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 왕녀와 천재 영애의 마법 혁명 1 - L Novel
카라스 피에로 지음, 키사라기 유리 그림, 송재희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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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우 매우 강한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아니스피아(이하 아니스): 17세, 왕국의 제1왕녀로 태어나 축복받은 삶이 약속되었지만 5살 때 전생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그녀의 인생은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바뀌어 버린다. 마법이 있는 이세계 판타지에서 그녀는 마법을 쓰지 못한다. 왕족과 귀족은 마법을 쓰는 게 당연한 세상에서 마법을 못쓴다는 의미는 크다. 자연스럽게 주변에서는 그녀를 헐뜯고, 손가락질하기 바쁘다. 보통 판타지에서 17세면 결혼할 나이고 왕녀면 일찌감치 정략결혼으로 어딘가로 가버렸을 테지만 그녀는 손절 당한지 오래다(사실은 그녀가 주변을 손절한 거지만). 하지만 그녀는 주변 상황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 그보다 어릴 적부터 그녀의 소망은 마법을 배워서 하늘을 나는 것. 마법이 곧 그 사람의 가치인 세상에서 마법을 못 쓴다는 것에 보통 기죽을 만도 하겠건만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엉뚱하게도 마법도구를 만들어 하늘을 날면 안 될까? 그래서 시작한 게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길이다.


유필리아(이하 유피): 15세, 유력 공작가의 영애로 태어나 차기 왕비로서 길러지고 자신도 그 길을 자신이 살아가야 될 삶이라 여겨 오직 앞만 보고 달려온 히로인이다. 그녀는 마법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 천재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데, 아니스와는 여러 가지로 반대되는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영재교육을 통해 왕비로서의 소양을 다져왔던 그녀는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여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마음에도 없는 왕자와 결혼하려고 하는 굉장히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발명을 인생의 낙으로 삼는 괴짜에다 활발하고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아니스와는 완전히 딴판인 대척점에 있는 설정(아마도)답게 감정 표현이 매우 희박한 게 특징이다. 그런 그녀에게도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온다. 학원 파티에서 그녀의 약혼자인 왕자는 대놓고 그녀와 결혼을 파기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녀는 영애로서의 인생이 끝나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고 파티장에 난입한 아니스에게 납치되어 버린다.


이 작품은 마법을 못 써서 손가락질 당하고,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온갖 저지래 다 하고 다니는 통에 왕국의 문제아로 등극한 왕녀 '아니스'와 결혼을 파기 당하고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귀족 영애 '유피'가 저지르는 마법 혁명을 다루고 있다. 마법을 못 쓰는 게 대수냐, 나에겐 마력이 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시추에이션(무능 먼치킨)이지만, 전생의 기억을 바탕으로 빗자루에 램제트 엔진을 달아서 하늘을 날면 되지 않나? 하며 날다 벽에 갖다 박아 버리는 괴짜 아니스의 기행이 흥미로운 요소다. 일찌감치 왕위 계승권도 포기했다. 무늬만 왕녀로서 체통은 내다 버린 체, 발명이랍시고 사고만 치는 딸내미 때문에 오늘도 아빠(국왕)는 새치가 늘어만 간다. 그런 그녀의 눈에 '유피'가 들어온다. 천재라 불릴 정도로 마법에 능통하고 차기 왕비로 길러지며 영재교육을 받아 우수한 머리를 가지고 있다. 아니스는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그녀(유피)를 주워다 조수로 기용하게 된다.


근데 말입니다. 아니스는 유피의 인생이 이대로 망가지는 게 아까워(대놓고 결혼 파기 당하는 바람에 아무도 데려갈 사람이 없다) 그녀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는 건데 정작 유피는 할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온 동네 다 들쑤시고 다니는 아니스 덕분에 유쾌하고 밝은 성격을 띤다. 유피는 인생의 외길로 여겨온 차기 왕비에서 쫓겨난 충격은 클 것이고, 왕비가 되는 길 이외에 살아갈 방법을 배우지 못한 점도 있다. 대체 부모는 무슨 생각으로 딸내미를 이렇게 키웠는지 답답하지만 뒤늦게 부모가 사과하면서 일단락 되니까 넘어가고, 아무튼 의욕이 없는 유피 때문에 시종일관 밝음과 우중충함이 싸워되는 통에 분위기를 다 말아먹는다. 일례로 아니스가 마법이란 무엇인가를 두고 강연하는데 유피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단답형식으로 질문하는 등 아니스가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감정 표현도 약해서 얘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귀찮아하는지도 잘 표현되지 않는다.


