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블린 슬레이어 13 - L Books
카규 쿠모 지음, 칸나츠키 노보루 그림, 박경용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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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주의





이 업계도 인재난인가 보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모험가에 갓 입문한 초보들의 사망률이 굉장히 높다. 혹은 망가져서 수녀원에 보호되거나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영애 검사처럼 떨치고 일어나는 경우는 극소수다. 그래서 은등급 정도 되면 경외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 보니 만성적인 인재난이다. 살던 마을을 뛰쳐 나와 기껏 고블린 한두 마리 쫓아 보냈다고 기고만장해서 던전에 들어갔다가 못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럴 경우 피해를 보는 건 누구일까. 죽어버린 당사자일까. 일손이 부족해진 모험가 길드일까. 아니면 솟아나는 마물떼에 시름하는 마을 사람들일까. 어쩌다 첫 모험에 성공해서 그 길로 용기를 얻어 승승장구하는 경우는 축복받은 거겠지. 곤봉 전사와 수습 성녀가 그런 경우고. 바위를 먹는 괴물에 파티가 전멸해버린 신참 전사는 운이 매우 좋은 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살아남은 자들의 공통점을 찾으라고 한다. 그것은 신중함과 기본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100전 100승이라는 말이 있다. 병사가 전쟁에 화살을 들고 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적을 과소평가했을 때의 비참함은 말할 것도 없다. 준비는 자신의 목숨과도 직결된다. 전쟁에 눈에 띄는 화려한 옷을 입고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몸을 보호해주는 장비를 착용하지 않는다면 눈먼 화살은 반드시 나를 노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신중함과 기본을 조롱한다. 멋진 활약을 보여줄 거라며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준비에 게을리한다. 그 대가는 목숨이다. 다만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여신관은 그런 점을 첫 모험에서 뼈아프게 배우게 된다. 곤봉 전사와 수습 성녀는 기본에 충실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승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여기 또 한 명의 모험가가 등장한다. 시골 마을에서 엄마가 누구인지 모른 채, 쓰레기 아빠와 살다 모험가가 되기 위해 소녀는 도시로 찾아온다. 그녀도 흔하디흔하고 화려한 성공을 꿈꾸다 눈 밑에 보이지 않는 모험가 A, B, C 중 하나일까. 접수원 누님은 모험가 모집을 위해 한가지 꾀를 낸다. 미궁을 만들어 초보들의 훈련을 겸한 경기를 해보자고. 그러면 조금은 생환율이 올라갈까. 고블린은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 잡몹이지만, 초보들의 생환율을 극단적으로 떨어트리는 주범이기도 하다. 그리고 던전에 도사리는 각종 함정들. 이걸 인위적으로 만들어 초보들로 하여금 답파하게 하면 그들도 모험가 나부랭이라고 불러도 좋겠지. 그러니까 잘 부탁합니다. 고블린 슬레이어 씨. 사실 뭐 미궁 경기는 접수원 누님이 고블린 슬레이어와 좀 더 같은 시간을 보내려는 목적도 있다. 언급은 없지만.


시골 소녀도 미궁 경기에 참여한다. 그녀는 잡몹에 쓸려나가는 흔한 A, B, C일까. 아니면 곤봉 전사와 수습 성녀처럼 자신의 발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게 될까. 이야기는 그녀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 않는다. 흔한 모험가 지망생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 그녀의 에피소드는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남들과는 다른 모습을 들라면 그녀는 모험가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초보들이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인 장비의 효용성을 무시하지 않는 모습에서 이미 절반의 성공을 보인다. 던전에서 두 손의 자유는 생사를 가른다는 걸 그녀는 감각적으로 알아간다. 그래서 고블린 슬레이어는 감탄해 마지않는다. 하지만 싸움 실력은 빈말로도 좋다 할 수 없다. 미궁 경기가 아닌 실전의 던전이었다면 그녀의 운명은 여느 A, B, C처럼 되지 않았을까. 신의 변덕이 작용한다는 운명의 주사위는 그녀를 버리지 않는다.


사실 그녀의 백치미가 이번 13권의 핵심이다. 소꿉친구의 괴롭힘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미궁 경기에서 길을 잘못 들어 그녀로서는 감히 범접하지 못할 마신(魔神)을 만났을 때도 경기 감독관으로 착각해서 함부로 말을 거는 등 누가 봐도 상황적으로 이상함에도 그 상황에 이상함을 못 느끼는 백치미는 잔잔한 웃음을 자아낸다. 이런 장면들은 사실 이 작품에서 흔한 장면이 아니다. 걸핏하면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세계에서 그녀 또한 특별시 되지는 않을 터였을 것이다. 더욱이 그녀는 혼자 다닌다. 이 말은 100% 사망 코스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신중함과 기본에 충실한 사람은 반드시 살리는 경향이 있다. 이게 이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고. 그녀는 벌벌 떨면서도 도망치지 않았고, 조롱 당했다고 물러나지 않는다. 그녀에게서 미궁 경기의 본질을 엿볼 수 있다.


여전히 히로인들의 고블린 슬레이어 앓이는 계속된다. 여신관은 미묘하지만. 그중에서 접수원 누님은 이번 13권에서 발군의 실력을 뽐낸다고 할까. 미궁 경기를 준비하면서 고블린 슬레이어를 끌어들이고, 그것이 옳았다는 게 증명되고, 이걸 계기로 살짝 데이트를 신청하며 부뚜막 올라가는 고양이가 되는 그녀의 모습은 순수하면서도 약간은 영악하다고 해야 할까. 다만 그 고블린 슬레이어의 관심은 고블린뿐이라는게 함정이다. 아무튼 시골 소녀를 인도하는 고블린 슬레이어도 흥미롭다. 미궁 경기에서 길을 벗어난 시골 소녀에게 한 마디쯤 해줄 만하겠건만, 그녀는 길을 벗어나도 길을 벗어났다는 자각도 없고, 마신을 동네 아저씨 취급하며 성격 나쁜 감독관이라고 투덜거리는 그녀에게 그동안의 노력의 대가로 칭찬의 한마디는 정말 흐뭇하기 짝이 없다.


어쨌거나 시골 소녀에게 있어서 미궁 경기는 첫 모험이었고, 첫 모험을 무사히 마친 모험가는 죽지 않은 불문율에 따라 그녀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첫 모험을 무사히 마쳤다고 무조건 죽지 않는 건 아니다. 몇 권인지 까먹었는데 고블린 성체에 잠입했던 여성 3인조는 운명을 달리했으니까. 아마 기준은 엑스트라인가 아닌 가로 나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시골 소녀의 임팩트는 있었다. 고블린 슬레이어가 거둬들이면 좋겠는데 곤봉 전사와 수습 성녀처럼 언젠가 새로운 이야기의 주연이 되지 않을까 바라본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시골 소녀는 자신을 괴롭혔던 소꿉친구를 뛰어넘어 새로운 길로 나아간다. 이것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맺으며: 딱히 쓸 건 없다. 일러스트는 여전히 입체적인 게, 특히 시골 소녀의 일러스트는 상당히 수준급이다. 여신관과 왕매(왕의 여동생)의 자매 같은 일러스트도 좋았고. 그리고 시골 소녀를 통해 순한 고블린 슬레이어의 탄생을 보는 듯했는데 이후의 이야기가 기대된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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