠. 하지만 나태 하나로 지금껏 먹고 살아온 주인공은 '리제'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아 언제나 그녀의 위장을 구멍 냅니다. 주인공 상관에 해당하는 대마왕의 명령조차 듣지 않으니 결국 힘으로 해결하려고 침대를 불사르고 메이드를 농담이 아닌 진짜 물리적으로 화형 시켜도 꿈쩍을 안 하니 미치고 졸도합니다. 사실 주인공은 원해서 마왕이 된 것이 아닌 데다, 현실에서 사축으로 쪽쪽 빨리다 죽었으니 이세계에 와서까지 일하기 싫다는 글러먹은 사상을 가지고 있죠.

본 작품은 원죄 7대 죄악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바라는 욕망이 곧 능력이 되고 스킬이 됩니다. 욕망이 강할수록, 충실해질수록 힘은 더욱 커집니다. 이 뜻은 주인공이 나태해지면 해질수록 강해진다는 의미이죠. 비단 주인공만이 아닌, 모든 원죄에 해당하며, 결국 오래 산 악마(주인공은 마족)가 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담 주인공은 이세계에 와서 몇 년이나 살았나. 이게 이 작품의 핵심 포인트죠. 그리고 주인공이 마왕 서열 3위인 이유이기도 하고요. 근데 돌려 말하면 근본이 나태한 주인공은 노력해서 강해졌다기보다 욕망에 충실해서 강해졌다는 실로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얼마나 나태하냐면, 마족은 서로가 죽이는 혼돈의 카오스 상태고, 원죄 중 폭식이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마왕도 있다는 뜻이죠. 욕망에 충실할수록 강해지는 원리에 따라 폭식의 마왕은 인간들이 아닌 동족을 잡아먹기 시작했고, 주인공의 영지까지 쳐들어와 부하들을 잡아먹고 있는데도 구해주지 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대마왕이 파견한 '리제(메이드와 메인 히로인 자리 두고 다투는 중)'는 주인공으로 인해 위장병을 달고 사는 게 개그 포인트입니다. 나태의 본질을 깨닫기보다(깨닫지만 애써 외면) 대마왕의 명령을 우선시해서 주인공을 닦달하지만 주인공은 어디서 개가 짖나 식으로 무시, 메이드는 보란 듯이 주인공이 나태의 수렁에 빠지도록 보살피고 있는 것도 눈에 가시인데, 아기 새에게 먹이 먹이듯 밥을 떠서 침대에 자빠져있는 주인공 입에 넣어주는 장면은 그녀(리제)에게 있어서 가히 압권이죠. 이런 장면이 계속되자 뭔가 끊어지면 안 될게 끊어진 '리제'의 화염 공격으로 침대는 불타고 메이드는 숯덩이(농담 아니고 진짜 물리적으로)가 되어 버리는 아수라장이 펼쳐지는 게 그로테스크 합니다. 하지만 질이 안 좋은 건, 비탄의 망령에서는 무늬만 강했던 것과는 반대로 본 작품의 주인공은 진짜 강하다는 것이고, '리제'의 불같은 분노(리제의 원죄는 분노)는 주인공 발치에도 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다고 해서 진지한 장면을 연출한다기 보다 어딘가 몇십 년 같이 지낸 부부 같은 분위기를 보여주는 게 흥미롭죠.

맺으며: 일단 1권 기준으로 장르는 코미디에 가깝습니다. 폭식의 마왕이 동족을 잡아먹는 장면들은 좀 그로테스크 했습니다만. 그 외에는 일하기 싫어하는 주인공과 일 시키려고 하는 리제의 눈치 싸움에 메이드는 주인공 편들어서 리제를 무시하고 그걸 또 열받아하는 게 재미있습니다. 참고로 주인공과 리제가 투닥거리는 러브 코미디 같은 이야는 아닙니다. 주인공은 말하는 것조차 귀찮아하고 있죠. 이 부분은 약간 발암이지만 동시에 나태를 충실히 표현하고 있기도 해서 좀 오묘한 느낌을 들게 합니다. 언제나 열받아 하는 건 리제 혼자. 원죄에 관한 내용들은 허투루 넘기는 것이 없는 꼼꼼한 설정들이 작가가 준비를 많이 한 듯하더군요. 가령 물이 불을 이길 수 없듯이 상성의 문제 같은 것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진행 방식은 나태해서 움직이기 싫어하는 주인공보다는 리제 등 주변 사람들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그래서 같은 장면을 다른 사람의 시야에서 재촬영하듯 구성하기도 해서 약간 지리멸렬한 부분도 없잖아 있습니다. 이세계 전생이지만 전생물이라는 느낌은 거의 없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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