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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저편으로 2 - Novel Engine
후타츠기 고린 지음, 아카이 테라 그림, 정호욱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1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 작품의 특징은 주인공은 지지리도 궁핍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고향에서조차 밥 굶기를 밥 먹듯이 하는 게 일상이다. 매일을 사냥으로 입에 풀칠을 하던 주인공은 이마저도 마을 사람들과 어머니에게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다 왕도로 도망치듯 나오게 된다. 마치 농촌에서 도시로 상경하는 촌사람 같은 경우다. 부푼 꿈을 안고 도시로 나왔지만 현실은 주 7일, 일일 20시간을 일하는 살인적인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이러다 굶어 죽는 거 아닐까 해서 이참에 모험가가 되어 보기로 한다. 들려오는 소문의 '미궁 도시'에 가면 모험가가 될 수 있다는 소리에 마침 왕도에서 만난 '유키토'라는 예쁜 소녀(?)와 '미궁 도시'로 향하게 된다. 가는 내내 3일 동안 주인공은 아무것도 먹지 못할 정도로 매우 궁핍한 상황이다.
이 세계는 중세 시대 미만을 시대 배경으로 그린다. 영주는 살인적인 세율로 영민들을 착취하고, 농촌에서는 아이들이 노예로 팔려가기 일쑤다. 주인공의 고향에서도 여자애들은 모두 팔려가는 바람에 여느 라노벨에서 나오는 소꿉친구 같은 달콤한 유년기는 없다고 자조할 정도다. 참고로 주인공은 일본에서 살던 때의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보통 전생의 기억이 있다고 하면 신문물을 만들어 내거나 지식을 바탕으로 한 먼치킨으로 성장할 테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에겐 그런 거 없다. 주인공은 자신의 이름만 겨우 쓸 줄 아는 수준이다. 이렇게 초장부터 시궁창 같은 세계관을 그리면 앞으로도 얼마나 더 시궁창이 기다리고 있을까. 주인공이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성장하는 소재는 흔치가 않다. 그리고 아무리 아싸 주인공이라도 히로인은 붙게 마련인데 이 작품의 주인공에겐 없다. 이 얼마나 불쌍한 주인공인가 싶다.
...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작가는 자기가 설정한 걸 까먹는 경향이 있다. 노예로 팔려가는 게 일상이라고 해놓고, 정작 노예상은 노예 매입을 거부하고 있다. 워낙 불경기라 있는 노예도 바겐세일로 팔아 치울 정도다. 시대 배경은 어떤가. 중세 미만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 '미궁 도시'는 현대 일본에 버금가는 과학과 신문물을 보여주고 있다. 쌀은 어디서 났으며, 편의점에 납품되는 각종 서적과 음식들은 어디서 오는지 밝히지 않는다. 밖은 보리 죽도 못 먹는데 '미궁 도시'에서는 쌀밥이 일상이고 범죄도 없다. 이렇게 괴리와 갭의 차이를 작가는 아무렇지 않게 표현한다. 일본 아파트를 그대로 재현한 것도, 컵라면 먹는 것도 일상이다. 이 미궁 도시를 만든 사람은 일본인이라는 설정이다. 결국 초반에 주인공을 이용해서 전생의 기억이 있다고 해도 어떻게 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놓고 이렇게 작가는 뒤통수를 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주인공과 유키의 생활을, 히로인들의 생활을 따로 표현하면서 판이한 글 솜씨를 보인다는 거다. 거의 괴랄한 수준인데, 주인공과 유키의 생활은 거의 스킬 설명과 어떻게 하면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는지만 무덤덤하게 그려놨다. 그려 놓더라도 뭔가 흥미를 끌만한 개그 코드라도 심어 놓으면 좋겠는데 일절 없다. 전혀 없다. 필자가 시간당 약 50페이지를 읽는데 얼마나 읽을거리가 없으면 시간당 1000페이지를 돌파했을 정도다. 굳이 읽지 않아도 되는 부분들을 왜 넣어놨는지 모르겠다. 온통 스킬 설명 밖에 없다. 이걸 굳이 독자가 알아야 되나? 그럴 시간이 있으면 적을 어떻게 쓰러트릴지 전술을 짜는 게 더 이득 아닌가? 그냥 스킬에 의존해서 적을 무찌르는 것밖에 없다. 어이없는 건 주인공이 초보자 던전에서 죽을 둥 살 둥 클리어했더니 누구나 다 클리어하는 던전이라며 폄하한다.
더욱 문제는 2권까지가 프롤로그이고, 주인공 일행이 미궁 도시에 오고 나서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는 거다. 즉, 얼마나 설명으로 때웠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초보자 던전 클리어하는 데만 한 권 반은 썼을 것이다. 이게 돈 받고 파는 도서에서 할 짓인가? 그렇다고 흥미진진하기나 하나. 미궁 도시에서는 죽어도 아무렇지 않게 부활되는 등 절실함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다. 주인공이 시궁창 같은 현실을 벗어나고자 노력해서 성장하는 이야기로 꾸며놓고, 정작 이야기는 현실미를 띄지 않는다. 그런 주제에 히로인들의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진진하다. 개그 포인트는 말할 것도 없고, 모험가로서의 이야기에서도 매우 충실하다. 작가는 히로인들의 이야기를 왜 주인공과 유키에게도 적용시키지 못하는가. 시종일관 이것만 생각나는 작품이다. 참고로 히로인들 이야기는 외전 형식으로 양은 많지가 않다. 그래서 더 감질난다.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면, 사실은 던만추의 '벨'처럼 온갖 고생 끝에 성장한다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실제로 초보자 던전을 클리어하면서 주인공은 '벨'같은 모습을 보인다. 장장 1~2권을 거쳐 정말로 죽 울 둥 살 둥 노력해서 초보자 던전을 하루 만에 클리어라는 전대미문 신기록을 주인공은 세운다. 보통 최소 몇 개월, 많게는 1년을 투자해야 클리어하는 던전이라고 한다. 앞으로 많은 클랜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 올 정도로 인기를 끌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근데 작중 어느 관계자는 누구나 다 쉽게 클리어하는 던전이라고 폄하해버린다. 이게 세간의 인식이기도 하고. 웃기지 않나? 이게 이 작품의 개그 코드인가. 분명 히로인들을 그리는 대목은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매우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근데 주인공과 유키는 대체 왜?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무의미한 것들 투성이다.
맺으며: 작가는 이렇게 줏대 없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걸 계속 읽어야 되나? 작가는 어그로를 끌고 있는 것인가? 히로인 리리카가 합류하지 않을까 싶어 구매했더니 언급조차 안 한다. 결국 1권 한정 히로인이었나 보다. 리리카의 말빨은 얼마나 좋은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이 작품에서 단비와 같은 존재였는데 작가는 왜 출연시키지 않는 것인가. 그리고 무능력에 가까운 주인공으로 표현했으면 그에 맞게 갖은 노력 끝에 성장시키던가. 하루 만에 먼치킨 만드는 건 아니지 않나 싶다. 꽝 [지도화]라는 작품에서의 주인공은 몇 달을 노력한 끝에 겨우 입에 풀칠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보통 노력이라면 이런 식이겠지. 줏대 없는 진행과 기승전결 없는 진행, 치밀한 구성을 스킬 설명으로 채워버리는 짓, 5층밖에 되지 않는 던전 그것도 초보자들이 간다는 던전 이야기를 두 권에 걸쳐 설명하는 극악성. 뭐 이게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일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