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묵시록 마이노그라 1 - ~ 파멸의 문명으로 시작하는 세계 정복 ~, S Novel+
카즈노 페후 지음, 준 그림, 손종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노블엔진에서 발매할 법한 분위기인데 S노벨에서 발매되었다는 게 다소 신기한 신작입니다. 장르는 이세계 전생을 큰 틀로 하고, 치트를 가진 주인공이 부하를 거느리고 나라를 건국한다는 이야기인데요. 나라를 건국한다고 해서 남에 나라 쳐들어가 왕을 죽이고 오늘부터 내 땅이라거나, 귀족들 틈에 끼여 승승장구한 끝에 왕위를 물려받는다던지, 용사로 활약하다가 왕녀와 결혼한다던지, 그런 건 아닙니다. 이 작품을 전략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스타크래프트나 심시티와 유사하다고 해야겠군요. 주위에 있는 거라곤 대산림이고, 백성 하나 없이 한정된 자원으로 맨땅에서 헤딩하듯 처음부터 기틀을 다져간 끝에 대국으로 올라서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주인공의 성향이자 속성인데요. 보통 주인공 하면 선(善)을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사악과 파멸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인간들의 나라를 침공하고(아마도 예정), 성스러운 나라 그러니까 성녀가 있는 나라와는 대립하게 되는 그런 구도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거죠.


주인공 '타쿠토'는 병상에서 생을 마감하여 이세계로 전이합니다. 전생하고 보니 이세계는 죽기 전까지 그가 했던 온라인 게임 [Eternal Nations] 세계관이었고, 게임 내 NPC 병기였던 '아투(메인 히로인)'가 그를 반겨줍니다. 사실 이런 게임 세계관으로 전생하는 작품을 그동안 꾸준히 있어왔죠. 그래서 다소 식상한 흐름이지만, 이걸 작가가 어떻게 풀어낼지에 따라 흥미도는 달라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런 면에서 본 작품의 작가의 능력은 어떠한가를 미리 언급해보자면, 필자 주관적이긴 한데 중상급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치트를 가진 주인공이 이세계에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아가고, 무지몽매한 이세계 주민을 선도하여 잘 살게 해주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죠. 하지만 주인공이 치트를 가졌다곤 해도 근본 없이 강한 것은 아니고, 백성들을 얼마나 받아들이느냐, 건축물을 얼마나 짓느냐에 따라 주인공의 능력도 상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라가 커질수록 주인공도 강해지는, 강해지려면 죽자 살자 나라를 키워야 하죠.


그런데 나라를 키우면 키울수록 사악과 파멸도 같이 성장한다는 뜻이고, 이러면 성스러운 성향의 나라와 대립하게 되는 건 필연이 되죠. 이 작품은 선과 악이 뒤바뀐 케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인공의 성격을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요. 주인공은 생전에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데다 병상에서 지내다 보니 친구하나 없고, 누구 하나 사회생활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주인공은 인간성에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죠. 주인공과 사악 계열을 같이하는 '아투(히로인)' 조차 질색할 정도로 조금은 심각한, 거기에 중증 커뮤니케이션 장애까지 안고 있는 등 그동안의 여타 주인공들보다 조금은 이색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죽음이 쓸쓸했던 기억 때문인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보살피는 온정을 베풀 줄도 아는 다소 기형적인 캐릭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내 울타리에 들어온 사람은 보호하지만, 울타리를 부수려는 사람에겐 가차 없이 벌을 내리는 성격이랄까요.