사실 관심이 없다기보다 아니스의 마법 이론이 이 세계의 법칙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라서 유피의 의식이 따라오지 못한다고 해야겠다. 아니스는 자신이 마법을 못 쓰게 된 배경을 조사하게 되고, 원인을 찾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세계가 주창하는 마법 이론과는 상당히 상반되는 것으로 이단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이세계의 마법은 정령이 베풀어준다는 이론인데, 아니스는 연구를 통해 정령을 자폭 시켜서 마법을 발현 시킨다는 이론을 돌출하게 되면서 이단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게 된다(근데 아니스의 이론이 맞다). 그러니 유피가 따라오지 못한다고 해서 이상하지 않다. 자신이 쓰던 마법이 정령을 자폭 시켜서 발현 시키는 거라고 하니 눈이 똥그랗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아무튼 초중반은 그렇다 치지만, 아니스가 마법을 연구하고 성과를 낸 거라든지 그녀의 포부를 듣고도 동조까진 아니어도 공감 정도는 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끝까지 이런 것조차 보이지 않고 매사 아니스가 하는 일에 부정적으로만 나오니 '유피'라는 캐릭터는 발암 그 자체가 되어 버린다(이건 극히 일부다).


어쨌거나 유피를 다시 사교계로 복귀 시키기 위해서는 그녀에게 업적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서 아니스는 자신이 발명품을 만들고 유피로 하여금 그 성과를 발표하게 함으로서 그녀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한다. 사실 남남이고, 아군 아니면 적(에너미)으로 나뉘는 귀족 세계에서 아니스는 유피를 도와줄 이유가 없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의 특성을 알아야 하는데, 이 작품은 백합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미 아니스는 유피를 이성으로 보고 있고, 아빠(국왕) 면전에서 커밍아웃도 했다. 딸내미 때문에 아빠(국왕)의 실제 나이 30대지만 겉모습은 50대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 한가지 더 있다. 유피의 결혼 상대자는 바로 아니스의 친동생이다. 즉 동생은 왕자라는 소리고, 왕자라는 놈이 파티에서 많은 사람 앞에서 상대 여자(유피)를 dog무시한 dog망나니다. 그것도 바람나서 유피를 차버렸으니 희대의 dog놈이 되겠다. 그래놓고 아빠(국왕)과 엄마(왕비)의 말 따윈 듣지 않겠다고 커밍아웃까지 한다.


사실 아니스와 유피와의 관계보다 dog놈 왕자와 아니스가 앞으로 어떤 싸움을 벌이게 될지 이게 더 흥미롭다는 거다. 아니스는 왕위 계승권을 포기했지만 동생이 희대의 역작을 터트려 주어서 정국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보통 이렇게 혼사를 망치게 되면 왕자의 왕위 계승권은 박탁 당하고, 왕자의 바람 상대자(이건 2권에서 언급해보겠음)는 집안이 몰락될 정도로 징계를 받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이 작품은 말은 왕족과 귀족의 세계라 지칭하면서 이런 부분은 굉장히 느슨하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왕족+공작가 혼사에 감히 남작(왕자 바람 상대) 나부랭이가 끼어들어?라는 시추에이션이 없다(2권에서 나오려나).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마물이 쳐들어와 백성들이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아니스가 먼저 출격해서 처리한 것을 두고 동생(왕자)에게 결혼 파기에 대한 만회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둥, 왕족(아니스)이 앞장서는 건 있을 수 없다는 둥(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상식을 뒤엎고 앞뒤 맞지 않는 행동들은 이 작품의 옥에 티가 아닐까 한다.


맺으며: 아니스가 그토록 이단 + 문제아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마법 연구에 몰두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하는 부분은 굉장히 눈부시다 할 수 있다. 반짝반짝 빛난다는 건 아니스를 두고 하는 말인가 싶을 정도로 절절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마법을 못 쓴다는 것, 그 답답함을 풀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고 그 성과를 내어 마법에 가까운 것을 개발해낸다. 이건 이때까지는 거의 없었던 소재이기도 하다. 물품에 마법을 접목시켜 마법에 가까운 효과를 낸다. 이걸 자기 것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도우고 그에 웃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웃을 수 있고 그러면 모두가 행복할 것이라는 그녀의 마음가짐. 그것을 위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 좌절하지 않고 노력하는 주인공(히로인)으로서 굉장히 호감이 간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유피는 그녀의 포부를 듣고도 공감조차 하지 않는 것에서 답답함을 불러온다. 그래도 최후반에서 겨우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을 보이는지라 2권부터는 본격적으로 백합을 찍지 않을까도 싶다. 사실 하나 밖에 몰랐던 유피가 아니스를 만나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그동안 몰랐던 것들을 배우고,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아니스에게 마음을 열어간다고도 할 수 있다. 그 과정이 답답할 뿐. 마지막으로 리뷰에서 혁명에 대해 크게 언급하지 않았는데, 아니스가 하는 짓거리들이 혁명이라 하겠다. 아니스는 이단으로 치부되는 연구와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으려고 하니까. 마법을 못 쓰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아이템이 많다. 나라의 근간을 뒤흔들 정도로 위험시 되는 것도 있고. 이걸 유피와 만들어가는 이야기라고 보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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