박해를 피해 대주계(주인공이 도착한 곳)로 이주했던 다크엘프들이 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을 보고 있자니 피죽도 못 먹어 삐적 말라서는 오늘내일하는 겁니다. 주인공은 이들을 받아들여 백성으로 삼아 '마이노그라'라는 이름의 나라를 건국하고 기초를 다져가죠. 여기서 굉장히 흥미로운 게 사악과 파멸을 성향으로 하고 인간성이 결여되어 있다면서 이런 호의도 베푸는 주인공이 조금 당황스럽다는 건데요. 그런데 백성들(다크엘프들)을 사악에 물들이는 것에서 그러면 그렇지 하는 흐름을 보여주면서 아주 재미있게 흘러간다는 겁니다. 도시를 건설하면 할수록 주변은 주인공의 영향을 받아 기괴해지는 지옥의 형상으로 바뀌어가는 것도 흥미롭죠. 어쨌거나 받아주고 살 수 있도록 도시도 만들어주니까 '나(주인공)' 나쁜 놈은 아니라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이야기가 제법 재미있고요. 다만 물자를 주인공의 마력으로 생산하는 것에서는 날로 먹는 느낌이 좀 있긴 한데, 이게 그의 치트라서 어쩔 수 없긴 합니다.


맺으며: 이세계 전생을 기반으로 한 작품 치고는 제법 신선한 흐름을 보여줍니다. 사악과 파멸 속성을 가지고 평화를 사랑하며 커뮤니 장애를 겪는 주인공이 나라를 만들어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는 좀처럼 없죠. 치트를 가졌지만 등장하자마자 무쌍을 찍는 것도 아니며, 다크엘프들을 맞아들일 때까지 전생 전의 옷차림(병원복)으로 돌 의자에 앉아 아투와 함께 궁상을 떤다던지. 그 꼴을 하고서 다크엘프들에게 사악과 파멸을 대표라 지칭하며 주인공에게 예를 다하라며 거만한 말투를 쓰는 아투도 재미있죠. 전략 시뮬레이션처럼 도시를 만들면서 신중과 계획성 있게 행동하는 것도 눈여겨볼만합니다. 사악과 파멸 속성과 다르게 백성들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왕이 되고자 하고, 무조건 베푸는 것보다 길을 제시해서 살아갈 수 있게끔 하는 것도 흥미롭죠.


그렇다고 단점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주인공을 너무 추켜 세워서 다소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제법 있는데요. 일본 작가들의 특성 중 하나인 신(神)에 비유하며 주인공을 떠받드는 것이나, 주인공이 뭔가를 하면 한줄기 빛이라는 둥 호들갑은 어찌나 떨던지 갑분싸가 이런 건가 싶을 때가 많아요. 초중반까진 마치 메시아가 이 세상에 강림하여 무지몽매한 인류를 구원하는 듯한 흐름 때문에 집중력을 떨어트리는 주범으로 작용하기도 하죠. 중반부터는 작가가 정신 차렸는지 그런 부분은 다소 없어집니다만. 그 외에 다크엘프들에게 먹을 것을 던져주는 장면에서는 선민사상이 엿보이기도 하고요. 다크엘프들이 처한 비참함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심각성을 부각 시키면 좋았을 것을 감성에 호소하는 듯하여 공감을 얻기보다 다소 짜증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시간의 흐름을 정체 시키지 않고 빠르게 보여주어서 이 부분은 좋았습니다. 몇 달 동안 도시를 건설하며 경과를 설명하고 백성(다크엘프)들과 소통을 하며 주인공 혼자 다 해 먹는 여느 이세계 전생물과는 다른 흐름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군요. 주인공과 대척점으로 작용할 성녀가 신탁을 받아 주인공을 재앙으로 치부해서 적으로 인식한다던지, 그 성녀 또한 출생 때문에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 이세계 전생은 주인공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있다는 복선 등 꽤나 치밀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죠. 그리고 이건 좀 클리셰이긴한데 주인공은 성녀와 다른 전생자들과 대립하게 되지 않을까 싶군요. 클리셰라해도 그 흐름이 이미 1권에서 시작되는 등 기승전결을 깔끔하게 해주어서 마음에 든다고 할까요. 다만 다소 약해지긴 했지만 주인공을 추어올리고 신격화하는 것만 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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